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입문서로 많이들 읽는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를 읽었어
페미니즘 책은 처음 읽어서 이건 명서야! 급의 생각은 안 들지만 페미니즘에 스리슬쩍 발 담가보려는 사람 / 탈코를 시도해보려는 사람 / 관심은 있는데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해도 될까? 에겐 추천할만 하다. 아 그리고 대중문화에 관심 많은 톨이라면 작가가 이에 대해서도 많이 언급하니까 더 잘 읽힐거야.
페미니즘이 우리 기대에 못 미치면 페미니즘이라는 이름 아래 행동하는 인간들에게 결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페미니즘 자체가 잘못되었다며 정죄한다. (p.13)
그래서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단점과 모순으로 똘똘 뭉친 보통의 인간이니까. 나는 페미니스트의 역사에 정통하지도 않다. 설사 원한다 해도 내 책이 주요 페미니스트 고전으로 읽히지도 않을 것이다. 내 관심사와 개인적인 성향과 의견은 주류 페미니즘과 같은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페미니스트가 맞다. 이렇게 받아들이고 나자 믿을 수 없는 해방감이 밀려왔다. (p.15)
'만약 더 많은 여성들이 낙태를 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털어놓으면 낙태권을 지지하는 인구가 늘어날 것인가?' (...) 여성들은 과거의 아픔을 털어놓으면서까지 계몽에 관심도 없는 사람들을 계몽시 키키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일까? (p.27)
... 알았다. 알았다. 알았다고요. 남자들은 여자를 보호하고 싶어 하니까요. 여자 엉덩이를 움켜잡고 싶을 때는 빼고 말이죠. (p 29)
당신이 동의라는 권리 없이 고통을 받겠다고 했지만 난 그리 충격받지는 않았다. 나 자신을 포함해 우리 모두 나쁜 남자들의 카리스마에 약하다. 나 또한 리처드 프라이어 같은 남자에 끌리는 나를 보며 내가 얼마나 나쁜 페미니스트인지 절감한다. 그는 코미디 천재다. 그가 복잡한 인종 문제를 유머러스하게 공략하는 방식에 감탄한다. 그리고 프라이어는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를 학대한다. 그의 사생활에도 불구하고 그의 탁월함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니 그렇다고 나에게 말해 왔으나, 그 여인이 받은 상처를 상상했고 그 상처에 대해서는 우리가 거의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떠올렸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슬픈 일일지도 모른다. (p.46)
'여성'이 폄하의 언어가 되었다는 점이 싫다. (p.53)
나에겐 그런 안 좋은 과거를 회상하게 하는 trigger가 특별히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강한 사람이니까. 나는 강철처럼 단단하니까. 그 강한 겉표면 안쪽에 말랑말랑한 속살이 있었지만 피부 또한 여러 겹이니 누구도 뚫을 수 없다. 그러다가 내게 이런 상처를 촉발하는 계기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안에 더 이상 공간이 남지 않을 때까지 꾹꾹 쑤셔 넣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댐이 무너져 버렸고 나는 이것들을 소화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총을 맞는 것 같은 충격을 받을 것이고 나를 겨누는 그 총의 방아쇠 앞에는 언제나 손가락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피하려 노력해도 우리가 표적이 되지 않을 방도는 없다. (p.73~77)
만약 강간이 웃기다면 집단 성폭행은 더 웃기기 때문에 강간 조크 다음에 나올 수 있는 것은 집단 성폭행 조크 밖에 없다. 강간 유머는 여성들이 아직도 평등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여성의 신체와 여성의 생식권이 법으로 제한되고 대중의 담화의 소재가 되는 것처럼 여성의 다른 이슈들도 그러한 것이다. 여성이 여성 혐오나 강간 유머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면 '예민하다'는 말을 듣거나 '페미니스트' 딱지가 붙는데 이 딱지는 최근 '헛소리를 한마디도 참지 못하는 여성'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어 버렸다. (p.166~167)
우리는 살면서 크건 작건 수많은 부당함을 목격하면서 생각한다. 끔찍해. 하지만 그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싸움을 해줄 때까지 기다린다. 우리는 침묵을 지킨다. 침묵이 더 쉽기 때문이다. Qui tacet consentire videtur. 라틴어로 "침묵은 동의를 의미한다."라는 뜻이다. 우리가 아무 말을 하지 않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나를 향한 이런 범죄를 용인하는 것이 된다. (p. 168)
지금 낙태, 피임, 생식의 자유를 주제로 토론을 계속하고 있는데 남성들이 그 토론을 주도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풍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p.207)
임신은 사회와 공공 개입을 유도하는 경험이고 여성의 신체를 대중적인 담론으로 끌어올리 게 되는 경험이다. 여러 면에서 임신은 여성의 삶에서 가장 덜 개인적인 경험이 되어 버린다 (p. 209)
산아 제한에 대한 이 뒷북 토론보다 더 기이한 것은 여성이 왜 산아 제한을 하는지를 끊임없이 정당화하고 장황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건강상의 이유도 있을 수 있고 터울 조절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마치 임신으로 연결되지 않는 섹스를 하고 싶기에 피임을 하겠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 여성의 몸은 타협 가능한 일이었다. (p.217)
나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정중하게 거절하는 여자가 되고 싶지 않다. 나쁜 페미니스트는 내가 페미니스트이자 솔직한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다. (...) 페미니즘의 절대적인 중요성과 필요성을 부정할 수도 없고 부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모순적인 사람이지만 확실한 건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개똥 같은 취급을 당하고 싶지는 않다는 점이다.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스트가 아예 아닌 것보다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믿는다. (p.375)
(후반부엔 인종에 관해서도 코멘트를 하는데 그 부분은 줄 그을만큼 크-게 와닿진 않았어.)
나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를 수 있게끔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책이야
나 역시 여권 낮은 현실에 대해 분노를 하고 시위하는 여성들을 지지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성적 취향 혹은 음악/영화 취향을 가만히 뜯어보면 내가 정말 날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어? 하는 회의감이 들었거든. 어디가서 당당하게 못 말하겠더라고.
근데 이 책은 '그래도 괜찮아' 라고 말해줘서 고마운 책이었어.
너무 길어서 끝까지 읽을 토리가 있을진 모르겠는데 요즘 같은 세상에 한번 읽어보면 좋을거 같아서 공유해봐.
남성에게 비하의의미가되는게 싫어
남성적인, 여성적인 없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