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정원


1.


삶은, 아직 미완인 그들을

그들이 다 만들어진 사람으로 행동하길 요구하는

완성된 세상 속에 턱 세워놓는다.

그러니 그들은 허겁지겁 이런저런 형식과 모델들,

당시 유행하는 것, 자신들에게 맞는 것 등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

그리고 연기를 한다.


밀란 쿤데라 <농담>








2-1.


단조로움, 지루하게 비슷한 똑같은 일상, 차이가 없는 오늘과 어제.

그것이 내게 남는다

나의 정신은 깨어나서 나를 미혹하고 앞에서 되는 대로 날아다니는

모기를 보고 즐거워한다


거리에서 어쩌다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답답한 사무실에서 느끼는 커다란 해방감에

휴일에 취하는 끝없는 휴식에 나의 정신은 깨어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상상할 있다.

내가 무엇이라도 되었다면, 나는 상상할 없을 것이다.







2-2.


내가 모든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은 그들이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모든 일들 중에서 그것이 내게는 가장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고,

그것이 나의 일상의 가장 근심이 되었으며,

모든 슬픈 시간을 가득 채우는 나의 절망이 되었다.

 






2-3.


모든 것이, 심지어 우리에게 휴식을 가져오던 것들마저도 우리를 지치게 때가 있다.

그것이 지쳐 있기 때문에 우리를 지치게 하는 것이다

휴식을 주는 것을 얻겠다는 생각이 우리를 지치게 하기 때문이다

모든 고통과 아픔 뒤에는 무기력한 마음이 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인간적인 고통과 아픔을 회피하고 자신의 무기력을 피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과 타협한다.

이렇게 세상을 상대로 자신을 무장하는 동안

그들은 자의식의 어느 지점에서 갑자기 갑옷 전체가 그들을 억압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하여 도리어 인생이 그들에게 고통과 잃어버린 아픔을 준다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3-1.



무대 장치들이 문득 붕괴되는 일이 있다.

아침에 기상, 전차로 출근, 사무실 혹은 공장에서 보내는 네 시간,

식사, 전차, 네 시간의 노동, 식사, 수면

그리고 똑같은 리듬으로 반복되는 월, 화, 수, 목, 금, 토 이 행로는 대개의 경우 어렵지 않게 이어진다.

다만 어느 날 문득, “왜”라는 의문이 솟아오르고 놀라움이 동반된 권태의 느낌 속에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








3-2.


시지프는 돌이 순식간에 저 아래 세계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바라본다.

그 아래로부터 정상을 향해 이제 다시 돌을 밀어올려야 하는 것이다.

그는 또다시 들판으로 내려간다

시지프가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저 산꼭대기에서 되돌아 내려올 때, 그 잠시의 휴지의 순간이다.

그토록 돌덩이에 바싹 닿은 채로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은 이미 돌 그 자체다.

나는 이 사람이 무겁지만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아무리 해도 끝장을 볼 수 없을 고뇌를 향해 다시 걸어 내려오는 것을 본다.

마치 호흡과도 같은 이 시간, 또한 불행처럼 어김없이 되찾아 오는 이 시간은 바로 의식의 시간이다

그가 산꼭대기를 떠나 제신의 소굴을 향해 조금씩 더 깊숙이 내려가는 그 순간순간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하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강하다.











3-3.


인간은 스스로 자신이 살아가는 날들의 주인이라는 것을 안다. 

인간이 그의 생활로 되돌아가는 이 미묘한 순간에 

시지프는 자기의 바위를 향하여 돌아가면서 서로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이 행위들의 연속을 응시한다. 


이 행위들의 연속은 곧 자신에 의해 창조되고, 자신의 기억의 시선 속에서 통일되고 

머지않아 죽음에 의해 봉인될 그의 운명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적인 모든 것은 완전히 인간적인 근원을 가지고 있음을 확신하면서, 

보고자 원하되 밤은 끝이 없다는 것을 아는 장님인 시지프는 지금도 여전히 걸어가고 있다. 

바위는 또 다시 굴러떨어진다.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4-1.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 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 

마치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그런데 인생의 첫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이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기에 삶은 항상 초벌그림 같은 것이다.

 '초벌그림'이란 용어도 정확지 않은 것이, 

초벌그림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밑그림, 한 작품의 준비 작업인데 비해

우리 인생이란 초벌그림은 완성작 없는 밑그림, 무용한 초벌그림이다.


토마스는 독일 속담을 되뇌였다. 

한 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4-2.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트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그 반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뒤집어 생각해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 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전공때문에 반강제로 읽었던게 많은데

그 중 좋았던 작품들 속 내용 따로 저장해둔거 발견해서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고 찾아보고 그랬당


  • tory_1 2018.09.24 19:45
    오오 덕분에 갑자기 책 읽고싶어졌어 ! 고마워
  • tory_2 2018.09.24 20:01
    와 시지프 신화 내 최앤데 반갑다 ㅎㅎㅎ
  • tory_3 2018.09.24 20:07
    너무너무 좋다! 고마워 ㅎㅎ
  • tory_4 2018.09.24 21:17
    하 취향 저격
  • tory_5 2018.09.24 21:30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넘 좋아ㅠㅠ

  • tory_6 2018.09.24 21:42
    시지프 신화 읽어보고싶다
    톨아 좋은글 고마워
  • tory_7 2018.09.24 22:16
    시지프 신화 다른 만화 덕질하다가 꽂혀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 tory_8 2018.09.25 00:00

    와 너무 좋다ㅠㅠ!

  • tory_9 2018.09.25 12:45
    난 정말 페소아의 글이 너무 좋아...
  • tory_10 2018.09.25 18:11
    좋은글이다.. 근데시지프신화 어렵다..!
  • tory_11 2023.05.01 01:15
    너무좋다 잘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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