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정톨하! (토리정원 토리들 하이라는 뜻)
혹시 구병모 작가님 소설 좋아하는 토리들 있니?
나 톨은 작가님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랑 그걸 풀어내는 문체를 정말 좋아해.
그 중에서 '한 스푼의 시간' 이라는 소설은 문장 곳곳에서 위로를 많이 받아서 특히 좋아하는 소설이야
줄거리는 인공지능 로봇(은결)이 세탁소집 손자로 일하는 내용(?!) 임
그 중에 직접 옮겨쓴 부분 일부를 함께 보면 좋을 것 같아서 가져왔어!
마지막 스포가 있기 때문에 스포 싫은 토리들은 뒤로뒤로!
(스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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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p
너는 네가 원하면, 아무 때고 어디든지 가도 된다.
전원이 나가기 전에, 여기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말이다.
170.
그러나 사람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면서 살아갈 수 없다. 대개 적의와 비난의 언사로 흘러넘치는 세계에서 그나마 들어줄 만한 말이라곤 공허한 말장난이나 모호한 비유 정도일 것이다. 그 밖에도 만나고 싶지 않은 얼굴들을 마주 대하며, 하기 싫은 일을 많이 양보해서 다섯 번 가운데 한 번은 하고, 맞추고 싶지 않은 분위기를 띄우며, 때론 누군가를 휴지통으로 삼기는 커녕 누군가 뱉어낸 쓰레기를 자신이 기꺼이 삼켜주는 일도 한다. 그러무로 시호는 조율과 적응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스스로의 욕망을 누르거나 지우는 데 익숙해질 것이다. 시호는 자신이 그 밖의 다른 방법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안다.
172.
좀이라는 건 그날의 날씨나 기분에 따라 알파에서 오메가까지를 전부 포함할 수도 있다.
184.
봐라, 네 안에는 물리학과 생물학뿐만 아니라 화학 천문학까지 들어 있지. 너는 지금까지 사람이 밝혀낸 한도 내에서 우주의 역사를 모두 알고 있을 거다. 우주의 나이가 137억년을 조금 넘나 그렇다지. 그 우주 안의 콩알만 한 지구도 태어난 지 45억년이나 되고. 그에 비하면 사람의 인생은 고작 푸른 세제 한 스푼이 물에 녹는 시간에 불과하단다. 그러니 자신이 이 세상에 어떻게 스며들 것인지를 신중하게 결정하고 나면 이미 녹아 없어져 있지.
(…)
걱정할 것 없다, 당연한 거라며 명정은 이른다. 잎사귀가 으레 말라 비틀어져 나뭇가지 끝에서 떨어져 내리듯, 살아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부서지기 마련이라 말한다. 흙으로 돌아가는 게 마땅하다 한다. 다만 세상에는 너무 일찍 예정에도 없이 흩어지고 소멸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의 아들도 그 중 하나이며 심지어는 어디 있는지조차 몰라서 흙으로 돌아갈 기회도 영영 얻지 못했다 말한다. 그전까지 그의 걱정은 자신이 흙으로 돌아가고 아들은 빛도 들지 않는 심해 어딘가에 가라앉았을 테니 죽어 만날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190.
사람들은 자신이 영원히 살 수 없다는 걸 알면서, 아무리 철저히 갖춰도 언제나 모자라게 마련인 준비를 그나마도 안 한다. 아니 못 한다. 시간적 재정적으로 유여한 중산층 이상의 이들이나 유언장 같은 걸 작성하고 재산분배를 지시하며 변호인의 공증을 받을까, 웬만한 장년층은 그날 하루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온 힘을 다해 살아낼 수 밖에 없으며 오늘도 이렇게 지나가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상태에서 마지막을 맞을 것이다. 적어도 명정의 몇 안 되는 친구들은 자신의 삶 마지막의 모습에 별도의 주석을 달지 못했었다.
196.
시간의 칼날이 평등하게 그 목덜미를 향한다는 생각을 어째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까.
203.
세주는 추후 계획과 예정을 묻지 않고 은결의 손을 잡아 흔든다. 무언가 묻거나 말하기 시작하면 그에게 관여하겠다는 것이다. 그를 온몸으로 책임질 수 없다면, 그의 짐을 나눠 지지 못할 것 같으면 그에 대해 궁금해해서는 안 된다. 그건 어림 반 푼어치 얄팍한 호기심에 지나지 않는다. 한 존재 한 생명을 전적으로 책임지면서 그녀가 가장 먼저 알게 된 삶의 자세가 그것이다.
242.
지금의 연산 결과가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한다면, 알고 싶지만 더는 알지 않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248.
"그러면, 행복해?"
그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은결은 아직 작동을 멈추지 않았으며, 그는 이토록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야 인간이 말하는 행복이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이제 소모될 대로 소모된 내장 배터리가 태양열로는 더 이상 충전되지 않더라도, 플러그를 꽂은 채로 예전보다 전원 대기 모드가 턱없이 길어지더라도, 감사가 어떤 것인지 또한 알 것만 같다.
"물론입니다."
"내가 잘 보여?"
예, 보입니다-와 같은 정직한 단답의 단계를 건너뛰고 은결은 아이의 말 너머에 있는 행간을 읽어낸다.
"예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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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 너무 많이 가져왔나 걱정된당 ㅠㅠㅠ(-> 좀 줄여서 수정했어! )
문제시 알려주렴 바로 수정할게!
나도 좋아해서 여러 번 읽은 소설이라서 반갑다! 근데 톨아, 좋은 글을 함께 나누고 싶은 톨의 마음은 잘 알지만 너무 많은 문장을 올리는 건 저작권의 문제도 있을 수 있고 작가님에게도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혹시 글을 조금 수정하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