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작가가 포스텍 재학 중이던 2016년에 썼던 글인데 좋아서 일부만 가져와봤어. 전문은 https://univ20.com/58408 여기서 읽을 수 있어
https://img.dmitory.com/img/202004/6KE/PE0/6KEPE0sjJui4MIc2aAE8Uc.png
얼마 전 나는 TEDx 행사의 연사로 초청 받았다. 행사의 주제는 ‘unlimited’였다. 무대에 올라간 나는 이렇게 강연을 시작했다. “저는 청각장애인입니다. 고주파의 소리를 들을 수 없고, 대화를 할 때는 항상 입모양을 봐야 하죠. 제가 이런 식으로 저를 소개하면서 시작하면, 아마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하실 거예요. 아, 저 연사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취를 이룬 이야기를 하겠구나.”
하지만 나는 그날 한계를 극복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처음에 연사 초청을 받았을 때, 학부 시절 했던 여러 활동들과 나의 신체적 한계를 연관지어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들었다. 초청을 받은 이유에는 ‘장애’가 포함되어 있겠다는 것은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그 것은 내가 이미 아주 많이 들어보았던 요청이기도 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자기소개서에 쓸 게 많았다. 어릴 때는 가정형편이 어려웠지만, 공부도 잘하고 꿈도 있는 야무진 소녀였다. 어른들은 그런 나를 기특해했다. 청력이 나빠지면서는, 어른들이 내게 칭찬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학교 선생님들은 대견한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장학금도 상장도 많이 받았다. 입시 면접을 가도 면접관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어느 날부터는 그 친절들이 조금씩 불편했다. 사람들의 눈에 비친 나는 ‘역경을 이겨내기 위해서 온 힘을 쏟는 사람’이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그런 일은 이어졌다. 포항공대에 처음 입학했을 때 학교 홍보팀에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연락해 왔다. 인터뷰를 한 뒤에 나온 기사는 이랬다. “신경성 난청 딛고 포스텍 관문 뚫어…”. 역경을 당당히 극복하고 포항공대에 들어온 신입생의 이야기였다.
작년에는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았다. 홍보영상에 출연해달라고 했다. 내가 주인공으로 선택된 이유는 듣기도 전부터 알 수 있었다. 장애를 너무 부각하지 말아달라고 말했지만, 어쨌든 ‘딸의 역경에 마음 아파하는 아버지’, ‘이런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성취를 이루어낸 수상자’와 같은 감동적인 연출을 피할 수 없었다.
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들장미 소녀 캔디와 같은 역할을 기대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의 어려움을 극적으로 조명하는 것을 경계하게 되었다. 나는 장애인이면서 글도 쓰고 대외활동도 열심히 하는 기특한 대학생이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는 학생이다.
하지만 장애를 언급하는 순간, 항상 그것으로 주목받았다. “자, 봐요.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훌륭하게 해내는 학생이 있잖아요?” 때로는 나 자신이 도구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노력 지상주의와 역경 극복의 스토리를 완성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
사람들은 다큐멘터리 속의 장애인을 보며 감동한다. 어느 날 돌이켜 보니 내가 그 다큐멘터리 속의 장애인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인간 승리 스토리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냥 남들과 똑같이 울고 웃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다큐멘터리 속의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의 삶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대상화되었다. 졸업할 땐 학교의 명예에 기여한 학생에게 주는 ‘무은재 상’을 받았다. 받은 상장에는 나의 학부 시절 활동들을 칭찬하는 말 앞에 ‘어려움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아빠는 내가 상을 받은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렇지만 상장을 보고는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초엽아. 너를 칭찬하는 말들 앞에는 항상 ‘역경을 극복하고’ 같은 말이 붙네.” 나는 그 말에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러네. 어쩔 수 없나봐.”
https://img.dmitory.com/img/202004/6KE/PE0/6KEPE0sjJui4MIc2aAE8Uc.png
얼마 전 나는 TEDx 행사의 연사로 초청 받았다. 행사의 주제는 ‘unlimited’였다. 무대에 올라간 나는 이렇게 강연을 시작했다. “저는 청각장애인입니다. 고주파의 소리를 들을 수 없고, 대화를 할 때는 항상 입모양을 봐야 하죠. 제가 이런 식으로 저를 소개하면서 시작하면, 아마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하실 거예요. 아, 저 연사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취를 이룬 이야기를 하겠구나.”
하지만 나는 그날 한계를 극복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처음에 연사 초청을 받았을 때, 학부 시절 했던 여러 활동들과 나의 신체적 한계를 연관지어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들었다. 초청을 받은 이유에는 ‘장애’가 포함되어 있겠다는 것은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그 것은 내가 이미 아주 많이 들어보았던 요청이기도 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자기소개서에 쓸 게 많았다. 어릴 때는 가정형편이 어려웠지만, 공부도 잘하고 꿈도 있는 야무진 소녀였다. 어른들은 그런 나를 기특해했다. 청력이 나빠지면서는, 어른들이 내게 칭찬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학교 선생님들은 대견한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장학금도 상장도 많이 받았다. 입시 면접을 가도 면접관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어느 날부터는 그 친절들이 조금씩 불편했다. 사람들의 눈에 비친 나는 ‘역경을 이겨내기 위해서 온 힘을 쏟는 사람’이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그런 일은 이어졌다. 포항공대에 처음 입학했을 때 학교 홍보팀에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연락해 왔다. 인터뷰를 한 뒤에 나온 기사는 이랬다. “신경성 난청 딛고 포스텍 관문 뚫어…”. 역경을 당당히 극복하고 포항공대에 들어온 신입생의 이야기였다.
작년에는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았다. 홍보영상에 출연해달라고 했다. 내가 주인공으로 선택된 이유는 듣기도 전부터 알 수 있었다. 장애를 너무 부각하지 말아달라고 말했지만, 어쨌든 ‘딸의 역경에 마음 아파하는 아버지’, ‘이런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성취를 이루어낸 수상자’와 같은 감동적인 연출을 피할 수 없었다.
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들장미 소녀 캔디와 같은 역할을 기대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의 어려움을 극적으로 조명하는 것을 경계하게 되었다. 나는 장애인이면서 글도 쓰고 대외활동도 열심히 하는 기특한 대학생이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는 학생이다.
하지만 장애를 언급하는 순간, 항상 그것으로 주목받았다. “자, 봐요.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훌륭하게 해내는 학생이 있잖아요?” 때로는 나 자신이 도구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노력 지상주의와 역경 극복의 스토리를 완성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
사람들은 다큐멘터리 속의 장애인을 보며 감동한다. 어느 날 돌이켜 보니 내가 그 다큐멘터리 속의 장애인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인간 승리 스토리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냥 남들과 똑같이 울고 웃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다큐멘터리 속의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의 삶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대상화되었다. 졸업할 땐 학교의 명예에 기여한 학생에게 주는 ‘무은재 상’을 받았다. 받은 상장에는 나의 학부 시절 활동들을 칭찬하는 말 앞에 ‘어려움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아빠는 내가 상을 받은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렇지만 상장을 보고는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초엽아. 너를 칭찬하는 말들 앞에는 항상 ‘역경을 극복하고’ 같은 말이 붙네.” 나는 그 말에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러네. 어쩔 수 없나봐.”
작가님 책 마침 며칠전에 읽었는데... 몰랐네. 글 가져와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