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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플렉스의 펭거(왼쪽)와 크리스티안센. 방한하지 못한 라스무스 닐슨까지 모두 3인조다. 벽면에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파산한 은행들 명단이, 앞에는 비트코인 가치 변동을 보여주는 조각이 놓여 있다. 



당신들은 건축가인가, 영화감독인가. 아니면 조각가인가, 화가인가. 


덴마크 출신의 3인조 아티스트 그룹 ‘수퍼플렉스’가 항상 듣는다는 질문이다. 놀랄 일도 아니다. 1993년 그룹을 결성한 이후 지금까지 25년 넘게 해온 ‘일’이 종횡무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2012년 이들은 덴마크 코펜하겐의 외곽 도심에 ‘수퍼킬렌(SUPERKILEN)’이라는 이름의 공공예술공원을 만들었다. 한때 빈민가였던 곳을 문화공간으로 재생한 이 프로젝트는 수퍼플렉스가 이끌고 덴마크의 건축가그룹 BIG와 조경전문가가 공동으로 참여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아프리카 주민을 위해 바이오가스 시스템을 만들었고, ‘지식은 공유돼야 한다’며 맥주 제조 레시피를 공유하는 프리비어(FREE BEER) 프로젝트를 펼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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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 은행 로고로 완성한 회화.



2017년엔 현대 커미션 작가로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 초대형 전시장인 터바인홀에 ‘하나 둘 셋 스윙!’이라는 제목의 대규모 그네를 설치했다. ‘하나 둘 셋 스윙!’은 지난 5월 국내 파주 도라산 전망대에도 작은 규모로 설치됐다. 반드시 3인이 힘을 합쳐야 움직이는 이 그네는 ‘협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독특한 공공예술 작품이다. 


요즘 부산에서 ‘힙 플레이스’로 꼽히는 망미동의 문화예술공간 F1963. 이곳에 자리한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수퍼플렉스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제목은 ‘우리도 꿈속에서는 계획이 있다(In our dreams we have a plan)’. 역시나, 이번 전시도 범상치 않다. 금융위기·파산 은행·비트코인 등을 소재로 ‘경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우선 이들은 전시장 한쪽 벽면을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파산한 은행들과 이를 인수한 기관의 이름으로 빼곡히 채웠다. 17개에 달하는 검정 패널에 회색으로 쓰인 글씨, 그 형태가 아무리 봐도 거대한 묘비명 같다. 전쟁터에서 목숨 잃은 병사들 이름이 있을 법한 자리에 지금은 ‘역사’가 된 은행 이름이 적혀 있다. 제목도 ‘파산한 은행들(Bankrupt Banks)’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수퍼플렉스의 두 멤버 야콥 펭거(51)와 브외른스테르네 크리스티안센(50)은 “이것은 금융위기 이후 세계 금융계에서 일어났던 구조조정의 연대기”라며 “여기에 한국의 은행들 이름도 여럿 눈에 띈다. 자료조사를 하며 예상보다 파산은행이 굉장히 많은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파산한 은행들’ 작품은 더 있다. 이들 은행의 로고를 그린 회화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때 ‘신뢰’의 상징으로 쓰이던 로고가 이제는 본래 영역에서의 의미를 잃고 갤러리 공간의 ‘미니멀 추상화’로 남았다. 그들이 “실패한 권력 구조의 초상”이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수퍼플렉스의 얘기를 더 들어봤다.







Q : 파산한 은행들의 명단과 로고를 갤러리에서 보게될 줄 몰랐다.


A : “우리는 사회 갈등에 관심이 많다. ‘경제’는 우리가 지난 20년간 집중해 다뤄온 주제였는데, 특히 2008년 ‘세계 금융위기’사건을 목격한 이후 권력과 자본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쏟게 됐다.”




Q : 25년간 ‘경제’얘기를 다뤄온 이유는.


A : “우리 삶은 경제와 얽히지 않은 게 없다. 우리는 이 경제가 굴러가는 시스템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사회의 거대 권력이 우리 삶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가 탐구한 금융의 현실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것도 우리의 중요한 프로젝트다.”




Q : 파산 은행의 로고를 활용해도 되나.


A : “이것은 공공의 자산이고, 지금은 그 기관이 다른 기관에 인수돼 사라진 상태여서 문제없다고 판단했다. 만약 누군가 문제로 삼는다면 함께 토론할 의향이 있다. 은행 로고엔 번영을 위한 인간의 꿈, 자신감, 상호 간의 신뢰 등의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그 약속은 깨졌고, 이것들은 더는 쓸모없어졌다.”




Q : 해수면 높이,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가치 등락 그래프를 소재로 조각을 만들었다.


A : “현재 우리 인류는 신자유주의가 유토피아를 가져다줄 거라는 환상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트코인도 지난 금융위기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거품일 수 있다.”




Q : ‘협업’을 고수해 온 이유는.


A : “진짜 아티스트는 ‘수퍼플렉스’라는 그룹이다. 우리 세 멤버는 수퍼플렉스의 종속체일 뿐이다. 우리는 ‘협업’의 가치와 ‘집단의 힘(Collective Power)’을 믿는다.”




Q : 같이 일하면 부딪히는 일도 있을 텐데.


A : “우리 팀의 강점이 바로 항상 갈등과 긴장이 있다는 점이다. 누구 한 사람이 좌지우지할 수 없다. 이런 긴장과 갈등이 작품으로 표현되는 것을 좋아한다.”




Q : 마지막 질문이다. 작품을 왜 ‘도구’라고 부르나. 당신들은 사회운동가인가.


A : “반드시 갤러리나 미술관에 있어야만 ‘작품’이 되는 게 아니다. 컬렉터의 수집 대상이 될 수도, 누군가에 의해 생활에서 쓰일 수도 있다. 우리 역할은 사람들을 작품 안으로 초대하고 함께 생각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작품은 아이디어인 동시에 프로젝트이며, 도구다. 우리는 경계를 허물며 작가의 새 모델을 만들어나가고 싶다.”



전시는 10월 27일까지.



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29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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