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코르셋: 도래한 상상
사실 난 탈코르셋에 대해서는 좀 나중에야 알게 되었어. 우리나라는 주로 10대, 20대의 주도로 SNS에 많이들 인증이 올라오고 담론이 진행되었다는데 나도 SNS를 하긴 하지만 타임라인이 보수적인 탓인지 -.- 오히려 탈코르셋에 대해서는 디토에서 많은 정보를 알게 된 것 같아. 특히 이번 설에 디토 비밀의 숲이 열렸을 때 탈코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면서(탈코를 지향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XX도 탈코에 부합할지 등) 다시금 관심이 생겼고 이 참에 전부터 읽으려고 체크해뒀던 이 책을 드디어 읽게 되었어.
탈코에 관해 가장 헷갈렸던 것은 이거였어.
탈코는 대체로 편하다. 그렇다면 탈코는 편한 것인가? 편한 것을 지향하는 게 탈코인가?
가장 논란이 되는 머리를 예를 들자면, 머리를 짧게 자르면 장발일 때보다 관리하기 편해. 감고 말리는 데에 시간도, 돈도 적게 들지.(반론: 숏컷은 관리하기 힘들다, 자주 커트해야 한다, 이에 대한 반론: 탈코에서 말하는 숏컷은 보기 좋은 예쁜 여성 숏컷이 아니라 투블럭 같은 남자 같은 숏컷이다, 그러면 관리가 어렵지 않다, 이에 대한 재반론: 남자 같이 되는 게 탈코인가? 탈코는 여성성을 부정하는 것인가?)
등등... 관심 있는 톨이라면 익숙한 이야기이지 않아?
나는 사실 처음에 탈코라는 의식을 가지고 한 건 아니고 한때 빠졌던 미니멀리즘의 영향이 탈코와 약간 이어진 측면이 있어.
이미 충분한 옷을 가지고 있는데 옷을 버리면 버렸지 더 살 필요가 없다- 에서 시작해서 불필요한 옷과 화장품을 버리고나니 정말 많이 버렸는데 이게 없어도 나에게는 전혀 불편함이 없더라고=내가 이미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은 것을 소비하고, 소유하며 살았다는 깨달음이 오더라고. 이 때부터 난 옷을 거의 안 사기 시작했어. 화장품도 안 사고.
그리고 머리카락 역시 긴 머리카락(내 기준 긴 머리카락은 단발 이상)을 감고 말리는 데에 드는 자원(물, 샴푸, 트리트먼트, 전기, 시간, 곱슬머리에 힘없고 부스스해서 보기 나쁜 머리를 찰랑찰랑하게 보이기 위해 클리닉 받고 펌하는 데에 드는 돈 등)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짧은 단발, 또는 숏 단발로 머리를 싹둑 자르고 나면 그 가벼운 머리가 너무 기분이 좋았거든. 투블럭을 할 생각은 없지만 나에게는 이 짧은 머리가 내 나름의 탈코로도 이어진다고 생각했어.
어른이 된 이후로 겨드랑이와 다리를 꼬박꼬박 밀고(난 내 다리 피부가 매끈하지 않은 게 컴플렉스라 한 여름에도 스타킹 감촉이 좋다며 스타킹을 입고, 가끔 맨다리일 때는 심지어 다리에 화장을 했어, 다리 전용으로 나오는 쿠션 같은 걸로) 했었지만 이 이후로는 다리털을 그대로 드러낸 채 반바지를 입기도 했고 헐렁하게 편한 롱원피스를 입었지(원피스에 대해서는 또 논란이 있지만). 대학에 들어가고부터 쭉 스키니가 유행해서 내 바지는 다 붙는 옷이었지만 이후로는 헐렁한 바지를 입기도 하고, 원래 원피스 아니면 블라우스+스커트 밖에 입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아빠가 안 입는 셔츠를 입거나 티셔츠를 즐겨 입었어.
탈코르셋: 도래한 상상은 주로 20대, 30대 여성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스스로 받아들인 탈코르셋이 어떤 것이고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등을 이야기 나눈 거야.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는 인터뷰가 적었고 저자의 이야기가 많긴 했지만 다양한 인터뷰 대상자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웠어. 내 또래의 이야기였고 또 내 이야기였지. 내가 고민하고 있던 것들을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고민하고 있었고, 특히 저마다 어떤 식으로 행동으로 나섰는지, 그 계기가 뭐였는지가 특히 흥미로웠어. 우연히도 인터뷰 대상자들의 많은 수가 교육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이 탈코를 결심하게 된 게 다음 세대(어린 아이이든, 중고등학생이든)의 롤모델로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라는 점이 여자 조카 둘을 가지고 내가 고민하고 있는 지점과 닿아 있어서 많은 공감이 되었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다면, 아니면 탈코가 뭐고 사람들이 왜,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잘 모르지만 흥미를 가지고 있다면 한번 읽어보면 괜찮을 것 같아! 추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