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정원
한때 소설 읽는 게 재밌다고 느꼈던 나톨.
그런데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스스로 책을 손에서 놓게 되고
사는 게 바빠서 예전에 읽던 시나 소설이 무슨 소용이냐 싶을 때가 많아졌어.
그러다가 발견한 작품이야.


박완서 작가의 <시인의 꿈>이라는 동화야.

모든 것을 쓸모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으로 나누고 쓸모없는 것은 없애버리는 시대,
길은 모두 포장되고 집은 모두 아파트인 살기 좋은 도시, 그리고 그 가운데 '궁전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야.
궁전아파트에 사는 소년이 누군가 바퀴 없는 차, 그러니까 무허가 판잣집에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해.
사람들은 그 집을 없애려고만 하지만 소년은 그 집에 사는 할아버지에게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해. 
할아버지가 말하길, 시인들이 쓸모없다고 여겨졌기에 이 시대에 시인들은 사라졌지만 
할아버지는 자신이 옛날에 시인이었고, 다시 시인이 되기 위해 "말"을 모으러 다닌다고 해. 

요 아래는 소설의 끝 부분을 발췌한 거야. 


------------------------------------------------------

그런데 왜 시가 쓸모없는 것 취급을 받았을까요?”

무엇에 쓸모 있느냐가 문제였지. 그 시절 사람들은 몸을 잘 살게 하는 데 쓸모 있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마음을 잘 살게 하는 데 쓸모 있는 건 무시하려 들었으니까.”

그럼 몸이 잘 사는 것과 마음이 잘 사는 것은 서로 다른 건가요?”

, 다르고말고. 몸이 잘 산다는 건 편안한 것에 길들여지는 거고, 마음이 잘 산다는 건 편안한 것으로부터 놓여나 새로워지는 거고, 몸이 잘 살게 된다는 건 누구나 비슷하게 사는 거지만, 마음이 잘 살게 된다는 건 제각각 제 나름대로 살게 되는 거니까.”

<중략>

너는 지금 궁전 아파트에 살지?”

.”

궁전 아파트의 현관의 신발장은 무슨 빛깔이더라?”

모두 상앗빛이에요. 손잡이는 금빛이고요.”

지금 궁전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아무도 상앗빛 신발장을 의심하지 않지? 그러나 시를 읽는 사람이 생기면 그걸 의심하는 사람도 생길 거야. 나는 상앗빛을 좋아하나? 아닌데 나는 노랑을 좋아하는데, 그러면서 어느 날 노랑색 페인트를 사다가 신발장을 칠해서 자기만의 신발장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난단 말이다. 물론 파랑 신발장, 빨강 신발장을 갖는 사람도 생겨나지. 그래서 궁전 아파트 신발장이 아닌 제 나름의 신발장을 갖게 되는 거야. 또 어린이 중에서도 어른이 가르쳐 준 놀이 말고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내는 어린이가 생겨날 테지. 그 어린이는 판판한 아스팔트 밑에는 도대체 뭐가 있을까 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해 그것을 파헤쳐 그 속에 숨은 흙을 보고 말 거야. 그래서 그곳에서 몇 년 째 잠자던 강아지풀과 명아주와 조리풀과 토끼풀과 민들레의 씨앗을 눈뜨게 하고, 매미의 마지막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가로수를 향해 날아오르게 할 거야.”

할아버지의 주름투성이 얼굴이 아이들의 얼굴처럼 더없이 맑아지고 눈은 꿈꾸는 것처럼 한없이 먼 곳을 보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이상해요. 할아버지 말씀을 듣고 있으려니까 괜히 가슴이 울렁거려요. 이런 느낌은 처음이에요.”

아이야, 고맙다. 할아버지가 이제부터 말을 얻어다 시를 써도 늦지는 않겠구나. 시인의 꿈은 가슴이 울렁거리는 사람과 만나는 거란다.”


---------------------------------------------------------



이 부분을 읽고 있으면, 
나는 여전히 몸이 잘 살기를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마음'은 잘 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돼. 
그리고 소설도 시도 계속 읽어 나가야지, 하는 생각.


톨들에게도 바쁜 와중에, 아주아주 가끔은
내 마음은 어떤지, 당연하게 여겼던 상앗빛 신발장과 아스팔트에 의문 가지는 날이 생겨나길 바라. 
톨들도 작품 속 소년처럼 가슴이 울렁이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



  • tory_1 2018.10.16 21:53
    와 너무 좋다
    판판한 아스팔트 밑에는 도대체 뭐가 있을까 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해 그것을 파헤쳐 그 속에 숨은 흙을 보고 말 거야. 그래서 그곳에서 몇 년 째 잠자던 강아지풀과 명아주와 조리풀과 토끼풀과 민들레의 씨앗을 눈뜨게 하고, 매미의 마지막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가로수를 향해 날아오르게 할 거야.
    특히 이 부분 너무 좋아
  • tory_2 2018.10.16 22:20

    이런 철학적인 것들을 동화로 풀어낸 거 너무 좋아 최고야....

  • tory_3 2018.10.16 22:20
    우와.... 좋은글 고마워!!
  • tory_4 2018.10.16 23:00

    아, 몸을 잘 살게 하는 것과 맘이 잘 살게 하는 거ㅠㅠㅠㅠㅠ  편안한 것에 길들여지는 것과 그걸로부터 놓여나 새로워지는 거, 내가 이게 아니다 싶으면서 뭔지 몰랐고 그래서 또 넘지 못하는 게 그 차이였어ㅠㅠㅠㅠ 

  • tory_5 2018.10.16 23:39
    와 너무 좋다... 덕분에 좋은 책 하나 얻어가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 tory_6 2018.10.17 03:34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1/09/15 23:45:22)
  • tory_7 2018.10.17 04:51
    아 어릴적에 박완서 동화집 되게 좋아해서 여러번 읽었었어... 이거 말고도 좋은거 많았는데 본가 가면 아직 있으려나
  • W 2018.10.17 09:02
    글 올리면서도 아무도 안 좋아하면 어떡하지 반신반의했는데 다들 덧글 달아줘서 고마워ㅠㅠ!
  • tory_9 2018.10.17 10:05
    글 올려줘서 고마워! 울림을 주는 동화같다. 잘읽어볼게
  • tory_10 2018.10.17 10:41

    난 정말 박완서 선생이 너무 좋아.... 침착하고 담담하면서도 사람 마음을 후벼파..

  • tory_11 2018.10.17 11:06

    옥상의 민들레꽃이랑 같은 배경이야? 갑자기 생각나서ㅋㅋㅋ

  • tory_12 2018.10.17 12:22
    나도 그거 생각났어 그 작품에도 궁전아파트가 나왔었나?
  • tory_13 2018.10.17 13:15
    같은배경일걸!
  • W 2018.10.17 21:24
    @13 앗, 같은 배경이었어? 톨에게 배우고 간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조회
전체 【영화이벤트】 따사로운 위로, 힐링 무비! 🎬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파워 공감 시사회 12 2024.05.09 1541
전체 【영화이벤트】 기막힌 코미디 🎬 <드림 시나리오> ‘폴’과 함께하는 스윗 드림 시사회 30 2024.05.07 2614
전체 【영화이벤트】 우리는 지금도 행복하다 🎬 <찬란한 내일로> 시사회 16 2024.05.03 4602
전체 【영화이벤트】 전 세계 2,500만 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 원작 애니메이션 🎬 <창가의 토토> 시사회 18 2024.05.02 4646
전체 디미토리 전체 이용규칙 2021.04.26 572956
공지 [영화] 게시판 신설 OPEN 안내 🎉 2022.09.03 7441
공지 토리정원 공지 129 2018.04.19 58903
모든 공지 확인하기()
287 도서 글쓰기를 소망하는 토리들이 읽으면 좋을글 (BL작가 주의) 43 2018.10.22 4491
286 도서 이상의 시 구절이라고 알려진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의 전문(반전주의) 23 2018.10.22 4432
285 음악 [직캠] 보아 181020 그랜드민트페스티벌 full 52 2018.10.21 3996
284 도서 심리학과 관련된 좋은 책들 좀 추천해 줘~! (추천도 있음) 16 2018.10.19 846
283 도서 선생님, 저 달빛을 장미꽃 속에다 짜 넣어서 비단실을 뽑을 수 없을까요? 8 2018.10.18 962
282 미술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 모음4.jpg (BGM, 스압) 30 2018.10.17 4683
» 도서 박완서의 <시인의 꿈> 동화를 소개하고 싶어 14 2018.10.16 650
280 음악 H.O.T. 3층 공연 후기 (스포유) 48 2018.10.15 1764
279 음악 아이유 10주년 콘서트 포스터 148 2018.10.14 5110
278 음악 걸그룹 암흑기 2013년, 유일한 기대주였던 비운의 여돌 37 2018.10.13 9188
277 도서 Sf잘알톨들...? 입문자 토리에게 추천좀...8ㅅ8 23 2018.10.11 997
276 도서 페미니즘적인 시각으로 얘기하면 예민하다고 몰아가는 거 숨이 막혀. 31 2018.10.10 1687
275 도서 중2 시절, 간직할 만한 소설/인생의 책을 꼽자면? 68 2018.10.09 832
274 도서 복종에 반대한다 - 아르노 그륀 19 2018.10.09 2631
273 도서 지금 읽고 있는 책 55p 첫문장 공유하기 해볼래? 93 2018.10.09 1313
272 도서 난 말이야, 정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해.txt 3 2018.10.08 1385
271 도서 창백한 빛을 머금고 저 별로 스러져간 그대 부디 잘 가시길 8 2018.10.08 843
270 도서 베스트셀러 유감.txt (VOGUE 칼럼) 25 2018.10.06 1654
269 도서 토리들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친 책들 추천해줘!! 18 2018.10.06 1067
268 음악 돌계의 뽕퀸, 미샤소연을 그리며 49 2018.10.05 4286
목록  BEST 인기글
Board Pagination 1 ... 43 44 45 46 47 48 49 50 51 52 ... 62
/ 62

Copyright ⓒ 2017 - dmitor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