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하!
클래식 덕후로서 예전부터 써보고 싶던 이야기들,
일반인들에게는 좀 생소하겠지만 클래식 덕후들에게는 나름 익숙한 이야기들을 좀 풀어보려고 해.
클덕들에게는 익숙하겠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좀 생소할 헨리 비에냐프스키라는 폴란드 태생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가 있어.
당대의 파가니니의 재림이라고 불릴만큼 기교가 뛰어났고, 특히 그가 장기로 삼던 슬라스타카토라는 주법은 많은사람들에게 경탄을 불러일으켰어.(그리고 후대의 전공자들에게는 고통을 안겼다...ㅂㄷㅂㄷ)
https://youtu.be/Mag2mc5Vva0
슬러스타카토로 떡칠을 한 다니쿠의 호라 스타카토. 역시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을 도탄에 빠트린 야샤 하이페츠가 유행시킴...
여튼 저런 스타일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였는데, 사후에 그의 조카 아담 비에냐프스키가 주축이 되어서 재단을 발족해서
1935년 바르샤바에서 제 1회 비에냐프스키 바이올린 콩쿠르가 개최돼.
그래서 결과는....굇수들 대잔치가 됨
일단 2등을 차지한 사람이
https://youtu.be/PwacpJM7i08
레전설의 감자 영감님 아니 저떄는 아직 감자가 아니었네 구소련의 레전설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연식이 좀 된 분이셔서 요즘세대들은 잘 모를 수 있는데, 클래식 좀 입문해 본 사람이라면 교과서처럼 믿고 듣는 감자 영감님.
동시대의 걸출한 스타 하이페츠에게 약간 밀린 감이 있지만 이건 호날두와 메시...페더러와 나달...뭐 이런 급이니 논외로 치자고.
그러면 1등은 누구였냐?
https://youtu.be/kDkaWj4WJn8
또다른 레전드로 남은 프랑스 태생의 바이올리니스트 지네트 느뵈.
1등으로 입상할 당시 15세!!! ㅎㄷㄷㄷㄷ
이분 이야기로 사실 글 하나를 따로 팔수도 있는데,
레코딩이 얼마 없어. 왜냐면 서른살에 오빠와 함께 탄 비행기가 추락헤서 돌아가셨거든.
하지만 남은 레코딩 모두가 주옥같아서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빠지지않고 거론 되는 이름이지.
https://youtu.be/R6JGv4QVGr4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느뵈의 브람스 바이올린 콘체르토. 옛날 음향 감안해도 소리의 파워며 해석이 세련됨.
3등부터는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고,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들은 엉뚱한 데서 나옴.
영국 태생의 이다 헨델. 7위 입상자에 최연소 참가자.
입상 당시 8세.
응...8세.......
아무래도 1회 콩쿠르다 보니까 나이제한 이딴거 없이 막 받고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하기도 했었던 모양이야.
그치만 1등이 15세 최연소가 8세 아니 그러면 27세에 2등한 오이스트라흐는 뭐가 되냐 이 굇수들아
그때 헨델을 가르치고 있었던 사람이 유명한 교수였던 칼 플레슈였는데 이다 헨델을 보고 두 번 기겁했다카더라.
처음엔 너무 어린애가 천재적이어서 놀랐고 두번째는 악보도 제대로 못 봐서 놀랐대...
듣고 외워서 한 거지....
그리고 이것도 카더라지만 느뵈와 한 방을 썼던 8세의 헨델여사는 아버지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말함.
"아빠. 저 언니는 좀 미친것 같아요. 세시간을 쉬지않고 연습을 해!!"
전형적인 연습 적게 한 천재타입이었나 봐....ㅠㅠ
지금은 나이도 드시고 체격도 왜소하시고 손도 엄청 작으시고 리얼 유바바의 현신이시지만...오래 사세요 여사님....ㅠㅠㅠ
그리고 입상자 명단에 없지만 특별상 수상자 명단에 또 하나의 비운의 천재가 있었음.
Josep Hassid.
폴란드 태생의 유태인 바이올리니스트.
참가당시 12살.
크라이슬러가 이 소년을 두고 평한 말이 유명해.
"하이페츠는 100년에 한번 나오는 천재지만 하시드는 20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
실제로도 크라이슬러가 하시드를 엄청 아껴서 자기 악기도 빌려주고 그랬대.
물론 하시드의 연주스타일이 크라이슬러의 구미에 더 맞았으리라는 추측도 꽤 신빙성이 있음.
왜냐면 크라이슬러도 특유의 비브라토와 독보적인 독특한 사운드로 유명했는데 하시드가 딱 그런 과거든.
https://youtu.be/PhKkjIC2SWk
타이스의 명상곡. 음질이 좀 세월의 티가 나지만 저 음질로도 하시드의 감수성이나 톤을 가리지는 못했지.
어릴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하시드를 키웠어. 꽤 엄하게 키웠었던것 같아. 10살에 바르샤바 음악원에 들어가서
칼 플레슈한테 배웠어. 하지만 무대 공포증이 꽤 심했던 것 같아.
비에냐프스키에서 두각을 못 나타낸 것도 무대공포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더라고.
그 때문인지 하시드는 무대에서 종종 실수를 크게 했어. 주로 악보를 까먹는다던지.
무대위에서의 건망증은 점점 심해졌고 우울증도 앓았었나봐.
결국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았고 자살기도도 했다고 해.
1943년에 병원에 치료받기시작한 이후부터는 남은 여생을 병원에서만 보내야 했어.
1949년에는 아버지도 돌아가셨고, 뇌수술을 받기로 하지만 결국 회복되지 못하고 27세에 세상을 떠났어.
남은 레코딩은 8개의 소품이 든 LP판 하나가 전부야.
그마저도 비에냐프스키 콩쿠르가 끝난뒤에 음반사에서 어린 천재들이라는 컨셉으로 이다헨델과 하시드를 묶어서
소품집으로 한 장의 LP를 채웠어.
후에 음반사에서 비운의 천재들이라는 컨셉으로 이다 헨델의 연주를 들어내고 그 자리에 느뵈의 연주를 넣어서
시중에 발매했어
요즘은 유튜브에서도 쉽게 찾을수 있으니 한번 들어봐!
음질이 적응이 안 되겠지만 그럴 가치가 있는 음반이야.
비에냐프스키 콩쿠르는 현재까지도 쭉 스타들을 배출하고 있고 최근의 한국인 우승자로는 윤소영과 2위를 차지한 김봄소리가 있어.
둘 다 매력적인 연주자들이니까 한번 들어봐도 괜첞을거야.
다음엔 클래식계의 사랑과 전쟁으로 돌아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