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정원

1/1/2021 [취리히 발레] 호두까기 인형 (2018) 크리스티안 스푹

겨울은 역시 호두까기 인형. 취리히 발레의 이 작품은 반짝반짝한 전통적인 호두와 다르게 무채색의 기괴한 분위기인데, 이게 상당히 세련되고 멋있어서 몇번이나 재탕했다. 줄거리가 희미하고 디베르티스망으로 거의 2막을 채워버리는 전통적인 스타일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원작내용에 충실한 드라마투르그를 가지고 있다. 난 이 발레로 인해 펄리팻 공주의 존재와 마법 황금호두(크라크투크)의 존재를 처음 알았고 원작의 내용을 그제서야 찾아보았다. 이 발레의 유일한 흠이라면 꽃과 케이크 표현이 지나치게 칙칙하다는 것. 차라리 꽃도 케이크도 무채색으로 만드는 게 낫지 않았을까 아쉬운 마음이 든다.

1/2/2021 [로열 발레] 베이트릭스 포터의 이야기 (2007) 프레드릭 애쉬튼

이건 사실 1971년의 필름버전 베아트릭스 포터의 이야기를 보지 않으면 내용 파악이 상당히 어렵다. 간략히 설명하자면 베아트릭스 포터가 이야기를 창작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등장인물들이 다들 인형탈을 쓰고 나오길래 귀여운 이야기일줄 알았으나...돼지 커플이 로맨스를 즐기는 순간 창밖에서 도축업자가 지나가는 등 기괴한 영국감성을 마주하는 바람에 보던 이들과 다함께 말을 잃었다. 그리고 인형탈을 쓰고있다보니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상당히 제한적이라 애쉬튼이 안무를 좀 포기한 느낌...

1/3/2021 [로열 발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2017) 크리스토퍼 윌든

자본주의의 정수같은 발레. 발레를 처음보는 사람이라면 이걸 볼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발레도 돈을 쏟아부으면 얼마든지 엄청난 연출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로열 발레단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2010년과 2017년 두가지 버전이 있는데 각자 장단점이 있다. 2017년 버전의 가장 큰 장점은 하트여왕 역을 한 로라 모레라의 연기다. 2010년 버전에 비해 압도적으로 좋았다. 발레의 코믹요소는 이렇게 넣는 것이다! 라는 것의 정석을 보여주는 웃기고 재밌는 연기다. 안무로서 말하자면, 잠자는 미녀 로즈 아다지오 패러디가 인상깊었다. 발레팬을 위한 서비스 같은 장면.

1/8/2021 [소련 모스크바 고전 발레] 요정의 입맞춤 (1990) 나탈리아 카사트키나 & 블라지미르 바실리예프

전통적인 안데르센의 얼음처녀 이야기에 충실한 작품. 뭔가 90년대 작품이라기엔 화면 때깔도 그렇고 좀 더 60년대 갬성이었는데 아마 더 옛날에 찍고 90년대에 발매한 디비디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안무랑 연출이 좀 낡았단 생각이 들지만 의상도 세트도 드라마투르그도 무용수들 기량도 다 좋았어서 나름대로 만족. 얼음처녀 이야기는 처음 알게 되었는데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딱 안데르센 스타일.


1/15/21 [스코틀랜드 발레] 요정의 입맞춤 (2017) 케네스 맥밀란

맥밀란 작품은 로미오와 줄리엣과 마농만 봤지만 사실 그다지 취향이 아니었다. 그래도 맥밀란 이름값이 있으니 요정의 입맞춤이 얼마나 현대적으로 변모했을지 기대하고 켰는데 정말 기억에 하나도 안남을만큼 개노잼이었다. 소련 모스크바 고전 발레가 줄거리도 충실하고 세트나 무대의상 보는 맛도 있어서 훨씬 좋았다. 맥밀란은 뭘봐야 좋은거지...메이얼링은 딱봐도 내취향이 아닌데.

1/22/21 [몬테 카를로 발레] 파우스트 (2014)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마이요 최대 아웃풋은 지금도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잠자는) 미녀라거나 백조(의 호수)의 동화 비틀기는 꽤 좋아했다. 그렇지만 파우스트의 해석은 영 알수가 없는 기분이었다. 내가 파우스트를 제대로 읽은 적이 없어서 이해를 못하는 건가? 마이요의 춤 자체에 대한 안무능력은 썩 우아하거나 신선한 동작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스토리텔링 능력만큼은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뭘봐야할지 알수가 없어진 작품.

1/29/21 [쥬네브 대극장 발레] 초현실주의 호두까기 인형 (2015) 예룬 베르부르켄

정말 처음 듣는 발레단에 처음 듣는 안무가라 망설였는데 스틸 사진컷이 워낙 멋있었고 레이디 가가의 의상 디자이너들 중 하나가 이 작품의 의상을 맡았다고 하길래 비주얼적으로 신선함은 있겠지 싶어서 본 작품이다. 새삼 느끼는데 호두까기 인형만 열가지 정도의 버전을 봤지만 호두까기 인형 원전의 형태도 안남은 애들이 요샌 많이 나오는 거 같다. 굳이 호두까기 인형인척 할 이유가 뭘까, 이름값? 내용 보면 그냥 창작발레인 케이스가 대부분이더라. 이건 뭐 또 마리인지 클라라인지가 외모가 달라서 왕따를 당하다가 극복해나간다는 성장기라나 그랬던 거 같은데 솔직히 크게 기억에 남진 않았다. 그리고 참고할만한 해설이 영미웹에 없어서 불어 리뷰를 봐야해서 골치아팠던 기억만 난다. 아, 예룬 베르부르켄은 정말 처음 듣는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깨달았지만 몬테 카를로 발레단원이었다. 마이요의 한여름밤의 꿈에서 퍽 역할로 나온 사람이어서 뒤늦게 발견하고 흥분했다.




2/5/21 [마린스키 발레] 라 바야데르 (2014) 마리우스 프티파

라 바야데르는 나에게 있어서 좀 특별한데, 내가 실제 무대로 가장 처음 본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냥 우연히 김기민을 보러갔다가 빅토리야 테료쉬키나에게 매료당해 집에 돌아간 후에도 한참을 테료쉬키나를 검색했던게 기억난다. 그날의 테료쉬키나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인터미션 내내 주위에서 여자 주연 무용수 이름을 묻고 답하던 사람들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된다. 사실 테료쉬키나의 니키야의 죽음 파트는 그다지 인상깊지 않았다. 이상하게 이쪽은 마린스키 무용수들 모두 좀 펄쩍거리는 느낌이 나서... 하지만 1막의 그 우아함의 절정같은 움직임, 처음 본 순간부터 단 한숨도 놓치지 못하고 뚫어지게 응시해야했던 고귀한 몸짓, 인간같지 않은 그 연기와 춤에 홀려 나는 그날 마법을 경험한 것 같았다. 그때는 솔로르 역할로 김기민이 나왔지만 이 버전에서는 블라지미르 쉬클랴로프였다. 사실, 한참이 지나 내 취향이 정립되어 이제사 말하는 거지만 둘 다 좋아하는 무용수임에도 불구하고 내게 있어서 유일한 솔로르는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다. 바리시니코프가 추는 걸 보는 순간 모든 역할이 그로 고정되는 부작용을 몇번 경험하자 최대한 그의 영상은 뒤로 미루고 보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2/6/21 [라인스 발레] 셰헤라자데 (2012) 알론조 킹

미하일 포킨의 셰헤라자데 예찬론자로서 솔직히 별 기대없었는데 생각 외로 너무 좋아서 또 봐야지 마음먹었던 작품. 난 기본적으로 마이요에게 호의적이고 좋아하는 작품도 많지만 셰헤라자데에 대한 마이요의 재해석은 대체 이게 뭐야? 라는 기분이었고 여러모로 포킨의 열화판이란 느낌이었는데 알론조 킹은 아예 다른 식의 해석에 발레의 전통적 움직임을 입힌 현대무용으로 대응했다. 원작발레와 다른 시간을 다루고 있고 스토리라인이 그만큼 뚜렷하진 않지만 충분히 알론조 킹에 대한 호감이 생기는 뛰어난 작품이었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음악을 원전의 배경식으로 재편곡한 부분도 매우 마음에 들었다.

2/12/21 [로열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영화판 (2019) 케네스 맥밀란

솔직히 말해, 나는 케네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평론가들만큼 열광하지 않는다. 나에게 늘 먼저 떠오르는 로미오와 줄리엣 버전은 레오니드 라브로프스키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쪽이라면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다. 내가 무대 위의 맥밀란버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처음 본 것은 아메리칸 발레 씨어터의 공연이었는데, 나름대로 재미있게 봤지만 어딘지 발레보다 연극같다는 석연찮은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이것이 필름버전으로 만드니까 상당한 장점으로 화한 것이 보였다. 비록 후반부는 약간 힘이 빠졌지만 로열 발레단은 충분히 자신들이 셰익스피어의 종주국임을 증명했다. 그나저나 로미오와 줄리엣은 영국인이 생각한 이탈리아인들의 사랑얘기인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버전은 영국인이 생각한 이탈리아인들의 사랑 이야기를 러시아인이 춤으로 만든 버전이라니 참 묘하다.

2/19/21 [취리히 발레] 겨울 나그네 (2021) 크리스티안 스푹

일단 2021년 신작 발레를 영상으로 바로 보다니 감개무량했다. 사실 작품 자체는 내가 제목을 듣고 기대했던 딱 그만큼이었지만... 스푹은 잠자는 미녀나 오를랜도를 좀 찍어줬으면 좋겠다. 내가 생각하는 스푹의 최대 장점은 고정된 드라마투르그 안에서의 우아하고 독특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건데 스토리라인이 현대무용처럼 아예 사라지면 내 취향에서 벗어나더라. 내가 생각하는 스푹의 정점은 포페아의 대관식으로 소재로한 포페아//포페아와 무채색으로 원전을 되살린 호두까기 인형이었고, 베르디의 메사 다 레퀴엠과 겨울나그네는 그의 장점을 그다지 살리지 못한 작품으로 보였다. 겨울나그네는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빌헬름 뮐러의 시에서 유래한 줄거리가 붙었음에도 시 전체의 이야기 자체가 너무 흐릿하고 추상적이라 구체적 스토리라인이 없다보니 미묘해졌다. 나는 이처럼 드라마투르그가 모호한 현대무용이라면 앙졸랭 프렐조카주나 알론조 킹의 작품을 선호한다. 크리스티안 스푹의 안무가 우아한 움직임을 보여준다고 해도 그는 스토리와 결합할 때 가장 빛이 나기 때문에.


2/20/21 [마르세유 내셔널 발레] 카르멘 (1980) 롤랑 프티

롤랑 프티의 「젊은이와 죽음」의 열렬한 팬인만큼 기대치가 높았으나 그 기대치엔 미치지 못하는 작품이었다. 나는 솔직히 지지 장메르의 매력을 잘 모르겠다. 외적인 매력은 알겠지만 그러니까, 무용수로서의 매력... 지지 장메르는 롤랑 프티의 뮤즈이자 아내였으니 롤랑 프티는 그녀에게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분명 발견했겠지만 나는 그녀의 대표작이라는 이 카르멘에서도, 누레예프와 찍었던 젊은이와 죽음에서도 내 취향을 엿보지 못했다. 바리시니코프는 취향을 씹어먹는 남자니까 예외라고 해도 사실 누레예프의 매력도 잘 모르겠...안무가로서 발레의 역사를 바꾼 남자 중 하나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무용수로서의 정점은 역시 바리시니코프가 아닐까. 어쨌든 미샤의 젊은 시절 얼굴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는 것 외에 큰 소득은 없는 작품이었다.

2/26/21 [아메리칸 발레 씨어터] 지젤 영화 (1987) 장 코렐리, 허버트 로스

카르멘을 보고 바로 봐서 그런가 미샤가 너무 늙어있어서 마음이 안좋았다. 다음엔 아예 흑백으로 미샤의 어린시절을 감상해야겠단 생각을 하면서 봤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바리시니코프의 팬이라지만 영화로서의 완성도는 그지같다. 백야도 그랬지만 발레 좀 넣는다고 영화로서의 재미도 없는 작품을 만드는 건 좀 그렇다. 물론 내가 지젤이라는 작품 자체를 별로 안좋아하는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내용이 영 별로다. 나중에 미샤의 실황 지젤은 한번 더 볼 의향이 있다. 내가 지젤을 좋아할 수 있는 날이 오긴 할까? 이제껏 가장 내 취향이었던 지젤은 아크람 칸의 지젤이었는데 이건 완전히 현대적인 해석을 한 케이스라서... 보리스 아이프만의 레드 지젤을 기대하고 있다. + 아이프만 지젤 존나 좋았음 헠헠 이건 7월리뷰로

2/27/21 [로열 발레] 피터와 늑대 (2010) 매튜 하트

별 기대없이 봤는데 의외로 좋았던 작품. 매튜 하트의 다른 작품이 있을까 싶어 뒤져봤는데 없어서 아쉬웠다. 러시아 민담인 피터와 늑대를 산뜻한 색감과 동물의 움직임을 흉내낸 안무로 창조해낸 발레다. 사실 나는 폴란드 애니메이션으로 피터와 늑대를 봤는데 그건 굉장히 무겁고 진지하고 우울하기까지한 애니메이션이었어서 그런 느낌을 기대하고 켰다가 상당히 달라서 놀랐다. 나중에 알고보니까 이쪽이 일반적인 피터와 늑대의 분위기라고 하더라. 딴얘기지만 러시아에서는 꼬마도 늑대쯤은 때려잡아야하는 건가, 극한의 땅이다.

2/28/21 [뉴욕 시티 발레] 돌아온 탕아 (2021) 조지 발란신

여러모로....충격적인 발레. 나에게 발란신은 아폴로라거나 보석들 같은 우아한 신고전주의 안무가였는데 이건 뭐지? 내 눈이 지금 잘못되었나? 같은 기분이 들었던 작품. 프로코피예프가 나처럼 성경에서 비롯되었으니 우아하고 성스러운 드라마로 만들었겠지? 하고 초연 리허설 갔다가 쉬펄 내 음악을 어떠케 이따위로 쓸 수 이쒀?! 하고 개빡쳐서 발란신이랑 말도 안하려고 했다더니 프로코피예프의 심정이 이해가 가려고 했다. 이건 뭐랄까, 발레보다 좀 더...현대 행위예술? 현대무용보다도 좀 더 나아간 무언가...서커스에 가까워보이는 작품이었다. 나는 사실 발란신의 고전적 작품, 특히 코르 드 발레를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에 (특히 피터 마틴스가 그의 잠자는 미녀에 집어넣은 발란신 안무인 갈란드 왈츠는 너무나 예뻐서 일주일간 그것만 검색했다)눈을 씻고 다른 작품을 봐야겠단 생각을 하면서 끝까지 보긴했다. 짧아서 매우 다행이었다.




3/12/21 [파리 오페라 발레] 이올란타/호두까기 인형 (2016) 시디 라비 셰르카위, 에두아르 로크, 아서 피타

가장 고전적인 형태의 호두까기 인형을 현대에 되살려보려는 참신한 시도였지만 감독/연출과 안무가가 다를 경우 - 특히 여러명의 안무가가 혼재할 경우 - 어떻게 파탄이나는지에 대한 안좋은 예시.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이 본래는 오페라 짝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파리 오페라의 드미트리 체르니아코프는 잘 알려지지 않은 러시아 오페라 이올란타를 파리시민들에게 소개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익숙한 호두까기 인형 발레를 기워넣었다. 체르니아코프는 오페라 연출을 주로 담당했던 사람이었던 것이 문제였을까, 세 명이나 들어간 안무가들의 움직임은 합이 맞지 않는건 고사하고 연출과도 어우러지지 않는다. 체르니아코프는 아마도 뛰어난 연출가일 것이다. 보통의 호두까기와 다른, 이올란타에서 이어지는 특이한 설정을 가져와 연출하고 조명을 비춘 군데군데는 분명 그의 재능이 엿보인다. 그러나 발레 안무가는 단순히 동작만 안무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연출과 코스츔, 조명 등을 전부 총괄하는 감독같은 자리다. 자신들이 익숙하지 않은 연출과의 일이어서인지 안무가들의 춤은 전혀 빛을 발하지 못한다. 아, 그리고 새드엔딩인 호두까기 인형은 처음봤다. 중간에 남주가 죽어버리길래 조금 충격.

3/13/21 [키로프 발레] 장미의 정령/폴로베츠인의 춤 (2002) 미하일 포킨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안무가를 꼽으라면 포킨은 분명히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갈만한 안무가지만 이 두 작품은 영 모르겠다. 니진스키는 대체 저 이상한 장미의 정령 옷을 입고 어떻게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춤을 추었다는 평가를 들은거지? 이고르 콜브가 딱히 더 못추어서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기보다 그냥 스토리도 희미하고 동작에서도 딱히 매력을 못느꼈다. 폴로베츠인의 춤은 오페라로 유명하다보니 발레 작품으로는 처음보는데, 어디 다른 발레의 캐릭터 댄스 한부분을 잘라놓은 것 같이 느껴져서 하나의 완성된 발레로 느껴지지 않았다. 어쨌거나 나는 러시아식 캐릭터 댄스를 좋아하는 편이라 이쪽은 춤 자체는 어느정도 즐길 수 있었다.

3/21/21 [잉글리시 내셔널 발레] 원 안의 신데렐라 (2019) 크리스토퍼 윌든

윌든은 확실히 대단하다. 기회가 된다면 윌든의 더 많은 작품을 접하고 싶다. 물론 아직까지 내가 본 그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났던 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지만, 그는 스토리텔링과 뛰어난 자본의 맛이 섞인 연출에 특화되어 있다. 이쪽은 자본이 약간 부족했는지 가장 값싼 인력을 주로 활용하는 것이 보여 조금 웃어버렸지만 나에게 신데렐라 발레를 딱 하나만 봐야한다면 이 작품과 로스티슬라프 자하로프의 1960년 작품 중에 고심할 것이다. 더치 내셔널 발레가 윌든의 이 작품을 공연한 것도 언뜻 보았는데, 원형의 로열 앨버트 홀에서 공연했기에 ‘원 안의’ 신데렐라라는 별칭이 붙은 이 버전은 매우 신선했다, 예프게니 키신이 로열 앨버트 홀에서 공연하는 것을 본 이후 언제나 가보고 싶었는데 발레 무대로도 활용된다는 것에 흥분했다.

3/26/21 [뉴 어드벤쳐스] 신데렐라 (2017) 매튜 본

이 작품을 본 지인들의 공통 감상은 “이게 꼭 신데렐라여야할 이유가 있어?”였다. 고백하건대, 나는 매튜 본의 안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새로운 스토리텔링과 돈을 무척이나 들였을 것이 분명한 무대배경과 코스츔을 보는 즐거움은 분명히 있지만 매튜 본의 순수한 춤에 다한 안무는 뭐랄까, 발레보다 뮤지컬 동작을 연상케 하는 부분이 있다. 대화와 노래가 없는 뮤지컬을 보는 느낌? 그러나 매튜 본의 잠자는 미녀처럼 그 원형이 남아 100여년간 잠든 공주님과 그 연인의 나이를 엇비슷하게 맞추기 위해 연인을 뱀파이어로 만들어버리는 참신한 동화 비틀기 아이디어와 달리, 이 작품은 그냥 신데렐라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창작발레다. 2차대전 배경, RAF 파일럿과 일반 시민의 사랑, 신데렐라의 구두는 흔한 이별과 재회의 장면에서 조각난 하트목걸이를 맞추어보듯 사랑의 증표로서의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신데렐라와 계모나 언니들과의 관계나 학대, 신분상승의 꿈 등 신데렐라로서의 툭징적인 장면은 전부 사라지고 없다. 이 작품에서 요정은 죽음의 천사나 사신에 가까운데, 그 유명한 런던의 카페 드 파리의 1941년 폭격으로 죽은 사람들을 되살려 파티를 재현하는 장면의 연출만큼은 매우 인상깊고 훌륭했다. 신데렐라를 표방할 이유는 없었지만 뒷맛이 쌉싸름한 특이한 스토리텔링이었음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4/3/21 [라 스칼라 발레] 한여름 밤의 꿈 (2007) 조지 발란신

사실 발란신 버전의 한여름 밤의 꿈은 분명 뉴욕 시티 발레의 실제 무대로 본 적이 있는데... 기억이 안난다. 뭔가 초록초록한 무대였고 졸았던 기억만 난다. 발레 보러가서 졸았던 게 한두번은 아니긴 하지만 이건 내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의 내용을 영 모르겠는데 플레이빌 읽기도 귀찮아서 대충 훑었더니 그냥 잠이 소록소록 왔던 것 같다. 알렉산드라 페리와 로베르트 볼레의 화려한 캐스팅에 군무에 강한 발란신의 안무가 합쳐지니 꽤 볼만했다. 이번에는 확실히 보기 전에 셰익스피어 극의 내용도 숙지했고. 한마디로 그냥 요정왕과 요정여왕의 부부싸움에 인간들의 사랑의 작대기가 개판난 막장드라마인데 내용을 알고보니 확실히 볼만했다. 뉴욕 시티 발레가 재개장 하고 무대에 올라오면 한번쯤 더 보고싶다. 단지 발란신 초창기 작품인지 3막은 내용없는 디베르티스망으로 꽉 차있어서 좀 지루했다. 더 짧았으면 더 임팩트있고 재밌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4/4/21 [아메리칸 발레 씨어터] 꿈 (2004) 프레드릭 애쉬튼

그걸 바로 애쉬튼이 해냈습니다! 이쪽도 주연은 알렉산드라 페리인데 남자 무용수는 누구더라, 아무튼 처음 들어본 이름인데 이쪽도 춤 실력은 괜찮았다. 아메리칸 발레 씨어터도 이렇게 무용수 퀄리티가 좋고 무용수층이 두터웠던 적이 있는데... 지난 몇년간을 생각하면 너무 처참하단 말이지. 비쉬뇨바도 볼레도 다 떠나버리고 요새 볼만한 건 머피, 심킨이랑 서희, 그리고 기복심한 코플랜드인가... ㅠㅠ 어쨌든 애쉬튼은 한시간도 안되는 발레로 과감히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빠른 전개와 자기가 안춘다고 복잡하고 무시무시한 난이도의 안무를 고안해내고 듬뿍 쑤셔넣어서 훌륭한 한여름 밤의 꿈을 창조해냈다. 로열 발레 버전으로 2017년작 애쉬튼의 한여름 밤의 꿈도 봤는데 좀 보다가 껐다. 화질이 좋아져도 알렉산드라 페리를 대체하기는 확실히 어렵다고 느꼈다.

4/9/21 [로열 스웨디시 발레] 한여름 밤의 꿈 (2015) 알렉산더 에크만

제목만 셰익스피어 극에서 따오고 내용은 전혀 상관없는 스웨덴의 하지축제를 주제로 한 빛나는 작품. 오랜만에 너무 충격적으로 좋은 발레를 만나서 신이난 상태로 저번 블챌을 적기 시작했지만 사흘만에 블챌이 종료되고 내 감상글도 종료되고 뭐 그랬다. 어쨌든 구구절절 쓰기에는 그전에도 쓴 얘기라 좀 민망하지만 백조의 호수를 보았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에크만 작의 아름다움을 이 작품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카메라 감독 누군지 몰라도 카메라 감독 상줘야한다. 카메라와 편집이 지나치게 훌륭해서 함께보던 이들 모두가 입을 모아 실제 공연을 보았어도 이보다 훌륭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조프리 발레에서 공연했을 때 봤어야했는데 지금까지도 그때 정보가 없어서 못봐서 땅을 치고 후회하고 싶은 근사한 작품이다. 한번만 더 재연해주세요...ㅠㅠ 제 지갑은 준비되었습니다 ㅠㅠ

4/16/21 [로열 스웨디시 발레] 도피주의자 (2019) 알렉산더 에크만

그리고 에크만은 한여름 밤의 꿈에서 나에게 쌓아올렸던 좋은 이미지를 이 작품 하나로 다시 날렸다. 처음 30분 정도는 솔직히 비주얼 적으로도 행위예술같고 좋은 면모가 분명 있었는데 스토리가 없고 순수한 현대무용으로 채우기에는 에크만의 능력치가 다소 부족하지 않은가 싶다. 한여름 밤의 꿈은 순간순간 표현하는 주제나 장면이 뚜렷해서 보기 편했는데 이쪽은 백조의 호수를 볼때와 비슷한 난해함과 지루함이 느껴졌다. 피요르드인가 댄스탭인가 아무튼 내가 읽은 리뷰에서도 도피주의자와 비교해 한여름 밤의 꿈에 훨씬 높은 점수를 주길래 사람 보는 눈은 역시 다 똑같군 싶어졌다. 이쪽도 음악과 카메라 감독은 마음에 들었다. 기존 곡을 사용하는게 아니라 아예 작곡을 새로한데다 무대장치와 카메라에도 엄청 돈을 쓰는 느낌인데 북유럽은 물가도 비싸지 않나? 무슨 돈을 저렇게 쏟아부을 수 있지? 같은 자본주의적 감상이 남았다.


4/18/21 [몬테 카를로 발레] 꿈 (2009)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역시 이어지는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다른 버전 감상. 마이요답지않게 별로 신선하지 않았다. 사실 이건 마이요의 장점이 스토리 비틀기에 있다보니 상대적으로 모든 이들이 줄거리를 아는 것이 아닌 한여름 밤의 꿈 같은 내용은 원작의 내용에 어느정도 충실해야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인물들도 헷갈릴까봐 이 발레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전부 커플 깔맞춤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무용복을 입고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드라마투르그가 정돈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고 발란신이나 애쉬튼에 비해 스토리텔링도 직관적이지 못했다. 마이요의 셰헤라자데에서 미하일 포킨의 열화판이란 기분이 들었던 것과 비슷하다. 근래 본 마이요 작품들이 다들 실망스러워서 괜찮은 작품 하나쯤 내주면 좋겠단 생각만 든다.

4/23/21 [잉글리시 내셔널 발레] 부서진 날개 (2016) 애나벨 로페즈 오초아

프리다 칼로의 일생을 다룬 내용의 발레. 이런 종류의 발레는 마리오 슈뢰더의 채플린을 볼때도 느꼈지만 관객이 중심이 되는 인물의 생애와 작품에 관심이 없으면 상당히 보기가 힘들다. 발레는 언어의 예술이 아니기 때문에 이미 관객이 공통적으로 알고있지 않은 새로운 내용을 전달하기에 썩 훌륭한 매체는 아니다. 그나마 치정싸움이라던가 전투라던가 하는 직관적인 장면이나 감정에 충실한 내용을 다루는 것이라면 모를까, 복잡한 개인의 일생을 언어를 배제한 채 한두시간 안에 욱여넣는 것은 아주 어렵다. 나는 프리다 칼로의 전시회에 다녀온 적이 있고 그녀의 생애에 흥미를 느껴 몇권의 책을 읽었기에 푸른 집을 알아볼 수 있었고 디에고 리베라와의 사랑과 불화라거나 그녀의 소아마비와 세번에 걸친 유산과 평생을 함께해야했던 육체적 고통과 공산주의의 사상 등이 표현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러한 배경지식이 없었다면 나는 이 발레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을까? 장담컨대 의상이 색색깔이라 예쁘네 같은 감상 외에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발레 채플린을 함께 본 지인의 해설로 조금이나마 이해했듯 이번 모임에서는 내가 해설을 맡았다.

4/24/21 [로열 발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2011) 크리스토퍼 윌든

2017년 버전이 로라 모레라의 열연으로 빛났던 앨리스 버전이라면, 이 2011년 작품은 온전히 주연 무용수 둘이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다. 사실 로렌 컷버슨이야 안정의 프리마돈나고 어느 작품에 등장해도 훌륭한 연기와 춤을 선보이지만, 이 버전의 남성 주연 무용수가 세르게이 폴루닌이며 아마도 폴루닌이 정식촬영에 나온 유일한 영상이라는 것이 이 버전을 특별하게 만든다. 나는 크리스토퍼 윌든을 연출의 귀재라고 생각하고 앨리스를 보았을 때 줄리 테이머의 연출을 처음 보았을 때와 비슷한 정도의 충격을 받았지만, 순수하게 춤의 안무로 따지면 별 특이사항이 없는, 고작해야 무난한 수준의 안무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하트여왕 앞에서의 폴루닌의 솔로 바리아시옹과 컷버슨과 폴루닌의 파드두는 지나치게 아름답고 우아하여 몇번이나 돌려볼만큼 매혹적이었다. 나는 그간 로열 발레 스쿨을 3년이나 월반했다거나 최연소 로열 발레 수석무용수 타이틀을 획득했다는 등의 에피소드에서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던 그의 실력, 폴루닌이 이 당시 제2의 바리시니코프가 될 것이라 세계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는 것을 이 솔로 바리아시옹과 파드두만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생활이야 어떻든, 발레팬에게 있어서는 이제 아마 다시 볼 수 없을 진실로 안타까운 시절의 무용수의 모습이 여기 박제되어 있다.

4/24/21 [로열 스웨디시 발레] 줄리엣과 로미오 (2013) 마츠 에크

알렉산더 에크만 이전의 로열 스웨디시 발레는 어떤 작품을 했는지 궁금해서 선택하게 된 관람 작품. 상당히 우아한 현대무용의 느낌이었고 스토리의 원형도 어느정도 유지했지만 딱히 기억에 특별하게 남기엔 조금 미묘한 정도의 재미를 느꼈다. 아마도 실제 무대에서 볼 기회가 있다면 한번쯤 더 보러 가겠지만 마츠 에크의 명성에 나도 모르게 기대치가 올라갔었나보다. 마츠 에크의 다른 작품들을 좀 더 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5/1/21 [슈투트가르트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2017) 존 크랑코

나는 역시 이런 고전적 스타일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면 라브로프스키가 좋다. 이전에 조이 앤더슨이 쓴 발레 책을 읽을 때 로미오와 줄리엣 발레의 큰 계보는 라브로프스키-크랑코-맥밀란이라고 하길래 크랑코도 뭐 크게 다른가 했는데 딱히 모르겠다. 보면 볼수록 라브로프스키 버전의 열화판이라 보다가 졸뻔함. 졸음을 쫓기위해 존 크랑코에 대해 조이 앤더슨 책을 좀 더 뒤져보았는데 파인애플 폴이라는 작품이 대성공해서 갑자기 유명스타가 되었다고 한다. 내가 찾아낸 영상은 흑백이었지만 어쨌든 이거나 나중에 같이 보자고 지인들에게 말해두었다.

5/2/21 [키로프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1983) 세르게이 비쿨로바

발레 팬들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이란 역시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이겠지만 개중에 다른 것을 시도해 보려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라 차이코프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바탕으로 만든 발레를 보았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곡은 전막 발레를 만들기에는 지나치게 짧다. 세르세이 비쿨로바라는 난생 처음 들어본 안무가는 이 음악으로 단막 발레를 만들었는데, 딱히 로미오와 줄리엣이란 제목을 붙이기엔 인물들조차 구분이 가지않는 모호한 발레였다. 키로프 발레 시절이다보니 무용수들의 퀄리티가 좋은 건 알겠지만 일단은 그 모두가 아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라인이 분명치 않고 로미오와 줄리엣을 제외한 인물들은 전혀 모르겠다. 새로운 음악을 들어본 정도로 만족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이어서 이집트의 밤을 보았다.

5/2/21 [키로프 발레] 이집트의 밤 (1988) 미하일 포킨

찾아봤는데, 포킨이 만들 당시의 이 발레 이름은 「클레오파트라」였다. 클레오파트라가 아니라면 뒷부분의 로마 장군과의 러브씬을 이해하기 힘들었겠지만 클레오파트라라는 걸 알고보니 카이사르든 안토니우스든 둘 중 하나겠지 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용이 좀 충격적인데, 타호르라는 여친이랑 멀쩡히 잘 사귀던 아문이란 놈이 클레오파트라 여왕의 행진을 보고는 여왕에게 미쳐서 사랑을 고백하고, 여왕이 그럼 너랑 하루 자줄테니 그다음날 넌 죽는거다 오케이? 하는 바람에 여친은 죽으러 가는거냐고 뜯어말리지만 아랫도리에 미친 아문은 결국 네! 죽어도 좋으니 여왕님과의 하룻밤! 하고 하룻밤 즐긴 뒤에 여왕이 건넨 독잔을 받고 뒈짓하는 이야기다. 여왕님은 로마 장군을 만나 행복하게 잘 살고 타호르는 죽은 아문의 시체를 붙들고 슬퍼하며 끝난다. 파루크 루지마토프는 뭐랄까, 여왕님 픽으로 잘 어울리는거 같긴하다. 셰헤라자데의 황금 노예 역할도 그렇게 찰떡이더니 여기서도 여왕님을 사랑하고 밤에 시중드는 역할이 잘 어울리더라. 몸이나 움직임이 여왕님 마음에 충분히 찰 거라는 기분이 들게하는 무용수긴 한데...이 역할을 대체 요새는 누가 하지? 루지마토프 이후로 섹시하다고 느껴진 마린스키 무용수는 없어서 좀 궁금하다. 잘생긴 걸로만 따지면 쉬클랴로프를 쓰면 되겠지만. 아쉴무라토바는 다시 봐도 무서울만큼 가늘어서 인간같지 않은 데가 있었다. 해적의 노예소녀 역할도 클레오파트라 여왕도 잘 소화하는 걸 보니 다른 역할을 하는 것도 보고싶어졌다.

5/7/21 [파리 오페라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2012) 사샤 왈츠

이쪽은 헥토르 베를리오즈의 음악을 사용한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사샤 왈츠의 명성은 오래 들어왔는데 작품을 본 건 처음이다. 훅 빠지기에는 내 취향에서 2%정도 떨어져있었지만 여러모로 특이한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춤 자체만 보면 아주 특징적이고 신선하며 연출도 기발한 곳이 군데군데 보였다. 그런데 내 취향은 아무래도 스토리텔링이 좀 더 강해야하는 것 같다. 무채색의 연출은 상당히 아름답고 세련된 느낌이었고 성악도 적절히 넣어주었는데, 약간 충격이었던 것은 성악하시던 분들도 간단한 안무를 같이 하셔서 오페라와 발레를 같이 가진 컴퍼니는 오페라 가수들을 극한으로 굴리는구나 싶어졌다. 힘내세요.. 사샤 왈츠의 작품은 아마 하나쯤 더 볼 예정이 잡혀져 있어서 그때 보면 좀 더 새로운 것들이 보이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베를리오즈의 음악을 사용한 다른 로미오와 줄리엣 발레로는 티에리 말랑당의 작품이 있는데 솔직히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말랑당 쪽이 더 좋다.


5/8/21 [키로프 발레] 불새 (2002) 미하일 포킨

나는 역시 포킨이 너무 좋다. 불새를 처음 봤을 때도 그 마술같은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는데 키로프의 영상도 순식간에 마음을 앗아갔다. 뉴욕 시티 발레와 아메리칸 발레 씨어터에서 보았을 때는 배경무대를 마르크 샤갈이 한 걸로 기억하는데 이쪽은 좀 달랐다. 알렉산더 골로빈이었나? 아마 오리지널은 레옹 박스트였을테지만... 레옹 박스트 책도 사놓고 아직 못읽었네. 그리고 이거 키로프 발레 시절인데 영상이 왜 2002년으로 기록되어 있나 했더니 미국에서 디비디 출시한 년도인거 같다. 키로프가 마린스키로 바뀐게 97년인가 그런데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도 아니고... 이때의 스트라빈스키는 확실히 스승이었던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영향 하에 있어서 음악적으로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이 발레음악은 본래 디아길레프가 리아도프에게 러시아 색채가 들어간 발레를 만들고 싶다고 의뢰를 했는데 리아도프는 회피충이라 일을 자꾸 미뤄서 디아길레프가 빡쳐서 스트라빈스키에게 넘겼단 비화가 있다. 잘보면 불새만 푸앵트를 하고 나머지는 뒤꿈치만 드는데, 이게 불새의 특별함을 강조한다고 한다. 오리지널 캐스트는 타마라 카르사비나로, 마고 폰테인이 불새 영상을 찍을 때 카르사비나는 포킨이 그녀에게 “우아함은 잊어라, 불새가 가진 것은 인간의 감정이 아니다. 불새는 아주 강력하고 반항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는데, 비쉬뇨바의 불새는 사실...아름답고 우아했다. 나는 이쪽도 좋았지만. 포킨은 좀 더 야성적인 전설의 마수 같은 걸 상상했던 거 같고 카르사비나 본인의 해석으로는 “불새는 아주 오만하고 자존심이 강해 거래로서 깃털을 주었을뿐, 이반을 돕고싶어하진 않았다”고 했다. 그러고보면 이 민담은 좀 웃긴게 주인공인 이반은 이유도 없이 불새를 끝까지 잡아죽이려고 하고 불새는 살아야겠으니 깃털로 흥정하고 나중에 카쉬체이에게서 달아날 수 있도록 이반을 돕긴하는데 계약때문인거지 이반 자체는 싫어한다. 불새는 자기 구역에서도 이반에게 잡히는데 마법사는 물리칠 수 있는 걸 보면 강한 건지 약한 건지 영 헷갈린다. 내용이야 어쨌든 그 화려함과 눈부심때문에라도 불새는 무대 올라올 때마다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5/9/21 [국립 발레단] 허난설헌 (2017) 강효형

작년에 공개했을 때도 잠깐 보긴 했는데 정말 잘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 하나로 강효형의 이름이 강하게 뇌리에 남았고 기회가 된다면 실제 무대도 보고싶단 생각을 했다. 작년에는 신승원 버전 말고도 한 각도에서 찍었지만 박슬기 버전이 있었는데, 양쪽 다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이 작품은 동작의 특징적인 면도 빛나지만 구성과 음악의 조화, 복장의 아름다움까지 두루 만족스러웠다. 아마 내가 본 한국 창작발레 중에 가장 만족스러웠던 발레같다. 앞으로도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해주시고 영상도 많이 찍어주시면 좋겠다.

5/16/21 [국립 발레단] 호이 랑 (2019) 강효형

라고 생각하고 이 작품에 엄청난 기대를 했는데... 무용수들에게는 죄가 없지만 이 영상을 찍은 사람과 이런 편집자에게 영상을 맡겨놓고 오케이 사인을 낸 국립발레단에게는 정말 실망했다. 공연 영상을 생전 처음 찍어보는 초짜라도 이따위 편집은 안하겠다. 영상이 이어지는게 아니라 중간 중간 부분을 잘라서 리플레이를 몇번씩이나 시키는데 같이 보던 모든 사람들이 경악했다. 나중엔 어이가 없어서 다들 헛웃음을 터뜨리고 이런 뭣같은 영상은 앞으로도 보기 힘들거라면서 한마음으로 욕했다. 발레 내용은 대강 뮬란(화목란 설화)랑 유사한 남장여자 이야기였는데 영상의 편집이 너무 병신같고 빡쳐서 내용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무용수들 움직임도 제대로 못볼 지경이었고... 이런게 나올때까지 내부에서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니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국립발레단에 문의했는데 재상영에 관해 논의해보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진짜 좋은 작품이 망가진 느낌이라 너무 어이없었기 때문에 재상영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5/21/21 [로열 발레] 마르그리트와 아르망 (2017) 프레드릭 애쉬튼

뒤마(아들)의 책 동백꽃 여인을 바탕으로 만든 발레. 애쉬튼의 장점은 쓸데없는 줄거리를 싹 쳐내고 발레를 짧게 만든다는 거다. 가끔 이걸 왜 두시간짜리로 만든거야? 싶은 발레들이 있는데 애쉬튼을 좀 본받았으면 싶다. 자연히 스토리 전개가 아주 팍팍 되고 짧은 시간 내에 모든 걸 욱여넣어야해서 긴장감 맥스 찍는다. 근데 내가 근본적으로 이 이야기 자체를 안좋아해서... 라 트라비아타를 처음 봤을 때도 뭔데 이거 남주 개새끼 아녀; 싶었는데 발레로 봐도 결국 비슷한 감상이다. 그나마 정석 미남인 로베르트 볼레가 개새끼 역할을 한 덕분에 그래 마르그리트는 얼굴밖에 볼게없는 아르망에게 홀렸군! 하고 얼굴로 대충 개연성을 납득하고 볼 수 있었다. 딴 얘기지만 이 시대 배경 복식이 참 예뻐서 이걸 주제로 한 발레는 다 코스츔을 보는 맛이 있다.

5/22/21 [파리 오페라 발레] 동백꽃 여인 (2008) 존 노이마이어

고백하자면 이건 다시 봐야할거 같다. 보다가 졸아서 기억이 잘... 코스츔이 예쁘고 주연 무용수인 아녜스 레테스튀의 솔로 바리아시옹이 쩔었던 기억만 좀 난다. 아, 그리고 스테판 뷜리옹이 내내 일기읽는 시늉 하느라 고생했겠단 생각이... 어? 생각보단 기억하는게 많다. 책의 회상 형식을 충실히 따르다보니 회상에 대한 연출 방식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존 노이마이어가 발레 연출에 있어서 큰 획을 그었던 사람임은 분명하다. 마이요도 노이마이어 아래에서 수학했다보니 극 중의 극 같은 형식을 많이 따오기도 했고. 단지 내가 마이요를 먼저 접하고 노이마이어를 나중에 봐서 가끔 고루한 방식의 연출이라고 느낄 때가 있는데 노이마이어의 나이와 전성기를 생각하면 이쪽이 대단한 사람인건 맞다. 어쨌든 노이마이어의 동백꽃 여인은 자하로바 주연으로도 봤던 것 같은데 왜이리 기억이 가물가물한지 모르겠다. 늘 피곤할 때 잘못걸렸나. 아, 그리고 애쉬튼은 프란츠 리스트의 음악을 사용했는데 노이마이어는 쇼팽의 음악을 사용했다. 개인적으로는 쇼팽이 더 비애의 감정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모스크바 고전 발레단에서 한 동백꽃 여인은 (안무가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오페라 그대로 주세페 베르디를 썼던데 이거야말로 정해진 음악이 없어서 그런가 음악을 다양하게 써서 비교해서 듣기에 귀가 즐겁다. + 와씨 이거 다시봤는데 개쩐다. 진짜 프랑스 소설 읽는 기분이고 레테스튀도 뷜리옹도 너무너무 연기 잘했다 ㅠㅠ 대체 이거 왜 졸면서 봤었지? 나중에 기회되면 또 볼거다.

5/23/21 [로열 덴마크 발레] 완두콩 위의 공주님 (2020) 토비아스 파에트리우스

그러니까...안무가가 스물넷인가 새파랗게 젊은 놈이던데 사상적으로 90대 다 죽어가는 노친네도 아니고 고루하기 짝이 없는 발레를 만들어놔서 당혹스러웠다. 이 어린 안무가보다 몇십년은 늙었을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가 훨씬 리버럴한 사상의 드라마투르그와 리브레토를 썼다. 언제적 까다로운 공주님 얘기란 말인가. 애초에 완두콩때문에 못잔다고 공주라고 인정하는 것도 웃기고 찐공주를 찾겠다고 삽질하는 왕자놈도 웃기다. 북유럽 여성인권 높다더니 이딴게 버젓이 21세기에 나올줄이야... 문득 마이요가 21세기적 PC함을 갖추지 못했다고 까이던 리뷰가 생각나서 억울해졌다. 이런 놈도 안무가를 하는데요!

5/28/21 [볼쇼이 발레] 코펠리아 (2018) 세르게이 비하레프 (마리우스 프티파)

줄거리는 존나 엉성한데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예쁘기 위해 존재하는 발레였다. 싫다는 건 아니고, 오랜만에 이런 고전적이고 스토리텔링이 약한 발레를 봐서 그런가 꽤 신선하고 좋았다. 그리고 볼쇼이는 확실히 발랄한 캐릭터에 강한 곳이라 그런가 주연 무용수들 모두 퀄리티가 굉장해서 스토리 없는 건 신경도 안쓰이는 수준이었다. 전반적으로 코스츔이나 배경무대가 지젤과 상당히 흡사한데, 지젤은 비극인 반면 이건 비슷한 시기의 코믹발레의 대명사라 둘이 자주 비교되는 것 같다. 스와닐다 역 한 무용수 이름 까먹었는데 폴드브라 너무너무 좋아서 나중에 다시 되돌려봤다. 남성무용수도 사실 얼굴은 좀 미묘하게 못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솔로 바리아시옹 할 때 못생김이 다 희석되어버렸다. 엄청 잘해서 물개박수쳤다. 지젤은 내용이 빻아서 그런가 볼때마다 졸거나 노잼이란 기분으로 봤는데 이건 상당히 재밌게 봤다. 코펠리아 버전도 많아서 한동안 다양한 버전을 볼 생각이다.

5/30/21 [빅토르 우야떼 발레] 코펠리아 (2013) 에두아르도 라오

스페인 발레단은 처음 봤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 이쪽도 리뷰는 죄다 스페인어로만 떠서 좀 골치아팠지만 더 널리 알려졌으면 싶은 작품이다. 코펠리아를 SF풍으로 만들었는데 에두아르도 라오라는 이 처음 들어보는 안무가는 아주 신선한 안무와 연출을 들고와서 모임의 모두에게 호평받았다. 매드 사이언티스트로서의 코펠리우스가 변태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안드로이드 공장의 직원인 프란츠와 공장 청소부들이 청소하는 장면, 인형 옷을 입어보고 싶어서 인형인척 하는 부분, 파티에서 웨이터들이 움직이는 부분, 굉장히 하나하나 세심하게 캐릭터성을 부각시키는 특이한 안무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근미래 SF를 다루면서도 코펠리아가 인형에서 살아움직이고 감정을 가지기 위해서 마법의 힘을 빌렸다는 설정이다. 좀 더 SF적인 방식으로 감정을 얻었으면 스토리에 더욱 설득력이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진짜 인형에 불과한 원작 코펠리아와는 다르게 이 작품 속의 프란츠와 코펠리아는 스와닐다가 없어진 상태라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의 관계에 가까웠다. 어쨌든 굉장히 흥미로운 발레단과 안무가를 만나서 기뻤다.




6/4/21 [마르세유 내셔널 발레] 코펠리아 (1975) 롤랑 프티

롤랑 프티 찬양합니다 ㅠㅠ 백번 찬양해도 모자르다. 안무 존나 귀엽고 롤랑 프티 본인 연기도 쩔고 신기술 좋아하는 안무가답게 70년대의 모든 신기술을 끌어다 쓴 것 같은 연출도 충격적이고 신선했다. 솔직히 1막 노잼이었는데 안무 자체는 되게 귀여워서 일본애들이 왜 이 코펠리아를 선택했는지 알 수 있었고, 사람이 연기하는 인형이 아니라 진짜 사람크기 인형을 등장시킨 것도 인상깊었다. 그리고 인형 재질이 자꾸 달라져서 코펠리우스와 춤출 때의 헝겊 인형은 진짜 함께 춤을 추는 것 같은 안무가 가능해서 놀랐고, 마지막의 나무 인형은 사랑했던 것이 완전히 무너지는 걸 잘 표현했더라. 그리고 춤추면서 스와닐다의 옷이 자꾸 바뀌는 것도 신선했다. 21세기 뮤지컬 프로즌에서나 보는 건줄 알았는데 이 시기에 이미 이런 아이디어가 있었구나 싶고. 아, 그리고 설정도 그럴듯했다. 전통적인 코펠리아에서 코펠리우스는 지가 만든 인형인데 왜 스와닐다가 바꿔치기 당해도 못알아보지? 늘그니라 눈이 존나 나쁜가? 했는데 여기선 아예 코펠리우스가 개변태고 스와닐다를 짝사랑해서 스와닐다 모습을 본따 만든 인형이란 설정이라 훨씬 납득이 갔다. 70년대의 프랑스가 확실히 소방법따위는 엿먹으라고 생각한건 확실한게 찐으로 촛불 켜고는 끄지도 않고 춤을 춰대서 계속 속으로 제발! 불을 끄세요! 불 끄고 춤춰! 라고 절규해야했다... 샴페인도 탄산수일진 모르지만 진짜 거품나기도 하고 실감나서 좋았고. 어쨌든 기회가 된다면 다시 보고 싶은 훌륭한 작품이다.

6/5/21 [소련 모스크바 고전 발레] 동백꽃 여인 (1996) 나탈리아 카사트키나 & 블라지미르 바실리예프

좀 미묘한 발레였다. 그 사이에 내가 졸다가 제대로 못본(...) 노이마이어 동백꽃 여인을 새로 봤는데 그게 너무 대단하기도 했고, 이 발레단은 미묘하게 퀄리티가 좋은듯 안좋은듯 헷갈린단 말이지. 일단 무대세트는 엄청나게 화려하다. 그리고 무대세트랑 의상 이렇게 많이 바뀌는 발레는 나도 흔히 못봤어서 내내 허미 돈을 얼마나 처부은거야...얘네는 부유함을 과시하려고 이런 발레를 만들었나? 같은 생각을 하면서 봄. 근데 다들 춤을 못추는 게 아닌데도 이상하게 연기가 좀 부족하단 기분이 든단말이지. 요정의 입맞춤에서도 그랬고 표정이 없는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노이마이어의 버전을 중간에 다시보니까 그 절절한 감정선과 엄청난 연기가 조금 그리워졌다, 비록 그 세트는 이 버전에 비해 다소 허접해보일지라도 결국 무용수의 연기가 다 해먹는다는다는 걸 실감하게 했다.

6/6/21 [마린스키 발레] 봄의 제전 (2008) 밀리센트 호드슨 (바츨라프 니진스키)

저기요 제가 방금 현대 무용을 본 것 같은데요... 니진스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사람 아냐? 이게 뭐지? 같은 기분으로 봤는데 아니나다를까 당시 영상기술이 없어서 대충 남은 묘사나 그림을 다 긁어모아서 호드슨이 상상으로 복원해본 안무라고 한다. 깜짝 놀랐네. 피나 바우쉬 이후에나 나왔을 법한 현대 무용이 갑자기 펼쳐져서 충격적이었다. 안무가 좀...날것이라고 해야하나, 발란신의 돌아온 탕아를 보면서 느꼈던 기분이랑 비슷하기도 하고. 이거 보다가 내가 일이 있어서 제대로 집중을 못했더니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다시 봐야할만한 작품인지 아닌지도 헷갈린다. 나중에 기회되면 또 보는 걸로...

6/11/21 [로열 발레] 코펠리아 (2019) 니네트 드 발루아 (레프 이바노프 & 엔리코 체케티)

와 이거 먼저 보고 볼쇼이 버전 봤으면 세르게이 비하레프 엄청 욕했을 뻔했다. 내 평가가 그때 후했던 건 이것을 보기 이전이었기 때문이 확실하다. 니네트 드 발루아는 로열 발레단의 창설자로 유명한데, 19세기 말에 태어나 21세기 초에 돌아가신, 3세기를 경험한 분이다. 레프 이바노프와 엔리코 체케티의 안무가 얼마나 남아있는지는 모르나 21세기의 시선으로는 안무 감각도 상당히 참신하고 세련되었단 느낌이다. 전통적인 코펠리아 발레라면 이 버전을 감히 따라올 작품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대단했다. 물론 마리아넬라 누녜즈의 찰떡연기가 큰 역할을 했음은 틀림없다. 누녜즈가 천의 얼굴을 가진 무용수로, 그 어떤 역할도 잘 소화해낸다는 평을 받고 있긴 하지만 역시 내가 생각하기엔 스와닐다나 키트리 같은 역할이 최고다. 지젤같은 처연한 연기를 못하는 건 아니고 난 누녜즈의 지젤을 다른 지젤버전들에 비해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쪽은 일반적인 처연한 캐릭터가 아니라 누녜즈 개인의 해석이 발랄한 시골처녀에서 광기어린 여인이 되다보니 다른 무용수들의 캐해석과 좀 달라서 잘 들어맞는 것 같고. 어쨌든 이 버전은 의상도 되게 예쁜데 여기 의상 어느 국가나 시대를 기초로 고증했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정말 세련되었다. 보는 내내 연기도 무대미술도 의상도 좋아서 눈이 즐거웠다.

6/12/21 [보르도 국립 오페라 발레] 코펠리아 (2011) 샤를 주드

지금까지 봤던 코펠리아 중에서 유일한 실패작. 일단 프랑스 안무가에 프랑스 발레단이 춘 작품인데 왜 배경부터 50년대 미국이어야하는지 모르겠고, 프랑스인이 가진 50년대 미국에 대한 환상이라는게 묘하게 세계대전 전시 광고로나 보던 섹시한 옛날 핀업걸 스타일이라는게 기분나빴다. 안무가 참신한 것도 아니고 스토리텔링이 새로운 것도 아니고 주요 캐릭터 이름을 미국식으로 바꾼답시고 스와닐다를 스와니, 프란츠를 프란지로 바꿨는데 그 어떤 미국인도 이걸 미국인 이름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 같다. 배경 빼곤 스토리도 뭐하나 바꾸지 않아서 증맬 노잼 그 자체였고 코펠리아 죄다 성공했는데 하필이면 마지막으로 본게 이거라서 기분이 안좋았다. 나중에 볼 매기 마린 버전의 코펠리아가 괜찮았으면 좋겠다. + 매기 마린 버전 봤는데 좋았다!! 이건 7월 리뷰로 올린다 ㅠㅠ


6/13/21 [탄츠티아터 부페탈 피나 바우쉬] 봄의 제전 (1978) 피나 바우쉬

영화 「피나」의 비교적 첫부분에 나왔어서 충격적으로 기억하고 있던 작품이다. 사실 에크만의 백조를 보았을 때는 피나 바우쉬와의 연관성을 제대로 찾지 못했는데, 한여름 밤의 꿈을 보는 순간 직관적으로 이건 피나 바우쉬다! 하고 외치게 만든게 이 작품과의 연관성이었다. 무대에 진짜 흙을 깔아 만든 바닥, 축제, 제물, 대립, 두려움과 광기, 사실 몇몇은 대부분의 봄의 제전에서 보이는 특징이라고 해도, 에크만의 안무에서는 피나 바우쉬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어쨌든 영화 피나에서보다 화질이 나쁘고 카메라 각도가 나쁜게 상당히 아쉬웠다.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의 시각에서 보는 무용이라는 게 어떤 건지 새삼 생각해볼만했다. 세네갈의 해변에서 봄의 제전을 춘 댄싱 앳 더스크가 어떤 식으로 찍혔을지 너무 궁금했는데 놓쳐버린게 너무 아깝다.

6/18/21 [라 스칼라 발레] 박쥐 (2003) 롤랑 프티

알렉산드라 페리 못알아볼뻔했다. 머리 색깔만 조금 바꿨는데 이렇게 못알아볼 일인가... 어쨌든 박쥐는 오페레타로 유명한 작품이지만 이걸 발레로 만들어 놓으니 신선했다. 일단 내가 오페레타를 보지 않아서 정확한 비교는 못하겠지만 줄거리만 봐서는 오페레타 쪽이 등장인물도 많고 내용이 복잡한데, 나는 발레 줄거리 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오페레타에서 박쥐라는 건 그저 하나의 상징에 불과한데, 발레에서는 남편놈이 진짜 박쥐날개 달고 바람피우러 갔다가 (변장한 자기 아내에게 반해서 추파를 날리지만) 날개를 잘리는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여성관객에게는 얼마나 속시원한 일인가! 롤랑 프티는 무대에서뿐만 아니라 스토리 각색에 있어서도 굉장히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사람임이 분명하다. 쉰 다섯에 동갑내기 아내인 지지 장메르를 위해 만들었다는 이 발레는 어쩌면 그들 나름대로의 권태기 탈출방법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지지 장메르의 무용수로서의 매력을 잘 모르겠는 것과는 별개로 그녀는 평생 롤랑 프티의 뮤즈가 되었으니까. 막심스에서의 벨라는 의상도 안무도 강렬해서 지지 장메르와도 잘 어울렸을 거란 생각이 들긴 하지만 (나는 지지 장메르의 외적인 매력에는 끌린다) 나는 페리쪽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마시모 무루도 괜히 라 스칼라가 라 스칼라는 아니구나 하는 감상을 안겨줄만큼 좋은 연기와 춤을 선보여서 기뻤다.

6/20/21 [라 스칼라 발레] 파리의 노트르담 (2013) 롤랑 프티

롤랑 프티는 이 작품으로 내 안의 최애 안무가 탑3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 생각해보니 부동의 나머지 하나는 미하일 포킨인데 세번째를 꼽으라면 조금 미묘하긴 하네. 좋아하는 안무가는 많은데 그들의 작품들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땐 내 마음에 든 비율이 전부 50% 이하라서...미하일 포킨이랑 롤랑 프티는 확실히 50%보다 높단 생각이 들어서 망설임없이 최애 안무가들로 꼽을 수 있는거고. 어쨌든 이 작품은 정말 이를 갈고 만들었다고 확신할 수 있다. 코스츔은 입생로랑이 했다길래 조금 웃어버렸다. 응, 색감이...ㅋㅋㅋㅋ 어쨌든 대단한 작품이었다. 카메라에도 돈을 쏟아부은게 느껴졌고 롤랑 프티가 정말이지 미친 안무가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이 엄청나고 압도적인 군무와 연출이 스토리텔링이 약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조차도 장점으로 만들어버렸다. 초연에서 본인이 콰지모도 역할을 했다는데 잘어울렸을 것 같아서 솔직히 오리지널 캐스팅으로도 보고싶단 생각이 들었다. 오시포바와 볼레 버전이 나쁘다는 건 아니고 좋았지만....좋았지만 볼레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나는 사실 로베르토 볼레에게 좀 양가감정을 느끼고 있는데, 나는 볼레의 마스크와 피지컬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문제는 볼레라는 무용수를 보면서 와 쩐다! 엄청난 무용수다! 라는 감상을 받은 적이 거의 없어서 ㅠㅠ... 물론 역할 자체가 에스메랄다에 비해 적긴 했지만 코펠리아에서의 롤랑 프티를 생각하자 롤랑 프티라면 좀 더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라는 기대감을 버릴 수가 없다. 어쨌든 오시포바는 에스메랄다에 잘어울렸고, 이쪽은 원작의 내용을 따라가는데도 많은 부분을 과감히 생략해서 발레로서의 매력을 극대화시켰다.

6/25/21 [크렘린 발레] 에스메랄다 (2017) 안드레이 페트로프

이걸 먼저 봤어야 했는데 롤랑 프티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바람에...ㅠㅠ 아무래도 바로 전에 본게 롤랑 프티의 파리의 노트르담이다보니 평가가 박할 수밖에 없다. 사실 플롯 구성이나 춤이 나쁘진 않았는데, 이게 본 시기상 기분이 정말 딱 나쁘지 않네 수준이었어서. 볼쇼이의 마리우스 프티파 버전을 아직 안봐서 이게 뭐 얼만큼 괜찮은 작품인지 감이 좀 안온다. 프티파가 분명히 좋은 안무가이긴 한데 내 입맛에서는 너무 고루할 때도 있고 괜찮을 때도 있고 왔다갔다 해서... 이야기의 전개나 연기나 전부 무난무난하단 느낌이었는데 그만큼 집중도 잘 안되고 기억에 크게 남지 않았다. 나중에 프티파 버전 보고 다시 비교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지만... 내가 과연 다시 볼까? ㅠㅠ + 이 리뷰를 쓰기 시작할 당시에는 프티파 버전을 안봤는데 보고 난 입장에서는 아마 다시 안볼거 같다. 프티파 버전이 훨씬 마음에 들었거든! 이 버전의 장점은 충실한 원작의 재현이겠지만 프티파는 아예 원작을 싹 갈아엎어서 인물들의 비중도 바꿔버리고 결말까지 현대적으로 만들어버려서 훨씬 좋았다.

6/26/21 [뤽 플라몽동/리카르도 코치안테] 파리의 노트르담 뮤지컬 (1998) 뤽 플라몽동

이 뮤지컬이 그렇게 명작이라는 소문을 많이 들어서 발레만 보던 모임에서 최초로 뮤지컬을 함께 봤다. 분명히 명작이었고 가사도 시적으로 잘 썼고 음악도 좋고 구성도 좋고 다 좋았는데... 현대무용을 많이 도입한 무대인만큼 무용 쪽도 카메라로 제대로 비춰주길 바랐지만 카메라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고 ㅠㅠ 편집점도 좀 이상하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전반적으로 스토리 전개를 위한 무대나 가수들을 비추는 부분에서는 촬영 연출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는데 이쪽은 내 개인의 불만에 가까우니 패스하도록 하고, 내년에 이 뮤지컬은 링컨 센터에도 공연하러 온다니 그때 전체 무대를 감상하러 가야겠단 생각을 했다. 발레 프티파 버전이 내용을 뜯어고쳐서 콰지모도와 클로드 프롤로의 비중을 싹 줄여버리고 최대한 악인이 없는 선한 이들의 이야기로 해피엔딩을 만들어버렸다면, 이쪽은 확실히 악인들과 괴로운 상황을 극대화시켜서 극적인 재미를 늘렸다. 단지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관객의 입장에서는 원작의 남성 인물들 모두가 짜증났던만큼 뮤지컬에서도 비슷한 감상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원작의 내용 자체가 얼굴 반반한 페뷔스 좋아해봐야 그새끼 개자식이니 못생긴 콰지모도같은 남자의 내면을 보란 얘기 아닌가? 너무 교조적이라 코웃음이 나올 정도다. 개인적으로 원작에서 에스메랄다의 불행이 가장 극대화된 시점은 귀딜 수녀의 자식임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그럭저럭 다행인거 같지만, 대부분의 공연매체에서는 이 부분을 삭제해버리고 에스메랄다를 아예 집시인 설정으로 바꿔버리더라. 그래봐야 에스메랄다가 죽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대체 왜 고전은 온통 여성 불행서사밖에 없는지 모임 사람들과 불만을 토로했다. 아니 근데 2차창작은 대체 왜 19세기 사람인 쥘 페로가 제일 진보적인거야?


7/2/21 [로열 발레] 지젤 (2016) 마리우스 프티파 (장 코랄리)

고백하건대, 나는 지젤을 안좋아한다. 비슷한 시기의 작품인 코펠리아에 대해 내가 무한한 애정을 가진 것과는 달리, 지젤은...뭐랄까...볼 때마다 졸립다. 코펠리아는 프란츠가 개새끼라도 코펠리우스를 놀려먹는 스와닐다의 활약이 돋보여서 생동감이 느껴지는데 지젤은 너무 수동적인 인간상이라는 편견이 있어서일까, 여러 지젤을 보긴 했는데 제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눈뜨고 본 게 이거 하나인거 같다. 마리아넬라 누녜즈는 역시 코펠리아의 스와닐다라거나 돈키호테의 키트리 같은 역에 더 잘 어울린다곤 생각하지만, 내가 재미없어하는 지젤로 오니까 처연함이 사라지고 발랄한 시골처녀와 애인에게 배신당해 미쳐버린 강렬한 여자 역할을 주어서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지젤의 우울한 이미지가 좀 상쇄된 느낌이었다. 어쨌든 끝까지 봤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고... 대체 왜 지젤은 그냥 알프레히트가 윌리들 손에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는거지? 자기 손으로 죽여버리면 더 좋을텐데. 21세기인데 처절한 복수를 하는 지젤도 나올때가 되었다고 본다. 


7/4/21 [아이프만 발레] 레드 지젤 (1997) 보리스 아이프만

상당히 다양한 버전을 가진 코펠리아와 달리 지젤은 의외로 변주를 찾기가 쉽지 않더라. 아크람 칸의 지젤이 그나마 찾아낸 획기적인 지젤이었고, 그것을 능가할만한 작품은 찾기가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보리스 아이프만의 레드 지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관람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당히 괜찮았다. 아크람 칸의 지젤이 영국 이민자들의 삶으로 배경을 바꾸고 모래빛의 강렬한 무채색 지젤을 보여주었다면, 이쪽은 올가 스페시브체바의 삶을 빗대어 소련 치하와 파리에서의 비극적 무대를 무시무시한 붉은 색 지젤로 만들어냈다. 전체적으로는 아주 우수하게 만들었지만 음악의 사용방식이 1차원적이고 조금씩 끊기는 부분이 있었다. 소련 배경에서는 차이코프스키, 프랑스 배경에서는 비제. 공산당 간부로 의인화된 소련의 억압의 표현방식도 강렬했고, 프랑스로 도망친 이후의 자유로운 삶과 안무가와 사랑에 빠진 뒤 배신당하는 과정까지 지젤의 주제와 걸맞게 잘 녹여냈다. 실제의 올가 스페시브체바의 삶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오히려 철저한 인물발레가 아닌 이런 오마주 방식이 훨씬 잘 먹혀든 우수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7/9/21 [말랑당 발레 비아리츠] 마리 앙투아네트 (2019) 티에리 말랑당

티에리 말랑당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는데 실제로 작품을 본 건 처음이었다. 솔직히 내용만 봐서는 상당히 실망스러웠지만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찰리 채플린이나 프리다 칼로의 생을 그린 인물발레들을 보면 죄다 별로라고 느꼈으니까. 인물발레 중에 괜찮다고 느낀 건 허난설헌 하나였는데, 이쪽은 허난설헌의 생을 묘사하려고 하기보다 이미지를 그려내는 현대무용으로 만들어내서 좋았던 거였고. 베르사유의 장미를 보고 자란 세대로서는 리브레토가 매우 불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비주얼만큼은 압도적이었는데, 사실 엄청 화려하거나 크게 돈을 들인 무대미술이나 코스츔은 아니었음에도 보그 스타일의 패션잡지 같은 발레였다.


7/10/21 [말랑당 발레 비아리츠] 로미오와 줄리엣 (2012) 티에리 말랑당

...라고 생각했는데... 이쪽은 무대미술이 훨씬 간략화되고 금속 트렁크만을 사용한 무채색이라 보그같은 패션화보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전에는 접해보지 못한 아주 특이한 스타일의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프로코피예프가 아니라 베를리오즈의 음악을 사용해서 음악으로 장면을 유추하긴 어려웠지만 말랑당 발레는 시놉시스를 워낙 상세하게 올려놔서 따라가기 어렵진 않았고, 무엇보다 다수의 로미오와 다수의 줄리엣을 시간차를 두고 펼쳐놔서 가히 장관이었다. 이런 방식의 안무는 상상도 못해보았기 때문에 충격적이었고... 순식간에 말랑당이라는 안무가에게 함락당했다. 아주 세련되고 모던한 스타일의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다시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작품.


7/17/21 [뉴 어드벤쳐스] 로미오와 줄리엣 (2019) 매튜 본

솔직히 난 매튜 본을 안무가로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매튜 본은 이 작품 하나로 내 호감도를 치솟게 만들었다. (비록 레드 슈즈로 바로 깎아먹었지만..) 이 작품으로 확신하건대 매튜 본은 발레가 아닌 현대 무용을 해야한다. 본인은 정체성을 현대 무용 안무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솔직히 이제까지의 행보를 보면 쓸데없이 발레의 고전적인 동작들을 계속해서 쓰려고 노력하고 있거든. 근데 문제는 매튜 본 사단은 발레에 특화된 사람들이 절대 아니란거다. 이들이 백날 발레동작을 해봐야 마린스키 발레라거나 로열 발레라거나 파리오페라 발레같이 고전적인 발레를 오래 정식으로 트레이닝하고 매번 그 작품들로 무대에 오르는 무용수들과 비교할 수 없다. 이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의 장점이 극대화된, 정말 우수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10대의 풋풋하고 아련한 사랑을 정신병동 내의 억압된 환경에서 그려낸 아이디어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에서 정통적인 씬을 하나씩 따오되 10대 무용수들을 적극 기용해서 엄청나게 미친 수준의 활동량을 요구하는 현대무용을 선보인다. 내가 늘 불만이었던 '발레가 아니라 뮤지컬처럼 뚝딱이는 수준의 안무'가 아니라 아주 파워풀하고 역동적인 진짜 매튜 본만의 근사한 안무다. 특히 발코니 씬은 내가 본 모든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틀어서 손꼽히게 좋았다. 스토리텔링도 그의 작품 중 역대급으로 각색이 잘되었다. 로렌스 수사와 유모 역할을 합쳐서 새로운 캐릭터로 만든 점도 좋았고, 억압하는 사회상을 티볼트로 대체한 점도 좋았다. 음악도 잘라서 순서를 재배치했지만 모든 음악에 제대로 된 씬이 매치되어 있다. 그리고 결말마저도 정신병동이 배경인만큼 훨씬 비극적이다. 실제 무대로도 보고 싶다고 생각한 대단한 작품이다.


7/23/21 [뉴 어드벤쳐스] 빨간 구두 (2020) 매튜 본

그리고 매튜 본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한껏 기대로 부푼 내 마음을 처참하게 박살냄 ㅋ 아니 시발 2019년 작품이 이렇게 대단했는데 2020년 작품이 개병신같다는게 말이 됨? 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일단 원작으로 선택한 빨간 구두라는 1948년 영화 줄거리부터 21세기 갬성으로 보기에는 너무 낡았고 뒤떨어졌고 여혐가득함. 그래 거기까진 그럴수 있다치자. 원본 병신같아도 능력치에 따라 잘 만들수 있지. 말괄량이 길들이기 같은 거 내용 개병신이라도 최소한 존 크랑코는 존나 웃기게 만들지 않았음? 근데 매튜 본은 여기서 최악의 선택을 함ㅋㅋㅋ 앞서 말했듯이 매튜 본의 최대 강점은 현대 무용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동선인데 또!! 또!!! 쓸데없이 클래식 발레를 자꾸 욱여넣고 자기의 강점인 스토리 비틀기는 또 안함 ㅠㅠ 자기 컴퍼니가 어떤 특성을 갖고있는지 이해를 못하나? 클래식 발레 못잃는 건 알겠는데 당신 컴퍼니가 하면 웃기다고... 디렉팅 방향이 존나 클래식 발레를 뮤지컬 춤동작처럼 만들어버리는데 왜 클래식 발레동작을 못잃어? 평생 클래식 발레 해온 롤랑 프티나 미하일 포킨이 얼마나 혁신적인 동작과 동선을 만들었는가를 생각해보란 말이다 ㅠㅠ 이건 뭐 존나 복불복도 아니고... 매튜 본 작품이 앞으로 나오면 또 보기야 하겠지만 이 작품은 분노만 남음. ​


7/24/21 [볼쇼이 발레] 에스메랄다 (2011) 유리 벌라카 & 바실리 메드베데프 (마리우스 프티파)

쥘 페로는 깨인 사람이다. 19세기 사람인데 존나 깨인 사람이 맞다. 리브레토를 마구 수정해서 콰지모도 분량을 팍팍 줄여버리고 그랭구아르를 사랑을 이어주는 큐피드로 만들어버리고 페뷔스를 개과천선한 미남으로 만들어서 에스메랄다랑 이어준다. 어우씨 존나 속시원하네. 어릴때부터 난 못생긴 콰지모도만이 진짜 에스메랄다를 사랑한거고 페뷔스같은 미남은 얼굴값 하는 놈이다 하는 요지의 원작소설이 존나 마음에 안들었단 말이다. 작가 이새끼 여자한테 얼굴 따지지 말라고 훈계하는 미친놈아냐? 싶었는데 페로가 그래 남주는 역시 미남이어야지! 하고 씌원하게 스토리라인을 갈아엎었더라. 물론 이 원작기반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발레는 롤랑 프티의 발레지만... 드라마투르그만큼은 이 작품을 따라올 수 없다. 찬양하라 페로!! ㅠㅠ ​


7/25/21 [리옹 오페라 발레] 코펠리아 (1994) 매기 마린

프랑스인이니 마랑이라고 읽겠지? 하면서 매기 마랑이라고 썼다가 인터뷰 보는데 자기의 정체성은 스페인인이고 어쩌구 마랑이 아니라 마린이라고 읽는게 맞다고 하길래 얼른 고침. 양키들은 이래서 문제다 똑같은 알파벳 쓰면서 발음은 국가마다 죄 다르단 말이야... 각설하고 처음엔 대체 이게 뭐야?? 싶은 배경에 본적 없는 안무라 황당했지만 볼수록 좋은 의미로 충격을 준 작품이었음. 90년대의 프랑스 아파트 단지는 한국 90년대 신도시 아파트 단지랑 똑같이 생겨서 좀 웃기긴 했는데... 아무튼 존나 평범한 아파트 단지에서 무용수들이 평상복에 운동화 신고 발레를 춘다는 건 처음엔 되게 이상한 발상으로 보였음. 이 의문은 후에 매기 마린의 인터뷰를 읽고서야 이해가 갔는데, 매기 마린은 코펠리아의 줄거리에서 스와닐다를 '현실의 여자'로, 인형을 '남자들이 좇는 꿈 속의 환상의 여자'로 해석했음. 사실 당연한 해석인데 왜 이렇게 나는 생각을 못했을까 내심 충격받았다... 난 그냥 인형에 반하는 병신같은 남자도 다 있군 했는데 (...) 어쨌든 초반부엔 할배 미쳤나 20세기에 발코니에 왜 거대 인형을 전시해요 도난당하려고? 금발에 빨간 옷 여자를 좋아한다는 변태취향공개? 했는데 코펠리아 인형이 들고있던 책도 해부학 책이라 좀 뿜었음ㅋㅋㅋ 그리고 94년이면 평범하게 비디오카메라가 있던 시절인데 왜 개인집에 영사기가 있는건데... 매기 마린의 설명에 따르면 코펠리아 원작은 꿈의 여인, 이상적인 여자에 대한 이야기인데 오늘날의 여자들은 '지나치게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게 될 것을 요구받는다고 함. 그래서 프란츠는 이상적인 여자(인형, 광고에 나올법한 금발인형들)와 굉장히 실제적인 여자인 스와닐다 사이에서 방황하는 얘기임. 94년작인데 21세기에도 뭐 크게 달라진게 있나 싶고 좀 씁쓸하다. 모니터 속의 예쁜 여자와 대작하면서 여자들은 스크린 속에서 현실로 기어나오고 여자들은 술마시는 척 하면서 화분에 버리는거 보고 소름돋음. 특히 여성의 상징인 화장, 달라붙는 빨간 원피스, 하이힐, 금발의 손질된 머리를 12명의 남자들에게도 씌워서(나머지 12명은 여성) 외적으로 보여지는 모습만을 판단하는 현대인을 비판하는 점이 만족스러웠음. 남자들의 욕정에 가득찬 꿈...미녀에 둘러싸여서 즐겨보고 싶단 느낌이라 끔찍한 것도 있었고. 매기 마린은 본인이 어떠한 코펠리아를 만들고 싶은가에 대해서 명확한 비전이 있었는데도 만드는 과정에서 매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는데, 이게...무용수들은 이런 스크린을 통한 연기를 어색해하고 일반 배우들은 자기 육체를 잘 몰라서 육체를 마음대로 다루질 못하니까 어려워했다고 함. 결국 무용수를 쓸수밖에 없긴 했는데 리옹 오페라 발레단 무용수들이 같이 일하면서 길에서 신발신고 춤춰야하는 걸 엄청 싫어했고 벗는 부분도 싫어했고.. 가장 큰 문제점은 "그냥 평범하게 걸으라"고 주문해도 모두가 "무용수처럼 걸어서" 매기 마린이 고생했다고 함ㅋㅋ 사실 이게 엄청 재밌는 작품이었다기보단 굉장히 사회적인 의미를 담은 작품이었고, 그런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싶음. 매튜 본의 레드 슈즈를 보고 난 직후라서 그런가 더 와닿은 것도 있었다. 레드 슈즈는 무대장치도 의상도 안무도 "예쁘기는" 했지만 게이는 그냥 기득권 남자구나 하는 감상을 남겼는데 이건 20세기에 정말 혁신적이고 의미있는 작품으로 남아서 인상깊었고 시야가 트인 느낌을 받았음. ​


7/31/21 [노던 발레] 드라큘라 (2020) 데이빗 닉슨

고전 문학을 발레로 만드는 것의 난점은 스토리를 모르면 뭔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를 확률이 존나게 높다는 거다. 신데렐라 잠자는 미녀 로미오와 줄리엣 코펠리아 지젤 등등 발레의 테마가 요기서 왔다갔다 하는 이유가 있다.. 스토리가 존나 단순 그 자체거든. 엄청 직관적이고 꼬아진 내용도 없고 모든 사람들이 죄다 아는 스토리라 따로 설명이 필요없다는게 엄청난 장점인데. 근데 브램 스토커의 원작소설을 읽어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이건 스토리가 비교적 복잡하고 등장인물도 졸라 많음. 이게 뭔뜻이냐면 그냥 대충 드라큘라? 피빠는 괴물 같은거잖아 << 라고 생각하고 보려면 약간 무리가 있다는 거임. 그리고 우리 모임에서는 브램 스토커의 원작을 읽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쉬펄ㅋㅋㅋ 결국 줄거리만 대충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보고 대충 어 얘가 얜거 같죠? 쟤는...저건가? 하고 끼워맞추다가 봤음. 노던 발레는 고전문학을 발레로 만들기로 유명한 발레단이라 꽤 눈여겨봐뒀던 곳인데 뭐 스토리를 딱히 비틀거나 하진 않고 원작에 충실한 편인거 같지만 연출도 조명도 안무도 다 나쁘지 않았음. 딴얘긴데 영국은 작위를 존나 뿌리고 다니나? 안무가들 보면 툭하면 뒤에 작위명 붙어있더라. 각설하고, 원래 드라큘라에서 빛의 편은 미나, 조나단, 존, 아서, 퀸시, 반 헬싱(은 성이지만 이쪽이 유명하니 이렇게 쓰자)이고 어둠의 편은 루시, 렌필드, 드라큘라, 드라큘라의 세 신부...인데. 퀸시는 미국인따위는 삭제해도 된다고 생각한듯한 영국인들에 의해(아님) 이 발레에서 없어져버림. 초반부의 늙은 드라큘라는 못생긴 머머리 끼순이 같아서 좀...부담스러웠다. 물론 소설에서 조나단 하커한테 자꾸 추파를 던졌다고는 했지만...드라큘라가 진정으로 사랑한 건 조나단이란 해석도 있는거 같고;; 아니 그리고 원작을 안읽어서 모르겠는데 드라큘라의 신부들은 왜 지 남편 두고 조나단이랑 즐기는건가요... 드라큘라 나이처먹어서 고추 안서나? ㅠㅠ 물론 드라큘라는 조나단 피 마시고 급 회춘함. 그리고 여기 관이 아무리봐도 뒤주처럼 생겼더라. 한쿡인이라 사람넣으려면 다 뒤주인줄...그리고 렌필드는 왜이렇게 애동st인지 모르겠는뎈ㅋㅋㅋㅋ 뭐 주인님 주인님 하고 다닌다지만 처음 나왔을때 존나 모두의 애동인줄 알고 다들 혼란스러워함. 그리고 소설에 따르면 드라큘라가 루시를 데려다가 열번인가 흡혈한다는데 도시락도 아니고 왤케 나눠먹지 생각했지만.. 발레 묘사를 보아하니 그냥 루시가 세명에게나 구혼받을 정도의 매력적인 여자라 흡혈을 핑계로 붙어먹고 싶었던거 같았음. 그리고 드라큘라 백작 섹스 존잘인거 같던데 루시든 미나든 지네 약혼자에겐 별로 관심도 없어보이고 드라큘라랑 있을때만 섹텐 터지던데 매우 끈적한 느낌이고 좋았음. 미나는 아예 신혼 즐기는 분위기던뎈ㅋㅋㅋㅋㅋ도시락인줄 알았지만 섹스가 목적인거 같은 연출이었음. 솔직히 드라큘라 백작이 실제로 존나 초미남이었고 여자들이 죄다 드라큘라 헠헠 한번만 나랑 자요 하고 달라붙어서 질투하는 남자들이 쓴 내용이 드라큘라가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마저 들었음. 물론 매체에서 흡혈이 대체로 에로틱하게 표현되긴 하지만.. 그...쎾쓰!!!! 이런 느낌도 아니고 가끔 둘이 막 사랑하는 느낌... 우리는 사랑이야 (경건) 이런 분위기 나올때마다 어리둥절함 ㅋㅋ 아 그리고 세트가 별것도 없는데 조명이랑 음악이랑 분위기로 꽤 음침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잘 살린 느낌. 어쨌든 잘만들어서 다시 한번 보고싶었다 ㅋㅋ

  • tory_1 2021.07.31 00:56

    와 토리 멋져 감상 천천히 보고 싶어서 스크랩했어! 뭘로 본 거야? 디비디?

  • W 2021.07.31 01:49

    디비디/블루레이로 본 것도 있고 결제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본 것도 있고 유투브로 본 것도 있어! ㅋㅋㅋ 편향된 감상이긴 하지만 봐줘서 고마워...

  • tory_2 2021.07.31 01:05
    토리 감상 너무 재밌게 잘 읽었어! 롤랑 프티랑 노이마이어 부분에서 개공감함ㅋㅋㅋㅋㅋㅋㅋㅋ
  • W 2021.07.31 01:50

    롤랑 프티 너무 좋아 헠헠 ㅠㅠㅠ 롤랑 프티 찬양합니다 ㅠㅠㅠ 노이마이어 롬앤쥴에서 사실 너무 실망했었는데 동백꽃 여인보고 나한테 점수 회복함ㅋㅋㅋㅋ

  • tory_2 2021.07.31 15:37
    @W 나도 노이마이어 그냥 그랬는데 함부르크에서 페리가 춘 듀세 보고 울었쟈나ㅠㅠㅠ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페리빨인가…? 그다음에 본 갈매기는 구렸거든ㅋㅋㅋㅋㅋ
  • W 2021.07.31 22:32
    @2 듀세는 뭐지?? 처음들어보는데 궁금하다!! 갈매기도 처음들어보는거야 ㅋㅋㅋ
  • tory_4 2021.07.31 08:47
    발레를 함께 보는 모임이 있구나 넘 좋다❤️
  • W 2021.07.31 09:17
    응 온라인으로 보는 모임인데 그전엔 그냥 발레 얘기나 좀 나누는 곳이다가 코로나 터지고 작년부터 소소하게 영상 보기 시작해서 올해까지 꽤 많이봤어 ㅋㅋㅋ
  • tory_5 2021.07.31 16:04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2/03/10 09:39:28)
  • W 2021.07.31 22:36
    연극적인걸 좋아하는 토리구나! 로미오와 줄리엣 발레는...내가 본것만 20여개 정도 있어 ㅋㅋ 내가 좋아하는 건 레오니드 라브로프스키(가장 정통적인 롬앤쥴),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아주 진취적인 줄리엣이 나오는 현대적 안무로 국립발레단이 이 안무가 껄 가지고 있어!), 티에리 말랑당(로미오와 줄리엣이 여러명 등장해서 다양한 군무를 선보임), 매튜 본(정신병원을 배경으로 10대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비극적 사랑을 하는 현대무용) 버전 이렇게 네개가 좋더라 ㅇ0ㅇ
  • tory_5 2021.07.31 23:41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2/03/10 09:39:28)
  • W 2021.08.01 00:44
    @5 응 맞아! 유니버설 발레단이 케네스 맥밀란의 안무를 가지고 있고 (로열 발레단이랑 같은 버전이야 ㅋㅋ) 국립 발레단이 마이요의 버전을 가지고 있는데 유니버설을 먼저 보고 국립발레단을 보면 고전적>현대적 안무를 비교하면서 즐길 수 있을거야 ㅇ0ㅇㅋㅋㅋ 5톨도 재밌게 보면 좋겠다
  • tory_6 2021.07.31 19:53
    토리 내공이 엄청 깊다 취발해서 공연에 관심이 있는데 안무가별 작품을 잘 알지는 못하는데 작년에 마린스키랑 볼쇼이랑 NYCB가 공연 영상을 많이 풀어줘서 프티파랑 발란신은 많이 봤어 Marquee도 구독했어 토리 리뷰를 길잡이 삼아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부터 봐야겠다ㅋㅋㅋ
  • W 2021.07.31 22:51
    맞아 ㅋㅋㅋ 나도 발레영상 보게된 계기가 그전엔 발레잡담방이었는데 작년에 갑자기 온갖 발레단들이 되게 많이 영상을 풀기 시작해서...ㅋㅋㅋ 주섬주섬 보다보니까 올해는 벌써 50개 넘게 봤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2017년 버전이 마르퀴 티비에 있었던거 같은데 2010년의 폴루닌도 기회되면 봐줘 ㅠ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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