토리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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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떠나본 자들은

지구가 아름다운 별이라 말했다지만

이곳에서만 살아본 나는

지옥이 여기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



-아름다움, 임솔아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위험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계속 배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즉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 이탈로 칼비노







"‘넌 아주 사악한 삶을 살아온 게 분명하구나. 너는…… (그는 전대미문의 놀라운 죄목들을 열거했다) 네가 이 모든 악행을 저질렀으므로 난 너를 반드시 지옥으로 보내야겠다.’



‘당신은 나를 지옥으로 보낼 수 없습니다.’



‘어째서 너를 지옥으로 보낼 수 없다는 것이냐?’



‘나는 이미 지옥에서 평생을 살았으니까요.’



그러자 심판의 집에는 다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어요.



‘좋다! 지옥에는 보낼 수 없다고 하니 너를 천국으로 보내야겠구나.’



‘당신은 나를 천국으로 보낼 수도 없습니다.’



‘어째서 너를 천국으로도 보낼 수 없다는 것이냐?’



‘나는 천국을 상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요.’



그러자 심판의 집에는 다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심연으로부터, 오스카 와일드







모든 것이 가만히 있는 곳이 지옥이다

꽃도 나무도 시들지 않고 살아 있는 곳

별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멈춰서 못처럼 박혀 있는 곳

죽은 마음, 죽은 손가락, 죽은 눈동자



-검은 방, 신철규







지옥이란 그렇게 단순하게 스펙터클하거나 요란한 곳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지옥이란 생전에 자신이 가장 무섭다고 생각했던 것들로 이루어진 세계일지도 모른다. 각자가 무서워서 사로잡힌 어떤 것들로 넘쳐나는 세계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에게는 돈 어떤 사람에게는 미친 엄마 어떤 사람에게는 굶주림 어떤 사람에게는 침묵 어떤 사람에게는 돼지들 어떤 사람에게는 방법도 없이 견뎌야 하는 추위 어떤 사람에게는 싸이렌 어떤 사람에게는 달걀 속의 뼈 어떤 사람에게는 편협한 전도사의 눈길에 구현된 신의 눈. 이런 것들이라면 반드시 죽은 뒤 도래하는 것만은 아닐 수도 있나. 어느 것이든 밑도 없는 시작으로 끝도 없다.



-낙하하다, 황정은







저는 하느님조차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믿지 못하고 하느님의 벌만을 믿었던 것입니다. 신앙, 그것은 단지 하느님의 채찍을 받기 위해 고개를 떨구고 심판대로 향하는 일로 느껴졌습니다. 지옥은 믿을 수 있었지만 천국의 존재는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아니요. 전 구원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해요. 우린 이미 심판받은 게 아닐까요? 성경에도 나오지만 바벨탑 이후로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게 불가능하단 말이죠. 심판은 이미 바벨탑이 무너질 때 일어난 거예요. 어쩌면 여긴 지옥인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결혼도 안 할 것이고, 아이도 낳지 않을 거예요. 내 몸으로는 절대로 어떤 영혼도 이런 지옥으로 불러들이진 않을 거예요.”



-죽지 않는 인간, 김연수







같이 가야 해. 죽지 말아야 해. 세상이 지옥이어서 우리가 아무리 선하려 해도, 이렇게 살아 있는 것만으로 우리는 이미 악마야. 함께 있어야 해. 한순간도 쉬지 않고 서로를 보고 만지고 노래하며 사람이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 해.



-해가 지는 곳으로, 최진영







어두운 극장에 여러 사람들과 앉아,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지는 어느 인간의 고통을 관람하면서, 우리는 정말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 세상은 지옥이었고 지옥이며 지옥일 것이라는 점만을 끊임없이 되새기면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돼가는 것일까. 이제 우리는 도무지 바뀔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지옥의 엔터테인먼트를 발명하고 체념을 쾌락으로 바꾸는 법을 연습하고 있는 것일까. 정직한 절망은 소중한 것이지만 그것이 오래 반복되면 기묘한 향락이 된다. 우리는 허황된 희망과도 싸워야 하지만 즐거운 절망과도 싸워야 하지 않을까.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우리는 남은 차를 마저 마시고 가방을 든다. 구원이니 벌이니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물며 사랑이니 하는 이야기는 더는 입에 올리지 않은 채로. 우리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각자의 우산을 쓰고 작별 인사를 나누고 뒤돌아 걸어간다. 그렇게 걸어간다.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샤오치가 원하는 게 바로 그런 것이었다. 자신을 망가뜨리고 싶었다. 오랫동안 힘겹게 한 악마를 받아들였는데 그 악마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것은 더러운 것 자체가 아니라 그 더러운 것조차 자신을 버리는 일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녀는 지옥에서 추방당했다. 지옥보다 비천하고 고통스러운 곳은 어디일까?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린이한







종교도 내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 다른 이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주는 믿음을 난 만질 수 있고 바라볼 수 있는 것에 주지. 나의 신들은 손으로 만들어진 신전에 살고 있고, 실제 경험의 범주 안에서 나의 믿음은 완전하고 완벽해지지. 어쩌면 너무 완벽한지도 모르겠어. 이 땅에 자신들의 천국을 자리잡게 하는 다른 많은, 또는 모든 사람들처럼 난 그 속에서 천국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지옥의 공포까지도 발견했기 때문이야.



종교에 관해 생각할 때마다 난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교단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해. 고아 형제회쯤으로 부를 수 있을 그곳의 제단 위에는 양초가 불을 밝히지도 않고, 마음에 평화가 깃들지 않은 사제가 축복받지 못한 빵과 포도주가 들어 있지 않은 성배를 가지고 미사를 주관하게 될 거야. 진실한 것은 무엇이든 종교가 될 수 있어야만 해. 그리고 불가지론不可知論도 믿음 못지않게 자신만의 의식을 행해야만 하지. 자신의 순교자들을 씨 뿌려놓았으니 자신의 성인들을 거둬들여야 하는 거야.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숨긴 신에게 매일 감사 기도를 올려야만 해.



-심연으로부터, 오스카 와일드
  • tory_1 2020.09.20 04:01
    내게 무해한 사람 좋다 읽어보고싶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내용을 알고 저 구절 읽으니까 괴롭다ㅜㅜ...
  • tory_2 2020.09.20 19:39
    잘 읽고가 너무 좋다 공유해줘서 고마워!
  • tory_3 2024.02.14 00:51
    ㅅㅋ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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