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정원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아버지의 몸이 작았다고 생명의 양까지 작았을 리는 없다. 아버지는 몸보다 컸던 고통을 죽어서 벗었다.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나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사랑 때문에 괴로워했다. 우리는 사랑이 없는 세계에서 살았다. 배운 사람들이 우리를 괴롭혔다. 그들은 책상 앞에 앉아 싼 임금으로 기계를 돌릴 방법만 생각했다. 필요하다면 우리의 밥에 서슴없이 모래를 섞을 사람들이었다.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모두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 예외란 있을 수 없었다. 은강에서는 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총탄이나 경찰 곤봉이나 주먹만이 폭력이 아니다. 우리의 도시 한 귀퉁이에서 젖먹이 아이들이 굶주리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도 폭력이다.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이 없는 나라는 재난의 나라이다. 누가 감히 폭력에 의해 질서를 세우려는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두 사람에게 이 사회는 괴물덩어리였다. 그것도 무서운 힘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괴물덩어리였다. 동생과 동생의 친구는 저희 스스로를 물 위에 떠 있는 기름으로 보았다. 기름은 물에 섞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비유도 합당한 것은 못 된다. 정말 무서운 것은 두 사람이 인정하든 안 하든 하나의 큰 덩어리에 묻혀 굴러간다는 사실이었다.
  <육교 위에서>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잠이 나를 눌러왔다. 나는 부서진 대문 한 짝을 끌어내 그 위에 엎드렸다. 햇살을 등에 느끼며 나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우리 식구와 지섭을 제외하고는 세계는 모두 이상했다. 아니다. 아버지와 지섭마저 좀 이상했다. 나는 햇살 속에서 꿈을 꾸었다. 영희가 팬지꽃 두 송이를 공장 폐수 속에 던져 넣고 있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네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벌써 끝났을 거야. 이젠 책임을 져야 돼. 그렇지만 내가 아주 죽는 거로 믿지 마. 달나라에 가서 할 일이 많아. 여기서는 무엇하나 이룰 수가 없어. 지섭이 형이 책에서 읽었던 대로야. 시간을 터무니없이 낭비하고, 약속과 맹세는 깨어지고, 기도는 받아들여지지 않아. 여기서 잃은 것들을 그곳에 가서 찾아야 돼. 자 망설이지 말고 쏴."
  <우주 여행>



  그들은 낙원을 이루어간다는 착각을 가졌다. 설혹 낙원을 건설한다고 해도 그것들 그들의 것이지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나는 했다. 낙원으로 들어가는 문의 열쇠를 우리에게는 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낙원 밖, 썩어가는 쓰레기더미 옆에 내동댕이쳐 둘 것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그래서 달에 가 천문대 일을 보기로 했다. 내가 할 일은 망원 렌즈를 지키는 일야. 달에는 먼지가 없기 때문에 렌즈 소제 같은 것도 할 필요가 없지. 그래도 렌즈를 지켜야 할 사람은 필요하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두 아이는 함께 똑같은 굴뚝을 청소했다. 따라서 한 아이의 얼굴이 깨끗한데 다른 한 아이의 얼굴은 더럽다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뫼비우스의 띠>



  꿈속에서 그물을 쳤다. 나는 물안경을 쓰고 물속으로 들어가 내 그물로 오는 살찐 고기들이 그물코에 걸리는 것을 보려고 했다. 한떼의 고기들이 내 그물을 향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살찐 고기들이 아니었다. 앙상한 뼈와 가시에 두 눈과 가슴지느러미만 단 큰 가시고기들이었다. 수백 수천 마리의 큰 가시고기들이 뼈와 가시 소리를 내며 와 내 그물에 걸렸다. 나는 무서웠다.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아버지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사랑에 기대를 걸었었다. 아버지가 꿈꾸는 세상은 모두에게 할 일을 주고, 일한 대가로 먹고 입고, 누구나 다 자식을 공부시키며 이웃을 사랑하는 세계였다. 그 세계의 지배 계층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아버지는 말했었다. 인간이 갖는 고통에 대해 그들도 알 권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호화로운 생활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는 사람네 집에 내리는 햇빛을 가려 버리고, 바람도 막아 버리고 전깃줄도 잘라 버리고, 수도선도 끊어 버린다. 그런 집 뜰에서는 꽃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날아 들어갈 벌도 없다. 나비도 없다.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바다에서 제일 좋은 것은 바다 위를 걷는 거래. 그 다음으로 좋은 것은 자기 배로 바다를 항해하는 거지. 그 다음은 바다를 바라보는 거야. 하나도 걱정할 게 없어. 우리는 지금 바다에서 세번째로 좋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클라인씨의 병>



  우리는 해치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보호를 받고 있었다. 남아프리카의 어느 원주민들이 일정한 구역 안에서 보호를 받듯이 우리도 이질 집단으로서 보호를 받았다. 나는 이 구역 안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주 여행>



  그 세상 사람들은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 비도 사랑으로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평형을 이루고, 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재비꽃줄기에까지 머물게 한다.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나는 도도새다. 십칠세기 말까지 인도양 모리티우스섬에 살았던 새다. 그 새는 날개를 사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날개가 퇴화했다. 나중엔 날 수가 없게 되어 모조리 잡혀 멸종당했다.
  <우주여행>



"울지 마, 영희야."
큰오빠가 말했었다.
"제발 울지 마. 누가 듣겠어."
나는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큰오빠는 화도 안 나?"
"그치라니까.”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 버려."
"그래. 죽여 버릴게."
"꼭 죽여."
"그래. 꼭."
"꼭."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아저씨,"
신애는 낮게 말했다.
"저희들도 난장이랍니다. 서로 몰라서 그렇지, 우리는 한편이에요."
그녀는 피 묻은 생선칼을 새로 단 수도꼭지 밑에 놓았다.
  <칼날>



"아저씨는 평생 동안 아무 일도 안 하셨습니까?"
"일은 안 하다니? 우리 식구 모두가 열심히 일했네."
"그럼 무슨 나쁜 짓을 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없어."
"그런데, 이게 뭡니까? 이제 이 죽은 땅을 떠나야 합니다."
"떠나다니? 어디로?"
"달나라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이전에 구ㅇㅋ에도 올린적 있음

나톨이 정말 좋아하는 책인데 생각나서 올려봄



  • tory_1 2020.07.12 21:24
    나 이거 중2때 필독도서여서 봤다가 너무 암울하고 무거워서 어린맘에 꽤나 충격이였음...요즘 애들도 이거 보니??
  • tory_11 2020.07.13 00:08

    작년 수능특강에 난쏘공 있었던 걸로 기억함

  • tory_31 2020.07.19 02:55
    나 슴살 톨인데 중1때 필독도서로 봤음 ㅠ
  • tory_2 2020.07.12 21:31
    이거 읽을 때마다 너무 슬프고 고통스러워ㅠㅠ
  • tory_3 2020.07.12 21:35
    난쏘공 진짜..ㅠㅠ 너무 사무쳐서 여러번 읽지도 않았는데 몇몇 장면들은 영화화면처럼 기억나 안잊혀짐
  • tory_4 2020.07.12 22:09
    어렸을때는 난쏘공이해하기어려웟었는데 좀 크니까 너무 슬퍼ㅜㅜ 뭔가 현실적으로 다가와서 그런가..
  • tory_5 2020.07.12 22:10
    신경숙의 외딴방에서도 난쏘공 이야기 나오는데..둘 다 좋은 소설이였어
  • tory_6 2020.07.12 22:45
    난쏘공, 외딴방, 지하철1호선(뮤지컬)
    온실속 화초처럼 평범 무난하게 자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던 작품들......
  • tory_7 2020.07.12 23:09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2/12/13 21:47:54)
  • tory_8 2020.07.12 23:15
    지우지 말아줘..ㅠㅠ
  • tory_9 2020.07.12 23:37

    ㅜㅜ좋다

  • tory_10 2020.07.12 23:45
    눈물나
  • tory_12 2020.07.13 02:39
    난쏘공 문학 교과서에도 많은데 내가 가르치지만 좀 많이 무거워
  • tory_13 2020.07.13 08:25
    이책이랑 당신들의 천국 참 아프게 읽었어...
  • tory_14 2020.07.13 13:42

    난 이런 문학들을 10대에 의무적으로라도 배울 수 있었던 게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 tory_21 2020.07.13 21:36
    222나도
  • tory_22 2020.07.14 01:50
    33 배워야 해 이게 문학이지
  • tory_33 2020.07.22 15:54
    44 학생때 배워서 더 좋았어
  • tory_15 2020.07.13 15:07
    진짜 무거운데 한편으론 현대사와 연관되었다는게 인상 깊었음,
  • tory_16 2020.07.13 15:25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3/10/27 16:10:28)
  • tory_17 2020.07.13 16:44

    필독서로 의무감으로 읽을땐 무겁기만 했는데 커서 다시 읽으니까 이만한 소설 없더라.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와닿아ㅠㅠ

  • tory_18 2020.07.13 18:27
    그 시대 적나라하게 그려서 너무 힘듦...물론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아보임 ㅎ
  • tory_19 2020.07.13 19:11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1/10/28 12:55:01)
  • tory_20 2020.07.13 19:25
    좋은 책이지 진짜..
  • tory_23 2020.07.14 02:23
    나 이거 대학원가서 다시읽었을때 우느라고 중간에 턱턱막혔어...
    첫번째발췌문부터...ㅠㅠ나랑통했다 원톨아...
  • tory_24 2020.07.14 17:14
    생각할 거리가 많았는데 두번은 못 읽겠더라 ㅠ
  • tory_25 2020.07.17 10:18

    난쏘공 진짜 볼때마다 너무 괴롭고 괴롭다 매년 한번씩 다시 읽음

  • tory_26 2020.07.17 11:20

    여전히 이 문장들이 공감이 된다는게 너무 슬프다 

  • tory_27 2020.07.17 19:41
    책은 읽을 때마다 내 상황과 배경지식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것 같아. 학생 때는 멋모르고 주먹구구식으로 배웠는데 지금 읽으니 너무 현실이라 찡하더라.
  • tory_28 2020.07.17 20:18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1/01/08 21:29:46)
  • tory_29 2020.07.18 09:26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2/03/12 13:48:33)
  • tory_30 2020.07.18 10:44
    이거 고딩땐가 봤는데 진짜 본 애들 다 여러모로 충격먹음...
  • tory_32 2020.07.19 15:18

    참 슬프고 안타깝고.. 다시 읽을때마다 감상이 달라져. '난장이'는 실제 난장이라는 말이 아니고 비유적인게 아닐까 생각해

    방직공장 노동자가 기업 사무직으로 바뀌었을 뿐 세상은 전혀 변하지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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