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정원
미실로 유명한 소설가 김별아가 단종비 정순왕후 송씨의 시점에서 쓴 소설이 영영이별 영이별이야.

최근에 영영이별 영이별을 봤는데 14살에 단종과 결혼해 17살에 사별하고 홀로 65년을 치열하게 살다 82세에 숨진 정순왕후 송씨 시점에서 담담히 써내려간 문체가 인상 깊었어. 정순왕후가 정업원에서 숨진 뒤 49일 동안 지상에 머무르며 지나간 인생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조선 초기 역사 전반을 훑어 내려가서 역사 공부하는 느낌도 들고 좋더라. 정순왕후가 중종 때 숨져서 중종비 단경왕후 신씨에 대해서도 얘기하면서 폐서인이 됐어도 사랑하는 님과 같은 하늘 아래에 있지 않냐면서 자기 처지랑 비교하는 부분 보니 씁쓸하기도 했고.

시간 거슬러 올라가며 회상하는 방식이라 후반부에는 단종과의 짧은 결혼생활도 나오더라. 세조에 의해 문종 국상 기간 중에 단종이랑 정략결혼했지만 이내 세조가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는 바람에 대비가 됐고, 단종을 옹립하려는 세력들마저 하나씩 쳐부수는 바람에 단종과 함께 숨 죽여 살며 고통받던 시절 얘기를 하던데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가 없었음. ㅠㅠ 안평대군, 금성대군 등 시숙부들부터 죽고 단종의 생모 현덕왕후가 단종을 낳고 얼마 뒤에 숨지는 바람에 대신 단종을 기른 서조모(세종의 후궁)인 혜빈 양씨마저 죽었지. 세조와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딸을 왕비로 바쳐야 했던 송현수(정순왕후의 친정아버지)도 결국 처형당함. 정순왕후의 동생들은 신숙주의 노예가 됐고. 사육신이 실패한 뒤에는 단종마저 노산군으로 강등당하고 영월로 유배 갔다가 반 년이 못 돼서 살해당했지.

정순왕후는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울었지만 자기처럼 울어주는 평민 아낙네들을 보며 끝내 자진하지 않고 고단한 삶을 영위했대. 삶 자체가 살아가는 이유라고 하던데 그 부분이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는 적지 않은 위로가 될 듯했어. 어쨌든 덕분에 세조가 재위 11년만에 부스럼으로 고생하다 죽고 예종도 즉위한 지 14개월만에 요절하자 조카인 성종이 뒤를 잇고 그 뒤를 연산군, 중종이 잇는 것까지 봤으며 중종이 단종의 제사를 지내주는 것까지 봤으니 그것만으로도 정순왕후의 한은 어느 정도 풀린 것 같더라.

그런데 한편으로는 사육신이 성공해서 단종이 다시 복위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초반부에 단경왕후가 연산군부인의 친정조카고 연산군의 처남의 딸이란 이유로 아버지가 처형당하고 7일만에 폐위당했다는 부분이 나와서 더 그래. 단종과 정순왕후의 혼인 자체가 세조가 궁극적으로는 조카의 왕위를 찬탈할 목적으로 문종의 국상 기간을 서둘러 종료하려고 추진된 거였거든. 송현수는 세조랑 친분이 있긴 했지만 말단 관료에 불과해서 정순왕후는 반가에 시집 가기도 어려운 처지였다고 함. 그래서 단종 옹립하는 쪽에서는 일단 문종 국상 기간 중이라는 점을 들면서 혼인을 만류했고 대신 금성대군의 처가 쪽이나 혜빈 양씨의 친척 쪽에서 왕빗감을 찾으려 했다고 하네. 결국 세조가 우세해서 일사천리로 국혼이 진행됐다고 함.

저런 상황이니 만약 사육신이 성공해서 세조가 쫓겨나고 단종이 복위했으면 정순왕후도 단경왕후처럼 되지 않았을까 싶어. 단종이 상왕이 된 뒤에도 송현수가 딸이 과부 되는 거 막으려고 세조와 단종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했다고 하거든. 만약 단종이 복위에 성공했다면 공신이 됐을 사육신 눈에는 송현수가 역적으로 보였겠지. 영영이별 영이별 소설에서는 단종과 정순왕후가 세상 애틋한 부부로 그려지고 단종도 정순왕후에게 다정다감한 남편으로 그려지지만 역사는 모르는 일이잖아. 중종과 단경왕후도 강제로 이혼한 뒤에도 서로를 그리워했다고 알려진 야사와는 달리 중종은 장경왕후가 원자(인종) 낳고 죽으니까 단경왕후 복위시키라는 여론 싹 무시하고 새 장가 가겠다고 우겨 문정왕후를 들였고. 영영이별 영이별에서도 야사보다는 저런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룬 게 심상치가 않아. 단종이 복위했다면 사육신이 정순왕후 내치라고 단종한테 압박 줬을테고 단종도 거기에 못 이겼을걸. 중종반정 후 중종이 그랬듯이 새 왕비 들이고 공신들의 딸들을 후궁으로 들였겠지.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저랬다면 세조의 직계가 아닌 문종의 직계로 조선 왕통이 이어졌겠지. 실제로 단종 복위가 영조대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던 게 조선 왕들이 헌종까지 세조의 직계라 그런 거였다고 하잖아. 단종도 요절했고 경혜공주가 낳은 아들, 즉 문종의 외손자로 정순왕후의 양자로 입적됐던 정미수마저 후사 없이 죽어 문종의 후손은 그대로 절멸했다던데 참 안타깝더라. 세조의 남자 후손들(의경세자, 예종, 성종 등)도 제명에 못 갔다지만 그래도 후사는 이어졌잖아. 하지만 역사에 만약이 있다 해도 정순왕후는 변함없이 불행한 역사의 피해자였을 것 같아서 마음이 안 좋다. ㅠㅠ 단종이 조강지처 못 버리겠다고 해서 정순왕후가 왕비 자리 지켰다 해도 단종은 후사 보존한다는 이유로 필연적으로 후궁들 들였을 테고 후궁이 낳은 아들이 단종의 뒤를 이었을 가능성이 커 보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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