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정원



슬픈 소식을 듣고 임솔아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에 실린 세 편의 시들을 가져와봤어. 

우리 죽고 싶다는 말이 솟구칠 땐 밥을 입 안으로 밀어넣자.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톨들아





<아름다움>



바다를 

액자에 건다.


바다에 가라앉는 나를 본 적이 있다.

팔다리가 부식되어

산호가 되어갔다.


허옇게 변한 사지가

산호들 사이에 갇혀 있었다.

노랗거나 파란 물고기들이 주변을 배회했다.


저기 열대어가 있어, 스킨다이버들이

내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젖은 빵을 찢어 던졌다.

아름답다는 말을 산호 숲에 남겨두고

스킨다이버들은 뭍으로 돌아갔다.


나를 그곳에 둔 채 나도

꿈에서 빠져나왔다.

이곳을 떠나본 자들은

지구가 아름다운 별이라 말했다지만

이곳에서만 살아본 나는 

지옥이 여기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


나를 여기에 둔 채 나는

저곳으로 다시 빠져나가서


정육점과 세탁소 사이에

임대문의 종이를 쳐다보고 서 있다.

텅 빈 상가 속에서 마리아가 혼자

퀼트 천을 집고 있다.


이 액자를 

다시 바다에 건다.




<승강장>



어디 아프냐고 누군가 물었다. 아이는 빨간 신 한 짝을 잃어버려서 찾아다니다가 집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너무 큰 바지를 입은 것처럼 아이는

흘러내리는 기억을 추스르려 애쓴다.


신이 나를 잃어버릴 때마다 내가 도착하곤 했던

종점의 오디나무가 떠올랐다. 떨어진 오디를 주워 들고서 오디처럼 빨간 것들에 잇자국을 남겼던.


아이는 승강장 바닥을 빨개진

맨발로 걷고 있다.

아이를 데리고 유실물 보관소에 갔지만 주인을 잃어버린 열쇠와 가방 들이 있었지만 신은 없었다.


신을 꼭 찾아야 해요.

승객들이 내리고 지하철의 불이 꺼질 때 아이는 지하철로 걸어 들어갔다. 빨간 아이를 담은 채 검은 지하철은 아무도 가본 적 없는 노선으로 출발했다.


신도 인간을 이렇게 계속 찾아다닐 것이다. 그래서 집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아프냐고 물어주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잃어버렸을 뿐 유실물 보관소의 물건들은

누구도 버린 적이 없었다.




<어째서>


잊고 있던 꽃무늬 원피스가 잡혔다.

어떻게 이런 걸 입고 다녔을까 의아해하다

의아한 옷들을 꺼내 입어보았다.


죽어버리겠다며 식칼을 찾아 들었는데

내 손에 주걱이 잡혀 있던 것처럼

그 주걱으로 밥을 퍼먹던 것처럼


밥 먹었냐, 엄마의 안부 전화를 끊고 나면

밥 말고 다른 얘기가 하고 싶어진다.

나는 이제 아무거나 잘 먹는다.


잊지 않으려고 포스트잇에 적었지만

검은콩, 면봉, 펑크린, 8일 3시 새절역, 33만 원 월세 입금,

포스트잇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었다.


까맣게 잊어버린 검은콩이 냉장고에 있었다. 

썩은 내를 풍기는 검은콩엔 왜 싹이 돋아 있는지.


이렇게 달콤한데, 중얼거리며

곰팡이 낀 잼을 식빵에 발라 먹던 엄마처럼

이렇게 멀쩡한데, 중얼거리며

유통기한 지난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던 엄마처럼

죽고 싶다는 말이 솟구칠 때마다

밥을 퍼서 입에 넣었다.


엄마도 나처럼 주걱을 잡았을 것이다.

눈을 뜨자마자 엄마는 매일 주걱부터 찾아야 했을 것이다.


밥맛은 어째서  잊힌 적이 없는지

꽃들의 모가지가 일제히

햇빛을 향해 비틀리고 있는지

경이로움은 어째서 징그러운지.

멈춰버린 시계를 또 차고 나왔다.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꽃 없는 꽃밭에 철퍼덕 앉아보았다.




-




임솔아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좋아하는 시집이야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이었는지 <착한 날씨와 괴괴한 사람들>이었는지 종종 헷갈리곤 하는.


  • tory_1 2019.10.14 20:58
    좋은 글 고마워 토리야
  • tory_2 2019.10.14 21:30
    고마워 책 사야겠다
  • tory_3 2019.10.14 22:13
    날씨는 괴괴하고 세상은 하 수상해도 사람들은 착하단 걸까. 제목보고 여러 생각 드네 고마워 톨아
  • tory_4 2019.10.14 23:42
    고마워 덕분에 좋은 시 알아가. 우리 모두 행복하자
  • tory_5 2019.10.14 23:47

    고마워 톨아! 

  • tory_6 2019.10.14 23:51
    고마워 정말!!!
  • tory_7 2019.10.15 00:03
    와 시 정말 좋다
  • tory_8 2019.10.15 00:27
    잘 읽었너 고마워
  • tory_9 2019.10.15 00:45
    고마워 잘 읽었어
  • tory_10 2019.10.15 00:51
    고마워
  • tory_11 2019.10.15 01:22

    고마워.. 요즘 너무 힘들었고, 오늘 역시 마음 아팠는데 시 정말 좋다ㅠㅠ 고마워 톨아

  • W 2019.10.15 09:14
    ღ'ᴗ'ღ 같이 견디자 화이팅
  • tory_12 2019.10.15 06:53
    시 참 좋다... 고마워 톨아
  • tory_13 2019.10.15 07:09
    우울한느낌이드는데 내가해석을 잘못한걸까?
  • W 2019.10.15 09:12
    아냐 톨이 느낀 게 맞아 밝고 씩씩한 것만 위로가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가져왔어 (*˙˘˙)♡
  • tory_14 2019.10.15 08:05

    시가 너무 좋다 잘 읽었어 고마워

  • tory_15 2019.10.15 08:15
    잘 읽고가. 시집 사봐야겠다
  • tory_16 2019.10.15 09:05
    고마워 토리야
  • tory_18 2019.10.15 09:44

    좋은 시 올려줘서 고마워 토리야

  • tory_19 2019.10.15 09:55

    위로가 된다 고마워 톨아 

  • tory_20 2019.10.15 11:11

    좋은 시 고마워

  • tory_21 2019.10.15 12:42
    난 이런 시 좋더라.... 사실 되게 텅빈 느낌 들거든 이런시읽으면. 그래서ㅠ난 스노우맨이라는 애니메이션도 좋아하구... 쓸쓸하지만 좋아..
  • tory_22 2019.10.15 12:51

    고마워. 잘 읽었어.

  • tory_23 2019.10.15 13:06
    고마워 덕분에 좋은 시 알아가
  • tory_24 2019.10.15 13:26

    마지막 시 너무 좋다 ㅜㅜ 고마워 톨아

  • tory_25 2019.10.15 15:49

    고마워 시집 사야겠다 

  • tory_26 2019.10.15 18:30

    마지막 시 읽고 눈물이 핑 돌았어ㅜㅜ 시집을 사야겠다. 가을엔 역시 시집이지! 고마워 토리야.

  • tory_27 2019.10.15 19:52

    나도 너무 좋아해. 임솔아 시인. 나는 왜인지 박솔뫼 작가랑 항상 헷갈리더라. 왤까?ㅠㅠㅠㅠ 허수경의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도 너무 좋았던 시집이야.

  • W 2019.10.15 20:03
    글쎄 다들 헷갈려 하는 이름이 하나 씩은 있는 거 아닐까? 나는 손보미 작가와 김숨 작가가 희한하게 헷갈리곤 해 물론 두 작가 다 좋아하지만. 그리고 영화 <패터슨>을 보고나서는 시인의 이름이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인지 '카를로 윌리엄스 카를로스'인지 헷갈려서 매번 검색해봐 이런 게 다들 있지 않을까? 허수경 시인도 참 좋지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인지 '차가운, 빌어먹을 심장'인지 종종 헷갈리지만
  • tory_28 2019.10.16 02:07
    잘읽었어. 톨아 ♡
  • tory_29 2019.10.16 05:13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2/03/12 14:17:22)
  • tory_30 2019.10.16 08:49
    내가 유일하게 소장한 시집이네ㅠㅠ 읽을 때마다 가슴에 박히지ㅠㅠ
  • tory_31 2019.10.16 11:02
    고마워 시 너무 좋다 ㅠㅠ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 tory_32 2019.10.16 15:32
    이 시집 꼭 사야겠다! 고마워
  • tory_33 2019.10.16 22:31
    시 너무 좋다. 잘 읽고 갈게!!
  • tory_34 2019.10.18 07:24
    아...나 비만 되겠다. 그런데 힘은 또 나네....
  • tory_35 2019.10.22 00:34
    시 너무 줗다...울컥했어 올려줘서 고마워 토리야
  • tory_36 2019.10.27 20:18
    고마워! 좋은 시인을 한명 더 알게 되었어.
  • tory_37 2019.11.04 16:12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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