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정원

* PC버전으로 봐야 잘 읽혀! 모바일은 폰트도 다 똑같이 나오고 줄띄움도 안 맞아서 읽기 힘들 거야.



2019년 1~6월 : https://www.dmitory.com/garden/87748114

2019년 7~12월 : https://www.dmitory.com/garden/104935238

2020년 1~6월 : https://www.dmitory.com/garden/133906661



겨우 2020년 가기 전에 맞췄네!

별점이나 리뷰는 순전히 내가 읽었을 때 얼마나 재미있었는지로 따진 평가라서 다른 사람들 의견과는 다를 수 있어.



☆☆ = 추천 안함. 아주 재미 없거나 기분 나빴던 책.

★★☆☆ = 그냥저냥 평타.

★★☆☆ = 킬링타임. 꽤 술술 읽히고 보통으로 재미있음

★★☆ = 남에게도 추천할 만큼 재미있고 인상 깊음

★★★ = 돈 주고 소장하고 싶은 책, 여러 번 읽어도 재미있을 책






 

91. 대멸종 / 안전가옥 앤솔로지 ★★☆☆☆

 

동양 판타지, 직장인 일상물, 외국 배경, SF, 서양 판타지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려 노력한 흔적이 느껴진다.

 

 

저승 최후의 날에 대한 기록 / 시아란

저승은 인간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데, 이 세상에서 인간이 모두 죽어 버린다면? 저승의 존속을 위한 저승사자들의 눈물나는 고군분투기.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 / 심너울

취업난을 뚫고 간신히 취직했나 했더니, 일을 개떡같이 해놓고 간 전임자의 뒷처리를 하느라 머리가 다 빠질 지경이다. 그런데 전임자가 남겨놓은 코드를 뜯어보다 보니, 일정 횟수 이상 점프를 하면 그 게임 전체가 다운되는 버그를 일부러 심어 놓았다는 게 밝혀졌다... 대체 왜 이런 이유 모를 버그를 심어놓은 걸까?

 

선택의 아이 / 범유진

삼촌의 집에 맡겨져서 앵벌이로 먹고 사는 한 아이에게 어느 날 돌고래가 말했다. "인류가 없어지지 않으면 지구에 여섯 번째 대멸종이 올 거야. 네가 인간을 선택한다면 인간은 살겠지만 대멸종이 올 테고, 인간을 선택하지 않으면 인류는 멸종하겠지만 너는 돌고래가 되어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어. 어떻게 할래?"

 

우주탐사선 베르티아 / 해도연

지구를 떠나 머나먼 우주로 나아가는 탐사선에서 우주비행사들은 건강관리 안드로이드 포모나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달을 불렀어, 귀를 기울여 줘 / 강유리

마력이 변변찮다고 항상 무시받던 마법사가 어느 날 마계의 달을 소환한다. 아무도 그 말을 믿어주지 않았지만 오직 수석 궁정 마법사와 그 제자만은 그 말을 믿고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 시작한다.

 

 

 

 

92.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 김현아 ★★★☆☆

 

메르스 사태 때 전염병의 최전방에서 환자들과 함께 격리당한 채 분투했던 간호사의 이야기.

단순히 메르스 때의 일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겪는 고충, 불합리, 부조리를 진솔하고 절박하게 토로한다.

 

 


간호사라는 직업은 제대로 된 돌봄을 받아야만 받은 돌봄을 그대로 환자에게 베풀 수 있는 직업이었다

그 누구의 보호도, 돌봄도 받지 못한 채 내 환자들에게 무한한 돌봄을 베푼다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영혼을 갉아먹는 일이었다. 밝은 척, 괜찮은 척내 환자들에게 미소 짓고 

그들의 손을 놓지 않으려 했지만 그럴수록 나 자신은 속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걸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병원에서 나에게 맡겨진 환자만을 위해 오로지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내 생각은 틀렸다

간호사가 하는 모든 일들은 행위 하나하나가 돈이 되는 의사와 달리 환자의 입원료 안에 모두 속해 있었다

간호사인 내가 가장 먼저 심정지를 발견하고 환자의 몸 위로 뛰어 올라 빠른 심장 마사지를 시작해 다시 살려내도

위험에 빠진 환자를 살리려고 처방권을 가진 주치의를 찾아 발을 동동 구르며 

의국까지 쫓아가 잠이 덜 깬 의사를 환자 앞에 데려다 앉혀놓아도

응급 상황을 대비해 환자의 목숨이 달린 모든 물품들과 의료기기들을 아무리 꼼꼼히 체크한다고 해도

주치의가 환자에게 고위험 시술을 완벽히 할 수 있도록 

기구들을 빠짐없이 준비하고 정확히 어시스트를 한다고 해도

행여 초라해 보일까 사망한 내 환자들의 마지막 면도를 해주고

마지막 모습에 흠이라도 될까 안절부절못하며 

터진 항문에 고개를 들이밀어 그 사이로 흘러나오는 대변을 수십 번씩 씻어준다 해도

내가 한 모든 일은 단지 입원료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진 채 그 안에 들어가 있었다.

병원에서 돈이 되지 못하면 간호사가 환자에게 행하는 그 어떤 일도 관심을 받지 못했다

돈이 되지 않는간호사들은 점점 천덕꾸러기가 되어가면서 근무시간을 넘기는 것 정도는 당연히 여기게 됐고

근무가 끝나면 청소 용역비용을 메울 미화원이 되어야 했다

내가 돌보는 환자의 침대 밑에서 고개를 조아린 채 쪼그려 앉아 수세미로 침대를 닦아내던 나를

그 누가 자신들을 돌보는 간호사로 봐줄까.

 

 

 

 

 

93.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 김은주 ★★☆☆☆

 

성차별이 공고하기로 유명한 분야 중 하나인 철학에서 평생을 분투했던 여성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을 모아놓은 책.

 

철학서답게 읽는 건 상당히 어렵다.

 

 

오랫동안 철학사에 여성의 자리는 없었다

여성 철학자는 둥근 사각형과 같은 형용모순처럼,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

남자가 하는 말을 들어주고 이해하고 뭔가 의견을 말하는 여자는 

재잘대는 꽃이라 귀여움을 받거나, 사유와 창작에 영감을 주는 뮤즈로 찬양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남자와 무관하게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로서 존중이나 이해를 받지는 못했다.

   

 

나는 여성들이 복수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성은 단수로 말해질 수 없다. 여성은 복수다

성주의운동은 추상적인 단일 여성 서사와의 동일시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처지와 위치에 있는 여성이 투쟁의 역사를 거쳐 확인한 가부장제의 분명한 차별에 함께 저항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함께 싸운다는 것은 나와 비슷한 고통에 바로 공감하여 연대하는 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동일시에서 비롯된 고통은, 내가 느껴본 고통에만 민감한 데 그쳐버릴 수도 있다.

고통에 공감하여 연대한다는 말을 내가 느껴본, 혹은 나와 가까운 이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연대로만 오인할 경우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의 서사 일부로 통합하는 근대적 습관에 빠지기 쉽다

고통의 가치를 규정하는 최종 심급을 라는 자기중심으로 수렴하는 방식을

여성주의운동은 지양해야 한다. 자기중심적 서사 구축에서 벗어나, 차이를 사상하지 않으면서,

차이에서 의미 있는 실천을 이끌어내기 위한 윤리적 태도와 서사의 방법이 분명히 필요하다

이것은 결코 종결될 수 없는 여성주의의 과제이기도 하다.

 

 

 

 

94. 감겨진 눈 아래에 / 황금가지 단편선 ★☆☆☆☆

 

나머지 단편들은 상관없는데, 표제작인 <감겨진 눈 아래에>가 너무 끔찍하고 역겹고 화난다. <시녀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작가는 이걸로 과연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이걸 쓴 게 여성 작가라서 사람들이 말을 아끼는 거지, 남자 작가가 썼으면 난리가 났을 글이다.

 

 

 

* 공익을 위해 작품의 줄거리를 간략히 설명할게. 강간/윤간 소재에 민감한 사람들은 드래그하지 말길.

 

간단히 말하자면 한심한 남자들이 줄창 읊어대는 "여자들 군대 보내서 성노예 만들어라"는 헛소리를 그대로 작품의 세계관으로 차용한 소설.

 

이민 2세인 주인공은 프랑스에서 태어나 프랑스 국민으로 자라, 국제인권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인 부모님은 한국정부가 여자들의 출입국을 제한할 무렵 프랑스로 망명와 주인공을 낳았다. 그로부터 20년 이상이 지나 북한처럼 폐쇄적인 국가가 되어버린 한국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기 위해 입국한 주인공은 공항에서 그대로 정부에 끌려가 여권을 빼앗긴다. 강제로 처녀막 유무 검사를 받은 후, "3등급" 판정을 받고 군에 입대한다.

 

하지만 여자들의 '군복무'는 남자들처럼 훈련을 받는 게 아니라 성노예 생활이다. 한국 여성은 출신과 유전자에 따라 1등급, 2등급, 3등급으로 나뉘는데 1등급은 인공수정으로 임신을 한 후, 처녀막이 파괴되지 않도록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고 1등급 남자와 결혼한다. 2등급은 국가가 짝지어 주는 남자의 아이를 낳는다. 3등급은 '군대'에 입대해서 거기서 남자들에게 강간당해야 한다. 3등급이 '제대'하는 방법은 (1) 아이를 낳거나, (2) 3년을 채우거나 둘 중 하나뿐이다.

 

주인공은 한국인이면서 '병역의무'를 저버렸다는 이유로 군에서 매일같이 남자들에게 윤간을 당하고, 거기서 여성인권운동을 하다 잡혀온 다른 여자를 만나 의지하며 지옥을 견딘다. 그러다 그녀의 전 직장인 국제인권단체에서 그녀를 구하러 온다. 마침내 구출된 주인공은 1년간 심리치료를 받으며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그곳에서 만난 여자를 위해 싸우기로 다짐하고는 자신이 겪은 일을 국제사회에 알린다.

 

 

<시녀 이야기>의 질낮은 아류작.

 

<시녀 이야기>에서 여자들은 출산을 위한 도구로 취급되지만, 그건 고위직 남자의 집에 살며 평소에는 가정부와 함께 집안일을 하다가 매달 한 번씩 정기적인 성관계를 맺는 시스템이지 이 소설에서처럼 나이가 차면 군대에 끌려가 매일 남자들에게 윤간당하는 방식이 아니다. 바로 그런 최소한의 윤리적 장치, 설정과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서 소설의 질적 차이가 기인한다.

 

다른 작가들은 왜 픽션에서 성폭행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을까? 그게 포르노적으로 읽힐 소지가 다분하기에 그런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다른 작가들은 왜 픽션의 디스토피아에서 "현실적인" 서술을 위해 '도처에 만연한 강간'을 소재로 삼거나 전면에 내세우지 않을까? 그게 당연하고 흔한 일로 생각되어서는 안 된다는 가장 기본적인 윤리를 위해서이다. 비록 픽션이라도 매체에서 강간을 '사회가 무너지면 생기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비극'으로 묘사한다면 그 고의성이 옅어지기 때문이다. 강간을 '절대로 저질러선 안되는 범죄'가 아니라 '본능의 산물' 이라는 명목으로 '별 것 아닌 일, 어디서나 일어나는 일'로 치부하는 논리를 은연중에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끔찍한 범죄를 다루는 기사들은 왜 그 수법을 자세히, 낱낱이 보도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아이디어를 심어주거나 모방범죄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겨진 눈 아래>는 과연 그 윤리를 지킨 소설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대체 왜 이런 글을 썼을까? "남자가 군대가는 대신 여자는 애 낳아라"는 헛소리가 실제로 일어나게 되면 얼마나 끔찍한지 구현해 보려고 쓴 것일까? 충격적인 소재를 사용해 경각심을 일깨우고 싶다는 생각 하에, 지나치게 자극적인 설정으로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일으켰다.

 

그런 구현은 애초에 할 필요가 없다. 인터넷에는 이미 "한국여자들을 군대 보내서 혹은 군대 안 가는 대신 국가권력으로 이렇게 저렇게 만들자"는 찐따새끼들의 온갖 끔찍한 망상과 그림, 글이 널려 있다. 왜 작가가 굳이 그 유려한 필력을 낭비해 그 병신 야망가 세계관을 소설로 만들어주는가? '딸감'을 그들에게 던져주는가? 솔직히 말해 여자들을 위한 소설이 아니라 그 찐따들을 위한 소설 같다. 그놈들은 이 소설을 참 좋아할 것이다.

 

물론 이 소설은 음란물이 아니기에 세계관 내 시스템을 꾸준히 비판하고, 그 기저에 어떤 가부장제 논리와 성차별적 구조가 숨어 있는지 낱낱이 보여준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군 '위안부', 6.25 시절 국군 '위안부', 박정희 독재시절 몽키하우스, 콩고 내전 성노예 문제 등등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이 겹쳐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지나치게 1차원적이다. 너무 단순하다. 힘있는 단순함이 아니라 유치한 단순함이다. 그래서 읽고 나서도 분노와 두려움밖에 남지 않는다. 그것도 가부장제 사회를 향한 분노가 아니라 작가를 향한 분노와, 현실에서 내게 일어날 수 있는 성범죄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다. 작가는 대체 뭘 하고 싶었던 걸까? 병신들의 헛소리를 전복하려는 시도였을까? 그렇다면 실패했다. 전복이 아니라 그냥 재현만 해놓았다. 나는 아주 거지같은 남성중심적 스너프 필름을 본 불쾌감밖에 들지 않는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으며 느꼈던 바로 그 불쾌감이다.

 

다른 작가들이 왜 성노예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세계관을 만들지 않는지 작가가 좀 생각을 해보길 바란다. 할 줄 몰라서 안하는 게 아니라 하면 안되니까 안하는 것이다.

 

 

 

 

95. 더블 / 정해연 ★★★☆☆

 

유부녀와 내연관계를 이어오던 형사 현도진. 내연녀 재희가 더 깊은 관계를 요구하자, 그의 내면에 있던 악마적 성향이 표출되어 그녀를 살해한다. 다음 날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평소대로 출근을 했다가 재희와의 밀회를 위해 미리 예약해두었던 방갈로로 휴가를 떠난 도진은 싱크대에서 낯선 남자의 시신을 발견한다. 앞선 자신의 살인이 들통날 지도 모르는 위기에 그는 낯선 남자의 시신을 처리한 뒤 진범을 잡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상황을 수습할수록 또 다른 살인마가 만들어놓은 판에 휘말리게 되는데.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읽었다.

 

 


샌디에이고 출신, 빌리 리 채드다. 범행 당시 21세였고, 피해자는 29세의 남성 델마 브라이트

둘은 가학적 동성 성교를 맺기로 했고, 덕분에 빌리 리 채드의 살인마적 성향이 발동했지. (...) 

가학적 성교를 위해 빌리는 델마를 묶었고, 그 모습에서 살인 충동을 느꼈지. 그런데 그는 조금 의아했어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지. 그게 뭐였을까?”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몇몇이 수군거리기는 했지만 손을 드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도진은 경찰 대학 재학 시절 같은 이야기를 교수님으로부터 들었다

학생이었던 도진은 그게 뭐였을까?’ 하는 말에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손을 들었었다

도진은 정답을 말했고, 다른 학생들은 ~!’했지만, 교수님은 당혹해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도진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정답을 모르는 쪽이 이상했다. 그는 바로 떠올릴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는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아 도진이 답을 말했다.

두려움.”

 

 

 

 

96. 편의점 / 안전가옥 앤솔로지 ★★★☆☆

 

● 〈창조와 비밀유기농볼셰비키

홍대 밤거리를 걷다 우연히 만난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 나는 그 직후부터 두 시간 반에 걸쳐 세계의 기원과 인류의 임무에 대한 일장 연설을 듣는다. 남자의 주장에 따르면 지구와 인간을 만든 것은 안드로메다 은하의 외계인으로, 이 세계는 그들이 고도의 기술력을 활용해 창조적 유희를 아름답게 펼친 결과이다. 그의 말은 한 가지를 제외하고 모두 틀렸다. 지구는 분명 외계인이 만들었지만 그저 미대 조별 과제의 산물일 뿐이며, 그 조의 조장은 나다. 나는 창조주로서의 책임감에 따라 그에게 진실을 알리기 시작한다.

 

● 〈카라마조프 헤븐류연웅

실직자 의상은 절망한 채로 거리를 떠돌다 오픈을 사흘 앞둔 캐릭터 플랫폼 편의점 카라마조프 라이프’ 1호점의 첫 번째 손님이 될 기회를 얻는다. 카라마조프 캐릭터들을 좋아하는 의상의 아들이 무척이나 가고 싶어 했던 곳이다. 의상이 얼결에 편의점 입장 대기 줄의 선두에서 기다리는 사이, 의상의 부인 장미는 그날따라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들을 찾으려 거리를 헤맨다. 과거로 돌아간 이야기가 가족의 사연을 짚어 나가면서 사라진 아이의 충격적인 행방이 점차 드러난다.

 

● 〈여자의 얼굴을 한 방문자이아람

서울에 살던 선은 꼬여 버린 삶을 두고 도망치듯 제주도로 내려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한 달 남짓 지났을 즈음 제주도에는 우주 물체 추락에 따른 긴급 재난 경보가 울리고, 곧이어 거대한 녹색의 무언가가 한라산을 베고 눕는다. 얼마 뒤 해변에서 고요한 녹색 인간을 만난 선은 그와 만남을 거듭하는 가운데 메말랐던 감정과 괴로웠던 과거를 치유해 간다. 그 사이 제주도를 찾았던 관광객들은 빠른 속도로 떠나고, 대신 병력과 연구진들이 배치되면서 섬 전체에 긴장이 감돈다.

 

● 〈마지막 퇴근은 손님들과 함께정세호

우석은 후미진 주택가 한가운데에서 편의점을 운영한다. 상권이 주저앉은 곳이다 보니 하루에 열네 시간씩 일주일에 엿새를 일하고도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어 어머니까지 일을 해야 할 형편이다. 밤 근무를 하며 신세를 한탄하던 그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손님을 맞이한다. 우석에게 담뱃갑을 받고 계약을 맺었다 선언한 그는 이후로도 다른 손님을 데려와 작은 물건을 받아 갔고, 그 대가로 편의점의 손님을 늘려 주었다. 우석은 오랫동안 궁금증을 품은 끝에 기묘한 손님들의 놀라운 정체를 알게 된다.

 

● 〈잃어버린 삼각김밥을 찾아서이산화

문체부 산하 기이현상청 소속 공무원 모린은 어느 날 새벽 3시에 집을 찾아온 애인 비희에게 긴급한 부탁을 받는다. 비희는 일루미나티가 운영하는 식품 연구소의 매니저로 편의점용 신제품 개발을 관리하는데,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는 삼각김밥이 그만 직원의 실수로 서울 전역의 편의점에 납품되었다는 것이다. 모린은 옛 애인들인 비둘기들과 악마의 도움을 받아 문제의 삼각김밥을 회수하기 위한 긴급 작전에 돌입한다.

 

<창조의 비밀><잃어버린 삼각김밥을 찾아서>가 제일 재미있었다

창조의 비밀은 그 소재와 스토리가, 잃어버린 삼각김밥을 찾아서는 악마들의 설정이 참신하고 흥미로웠음

하지만 두 단편 다 너무 트위터스러운 느낌이 너무 강해서 아쉽다.

 

 

 

 

97. 공작부인 납치사건 / 리처드 마쉬 ★★☆☆☆

 

10~12페이지밖에 안 되는 아주 짧은 책이라 금방 읽을 수 있다.

 

 

 

 

98. 보석에 대한 굶주림 / 맥스 펨버튼 ★★★☆☆

 

돈밖에 모르는 수전노가 조카의 결혼 지참금으로 준 보석까지 아까워서 되찾고 싶어하다가 된통 골탕먹는 이야기.

 

짧은 단편.

 

 

 

 

99.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 / 최민석 ★☆☆☆☆

 

초단편 모음.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에세이집 느낌이다

 

숨길 수 없는 아재의 기운.

 

아저씨의 떨떠름한 농담집을 실컷 읽은 기분.

 

 

 

 

100. 퍼펙트 마더 / 에이미 몰로이 ★★★☆☆

 

끔찍한 악몽으로 바뀐 엄마들의 단 하룻밤 일탈!

 

뉴욕 브루클린의 초여름,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맘동네에 가입한 엄마들은 일주일에 두 번, 유모차를 끌고 브루클린의 공원 버드나무 아래 잔디밭에 모여 바라마지않던 시간을 보냈다. 꼼짝없이 집에 갇혀 아기만 보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만나고 엄마로 사는 고충을 이야기하는 시간. 여자들은 모임 이름을 ‘5월 맘이라고 붙였다. 모두 5월에 첫 아기를 낳은 초짜 엄마들이었기 때문이다.

 

무더운 7월 어느 날, 엄마들은 동네 술집에서 간단하게 한잔하기로 한다. 그러나 그날 밤, 싱글맘 위니의 아기가 그녀의 집에서 베이비시터가 잠든 사이 요람에서 증발한 듯 사라졌다. 그리고 아기를 잃어버린 위니가 20년 전 유명 TV 드라마의 주연 배우이자 하이틴 스타였다는 사실과, 아기가 사라진 그날 밤, 아무것도 모른 채 술에 취해 웃고 노래 부르던 엄마들의 사진이 뉴스 1면을 장식하면서, ‘자격 없는 엄마들이란 꼬리표가 붙은 악몽이 시작되는데…….

 

각 캐릭터의 시점이 돌아가면서 나오는데, 처음에는 그게 다소 산만하지만 중반부터는 괜찮아진다.

 

읽으면서 어머니에 대한 시각이 우리나라보다는 열려 있다고 느꼈지만 (특히 술 관련해서), 그래도 고정관념과 편견은 여전하다는 걸 잘 보여줌.

 

 

 


101. 한여름 밤의 비밀 / 얀 제거스 ★★☆☆☆

 

60여년 만에 아들에게 전달된 오래된 서류봉투 하나와 그 속에 담긴 의문의 악보. 아우슈비츠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남긴 유품에는 과연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을까. 유품을 빼앗기 위해 벌어지는 일련의 연쇄살인 사건과 예상치 못한 배후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지루하다.

 

 

 

 

102. 잊혀진 소년 / 오타 아이 ★★★☆☆

 

꽤 긴 분량인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흡입력 있게 잘 끌어간다.

 

(스포) 납치당한 아이가 얼핏 오냐오냐 자란 철없고 버릇없는 아이로 비치도록 묘사하지만, 그러면서도 범인을 위해 밀크티 한 잔을 더 타 두는 등의 디테일이 좋았다. 착하고 호감 있는 아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쁜 아이도 아닌, 결국 평범한 아이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음.

 

 

나도 전에는 법조계에 몸담았던 사람이라, 형사재판의 대원칙 정도는 알고 있네

열 명의 진범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지 말라.’ 

러나 자네는 정말 세상이 그런 사회를 원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한 명의 무고한 피해자를 지키기 위해 열 명의 진범을 놓쳐도 상관없는 그런 사회 말일세

그렇게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사회를, 세상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지 말이야. (...)

가령 데라이시 다카유키가 범인이 아니라 해도, 오카무라를 비롯해 수사관들이 행한 수사는 범죄가 아니야

죄가 없다면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그렇다면 데라이시 다카유키는 

재판에서 당당하게 무죄를 주장하고 싸우면 되는 일이지

그리고 1심 판결에 불복하면 법에 준거해 공소하고 상소심에서 또 싸우면 되는 일이고. 그뿐이야.”

 

 

야리미즈는 도키와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항상 처벌하는 쪽에만 서 있던 도키와는

원죄로 인생을 망친 쪽의 절망과 고통, 그 가족의 슬픔을 상상하는 능력은 결정적으로 부족하다.

그리고 그 결함에도 이유는 없지 않다도키와에게 선악의 규범은 유죄냐 무죄냐와 같은 뜻이다.

, 죄를 물을 수 없으면 선, 죄를 물을 수 있는 것은 악

따라서 도키와에게 죄를 물을 수 없는 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도키와는 자신의 판단에 오류가 없었다고 했다. 그 말은, 법적으로 죄를 물을 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는 뜻이다

도키와는 법적으로 죄를 물을 수 없으면 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신을 믿어 마지않는다

야리미즈는 그 믿음, 자신이 타인에게 준 아픔에 대한 완벽한 무관심이야말로 

지속적으로 희생을 낳고 있는 현재 상황을 뒷받침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103. 안개 속 소녀 / 도나토 카리시 ★★★☆☆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평범한 10대 소녀 애나 루가 성탄전야에 사라진다. 평화롭지만 다소 폐쇄적인 산악마을에서 종종 일어나는 단순 가출로 여겼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범죄의 가능성이 커진다. 스타 형사 포겔이 사건을 맡게 되고, 과거 증거조작으로 무고한 사람을 연쇄살인범으로 몰았던 일로 불명예를 겪었던 그는 이 일이 재기를 위한 발판임을 확신한다. 그러던 중 애나 루의 곁을 맴돌던 차량이 발견되지만 검사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며 체포영장 발부를 거부한다. 수많은 미디어와 경찰들의 기대를 의식한 포겔은 언론에 용의자의 정보를 흘려 대중을 선동하는데…….

 

항상 언론의 눈치를 보거나 언론과 맞붙거나 언론 때문에 덤터기를 쓰던 여타 소설의 형사들과는 달리, 언론을 적극적으로 자기 무기로 이용하며 수사를 해나가는 속물 형사가 주인공이라 신선했다.

 

과거-현재가 반복되며 나타나다 마지막에 수미쌍관으로 완결되는 구조도 탄탄하다.

 


   

범죄는 7초 간격으로 일어난다.

그런데 그중에서 신문기사로 활자화되거나 TV 뉴스로 방송을 타거나 또는 사건 전후 관계까지 

심층적으로 다룬 토크쇼의 주제가 되는 사건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극소수의 사건에 범죄학자, 심리상담 전문의 등이 투입되고 때로는 심리학자

더 나아가 철학자가 동원되기도 한다. 또한 막대한 양의 잉크를 쏟아부은 각종 기사가 양산되고

몇 시간에 걸친 각종 TV 프로그램까지 편성되기에 이른다

그렇게 몇 주, 가끔은 몇 달 동안 관련 소식으로 봇물이 터질 때도 있다.이라도 좋은 사건은 몇 년간 지속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절대로 입 밖으로 내지 않는 말이 있다. 범죄는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인다는 사실.

제대로 된 스토리로 엮은 범죄는 기록적인 수준으로 시청률을 끌어올리며 각종 스폰서와 광고를 몰아오는 법이다

특파원, 카메라 장비, 그리고 카메라맨이라는 최소한의 고정 투자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작은 마을에서 잔혹한 살인사건이나 미궁에 빠진 실종사건 같은 강력사건이 발생하면 

미디어에 노출되는 기간 동안 그 지역을 찾는 외지인들의 수가 늘어나고

이는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언론과 대중, 그러니까 모든 이들이 범죄자를 인간이 아니라고 여긴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범죄자들을 무슨 외계종족이나 남을 해하고 악을 행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존재로 여긴다는 사실 말입니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그런 범죄자들을…… 대단한 인물로 만들어버린다는 겁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힘주어 말했다

그 대단한 인물들의 대다수는 창의성도 부족하고 

다수의 틀에서 벗어날 수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일개 개인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진실을 받아들이게 되면 결국 범죄자들이 

우리 자신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104. 인생을 낭비한 자의 로맨스 / 오스틴 프리먼 ★★☆☆☆

 

'과학수사'의 개념이 막 잡혀 가던 시기의 단편소설.

 

과학수사가 보편화된 오늘날에 보기엔 밋밋한 추리이지만, 추리가 중심이라기보다는 앞뒤의 이야기 전개가 좋다.

 

 

 

 

105. 거절할 수 없는 부탁 / 에무스카 오르치 ★☆☆☆☆

 

아주 짧은 초단편인데도 불구하고 재미없다.

 

스파이물은 취향이 아니다.

 

 

 

 

106.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 심너울 ★★☆☆☆

 

안전가옥 앤솔로지.

 

정적 : 서울 마포구와 서대문구에서 소리가 갑자기 사라진 사건을 계기로 뜻밖의 인간관계를 맺게 된 의 이야기. 듣지 못하게 되었기에 비로소 들리게된 조용한 이의 말들은 침묵으로 가득한 나의 일상을 풍요로운 대화로 채워 준다.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 : 잦은 연착으로 악명 높은 경의중앙선을 그린 블랙코미디. 연착되는 전철을 기다리다 못해 역에 속박되어 버린 원념들의 짧고 굵은 하소연.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 일주일 중 금요일을 가장 사랑한 9급 공무원 김현의 독특한 시간 여행기. 민원인과 동장에게 치이는 평일은 죽느니만 못하다고 여긴 현은 매일이 주말을 앞둔 금요일 같기만을 바란다. 그러나 정작 금요일을 반복하게 된 현은 이전보다 더 뒤틀린 생활을 맞이하고 만다.

 

신화의 해방자 : 동물을 사랑하면서도 실험용 쥐를 죽이는 일을 해야 했던 주인공은 용의 유전자가 발현된 쥐 용순이를 본의 아니게 키우게 되면서 회사의 규칙을 어기고 자신의 마음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한다.

 

최고의 가축 : 한반도의 수호룡인 이스켄데룬은 날개 부상 때문에 430년 동안 관악산에 은둔해 있었는데, 어느 날 용의 둥지에 한 인간이 찾아온다. 세계적인 생명공학 기업의 직원인 그는 용의 세포를 연구해 날개 치유를 돕겠다고 제안한다.

 

 

<정적>이 소재도 좋고 스토리도 좋고 제일 취향이었다.

 

<최고의 가축>은 내가 이런 류 스토리를 읽으면 너무 맘이 아프고 그래서 힘들게 읽었음...ㅠㅠ

 

 

 

 

107. 우리가 먼저 가볼게요 / 앤솔로지 ★★☆☆☆

 

페미니즘 SF 앤솔로지라는데, 그냥 별로다. 마음에 남는 단편이 없다. 스토리가 기승전결이 없고 밍숭맹숭함.

 

첫 단편인 <나를 들여보내지 않고 문을 닫으시니라 / 이산화> 이건 후기를 작가가 자기가 직접 쓰지 않고 다른 사람한테 맡겼는데, 갑자기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내가 MTF 트렌스젠더라고 해서 그건 진짜 여성이 아니지라고 생각했나요? 그런 당신의 편견, 부끄러운 줄 아시오 하고 독자한테 훈계해서 기분 나쁨;;; 왜 이렇게 여자한테 훈계하고 싶어하고 맨스플레인을 못해서 안달이 났냐? 피곤하다 진짜...

 


 

 

108. 달콤한 노래 / 레일라 슬리마니 ★★★☆☆

 

두 아이를 낳고 기르다가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을 느낀 미리암은 변호사 생활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아이들을 돌봐줄 완벽한 보모를 구했다. 까다롭고 철저한 면접을 거쳐서 만난, 아이들이 첫눈에 선택한 여자, 루이즈. 덕분에 모든 생활이 제자리를 찾아갔고, 그녀는 이제 집 안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해 보이던 보모 루이스. 그런 그녀가 왜 두 아이를 살해했을까?

 

 

여러 모로 활자잔혹극이 생각나는 소설. 하지만 활자잔혹극은 건조하고 날카롭고 딱딱했던 반면, 달콤한 노래는 보다 모호하고 물흐르듯 흘러간다.

 

사람들, 특히 상류층의 무의식적인 타인을 향한 평가와 벽을 섬세하게 잘 그려낸 소설.

 

   

 

폴은 그녀를 설득하려 해본다

좋을 것 같은데. 당신은 애들하고 아랍어를 안 쓰려고 하니까이 사람이 애들한테 아랍어로 이야기하면 좋잖아.” 

하지만 미리암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자신과 그 여자가 암묵적으로 마음이 통하거나 친근해질까 두렵다

그 여자가 자신에게 아랍어로 이런저런 지적을 하게 될까 두렵다

그 여자가 자기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런 다음 곧 공통의 언어와 종교를 내세워 온갖 것을 부탁해올까 두렵다.

그런 것을 그녀는 이민자의 연대라 칭하며 항상 경계해왔다.

 

 

미리암은 그녀에게 종종 선물을 한다

전철역 출구의 싸구려 가게에서 산 귀걸이루이즈가 좋아한다고 그녀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오렌지 케이크

그녀는 자기가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들을 루이즈에게 준다.

이런 건 어딘가 모욕적인 데가 있다고 생각해온 지 오래이면서도

미리암은 루이즈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애쓰고, 질투를 불러일으키거나 그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자신이나 아이들을 위한 쇼핑을 할 때면 오래된 헝겊 가방에 새 옷들을 감췄다가 루이즈가 가고 난 뒤에야 꺼내놓는다

폴은 어쩌면 그렇게 세심하게 마음을 쓰느냐며 그녀를 칭찬한다.

 

 

와파는 일부러 그의 곁에 그녀를 앉혔다.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남자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남자, 하지만 루이즈는 선택할 만한 남자

그녀는 오래된 옷을 입는 사람, 남들이 다 읽어 페이지가 떨어져 나간 잡지를 읽는 사람

심지어 아이들이 먹던 와플을 먹는 사람이니까.

 

 

 

 

 

109. 브링 미 백 / B.A. 패리스 ★★☆☆☆

 

첫눈에 반한 연인 핀과 레일라. 서로를 완벽한 연인이라고 생각하며 사랑하던 그들은 프랑스로 여행을 떠난다. 도로변 주차장에서 핀이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 레일라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녀가 남긴 것은 늘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던 작은 러시아 인형뿐. 적어도 핀이 경찰에 진술한 대로는 그렇다. 그날 이후 평온했던 일상의 모든 것이 뒤바뀌고 함께 꿈꾸었던 미래도 사라진다. 12년 후, 핀은 레일라의 언니 엘런과 약혼한다.

 

하지만 결혼식을 앞둔 어느 날, 악몽 같았던 과거의 기억이 다시 삶을 잠식하기 시작한다. 경찰은 12년 전 실종된 레일라가 목격됐다는 제보를 전한 것이다. 엘런조차 빨간색 머리를 한 레일라를 봤다고 말하고, 그녀의 러시아 인형까지 집 앞에서 발견된다. 무엇보다 핀에게 알 수 없는 메일이 도착하자, 언젠가부터 핀은 그 메일에 온 신경을 쏟으며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모든 사람과 진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도.

 

 

예상 가능한 반전.

 

분량이 지나치게 길고 지루하다.

 

 

 

 

110. 아우슈비츠의 문신가 / 헤더 모리스 ★★★☆☆

 

슬로바키아 출신의 유대인 랄레 소콜로프는 194224세의 나이에 자신이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모르는 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용자들에게 문신 새기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의 동료이자 민족인 희생자 수천 명의 팔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잉크로 유대인 대학살의 상징을 남기는 일이었다. 오직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겁에 질린 채 몸을 떨며 문신을 새기려고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는 한 어린 소녀가 있었다. 랄레는 그녀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다. 그리고 자신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이 소녀의 목숨도 책임지겠다고 결심했다. 이렇게 하여 홀로코스트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희망과 용기를 찾아가는 위대한 휴머니즘의 여정이 시작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무난하게 읽을 만하다.

 

생각해 보면 강제수용소에서 문신을 새겨주는 역할도 분명 있었겠다 싶다. 그 문신사의 시점이라니 새롭다.

 

 

 

 

111. 복수는 악마의 것 / 눈사람 ☆☆☆☆☆

 

단편소설. 유치한 데다, 쓸데없이 자극적이고 가학적인 아동성범죄 묘사가 한가득이다. 비추천.

 

 

 

 

112. 연쇄 보석 도난사건 / 아서 모리슨 ★★☆☆☆

 

고전 단편소설.

 

그야말로 고전이라는 느낌. 정석적인 트릭인데 그래서 지금 시대엔 오히려 새롭다.

 

 

 

 

113.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 미치오 슈스케 ★★☆☆☆

 

여름방학을 앞둔 종업식 날, 미치오는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결석한 S의 집을 찾아간다. 그러데 S는 줄에 목을 맨 체 시체로 늘어져 있다. 이 소식을 들은 담임선생이 경찰과 함께 S의 집을 찾아가보지만, 놀랍게도 시체는 사라졌다. 그리고 그날 밤, S가 거미의 몸으로 미치오의 앞에 나타나서 말한다.

 

"선생님이 나를 죽였어"

 

그렇게 미치오는 여동생 미카와 함께 수수께끼 같은 사건의 진상을 좇기 시작하는데...

 

 

습기 가득한 비내리는 여름밤처럼 찝찝하고 습한 책.

 

비위가 상하고 그런 건 아닌데, 분위기가 굉장히 음습하고 찝찝해서 밥 먹다가 이 책 보면 밥숟갈을 내려놓거나 책을 덮거나 둘 중 하나를 하게 됨...

 

 

 

 

114.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김하나, 황선우 ★★★★☆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해 본 상상, 친구끼리 한 집에 산다면 어떨까? 그걸 정말로 해낸 사람들이 있다.

 

40대 여자 두 명의 동거생활을 유쾌하고 재미있게 써낸 에세이에세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 두 분 다 이십 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잡지 편집자에 칼럼니스트라서 글이 정말 쏙쏙 잘 읽힌다.

쉽고 매끄럽게 술술 읽히는 글을 꼽으라면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를 책들 중 하나.

 

   

   

 

무엇보다 결혼하지 않아서 가장 다행인 점은 누군가의 며느리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사랑받는 딸로, 유능한 직업인이자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아가던 여자들은 

며느리라는 관계에 놓이는 순간 갑자기 신분이 몇 계단은 추락하는 것 같다

두려운 점은 며느리 노릇을 스스로 신나서 열심히 할 것 같은 기질이 나에게도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스타그램 웹툰 <며느라기>에서 시댁 식구한테 예쁨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애쓰는 시기라고 설명하는 며느라기처럼 말이다.

 

 


큰 대출을 얻고 또 갚아보면서 내 배짱은 아주 조금 도톰해졌다또 하나 배운 교훈은

자신이 두려워하는 뭔가를 영원히 피해 다닐 수 없다면 제대로 부딪쳐볼 필요도 있다는 거다

늘 머물던 안전지대 밖으로 한 걸음을 내딛어보면 세상에 생각해온 것만큼 큰 위험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어쩌면 겁쟁이일수록, 위험한 상황을 좀처럼 만들지 않는 자신의 본능적 감각을 믿어봐도 좋을지 모른다

조금 대담해진 쫄보는 오늘도 라니스터에게서 배운다

빚은, 지지 않는 게 아니라 잘 갚는 게 중요하다.

   

 


가족과 함께 살던 시절에는 부엌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침잠을 깨웠다

뭘 썰거나 끓이거나 기름에 굽거나 하는 주방의 생활 소음은 너무 구체적이고 현실감 넘쳐서 

꿈에서 미처 깨어나기 전의 몽롱한 정신에는 이물감이 느껴졌다

아직 지각이 선명하지 않은 감각 기관 중에 코끝으로 음식 냄새가 제일 먼저 스며드는 게 그때는 불쾌하게 다가왔다

눈 뜨자마자 식탁에 음식이 준비되어 있다니, 지금이라면 행복감에 넘쳐 벌떡 일어날 텐데 말이다

가족을 떠나 혼자 산다는 것은 누구도 음식 냄새로 나를 깨워주지 않는 아침이 수천 번 이어지는 일이었다.

   

 

 

만약 딸내미 친구가 아니라 며느리가 안경을 보냈다면 

그렇게까지 망설이거나 그렇게까지 고마워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며느리가 그렇게 하는 것은 은연중 도리의 영역에 포함되고 

딸내미 친구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호의의 영역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호의. 이게 원래의 마음아닐까

관습과 가족 관계와 책임과 의무로 짓눌려버리기 이전의

좋아하는 친구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갖는 친근한 마음.

내 자식과 함께 사는 친구에게 잘 대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이 나라 모든 며느리, 사위, 장인장모, 시부모 들에게도 원래의 마음은 이와 같을 것이다.

 

 

 

 

115. 정치인의 식탁 / 차이쯔창 ★★★☆☆

 

 

세계의 지도자들, 특히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식성과 식단을 총망라해 놓은 책.

 

아이스브레이커로 유용할 만한 잡지식이 쌓인다.

 

 

 

 

116. 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 / 플린 베리 ★★☆☆☆

 

어느 날 살해당한 언니의 죽음의 진상을 찾아가는 여동생의 이야기.

 

장르는 스릴러지만 분위기가 아주 잔잔하고, 가족을 잃은 사람의 심리에 집중한다.

 

지나치게 잔잔하고 평이해서 책장이 아주 느리게 넘어갔다. 잘 안 읽혔던 책.

 

 

 

 

117. 중고 인간 전시장 / 어빙 팽 ★★☆☆☆

 

사람이 차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자동차가 사람을 선택하는 미래 사회를 그려낸 아주 짧은 단편.

 

 

 

 

118. 아무도 문밖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 매슈 설리번 ★★☆☆☆

 

어느 날 폐점 시간, 서점을 정리하던 주인공 리디아는 위층 외딴 서가 사이에서 목을 맨 단골 조이의 시체를 발견한다. 그의 주머니 안에는 놀랍게도 리디아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의 열 살 생일파티 사진이 들어 있다.

 

조이는 자신의 작은 아파트에 있던 책과 물건들을 리디아에게 유품으로 남긴다. 책에는 엉뚱한 라벨이 붙어 있고, 몇몇 페이지에 작은 사각형 구멍이 잔뜩 뚫려 있다. 언뜻 아무 질서도, 의미도 없어 보이는 구멍은 사실은 조이가 남긴 퍼즐이다. 그 퍼즐을 풀어 가면서 리디아는 오랜 세월 굳게 봉인해두었던 어린 시절의 살인사건을 다시 맞닥뜨리게 되는데

 

 

제목이 끌려서 봤는데 초중반부가 너무 지루했다. 다 읽고 난 느낌도 밍숭맹숭.

 

 

 

 

119. 그녀의 지루함 / 시드니 스키옥 ★☆☆☆☆

 

순간이동이 일상화된 세계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주인공을 다룬 SF단편.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는 스토리.

 

 

 

 

120. 일본 호러 걸작선 / 단편집 ★★☆☆☆

 

장르적 색채는 확실하다. 다만 잔인한 묘사가 상당히 많으니 주의 바람.

 

 

 

 

121. 훔쳐보는 여자 / 민카 켄트 ★★☆☆☆

 

십 대에 낳아 입양 보낸 딸을 잊지 못하던 오텀은 우연히 딸을 입양한 부부의 SNS를 발견한다. 아내인 대프니는 완벽한 주부의 롤모델로 인기 인플루언서였고, 게시물을 살펴보니 딸은 부유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자라는 듯했다. SNS를 수시로 확인하던 그녀는 딸의 행복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들의 뒷집에 사는 남자 벤을 유혹해 동거를 시작한다.

 

매일 앞집을 훔쳐보며 딸과 그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체크하던 어느 날 맥멀런 가족의 SNS가 삭제되고, 딸의 소식을 알 수 없어 미칠 것 같던 그녀는 맥멀런 가에서 보모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온갖 수를 써 채용된다. 그런데 완벽하게만 보였던 가족에게는 비밀이 있었는데…….

 

 

무난한 플롯에 예상 가능한 반전. 평작.

 

 

 

 

122. 11문자 살인사건 / 히가시노 게이고 ★★★☆☆

 

바다에서 시체가 떠올랐다. 신원은 30대 남성, ‘의 애인이었다. 애인에 대한 이야기와 남겨진 물건들에서 비춰지는 남자는 내가 알던 애인과는 달라서 낯설기만 하다. 애인의 유품들을 하나씩 정리하면서 는 지금껏 그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걸 깨달았다. ‘는 애인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부분을 파헤치기 위해서 그의 수첩에 적힌 마지막 일정을 따라 행방을 쫓기 시작한다. ‘1년 전 요트 여행을 떠났던 사람들이 살인 사건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들을 추궁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어딘지 석연치 않다. 심지어 사건에 다가갈수록 가 조사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살해당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경악할 만한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데…….

 

 

작년에 읽었던 책인데 내용이 긴가민가해서 다시 읽었다. 여전히 쉽고 빠르게 후루룩 읽히는 책.

 

 

 

 

123. 종이달 / 가쿠다 미쓰요 ★★★★☆

 

고객의 돈을 조금씩 착복하다 급기야 거액의 횡령으로 이어져 해외로 도주하게 된 은행 계약직 여성의 회상. 그리고 그녀를 기억하는 주변인물의 허무한 일상이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만들어지는 불안의 정서가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평범하디 평범한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주인공은 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을까?

 

 

읽으면서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가 많이 겹쳐졌다.

 

일상에서 '이 정도쯤이야' 하며 조금씩 쌓이는 자그마한 실수를 방치하면 돌이킬 수 없이 큰 파도로 돌아온다는 것, 그리고 돈에 대한 사람의 감각이 어떻게 마비되는지 잘 보여주는 소설.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가게를 나와,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가면서 마사후미는 

아까부터 내내 웃는 얼굴로 잘 먹었습니다, ?” 하고 리카에게 말했다

잘 먹었습니다, 하고 리카는 황급히 인사를 하면서 뭔가 석연찮은 것을 느꼈다.

석연찮은기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계속된다기보다 리카의 안에서 점점 커지고 있다

잘 먹었습니다그 한 건만이 아니었다. 걸핏하면 마사후미는 리카가 한 달에 버는 돈이 얼마나 적은지 언급했다

외국 여행은 물론 가계에도 대출금 상환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넌지시 둘러서 말한다

리카는 그 진의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말로 옮기지 못하고

석연찮은 기분은 그대로 가벼운 불쾌감이 되어 리카의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남편,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도무지 모르겠어. 혹시 일하는 걸 내심 반대하는 건가 싶을 때도 있어.” 

리카의 말에, 아키는 어이없다는 듯이 의자에 기댔다.

바보, 내가 너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으스대고 싶은 거잖아?”

그런 건 으스대지 않아도 당연히 아는 거 아냐? 내 월급이라야 이래저래 합해서 10만 엔. 어린애가 봐도 어느 쪽이 많은지 아는데.”

많고 적고가 아니라, 네가 일하지 않으면 가계를 끌고 나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 싫은 거야.”

생각이 들게 하다니, 누구한테? 시부모님? 우리 부모님?”

아니지. 너랑 자기 자신에게지. 실제로 가계는 어떤지 난 모르겠지만, 만약 리카 월급을 대출 갚는 데 썼다고 치잖아

그래서 남편이 아, 리카가 일해서 대출도 빨리 갚을 수 있겠네, 아주 도움이 되는걸, 이라고 한다면 말이야

인정하는 게 되잖아. 리카가 일하지 않으면 대출이 빨리 끝나지 않는다는 걸

남편만의 월급으로는 어림없다, 즉 남편은 무기력해지는 거지.”

 

   

   

리카는 은행에 거액의 정기예금이 있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모두가 그렇다고는 하지 않겠지만그래도 확실히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사람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통장을 리카에게 맡긴 나고 다마에, 야마노우치 부부 등

해맑게 웃고, 목소리가 거칠어지지 않고, 사람을 밀어내지 않고, 쉽게 사람을 믿고

악의 같은 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이 누군가가 자신을 상처 입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눈곱만치도 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돈이라는 폭신폭신한 것에 둘러싸여 살아왔을 것이다.

 

   

 

이때부터 그야말로 리카에게 금액을 적은 숫자는 뭔가 의미 있는 돈이 아니게 되었다. 단순한 덩어리가 되었다

80만 엔을 매달 5만 엔씩 갚으면 이자가 얼마이고 언제 다 갚을 수 있는지, 리카는 생각하지 않았다

정중한 안내를 받고 브랜드숍 예약회에 가서 거기서 사용한 28만 엔이 언제 계좌에서 이체되고

그 계좌에는 지금 얼마 있으며 자동이체 된 뒤에는 얼마가 남는지 계산하는 일도 없었다.

10만 엔만 빌려주면 좋겠다고 한 고타에게 건넨 10만 엔이

거래처 자녀에게 부탁받았다며 게임기를 사 보내달라는 마사후미의 요청으로 사 보낸 게임기 값이

어느 계좌에서 인출된 돈인지, 애초에 그 돈은 누구 것인지 생각하는 일은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어느 은행, 어느 계좌의, 어떤 돈도 다 연결된 것처럼 느껴졌다

나고 다마에의 돈도 소비자금융 ATM에서 인출한 돈도

돈이란 것은 마르지 않는 용수 같은 것으로 느껴졌다

마르는 일 없이 계속 샘솟아, 주위 사람들의 목을 적시는 생활을 돕는 것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만큼 퍼다 쓰면 되는 것.

 

 

 

 

124. 첫차의 애프터 파이브 / 아가와 다이주 ★★★☆☆

 

8월의 마지막 금요일 밤, 휘황찬란하게 반짝이는 불빛만큼이나 다양한 과거와 인간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도시의 번화가에,.비주류의 삶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막차의 신> 작가의 차기작. 소개글처럼 비주류 삶을 다룬 단편집.

 

개인적으로는 <막차의 신>보다 별로였고, 성매매 미화가 너무 심하다.

 

 

노란색 삼륜 택시가 손님을 기다리는 중심가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빛바랜 파라솔이 늘어서 있고

그 밑에서는 사람들이 장사를 하고 있었다. 약탈의 대상이 될 정도로 재고가 많은 상점은 그곳에 존재할 수 없다.

이 지역에는 가난한 사람만 살 수 있어요.”

조금이라도 넉넉해진 걸 알면, 얼마 안 되는 그 부가 표적이 되어 결과적으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재산은 평준화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범죄가 부의 재분배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돈을 손에 넣은 사람은 이곳을 떠나야만 하는 숙명에 놓이죠.”

 

 

밑바닥까지 추락하면, 기어오를 수가 없거든.”

밑바닥까지 추락하면 기어오를 수가 없다. 그런 밑바닥은 곳곳에 널려 있다.

집이 없으면 취직할 수 없다. 직장 경력이 없으면 취직할 수 없으니, 애당초 직장 경력을 만들 수가 없다

경력이 잠시 끊기기만 해도 일자리를 못 구할 때가 있다.

그리고 몸이 더러우면 대중목욕탕에 못 들어오게 한다.

생각해본 적도 없지만, 분명 거기에서 다시 기어오르기는 꽤 힘들겠지.

아마 더러워도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는 없다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인생은 과연 어떠할지 좀처럼 상상되지 않았다.

 

 

 

 

125. 체체파리의 비법 /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

 

진짜 별로였음. 꾸역꾸역 읽었다. ~중반까지는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가 후반부에 가서야 아 이런 내용이었구나 하는 거의 반복. SF는 정말 내 취향에 안 맞는다.

 

표제작인 체체파리의 비법은 그래도 좀 흥미진진했다. 마지막 반전이 좋았음.

 

 

 

 

126. 이사 / 마리 유키코 ★★★☆☆

 

작년? 올해 상반기?에 읽었던 <아무튼, 스릴러>에 나오는 이야미스 미스터리의 대표 작가라길래 읽었다. 단편집이라 가볍게 후루룩 읽을 수 있다. 확실히 기분 나쁘긴 하지만, 남작가들의 성범죄 칠갑처럼 몸에 벌레 기어다니듯 기분나쁜 게 아니라 괴담 읽은 듯한 으스스한 기분나쁨이라 그래도 쉽게 떨칠 수 있다.

 

(이야미스: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미스터리 장르. 일본어의 이야'いや'mystery를 합친 단어다. 싫음을 뜻하는 일본어 이야와 미스터리의 미스를 결합했다. 인간의 내면과 정교한 심리 묘사에 치중하여, 읽으면 읽을수록 기분이 불쾌해지고 침전되는 미스터리를 말한다.)

 

마지막에 그동안의 모든 단편을 대통합해서 정리하는 듯한 이야기가 있으니 그 전 단편들 읽을 때 주의깊게 읽어두면 좋을 듯. 나는 앞내용을 다 까먹어서 계속 왔다갔다 하면서 읽어야 했어.

 

 

 

 

127. 결혼식 날 / 윈스턴 K. 막스 ★★☆☆☆

 

짧은 SF단편. 남자의 수가 줄어들어 일부다처제가 된 사회, 남자 한 명과 결혼하려면 여자들은 피나는 노력을 쌓아야 한다. 뭔 설정이야... 싶다가 마지막의 반전에 꽤 놀랐음.

 

 

 

 

128. 폴리팩스 부인과 꼬마 스파이 / 도로시 길먼 ★★★☆☆

 

자연에 둘러싸인 조용한 호텔식 병원에서 휴양하러 간 폴리팩스 부인, 하지만 진짜 목적은 그곳에 숨은 플루토늄 도둑을 찾아내고, 위험에 빠진 세계를 구해 내는 것이다. 미리 잠복해 있던 요원이 무참히 살해당한 가운데 휘황찬란한 호텔식 병원에 도착한 부인에게 수상쩍은 꼬마가 접근해 오는데……. 과연 폴리팩스 부인은 무사히 세계 평화를 지켜 낼 수 있을까?

 

 

폴리팩스 부인 네 번째 시리즈! 이제 눈치챈 건데 제임스 본드가 편마다 본드걸 바꾸는 것처럼 폴리팩스 부인도 권마다 잘생긴 청년을 바꿔 끼워. 그리고 그 청년들은 모두 폴리팩스 부인한테 매료돼서 부인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하고 감탄해. 그런데 인정! 폴리팩스부인 진짜 케미여신;; 다정하고 사랑스럽고 막 갓 구운 쿠키냄새 날 거 같고 그런데 담력 엄청 쎄서 웬만한 요원들도 긴장하는데 혼자 여유롭고... 세계최강 할머니ㅠㅠ

 

 

로빈이 갑자기 눈을 가늘게 뜨며 낯빛을 바꿨다

저기요, 부인. 지금 이 상황은 뭔가 잘못됐어요. 제 말은, 부인 말씀입니다

부인 방에서 도둑을 발견했으니 분명 히스테리를 일으키시든가 눈물 바람을 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대다수 여성들은 지금쯤이면 비명을 지르거나 충격에 빠졌을 텐데 말이에요

부인은 여기 앉아서 저한테 코코아를 권하시거나 제 작업 기술에 관해 묻고 있어서는 절대, 절대 안 된다고요.”

나는 자기 일을 잘하는 사람들한테 늘 관심이 가거든.” 부인이 위엄 있게 말했다.

 

 

그런데 폴리팩스 부인이 자비야의 쿠데타를 머릿속에 그려 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그것은 여전히 추상적인 그림을 넘어서지 못했다. 살과 뼈가 부족한, 기하학적 도표였다

부인은 역사를 만들거나 만들지 않는 데에 아무런 열의도 느끼지 못했다

지배자들은 투표, 노화 또는 폭력을 통해 권력을 얻거나 잃었다

그들은 한순간의 불멸성을 위해 발버둥 치다가 결국 속절없이 떠났다

부인은 오히려 역사의 희생양 쪽에 공감을 느꼈다

다른 곳의 무대에서 배우들이 어떤 역을 맡아 연기하고 있든

이 순간 부인에게는 하페즈와 마담 파르비즈의 목숨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했다.

 

 

 

 

129.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유성호 ★★★☆☆

 

20년간 1500건의 부검을 담당하며 누구보다 많이 죽음을 만나 본 법의학자가 죽음과 삶에 대해 고찰하는 에세이. 1부는 법의학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죽음이 법의학적으로 어떻게 분류되는지, 실무에서의 고충은 무엇이 있는지 다루며, 2부는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작가의 고찰을 담아낸다.

 

 

제목 정말 잘 지었다! 보자마자 호기심이 확 들게 함.

 

그냥 미드나 스릴러에서만 접하던 부검/법의학에 대해 실무자의 목소리로 들어 보니 감회가 새롭다. 또 살아 있을 때 미리미리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깊게 와닿음.

 

 

   

자살 행위를 하는 자살자들에게는 공통된 생각 하나가 있다

바로 많은 경우 자살을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나만 없어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데 

실제로도 자살자의 유서를 분석해보면 그러한 생각이 지배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자살을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보는 것은 사실상 그것에 대해서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또다시 자살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는 대중매체의 영향이 크다.

 

  

 

또한 자살이 특별하고 별난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조성되어야 한다

자살은 죽음에 대한 생각에 맞설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통해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사회적 재원을 이러한 곳에 쓰는 것을 우리 사회 모두가 적극적으로 지지해주기를 바란다.

 

 


이러한 물질적심리적 정리는 삶의 정리라는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자신의 책임, 권리, 의무에 대한 여러 가지 귀속을 마쳐야 편안히 죽음을 맞을 수 있다

사실상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미처 다 정리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

이 두 가지 정리가 잘 안 되기 때문에 죽음을 느닷없이 맞이하게 된다

나의 스토리를 스스로 종결하지 못하고

나의 내레이션을 마지막으로 장식하지 못하고 남이 대신 마치게 하는 것이다

지금껏 내 이야기는 모두 다 내가 썼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내 선택에 의해서 대학을 가기도 하고 안 가기도 하고

여러 인생행로를 내가 만들어 여기까지 왔는데 

왜 삶의 가장 중요한 마지막 스토리를 내가 못 쓰고 다른 사람이 쓰게 하는 것일까

내 인생의 마지막은 반드시 내가 종결지어야 한다.

 

 

 

 

130. 딩씨 마을의 꿈 / 엔롄커 ★★★★☆

 

중국의 한 마을에서 비위생적인 헌혈 바늘을 사용해 에이즈에 집단 감염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평범한 시골 마을이 매혈을 통해 병에 감염되어 서서히 쇠락하는 동안 정작 그 매혈로 돈을 번 중개인은 그 죽음을 바탕으로 돈을 더욱 불리며 부자가 되어 가는 냉혹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그려낸다.

 

 

읽으면서 가슴이 답답해졌던 소설. 그렇다고 시종일관 답답하기만 한 건 아니고, 병에 걸려 죽어가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과 생에 대한 투지도 엿보임. 화자는 죽은 아들이지만 사실상의 주인공은 부패한 중개인의 무력하지만 양심이 살아 있는 할아버지라고 생각된다.

 

한 번은 읽어 보면 좋을 책. 인간에 대한 깊이감이 살아 있다.

 

 

 

(작가 서문) 글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피고가 된 후로 저는 법원의 재판 과정을 통해 

저의 글쓰기와 딩씨 마을의 꿈이라는 책이 중국에서 어떤 죄를 범한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사유 끝에 사실은 작가인 제가 비상을 쟁취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한 마리 새라는 것을

딩씨 마을의 꿈과 저의 글쓰기가 사실은 비상을 쟁취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새의 울음소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딩씨 마을의 꿈은 현실을 쓴 것인 동시에 꿈을 쓴 것이고

어둠을 쓴 것인 동시에 빛을 쓴 것이며환멸을 쓴 것인 동시에 여명을 쓴 것이었습니다

제가 쓰고자 한 것은 사랑과 위대한 인성이었고, 생명의 연약함과 탐욕의 강대함이었습니다

인류의 생존과 발전을 둘러싸고 있는 고난을 극복하고 선과 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영혼의 교육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과 내일에 대한 기대와 인성의 가장 후미진 구석에 자리한 욕망의 

그 꺼지지 않고 반짝이는 빛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작품이 국가의 명예에 손상을 입혔다고 한다면 

그건 제가 이 글을 쓰기 전에 생각한 바가 아니라글이 완성된 후 독자들의 열독 행위에 기인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제 글쓰기에 대한 비평이나 비판이 아니라 문학에 대한 모종의 포폄(褒貶)과 칭송일 것입니다.

때문에 저는 이 자리를 빌려 가장 진지한 자세로 한국 독자들께 

딩씨 마을의 꿈은 한 편의 소설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어떤 몸부림과 그 몸부림으로 인한 울음이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이런 울음은 피를 토하는 날카로운 외침이자 문학의 높은 가지에 엎드려 토해내는 잠꼬대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비상하게 되었을 때의 노랫소리이자 천 리를 날아간 뒤 죽음을 맞게 되었을 때의 재잘거림입니다

또한 이 울음은 사실을 전하기 위한 몸부림이자, 그 몸부림 속에서 던지는 글쓰기에 대한 질의이며 탐구입니다.

존경하는 한국 독자 여러분, 이 작품을 읽기 전에 먼저 강한 심장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새의 몸부림을 느끼고 몸부림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울음과 잠꼬대를 경청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03, 중국 베이징에서

옌롄커

 

  




131. 지상 최대의 내기 / 곽재식 ★★☆☆☆

 

SF단편집인데, 전체적으로 재미가 없다... 관료주의를 풍자한 단편이 많음.

 

 

 

 

132.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1 / 더글러스 애덤스 ★★☆☆☆

 

OH... 재미가 없군요. 꾸역꾸역 읽었습니다....... 이런 블랙유머는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5편까지 있다는데 1편에서 하차.

 

 

 

 

133. 붕대 감기 / 윤이형 ★★★★★

 

계층, 학력, 나이, 직업 등이 모두 다른 다양한 여성들의 개별적인 서사가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불법촬영 동영상 피해자였던 친구를 보고도 도움을 주지 못했던 미용사 지현, 영화 홍보기획사에 다니는 워킹맘이자 의식불명에 빠진 아들 서균을 둔 은정, 그런 서균과 한반인 딸 율아의 엄마 진경, 진경의 절친한 친구이자 출판기획자인 세연 등 바톤터치를 하듯 연결되는 이들 각자의 사연은 개인의 상처에서 나아가 사각지대에 자리한 우리 사회의 환부에까지 가 닿는다.

 

정말 좋았다! 2020년에 읽은 책 중 베스트5에 드는 책. A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B가 만난 C의 친구인 D가 보는 세상과 그 시각을 같이하는 E 그리고 그 친구 F... 이런 식으로 다양한 생각과 삶의 방식을 지닌 여성들의 이야기가 쭉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처음의 화자로 되돌아오며 마음을 울리는 수미쌍관을 맺는다.

 

인간에 대한 깊이와 철학이 엿보이고, 또 다양한 여성들의 삶의 방식을 긍정하고 포용하는 따뜻한 시선에 위로가 됨. (넷상에서 접하는) 페미니즘이 너무 갈래갈래 나누어지는 거 아닌가? 우리끼리 편 갈라 싸우면 안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때 읽으면 방향을 잡을 수 있고 좋다.

 


 

   진경은 바보가 아니었다. 세연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은 뒤로

그 말을 전할 때 세연의 눈빛과 표정을 본 뒤로, 세연이 침묵 속에서 자신을 평가하고 있다고

친구가 친구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비혼 여성이 기혼 여성을 평가하고 있다고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하루의 피로에, 일터에서 매일 만나야 하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발산해내는 과도한 에너지에

휴식 없는 생활에 지쳐 전혀 좋아하지도 않고 말을 길게 나누고 싶지도 않은 남자 페친들과 

영혼 없는 웃음으로 범벅이 된 댓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남편 자랑을 하는 걸 비웃지 않고 맞장구를 쳐주고 있을 때

새로 산 립스틱의 발색 샷을 여러 장 올리고 있을 때

가족 한가운데에서 혼자일 시간도 없이 외롭다고 끄적이고 있을 때

진경은 달가워하지 않는 세연의 시선을 느꼈다. 판단의 대상이 되는 일은 즐겁지 않았다

 

 

세 명의 학생 모두 화장기 없는 얼굴에 투블럭 머리를 하고 있었다

세연의 스타일도 같은 것을 보고 그들은 은근히 반가워하는 분위기였다. 롤 모델을 찾고 있는 게 분명했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서 일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는지, 어떻게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지를 묻기도 했다

그런 그들 앞에서 세연은, ‘저는 여러분이 찾고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하고 말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성공하겠다는 의지나 정상으로 올라가겠다는 야망 같은 것은 없었음을

그저 어찌어찌 흘러오다 보니 이런 모양새로 살게 되었고 

그것이 타인의 눈에는 성공혹은 야망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그냥 하지 않을 특별한 이유가 없어서어찌어찌 걸어온 길이었음을

그리고 지금은 일이 많아서 즐겁기는 하지만 일 때문에 과호흡 증상에 시달리고 있기도 하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하나는, 외모 강박과 강요된 사회적 여성성을 벗어나고자 하는 젊은 여성들의 움직임은 분명히 옳다는 것이었다

화장대 앞에서 거울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만족스럽지 않아서, 얼굴이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온갖 것들을 바르고 지우고 바르는 일을 그만둘 수가 없어서, 제발 이걸 그만두게 해달라고

신에게까지 빌었던 시간들을 세연 자신이 겪어보았기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생머리를 길게 기르고 몸에 붙는 옷을 입어야만 한다는 것은, 세연 자신에게는 없는 강박이었으나

주위를 돌아보니 과연 거의 모든 젊은 여자들이 그런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생각이었는데

이제 막 시작된 이 흐름을 따라잡아 거기 동참하지 못하면 자신은 또다시 왕따가 되리라는 것이었다.

또다시 혼자가 되고, 또다시 걸레라는 말을 듣고, 또다시 배척을 받을 것 같았다

세연은 이제 십 대가 아니었지만, 세연의 마음 일부는 여전히 고등학교 때의 그 깜깜한 터널 속에 고착되어 있었다

공포가 세연의 깊은 곳을 차지하고 이 흐름을 따르라고 명령했다.

 

 

— 옛날에는 너무 지겨웠는데. 세상이 어째서 이렇게까지 안 변할까

대체 어떻게 해야 이게 변할까 싶었는데. 그런데 지금은 너무 빨라

빨라서 어지럽고 울컥거릴 때가 많아그런 걸 보면 네가 하는 말들이 틀린 게 없는 것 같아

린 승객이었을 뿐, 그동안 이 버스에서 한 번도 운전대를 잡아본 적이 없었던 거지

그런데 이제 처음으로 스스로 운전을 할 기회가 주어진 거야. 그래서 이렇게 어지러운 거겠지

방향 하나하나, 신호 하나하나, 승객들 한 명 한 명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니까

세연이 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 버스를 운전하는 사람이 될 거잖아

나는 아무 이름도 갖고 싶지 않고, 끼워달라는 말도 하고 싶지 않아

나는 단지, 표를 사는 법을 몰라서, 멀미가 너무 심해서, 집을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아니면 그냥 길을 잃어서

멍한 얼굴로 읽을 수 없는 노선표를 들여다보며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들 곁에 있고 싶어

자기 삶이 잘못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무섭고 외로워서 그 사람들이 울고 있을 때, 다가가서 그렇지 않다고 말해줄 거야.

그 사람들에게도 누군가가 필요하니까.



나도 그래 진경아, 세연이 중얼거렸다

나 역시 무섭고 외로워버스이게 버스라면 나 역시 운전자는 아니야

난 면허도 없고, 그러니 운전대를 잡을 일도 아마 없을 거야그건 우리보다 젊은 사람들이 할 일이야

하지만 우리 이제 어른이잖아. 언제까지나 무임승차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나는 최소한의 공부는 하는 걸로 운임을 내고 싶을 뿐이야

어떻게 운전을 하는 건지, 응급 상황에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정도는 배워둬야 운전자가 지쳤을 때 교대할 수 있잖아

너는 네가 버스 바깥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우리 모두가 버스 안에 있다고 믿어

우린 결국 같이 가야 하고 서로를 도와야 해

그래서 자꾸 하게 되는 것 같아, 남자들에게는 하지 않는 기대를.

 

 



 

134. 녹나무의 파수꾼 / 히가시노 게이고 ★★☆☆☆

천애고아, 무직, 절도죄로 유치장 수감 중. 그야말로 막장인생 그 자체인 청년 레이토. 그런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묘한 제안이 찾아온다. 변호사를 써서 감옥에 가지 않도록 해줄 테니 그 대신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 제안을 받아들인 레이토 앞에 나타난 사람은 지금까지 존재를 알지 못했던 이모. 그녀는 레이토만이 할 수 있다며 월향신사라는 곳의 녹나무를 지키는 일을 맡긴다. 그 녹나무는 이른바 영험한 나무로,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러 온다. 그러나 단순히 기도를 한다기엔 그 태도에는 무언가 석연찮은 것이 있는데...

 

 

스릴러가 아니라 따뜻한 미스터리. 하지만 그렇기에 지루하고 중반부가 늘어진다.

 

하지만 마지막의 반전은 작가가 인간의 다면성+캐릭터의 깊이감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갖고 있다는 걸 보여줌.

 

 

 

 

135. 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 / 리안 모리아티 ★★☆☆☆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로 이름난 최고급 건강휴양지 평온의 집’. 이곳으로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아홉 명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일상을 짓누르던 스트레스와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명상과 수련을 통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기꺼이 차도, 휴대폰도 허용되지 않는 열흘간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이제부터 외부 세계와 접촉하거나 일탈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여기서 시키는 대로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서로를 알아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매혹적인 겉모습 뒤로 어둠을 감추고 있는 평온의 집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프랜시스는 모든 의심을 떨치고 평온의 집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몰두해야 할까, 아니면 가능할 때 하루라도 빨리 도망쳐야 할까? 열흘 후, 과연 아홉 손님들은 자신들의 바람대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이 집을 나갈 수 있을까?

 

 

초중반부가 너무 늘어지고 재미없었다.

 

이제 이 작가 건 읽지 말아야겠다.

 

 

 

 

136. 정말 이상한 침대 / 윌키 콜린스 ★★☆☆☆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이 생각나는 단편.

 

 

 

 

137. 피구왕 서영 / 황유미 ★★★☆☆

 

표제작인 피구왕 서영은 정말 좋았다. 그 나이 또래 애들 간의 알력과 압박, 눈치 등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인간관계를 정말 잘 그려냈다. 하지만 다른 단편들은 별로였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는 아이.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재잘대는 현지에 대한 서영의 인상이다.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거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거슬리는 애가 튀어나오더라도 사뿐히 밟아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지는 아이

확실히 현지는 옆에 있는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서영은 이따금 보이는 윤정의 덤덤한 태도에 도리어 섭섭함을 느꼈다

학교에서 따돌림 아닌 따돌림을 당하는 윤정에게 당당하게 다가가지도 못하면서

윤정이 자신과의 관계를 가볍게 여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섭섭했다

모순이라는 걸 알지만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138. 착한 소녀의 거짓말 / J.T.엘리슨 ★★☆☆☆

 

100년이 넘은 오랜 역사를 가진 명문 여성 기숙학교. 워싱턴 D. C.의 엘리트 계층인 상원의원과 하원의원, 외교관, 정부 고위직과 그 밖에 억만장자의 딸들이 모였고, 오래된 건물만큼이나 기괴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구드 학교에 키 180센티미터의 아름다운 영국 소녀가 전학을 온다. 그러던 어느 날 안개 낀 새벽 졸업 가운을 걸친 소녀의 시신이 교문에 걸리면서 소녀들의 진실과 거짓말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초중반부는 재미있었으나 후반부는 다소 맥이 빠진다.

 

 

 

 

139.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 구라치 준 ★★★☆☆

 

기상천외한 발상이 돋보이는 개성적인 미스터리 작품집.

 

개인적으로는 <ABC 살인사건><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이 제일 좋았다.

 

표제작인 <두부 어쩌구>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과학기술개발부대가 배경이니 주의 (혐한이나 우익스러운 내용은 없지만 배경이 배경이라...)

 

 

 

 

140. 보기왕이 온다 / 사와무라 이치 ★★★☆☆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던 다하라 히데키와 가나. 어느 날 히데키의 회사에 아직 아무에게도 이름을 알려주지 않은, 배 속에 있는 소중한 아이 치사의 일로 볼일이 있다며 손님이 찾아온다. 게다가 손님의 방문을 알려준 후배 다카나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점점 상태가 나빠진다. 이후에도 이상한 전화나 메일이 오는 등 괴이한 일이 반복되자 히데키는 어렸을 적 자신을 찾아왔던 보기왕이라는 괴물을 떠올린다.

 

소름 끼치는 괴물 보기왕. 하지만 어떻게 생겼는지도, 정체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그 괴물이 왜 이제 와서 나를 만나러 오는 걸까. 보기왕은 시간이 갈수록 진화하고, 히데키의 아내와 딸의 이름까지 언급하면서 그를 점점 공포의 지옥으로 밀어 넣는다.

 

1부의 히데키 입장에서의 서술과 2부에서 밝혀지는 내용의 반전이 재미있다. 1부에서 어 이거 좀 이상한데...? 싶었던 것들이 전부 폭로되는 데서 제법 카타르시스가 있다.

 

 

 

이 세상에 참아도 되는 일은 없단다.”

무슨 뜻인지 몰라서 가만히 있자 할머니가 입술을 떨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계속 참기만 하면 마음속에 나쁜 게 쌓이는 법이지. 오랜 세월이 지나면 그 대가가 온단다

계속 참는 게 좋은 일은 아니야. 나는 참았어. 그러니까 용서해줄 거야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란다. 세상은…… 이 세상은.”

 

 

괴물이나 혼령은 대부분 빈틈으로 들어오죠.”

빈틈요?” (...)

가족 간에 생기는 마음의 빈틈이에요. ‘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마음에 골이 있으면 그런 걸 부르게 되거든요. (...) 

밝고 편하고 즐겁게 지내면 결과는 완전히 달라져요. 좋은 쪽으로 굴러가는 거죠.”

밝게 지내면 된다. 즐겁게 지내면 아무 문제가 없다.

어린아이를 속이는 것처럼 유치하고 단순한 원리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리라

어둡고 칙칙하게 가라앉은 가정은 아무도 바라지 않을 테니까

즐겁지 않은 것보다는 즐거운 것이 확실히 좋을 테니까.

그렇군요. 하지만 그게 가장 어렵지 않을까요?”

웃으면서 말하자 그녀는 식탁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그래요. 정말 어려운 일이죠.”

 

 

 

141.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 구병모 ★★★★☆

 

분량이 짧아서 읽기 편하다.

 

처음에는 서로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를 이야기들이 교차해서 나오다가, 점점 그 이야기 간에 교차점이 생겨나며 마지막에 뭉클하게 완성된다.

 

호흡이 길어서 호불호가 갈리지만, 나는 구병모 작가님 문장을 정말 좋아한다. 이번 편에서도 유려하고 적확한 묘사가 돋보인다.

 

 

 

흘러넘친 끝에 고갈되었으나 일상의 바닥에 들러붙은 꿈의 침전물을 목격한 어느 날

충동적으로 몸에 새긴 샐러맨더에 대해. 샐러맨더 한 마리를 몸 안에 키우면서,

잃었던 자신감과 의욕이 다시금 심장에 고이는 듯했던 날들에 대해

저녁놀이 건드리고 지나간 것 같은 몸통의 그러데이션과

그 무늬 아래 타래를 틀고 도사린 이야기들에 대해.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시미는 자신이 낳은 아이로부터 왜 스스로 물러나 있어야 하는지

누구 좋으라고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졌다. 마침 그때는 불경기에 시미의 회사도 타격을 맞아 

영업 실적이 침체기에 접어들어 지인의 소개로 이직을 고려하던 무렵이었다

업무에 집중도가 하락하면서자연스레 아이에 대한 탐욕이 부풀었다

세상에서는 모성이라는 명찰을 달아주는, 그런 마음이었다

저 귀엽고 똑똑한 아이가오래 떨어져 생활했으므로 실제 똑똑한지는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아이라고, 내가 배 아파 낳은 자식이라고, 정당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싶은 마음

아이의 교복 셔츠를 다리고, 성적 고민도 들어주고, 좋아하는 가수나 싫어하는 반찬이나 

혹시 있을지도 모를 이성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

자신의 경작지에서 싹텄다는 이유로 다소 늦은 물대기를 서두르고 나아가 수확까지 꿈꾼 그 마음을

탐욕 아닌 다른 이름으로 에둘러 부를 방법은 없을 것이다.

 

 

처음 바늘이 들어갈 때 그 낯선 통각에 깜짝 놀라 시미는 하마터면 손을 잡아챌 뻔했으나 

사장이 손을 단단히 쥐고 있어서 손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후로는 아픔에도 친숙해졌다

온몸에 분포한 통점들이 긴 겨울잠에 들기라도 한 것처럼 아픔 대신 쾌감이 번져나가는 걸로 보아

사람들이 오랜 옛날 병을 고치겠다고 이런저런 위험하기까지 한 방혈을 일삼았던 것도 이해가 갔다.

화인도, 그 작곡가나 다른 사람들도 이런 느낌이었으리라고 생각하면

서로 인연이 없는 이들 간에도 기묘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만 같았다

그 모든 것을 상처라고 섣불리 범주화할 수는 없겠으나

상처와 흠집에 매혹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본능 가운데 가장 오래된 불가해였다.

 

 

 

 

142. 페미니즘을 팝니다 / 앤디 자이슬러 ★★★☆☆

 

페미니즘이 상업적으로 포장되고 이용되는 과정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대중문화와 대중매체를 통하면서 본래의 의의가 어떻게 변질되고 퇴색되는지 보여준다. 여성 상위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권이 높아진 듯 보이지만,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권리라는 아주 기본적인 의제를 예전보다 더 자주 언급해야 하는 실상을 꼬집는다.

 

페미니즘 운동의 성과라고 착각할 수 있는 작금의 페미니즘 열풍을 재검토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자고 촉구하는 책이다. 저자는 독자에게 언론에 화려하게 보이는 페미니즘과 현실과의 간극을 냉철하게 보여줌으로써 페미니즘의 현주소에 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완전한 평등을 위해 페미니즘을 어떤 방식으로 지속시켜야 할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페미니즘이 상업적으로 어떻게 이용되는지, 연예인/유명인 개인을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간주하는 "연예인 페미니즘"이 왜 장기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은지, 페미니즘 요소를 끼얹은 상업적 광고나 제품들이 언론에 많이 노출되고 그 수가 점점 늘어 가는 게 정말로 현실의 페미니즘을 진전시키는지, 미디어의 페미니즘과 현실에서의 페미니즘의 괴리감을 냉정하게 분석하는 책. 주로 미국의 Cool Girl 문화에 대해 비판하지만 우리 나라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좀 읽기 어렵긴 한데, 평소에 이런 류의 책을 몇 권 읽어서 베이스가 쌓인 사람이면 읽어 보길 권해.

 

 

 

 

1998년 퍼스트USA 은행이 신용카드 홍보를 위해 

여성의 참정권 획득과 여성이 빚을 질 자유를 연결시킨 것은 굉장히 뻔뻔한 행동이었다

자본주의에 봉사하기 위해 페미니즘의 언어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퍼스트USA 은행은 그 신용카드를 발급받은 사람들이 첫 결제를 하면 여성 연감을 무료로 보내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여성의 권리가 얼마나 신장됐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자주 인용되는 일화가 하나 있다

1970년대 중반까지 미국 여성은 자기 이름으로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없었다

기혼 여성이 신용카드를 쓰려면 공동 서명인(남편 또는 아버지)을 내세워야 했다

그러면 남편 또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카드가 발급됐다

독신 여성, 이혼 여성, 과부가 된 여성들은 카드 발급을 거부당했다

(대개의 경우 이런 기준은 도서관 출입카드 발급에도 적용됐다). 

그래서 1974년 신용기회평등법의 의회 통과는 여성해방이 실현된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그 후로 은행에서는 신용카드를 발급할 때 혼인 여부를 따지지 않게 됐다

여성들은 그들의 돈으로 언제든지 상품을 구매할 권리, 그리고 남성들과 똑같이 빚을 질 권리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상품을 구매하고 소비할 수 있는 권리가 페미니즘과 연결될 때

그것은 시장 페미니즘이라는 새로운 사조의 핵심 교리와도 연결된다.

 

 

여기서 하려는 이야기는 올해의 가장 페미니즘적인 영화라는 극찬이 영화 자체에 관한 논쟁으로 이어지기보다는 

페미니즘을 하나의 상품으로 다루면서 페미니즘에 판매 수치를 매기려 한다는 점이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가 진실한 페미니즘 영화라고 주장하는 기사와 블로그 포스트들은 

글쎄, 사실은……으로 시작하는 기사와 포스트들에 의해 반박당했다.(그중 하나에는 실제로 이런 문장이 있다.

사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는 그렇게 페미니즘적이지 않고, 그렇게 훌륭하지도 않다.”) 

(...)

 이것은 생산적인 대화는 아니었지만 시장 페미니즘의 걱정스러운 측면들을 여실히 보여준 논쟁이었다

걱정스러운 점 하나는 페미니스트라는 용어가 이제 여성을 노골적으로 비하하고

여성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여성을 착취하지 않는 모든 작품에 대한 칭찬으로 통용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어떤 영화가 페미니즘적인가 페미니즘적이지 않은가에 관한 논쟁은

(특히 그 영화가 둘 중 어느 쪽도 의도하지 않았을 경우에)

 페미니즘을 가치관, 윤리, 정치의 집합체가 아니라 

소비할 가치가 있는 상품인지 아닌지에 대한 평가로 바꿔버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리얼리티쇼가 환영받는 이유가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라

여성을 대하는 태도 면에서 절묘한 중간 지대에 머무르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광고와 마찬가지로 리얼리티쇼는 페미니즘을 건너뛰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공공연히 반박하지도 않고, 과도하게 수용하지도 않는다

프로그램에 참가 신청을 하는 것, 다른 여성을 깎아내리는 것, 교활하게 섹스를 지렛대로 사용하는 것 등 

리얼리티쇼 출연자들의 모든 결정은 페미니즘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개인적 결정이다

하지만 선택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문화적 담론 안에서는 

그것이 명백하게 페미니즘에 반하는 결정이라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페미니스트 운동이 정당성을 얻기 위해 연예인에게 의존하는 것은 절망적인 일이다(...)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 갖지 못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페미니즘 운동의 본래적 가치와 정당성을 인정해주기를 바란다

연예인들의 말은 보통 페미니스트들의 말보다 잘 먹힌다

역설적이지만 연예인들은 페미니즘 운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지 않는 사람들로 인식되고

그래서 페미니스트들보다 사회에 대한 편견이 적을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의 발언에 열광한다

흔히 사람들은 엠마 왓슨이 어릴 때부터 부유하고, 좋은 교육을 받았고, 아름답고, 유명했기 때문에

성평등에 관심을 가질 절박한 필요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그녀의 페미니즘을 정당하게 만들어주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회사가 덜 거추장스러운 남자 직원들을 우대하기 때문에 

번번이 승진에서 밀려나는 싱글맘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이야말로 

페미니즘의 정당성에 대한 증거로 해석돼야 마땅하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대중매체는 연예인들을 이용해서 현실의 페미니즘을 걸러낸다.

 

 

여권 신장은 선택 페미니즘(페미니스트가 뭔가를 선택하면 그것은 모두 페미니즘적 선택이다)의 한 측면인 동시에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우회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여권 신장이란 무엇이며, 그것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까지 살펴본 사례들에서 답은 내가 해방이라고 정한 것주로 내가 이익을 본다였다.

  

 

 

메건 다움은 <LA 타임스> 칼럼에서 만약 [페일린이]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칭할 용기를 낸다면 

그녀는 페미니스트로 받아들여질 자격이 있다라고 썼다

이것은 누군가가 자신을 신체적 상해 전문 변호사라고 칭할 용기가 있다면

(상해 전문 변호사도 어떤 집단에서는 페미니스트와 마찬가지로 경멸당하는 단어니까

그 사람은 당장 사무소를 차려도 된다는 것과 똑같이 편리한 논리였다

동시대 여성들에게 낙태의 권리와 피임약 복용의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페일린과 피오리나의 바람은 

수십 년 동안 신체의 자유를 중요한 가치로 인정하고 싸워온 이데올로기와 절대로 동일한 선상에 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폭넓은 견해를 허용하는 빅 텐트 전략은 좋은 것이지만 뭐든지 경계선은 있어야 한다

나는 다른 여성의 신체를 법으로 규율하려는 욕망이 바로 그 경계선이라고 확신한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말해보라고 하면 오늘날 대부분의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라든가 평등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답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사실이다

때때로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이 페미니즘이란 선택권을 가지는 거예요!”라고 소리칠 때마다 나는 혀를 깨물어가며 참는다.

페미니즘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선택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호통을 쳐서 그들이 페미니즘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들고 싶지 않다.

평등은 자유롭고 신중한 선택의 가짓수를 늘려준다. 그리고 선택의 기회를 얻는 사람의 수도 늘려준다

그러나 선택 자체가 평등은 아니다.

 

 

가끔 나는 저메인 그리어(20세기 후반의 가장 중요한 페미니스트 증 하나다)가 보면 기겁할 일을 한다.” 

모순에 빠진 한 여성이 이렇게 말한다. 그러고는 자신이 하이힐과 1950년대 주부들의 키치 의상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이런 식의 고백은 이제 상투적으로 느껴진다. 그 주제가 보정브라, 느끼한 연애소설, 선정적인 포르노 등으로 다양할 뿐이다.

한 여자가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뭔가가 성평등을 향한 자신의 신념에 위배된다고 생각해서 고민한다

(...)

하지만 이런 글들은 하나같이 익숙한 감상으로 마무리된다

이것은 나의 선택이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해 한 일이다. 그러니까 이것도 페미니즘적인 일이다.’ 

만약 그 말이 옳다면 공론장에 그것에 관해 1,500 단어짜리 글을 쓰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이다. (...)

당신이 하이힐을 좋아한다면 하이힐을 신어라. 당신이 하얀 드레스를 입고 결혼하고 싶거나

여자들이 페니스 한 다발에 숨이 넘어가는 포르노를 보고 싶다면, 죄책감을 느끼더라도 그렇게 하라

하지만 그것에 관한 개인적인 에세이를 고행의 증거로 내세우지는 말라.

(...) 

언젠가 우리는 나의 아랫부분 제모제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나의 신념에 위배되는가?’라는 제목이 붙은 

남자들의 에세이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글은 없었다

우리가 호들갑을 떨며 나쁜 페미니스트에세이를 양산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문제는 페미니즘이 재미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있는 문제였다

페미니즘은 원래 재미있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복잡하고 딱딱하며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페미니즘은 심각하다

왜냐하면 페미니즘은 인간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

페미니즘을 욕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은 근본적으로 불평등한 장소에서

당신들에게 아무런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지 않고도 존재할 수 있다고 약속하는 것

바로 그것이 시장 페미니즘이다. (...) 

사실 페미니스트 바디로션, 페미니스트 에너지 음료, 페미니스트 티셔츠를 제조하는 업체들은 

굳이 지금의 사회를 변화시켜서 자신들의 사업을 스스로 끝장낼 이유가 없다.

 

 

내가 이 책 전반에 걸쳐 제기하려고 했던 문제의 핵심은 

페미니즘 운동이 체제를 바꾸려고 하는 데 반해 시장 페미니즘은 개인을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조력자인 시장 페미니즘의 목표는 체제의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로 돌리고 

발랄한 태도로 그 개인들을 위한 상업적인 해결책을 나눠주는 것이다

저임금 노동자가 육아휴직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재미없는 문제를 중심에 놓을 수도 있지만

당신의 힘을 아껴서 당신 내면의 전사에게 전해주는 편이 훨씬 쉽지 않겠는가

시장 페미니즘은 우리가 이전 세대의 삶을 규정했던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의 잔재가 하나도 없는 

하얗고 깨끗한 바닥에서 새로 시작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시장 페미니즘은 우리가 학교에서, 직장에서, 연애에서, 리더십에서 벽에 부딪친다면 

그것은 젠더 때문이 아니라고 우리를 설득한다

그것은 자존감을 높이고, 자신감을 얻고때로는 

라이프코칭을 받아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라고 시장 페미니즘은 말한다.

 

 

 

 

 

143. 투명 고양이 / 운노 주자 ★☆☆☆☆

 

... 세상에. 단편집인데 이렇게 재미없을 수가 있나.

 

 

 

 

144. 280/ 전혜진 ★★★★★

 

임신 후 나의 몸, 가족, 회사, 사회와 끊임없이 부딪히는 네 친구의 고난과 극복의 과정을 그린 여성 공감 소설.

 

임신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 임신을 고민하는 사람, 막연히 자식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저 생각에서 그치는 사람, 지금은 임신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 이 네 명의 여성이 각자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하게 되면서 겪는 생생한 이야기.

 

 

작가가 출산을 해본 사람이라 임신 기간 동안 겪는 사회적, 신체적, 심리적 고충을 굉장히 생생하고 와닿게 묘사했다. 임신을 준비하는 사람이든 준비하지 않는 사람이든, 우리 사회에서 아기를 낳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서 인공수정 과정이 신체적으로 얼마나 무리가 가는지 알게 됐다. 난자 수를 억지로 늘리는 과배란 때문에 배에 복수가 차질 않나, 다리가 붓질 않나, 매일 같은 시간에 셀프로 배에 주사를 놔야 하질 않나... 돈도 돈이지만 여자가 감당해야 하는 신체적 부담감이 장난이 아니다.

 

 

 

결국은 모두 한 가지로 귀결되는 이야기였다.

아이를 낳고도 인생이 망가지거나 나빠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

만약 그게 있다면, 선뜻 아이 낳을 결심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아이가 주는 행복이 커도

자신의 인생 자체가 망가지거나 너무 많이 나빠져 버린다면 감히 시도할 수 없는 일이니까.

막말로 한 번 물어보지도 않고 이 험한 세상에 데려오려는 건데, 좀 더 준비하고 싶다는 게

적어도 불확실성만이라도 줄이고 싶다는 게 그렇게 큰 욕심일 리가 없다


  

 

이 주임, 단축 근무 쓴 적 없지?”

?”

, 법 바뀌어서 작년부터는 임신한 공무원들, 단축 근무 쓸 수 있잖아. 그거 쓴 적 있어, 없어.”

없어요.”

그러면 안 돼.”

지원은 눈을 깜빡였다.

회사에서, 갑작스레 사람이 빠진다고 계장님이나 같은 부서 사람들이 한탄하는 소리들만 들었지,

그런 걸 챙기라는 말은 또 처음 들었다

육아 휴직이나 그런 거 처음 생기고, 1, 3, 그렇게 늘어나도, 처음에는 잘 못 썼어

쓰면 회사 그만둬야 하는 거 아닌가, 영영 승진 못 하는 거 아닌가. 그래도 한 명 두 명 쓰면서,

지금은 우리 회사에서는 아이 낳으면, 못해도 반년, 대체로 1년은 쓸 수 있게 되었잖아?”

그렇죠.”

교통계 박민지 순경도 임신했다더라. 들었어? 근데 이 주임이 안절부절못하면 박 순경은 정말 아무것도 못 하지

자기보다 높은 사람이 복지를 못 챙겨 쓰는데, 신경 쓰여서 쓸 수 있겠어?”

 

 

지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선경아, 우리나라는 낙태 금지 아니었어?”

그게시험관으로 여럿이 착상되었을 때 조절은 할 수 있대.”

재희가 대신 대답했다. 은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 그건 선경이 일이랑 상관없이 아주 화난다

초기에 하는 낙태는 생명 경시고, 초기에 세쌍둥이 중 하나를 탈락시키는 건 조절이고?”

 

 

자녀의 성과 본은 원칙적으로 아버지를 따르도록 하되부부가 혼인신고를 할 때 

태어날 자녀가 어머니 성을 따르기로 협의한 사실을 신고하면 아이에게 어머니의 성을 물려줄 수 있다

여기까지는 재희도 아는 부분이다. 그리고 상훈도 딱히 반대하지 않았기에

혼인신고를 하러 가면서 그냥 신고서에 체크를 했다. 근데 이제 그다음부터가 골치 아팠다

정말 후회하지 않겠느냐는 잔소리부터 시작해서, 협의서를 가져와라, 인감증명서를 가져와라

무슨 공증을 해라, 여기 구청에서 몇 년 동안 혼인신고 업무를 했지만 이걸 정말 체크해 온 부부는 당신들이 처음이다

위장결혼 아니냐, 이혼할 것 아니냐, 그렇지 않아도 이혼하면 여자들이 위자료나 양육비 받기도 쉽지 않은데 

엄마 성 따른 애를 누가 챙겨 주겠느냐, 세상 사람들이 이혼했거나 혼외자인 줄 안다

애의 장래를 생각해라, 정말 끝이 없었다

만약 그때 재희가 언젠가 아이를 낳고 말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다면

결코 이 상황에서 물러서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그럴 것도 아닌데

그저 제도가 있으니 통계에 한 커플 더 보태자는 생각으로 체크했다가 

이 끝없는 정신 공격을 당할 이유는 없었다

재희는 화를 내고, 혼인신고 서류를 고쳐 쓰고쓰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이걸 체크해 온 부부가 처음인 게 아니라누가 이런 걸 제출해도 이렇게 달달 볶아가며 통과를 안 시켰던 거겠지.

 

 

며칠 전에 우리 지구대 놀러갔는데 김 순경이 그러는 거예요

, 애 안고 다니는 엄마한테 어이쿠, 애가 귀엽네 하고 다가와서는 가슴이나 엉덩이 만지고 도망가는 남자들도 있다고.”

, 그거 진짜.”

은주와 재희가 경악했다. 지원이 주먹을 불끈 쥐다가, 다시 한숨을 푹 내쉬며 다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근데 이해가 가요. , 언니도 전에 버스에서 누가 때리려고 할 때

평소 같으면 차라리 한 대 맞고 돈 내놓으라고 하겠는데 임신한 채로는 그럴 수가 없었다고 했죠

내가 그게, 지금 이해가 가요. 태어난 지 두 달인데도 아직도 머리가 이렇게 말랑말랑해요.

누가 손가락을 확 잡아당기기만 해도 부러질 것같고. 이쯤 되면 애한테 해코지할까 봐

백주대낮에 성추행을 하고 도망 가도 소리도 못 질렀다가 지구대에 신고를 하는 게 이해가 가고도 남아요.”

 

 

. 그래서 이것저것 대출이랑 알아보면서도, 그런 생각도 하는 거죠

모두가 이럴 때 이사를 갈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뭐지? 그런 거.”

은주와 재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은 이 모든 이야기는, 세상에 대한 걱정과 고민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 같다

아이를 키우는 데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나 혼자 잘하고

좀 더 좋은 동네로 이사하는 정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까

결국은 아이가 자라게 될 생태계 자체를 좀 더 낫게 만드는 일이 필요하니까

세간에서는 마치 애 엄마들의 집단이기주의처럼 여겨지는 맘카페가 

의외로 이런저런 기부 활동 같은 것에 앞장서는 것도

엄마들이 만든 시민단체가 유치원 비리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것도, 아마도 같은 맥락일지도 모른다

일단은 내 아이가 잘 자라기를 바라겠지만

더 나아가 내 아이가 자랄 세상이 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다.

 


 

 

 

145. 인체모형의 밤 / 나카지마 라모 ★★★★☆

 

바라보는 것만으로 타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안(邪眼), 도청이 취미인 남자가 벽 너머로 들은 이웃집 여자의 상냥한 목소리의 정체, 코가 지나치게 예민해서 고기도 먹지 못하는 여자가 어느 날 자기 집 욕실에서 맡은 돼지육수 냄새... 어느 폐가의 인체 모형이 들려주는 온몸의 기관들에 얽힌 괴이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문장이 탁월하고, 하나하나의 이야기마다 흐름이 매끄럽고 반전도 좋다. 다만 몇몇 이야기는 아쉽긴 하다. 특히 마지막 이야기는 그래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란 의문이 들게 만든다.

 

 

 

과연 세르피네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연과 공존하며 태어났을 때부터 극복해야 할 빈곤도 차별도 무엇도 없다

눈앞의 풍요로운 바다와 느긋하게 흐르는 영원만이 있을 뿐.

인간은 그런 환경에 태어나면 과연 행복할까. 저주받은 땅에서 온 나나 나오미는 세르피네가 낙원 같음을 잘 안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불행이라는 개념을 모르는 섬의 주민들은 행복의 의미를 알까.

남아도는 시간과 무위 속에서 인간은 퇴화해 가는 게 아닐까.

 

   

 

그래도 충분히 스릴이 있었다. 타인의 사생활을 훔쳐 듣는다는 죄책감이 더더욱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또 하나는 이 상황이 현실이란 점이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 정보를 제공해서 밥을 먹는 내게 

드라마가 아닌 실제 남녀의 욕설이나 우는 소리는 신기한 흡인력이 있었다

들려주기를 전제로 하지 않은 사적인 공간의 대화. 그것이 이유를 알기 힘들수록

논리적으로 맞지 않아서 해독 불능일수록 기묘한 현실감이 느껴졌다.

성적인 흥분은 아니지만 굳이 제일 가까운 감각을 든다면 외설과 무척 비슷했다

성적인 요소는 하나도 없는데도 욱신거리는 듯한 설렘이 있었다.

 

 

 

 

 

146. 인격 전이의 살인 / 니시자와 야스히코 ★★★☆☆

 

캘리포니아의 한 쇼핑몰에 위치한 조그마한 패스트푸드점 치킨 하우스’. 이곳에 모여든, 국적도 인종도 성별도 완전히 다른 7명의 남녀는 갑작스런 대지진으로 이상한 시설에 빠지게 된다. 그곳은 사람의 인격을 교체하는 매스커레이드현상을 연구하는 미국 정부의 은밀한 연구 시설. 비밀의 장치가 일으킨 인격전이 현상에 따라 그들의 인격이 서로서로 교체된다. A의 몸엔 B, B의 몸엔 C, C의 몸엔 D... 더욱 문제인 건 이 인격 전이가 비정기적으로 계속 일어난다는 것. 이런 소동의 와중에 격리된 장소에서 살인까지 일어나는데....

 

 

초중반부는 정신이 없었고, 특히 하이라이트가 되어야 할 인격전이자들 간의 싸움이 정말 정신없었다. 하지만 그냥 정신 놓고 읽다 보면 사람이 점점 죽어가서 알아서 캐릭터가 적어지는지라 후반부에 가면 편해지고, 또 후반부 전개가 정말 흥미진진했다.

 

 

 

 

147. 바깥은 여름 / 김애란 ★★★☆☆

 

언제 읽어도 문장이 너무 좋은 김애란 단편집.

 

우울해질 걸 각오하고 봤는데, 다행히 <비행운>보다는 덜 우울했다.

 

<가리는 손>이 정말 섬뜩했다.

 

 

아내는 연주를 끝낸 뒤 수천 명의 기립 박수를 맞은 피아니스트마냥 울었다

사람들이 던진 꽃에 싸인 채. 꽃에 파묻힌 채.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는 사람마냥 내가 붙들고 선 벽지 아래서 흐느꼈다

미색 바탕에 이름을 알 수 없는 흰 꽃이 촘촘하게 박힌 종이를 이고서였다

그러자 그 꽃이 마치 아내 머리 위에 함부로 던져진 조화처럼 보였다

누군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악의로 던져 놓은 국화 같았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탄식과 안타까움을 표한 이웃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기 시작했는지

그들은 마치 거대한 불행에 감염되기라도 할 듯 우리를 피하고 수군거렸다

그래서 흰 꽃이 무더기로 그려진 벽지 아래 쪼그려앉은 아내를 보고 있자니

아내가 동네 사람들로부터 꽃매를 맞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많은 이들이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너는 이제 그만 울라며 

줄기 긴 꽃으로 아내를 채찍질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수가 공부를 그만둔 계기는 도화였다. 이수는 도화가 어디 가자할 때 죄책감 없이 나서고

친구들이 놀자할 때 돈 걱정 없이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건 사소한 갈등에 속했다

당시 이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도화 혼자 어른이 돼가는 과정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일이었다.

도화의 말투와 표정, 화제가 변하는 걸, 도화의 세계가 점점 커져가는 걸, 확장의 힘이 자신을 밀어내는 걸 감내하는 거였다

게다가 도화는 국가가 인증하고 보증하는 시민이었다반면 자기는 뭐랄까,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애매한 성인이었다

이 사회의 구성원이되 아직 시민은 아닌 것 같은 사람이었다

입사 초 수다스러울 정도로 조직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던 도화가 어느 순간 자기 앞에서 

더 이상 직장 얘길 꺼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이수는 모든 걸 정리하고 노량진을 떠났다.

한 시절과 작별하는 기분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뒤도 안 돌아보기위해 이를 악물며 1호선 상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아버지는 어릴 때 산간벽촌에서 자랐다

이웃을 만나려면 한참 걸어나가야 하고, 해가 지면 옆 사람 손도 안 보일 정도로 캄캄했다는 마을에서

눈이 오면 아 입을 벌려 겨울을 맛보고, 비가 오면 명상에 잠긴 대지가 허밍하는 소리를 엿듣고

가끔은 어른들로부터 귀신 비위 맞추는 법을 배우기도 하면서

벌써 반세기 전 일이지만 그 때를 떠올리면 뭐랄까

아버지는 다른 시대가 아닌 다른 세계에 살다 이쪽으로 넘어온 기분이 든다고 했다

분명 다 겪은 일인데 어느 때는 자기 인생이 어디서 읽었거나 들은 얘기처럼 느껴진다고.

 

 

 

 

148. 살인자의 기억법 / 김영하 ★★★★☆

 

30년 동안 꾸준히 살인을 해오다 25년 전에 은퇴한 연쇄살인범 김병수. 알츠하이머에 걸린 70세의 그는 어느 날 자신의 딸을 노리는 또다른 연쇄살인범을 만난다. 치매를 앓고 있는 그는 과연 젊은 살인범으로부터 외동딸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문체가 간결하고, 소재도 흐름도 흥미진진하여 순식간에 읽을 수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후반부에서 전부 뒤집어 버리는 게 묘미.

 

 

 

사냥용 지프에서 핏물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죽은 노루라도 실려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안에 시체가 있다고 가정하고 시작한다. 그쪽이 안전하다.

 

 

25년 만에 나는 다시 내가 가장 잘하는 일로 돌아왔다. 하지만 너무 늙어버렸다.

25년 전보다 나아진 게 있다면 이번에는 퇴로를 안전하게 확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사냥은 추적과 포착이 과정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살인은 목표물을 잡는 것보다 안전하게 빠져나오는 게 우선이다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잡혀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번은 다르다. 나의 모든 힘을 놈을 잡는 데 쓸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일은 살인이 아니라 사냥이다.

   

 

한 남자가 찾아와 만났다. 기자라고 했다. 그는 악을 이해하고 싶다고 했다. 그 진부함이 나를 웃겼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악을 왜 이해하려 하시오?”

알아야 피할 수 있을 테니까요.”

나는 말했다.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악이 아니오. 그냥 기도나 하시오. 악이 당신을 비켜갈 수 있도록.”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그에게 덧붙였다.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149. 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 / 황세연 ★★★★☆

 

평화로운 시골 마을 중천리. 1981범죄 없는 마을시상식 제도가 생긴 이래 단 한 해를 제외하고는 어떤 사소한 범죄도 일어나지 않아 신기록을 목전에 두고 있고, 이번 한 해 동안 범죄가 일어나지 않으면 나라에서 포상금이 내려와서 마을의 강둑을 보수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마을에서 은근슬쩍 따돌림을 당하던 청년 신한국이 그를 도둑으로 오인한 이웃집 과부 소팔희가 휘두른 몽둥이에 맞고 사망한다.

 

소팔희는 신한국의 시체를 절벽에서 추락사한 걸로 꾸미려고 하지만, 잠깐 방에 들어간 사이 시체를 실어둔 손수레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그리고 약 두 시간 후, 시체는 마을 이장 집 감나무 아래에서 이장의 트럭에 치인 채로 동네 사람들에 의해 발견된다. 우여곡절 끝에 신한국의 시체를 화재 사건으로 위장하기로 결정하고 그의 집과 함께 시체를 불에 태운 마을 사람들. 그런데 몇 시간 뒤, 이번에는 장례식장 안치소에서 신한국의 시체가 온전한 상태로 다시 등장한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왜 시체가 계속 나타나는 거지?

 

 

복잡한 플롯을 치밀하게 잘 구성했다. 흐름이 매끄럽고,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다. 캐릭터들의 매력도 확실하다.

 

 

 

 

150. THE 좀비스 / 스티븐 킹 외 33★★☆☆☆

 

난 정말 이런 말을 안 하는 사람인데, 분량이 너무 많다!!! 이거 읽은 건 양심상 3권으로 쳐줘야 하지 않나 싶다.

 

다시금 느꼈지만 난 서양권 작가들 단편이랑은 정말 안 맞는다. 읽는 내내 고역이었다.

 

 

추천 단편:

 

1) 올해의 학급 사진 / 댄 시머스 : 좀비로 변한 아이들을 교실에 앉혀 놓고 가르치는 교사. 과연 좀비에게 반복학습이 통할까?

 

2) 시체 / 마이클 스완윅 : 좀비를 자유시장에서 매매되는 유용한 사치품으로 보는 시각. 상업주의의 끝판왕.

 

3) 죽음의 선거권 / 데일 베일리 : 시체가 투표를 한다면?

 

4) 나처럼 죽어봐 / 애덤-트로이 캐스트로 : 좀비 흉내를 내며 살아가는 생존자의 이야기. 마지막이 정말 섬뜩하다.

 

5)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 리사 모튼 : 좀비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낙태를 해야 한다면?

 

 

절대로 읽지 마시오:

 

1) 대초원 / 브라이언 에번슨 : 그냥 온갖 방식으로 좀비를 학대하는 내용. 알맹이 1도 없는 고어포르노. 읽다가 토하고 싶었음. 솔직히 이 단편 읽고 이름도 몰랐던 이 작가에게 지대한 편견이 생겼다.

 

2) 좀비만도 못한 / 더글러스 E. 윈터 : 뭔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그냥 고어포르노2222 좀비 학대 묘사와 여자를 때려죽이는 장면이 쓸데없이 자세하다. 진짜 뭘 쓰고 싶었는지 모르겠음. 브렛 이스턴 엘리스의 작품을 좀비 버전으로 패러디한 거라는데. 원본을 읽어 보지 않아서 그에 대한 평가는 못하겠다.

 

 

 

 

151. 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 / 미즈키 히로미 ★★★★☆

 

사회보험노무사자격증을 취득하고 이제 막 노무사로서 첫 발을 뗀 히나코. 기업의 노동보험 및 사회보험 전반과 관련된 노무 관련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인 만큼 클라이언트인 기업의 의뢰를 우선시하지만, 막상 히나코에게 직면해온 것은 더욱 현실적인 노동문제들이다. 직장 내 괴롭힘, 육아휴직, 산재, 부당해고…… 이제 막 첫발을 뗀 햇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가 현실적이고도 미스터리한 사건사고들을 해결해나가는 연작단편집.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고, 또 현실적인 직장 문제를 세세하게 다뤄줘서 몰입도도 넘쳤다. 노무사라서 내용이 어려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굉장히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다.

 

중간중간 일본 법률과 한국 법률을 비교한 주석 덕분에 더욱 유익했다.

 

 

 

사라야시키의 벽에 붙어있던 명언이나 표어, 생활 지식이 그랬다

그릇을 세는 방식은 물론 고객의 목소리 하나하나를 힘과 결과로 만들겠다거나 고객의 미소가 우리의 월급이라거나

공부나 학교라는 말로 불만을 토해내지 못하도록 하는 게 아닐까

손님 덕분에 일할 수 있다느니, 사회에 나와서도 공부는 필요하다느니, 다 맞는 말이다.

다만 급여는 급여다. 노동에 대한 대가이므로 별개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고 

낮은 임금으로 일하게 하기 위해 열정을 노동의 동기부여로 삼는다. 바로 열정 페이다

감사하다고 제창하며 심리적 압박을 받다 보면 자기가 조종되고 있다는 자각도 없어진다

증명하기도 어려워 결국은 받아들이는 쪽의 태도 문제로 귀결된다.

 

 

다른 직원들도 도마라는 아이를 탄광의 카나리아처럼 다루고 있네.”

탄광의 카나리아?”

나는 무슨 소린지 몰라 니와 씨를 바라봤다.

몰라? 옛날에 탄광에서 작업할 때 카나리아를 데리고 가서 경보기 대신 썼다잖아

카나리아는 끊임없이 조그맣게 지저귀는데 메탄이나 일산화탄소가 늘어나면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죽어버려

물론 울지도 않지. 카나리아로 탄광 안이 위험한 상태인지 아닌지를 체크하는 거야.”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쓰는 제1호로 상황을 파악하는 거군요.”

도마 씨를 프로토타입이라고 했다. 프로토타입은 물건을 양산하기 전에 시험 삼아 만드는 제품을 말하는데 

데모용 프로그램을 가리키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것을 먼저 가동시켜 불합리한 곳을 발견해 수정하는 것이다.

안경 쓴 여성의 인상이 강해 보였던 것은 그런 위화감 때문이었을까

도마 씨를 지켜보는 게 아니라 이용할 생각인 것이다.

 

 

 


 

152. 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 / 김솔 ★★☆☆☆

 

40편의 초단편 모음집. 전반적으로 초현실적인 분위기.

 

그리고 <삼촌>편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혹시 아는 사람 있을까?ㅠㅠ

마지막 구절: "아무리 수상한 시절이었다고 해도 그 쌍둥이 악당들에겐 너무 관대한 판결이었어. 하긴 그 사건 덕분에 저 못난 자식은 매형과 조카를 한꺼번에 얻게 됐지만 말야.“

 

 

 

 

153.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 의미와 쟁점 / 2017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국제학술회의 ★★☆☆☆

 

공부 때문에 참고자료로 읽은 거였는데, 지속적으로 말이 나오고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대략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어.

 

 

 

154. 맥파이 살인사건 / 앤서니 호로비츠 ★★★★★

 

출판사의 간판 작가인 앨런 콘웨이의 담당 편집자인 수전이 신작 맥파이 살인 사건의 초고를 전달받아 읽어 내려가지만, 결정적인 대목에 이르러 소설이 중단된다.수전은 원고의 결말이 누락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연락을 취하지만, 다음 날 앨런 콘웨이가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뉴스를 전해 듣는다. 사라진 원고의 행방을 좇아 편집자에서 탐정으로 변신한 수전은 앨런 콘웨이의 죽음과 관련 있는 인물들을 직접 찾아 나서는데…….

 

오랜만에 읽어보는 극중극.

 

플롯 자체도 놀랍도록 몰입도가 깊지만, 이 복잡한 작품을 효과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작가의 솜씨가 놀랍다!

 

가상인물인 '앨런 콘웨이'의 필력과 본편의 필력을 다른 사람이 쓴 것처럼 구분해서 쓰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전혀 위화감이 없을 만큼 잘해냈고, '앨런 콘웨이'의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허점이나 아쉬운 점(초반이 지루하다거나), 문체의 특징(애거서 크리스티 엄청 따라한거) 등을 본편에서 편집자의 입으로 그대로 읊어줘서 또 놀랐다. 필력에서의 '기교''디테일'을 정말 잘 살리는 작가.

 

소설이 가장 극적인 대목에서 탁 끊길 때는 나도 주인공이랑 함께 뭐야? 하고 어이없어할 정도로 몰입도가 넘침.

 

아이디어 또한 기발하다. 여러 모로 그 동안의 탐정 소설 작가들에게 바치는 헌정작이라고 느껴질 만큼 많은 내용이 들어가 있다. 분량이 꽤나 긴데도 정신없이 읽은 책.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훌륭한 탐정 소설을 최고로 친다

거듭되는 반전과 단서, 속임수 그리고 막판에 이르러 모든 게 밝혀졌을 때

진작 알아차리지 못한 나를 발로 차주고 싶어지는 동시에 느껴지는 충족감.

 

  

 

나는 예전부터 탐정 소설을 좋아했다

지금까지 탐정 소설을 그냥 편집만 한 게 아니라 평생 걸신들린 듯이 읽어 치웠다고 보면 된다

밖에서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난로를 틀어 놓고 책 속으로 푹 빠져들 때의 기분을 여러분도 알 것이다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가는 책장을 느끼며 읽고 또 읽다 보면 

어느덧 왼쪽으로 넘어간 책장이 오른쪽에 남은 책장보다 많아지고

속도를 늦추고 싶지만 그래도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결말을 향해 돌진하는 기분

나는 그것이 탐정 소설의 남다른 매력이고, 문학이라는 보편적인 카테고리 안에 

탐정 소설만의 특별한 자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등장인물 중에서도 탐정이야말로 독자와 사실상 독특한 관계를 맺지 않는가 말이다.

탐정 소설의 핵심은 진실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불확실로 가득한 세상에서 모든 게 깔끔하게 정리가 되는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르면 자동적으로 속이 시원해지지 않는가

이야기는 우리가 실생활에서 경험하는 일들을 모방한다

우리는 긴장과 애매모호 속에서 살아가며 그것들을 해결하려고 애를 쓰는 데 인생의 절반을 투자하지만 

임종을 목전에 두고서야 모든 게 명확해지는 순간에 다다른다

그런데 거의 모든 탐정 소설이 그런 희열을 제공한다. 그것이 탐정 소설의 존재 이유다

맥파이 살인 사건이 우라지게 짜증 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155. 살인 재판 / 찰스 디킨스 ★★☆☆☆

 

살인사건을 다루는 재판소에서 피해자의 유령이 나타나는 짧은 이야기.

 

 

 

 

156.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 마일리스 드 케랑갈 ★★☆☆☆

 

시몽이라는 젊은이가 뇌사 판정에 빠진 이후 그의 심장이 다른 사람에게 이식되기까지 24시간 동안 일어나는 이야기. 장기 이식 과정의 24시간을 다룬다.

 

 

장기 이식 기증자가 지나치게 부족한 실정이다 보니, 프랑스는 아예 '장기 기증 동의'를 디폴트로 놓고 '장기 기증 비동의' 명단에 자기 이름을 올린 사람이 아니면 전부 암묵적인 장기 기증자로 판단하는 법을 2017년에 통과시켰다. , 사망자가 생전에 장기기증을 거부한다는 뜻을 확실히 밝히지 않으면 가족이 반대해도 장기 적출에 동의한 것으로 판정한다는 것이다. 사망 후 장기 전체나 일부가 적출되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은 '장기기증 거부 명단'에 미리 자신의 이름을 올려야 한다.

 

문장이 길고 복잡하고 어렵다. 오죽하면 번역가가 후기에서 "이 작품을 번역하느라 정말 고생했다. 훌륭한 작품이었기에 그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번역을 끝까지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은 다른 번역가의 번역으로 읽고 싶다"라고 너무도 솔직한 후기를 남길 정도ㅋㅋㅋ

 

 

시몽 랭브르의 심장이 무엇인지, 그 인간의 심장, 태어난 순간부터 활기차게 뛰기 시작해서 

그 일을 반기며 지켜보던 다른 심장들도 덩달아 빨리 뛰던 그 순간 이래로 그 심장이 무엇인지

무엇이 그것을 튀어 오르고 울렁대고 벅차오르고 깃털처럼 가볍게 춤추거나 돌처럼 짓누르게 만들었는지

무엇이 그것을 어질어질하게 만들었는지, 무엇이 그것을 녹아내리게 만들었는지(사랑), 

시몽 랭브르의 심장이 무엇인지, 스무 살 난 육신의 블랙박스, 그것이 무엇을 걸러 내고 기록하고 쟁여 뒀는지

정확히 그게 뭔지 아무도 모른다. 초음파가 만들어 내는 연속적 이미지만이 그 울림을 되돌려 주고

그것을 부풀게 하는 기쁨과 그것을 옥죄어 드는 슬픔을 보여 줄 수 있으리라

시초부터 기록한 심전도 그래프가 펼쳐지는 모눈종이만이 그것의 형태를 신호로 보여 주고

그것이 소비한 에너지와 노력을, 그것이 달음박질치게 하는 감정을, 하루에 거의 10만 번씩 수축되고

1분마다 최대 5리터의 피를 돌게 하려고 쏟아붓는 에너지를 그려 보여 줄 수 있으리라

그렇다. 오로지 그 그래프만이 그것의 사연을 들려주고, 그 삶의, 밀물과 썰물의 삶의

개폐 장치와 역류 방지 장치의 삶의, 박동으로 점철된 삶의 윤곽을 보여 줄 수 있으리라

시몽 랭브르의 심장, 그 인간의 심장이 기계 장치에서 벗어나 버린 순간,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 안다고 나설 수 없으리라.

   

 

 

 

157. 지문 사냥꾼 / 이적 ★★☆☆☆

 

가수 이적이 쓴 책 맞음.

 

어른들을 위한 잔혹동화 모음집 느낌. 묘사가 도가 지나치게 잔인하다.

 

 

 

 

158. 숙명 / 히가시노 게이고 ★★★☆☆

 

유명 대기업 UR전산의 대표이사가 묘지에서 화살에 맞아 살해당했다. 해당 사건을 조사하게 된 형사 와쿠라 유사쿠는 우류 나오아키의 아들이자 의사인 우류 아키히코와 다시 마주치며 기묘한 운명을 느낀다. 어린 시절부터 경쟁의식을 느껴왔지만 끝까지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바로 그 상대가 살인 사건에 연루된 것이다. 또한 아키히코의 아내이자 유사쿠의 옛 연인이며, 자신의 운명이 에 조종당하고 있다고 믿는 미사코의 존재까지. 그들 세 사람 사이에 얽힌 끈질긴 숙명, 그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읽기 쉬웠고 처음부터 끝까지 쭉 흥미로웠다. 루즈해지지 않고 이렇게 쭉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데 대단함.

 

이게 초기작이라는데, 캐릭터의 깊이감은 초기작에서부터 여실했구나 싶다.

 

 

 

 

159. 남편의 그것이 들어가지 않아 / 고다마 ★★☆☆☆

 

제목낚시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제목 그대로의 내용이었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성기''그것'으로 순화했는데 일본에서는 그 제목 그대로 발간된 모양.

 

중간에는 보면서 내가 다 아팠다...ㅠㅠ 정말 솔직하고 생생한 에세이고, 보다가 답답해서 가슴 칠 수도 있지만, 이걸 쓴 사람이 실제 사람이고 또 이분 가정환경을 생각하면 왜 그렇게 자라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기도 한다. 사람 사는 데는 정답이 없다는 현실을 엿본 기분. 어찌됐든 자기 나름의 삶을 찾아서 열심히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160. 여섯 잔의 칵테일 / 모리사와 아키오 ★★★☆☆

 

좀 오글거리긴 하는데 따뜻한 이야기.

 

헬스장 단골인 게이 마담과 미녀 바텐더가 운영하는 바에서, 손님들의 상황에 맞는 칵테일을 만들어주는 6가지 단편 모음.

 

 

 

 

161.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 오후 ★★★☆☆

 

우리가 몰랐던 마약의 역사, 종류, 정책, 그리고 한국의 마약 실태.

 

마약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날려버릴 신나는 마약 교양서.

 

마약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금기 가운데 하나다. 마약은 어떤 경우에라도 허용되어서는 안 되며 마약 사용자도 결코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분위기다. 이 책은 단순히 마약이 좋다, 나쁘다라는 가치판단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마약이 무엇인지, 마약이 왜 금지되고 어떻게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지,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마약에 빠지는지 인문학적으로 고찰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입장은 마약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강화하는 효과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마약은 나쁘다라고 말하기 전에, 마약이 무엇인지, 왜 사람들이 마약을 하는지 아느냐고 묻는다.

 

 

옛날에는 마약보다 술이 더 금기시되었다는 건 몰랐어. 베트남전에서 코카인에 중독되었던 미국 군인들이 귀향할 때 사람들이 마약중독자들이 집단으로 와서 범죄를 일으킬까봐 걱정했는데, 불안정한 전시상황에서 평화로운 고국으로 돌아와 안정된 생활을 되찾으니까 거의 대부분의 군인들이 마약을 끊는 데 성공했다는 것도 몰랐고. 그저 마약 하나만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의 구조적인 문제를 다뤄줘서 좋더라. 굉장히 유익한 책.

 

다만 팟캐스트 하던 사람이라 그런지 말투가 좀 너무 그래...

 

사람들은 마약중독자에게 마약 하면 몸도 망가지고, 정신도 잃고

삶도 파탄 나는데 왜 마약을 하지이제 그만해라고 쉽게 말합니다

하지만 그 인권운동가가 말하길, 그 말에는 몇 가지 편견이 있다는 거예요.

첫째, 마약중독자도 압니다. 몸에 안 좋다는 거. 담배 피우는 사람도 알잖아요

몸에 안 좋다는 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피우죠.

둘째, 마약을 하면 정신도 잃고 자신의 삶도 잃어버린다

사람들은 이를 비난하지만, 마약중독자는 그 상태가 되고 싶은 거예요

술에 취하고 싶은 거죠. 현실을 놓고 싶은 겁니다.

셋째, 마약으로 삶이 파탄에 이른다? 마약 때문에 이들의 삶이 파탄에 이르렀는지

파탄에 이르렀기 때문에 마약을 하는 건지 모른다는 거죠

어쩌면 마약이라도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그나마 이렇게라도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였죠.

 


하지만 이 연구를 골똘히 바라보던 브루스 알렉산더Bruce K. Alexander 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와 쥐 공원Rat park 실험을 설계합니다.

쥐 서른두 마리를 두 그룹으로 나눕니다. A 그룹은 위의 실험처럼 수컷 쥐만 좁은 공간에 가둬놓고

물과 마약음료를 제공합니다. B 그룹에도 역시 물과 마약음료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B 그룹에는 추가로 훨씬 넓은 공간과 쥐들이 살기 적당한 온도, 치즈, 놀이기구를 함께 제공했습니다

또한 수컷과 암컷을 함께 생활하게 했죠.

A 그룹은 예상대로 물 대신 마약음료를 선택했고, 중독됐습니다

하지만 B 그룹은 대부분 마약음료 대신 그냥 물만 마셨습니다마약음료에 당(단맛)을 섞어줘도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쥐들은 가끔 마약음료를 마시긴 했지만, 대부분 평범한 물을 마시며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B 그룹은 A 그룹과 비교해 마약음료를 1/16 정도만 섭취했습니다.

(...)

실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A 그룹과 B 그룹에 물은 빼버리고, 마약음료만 제공합니다

그러면 행복한 B 그룹의 쥐들도 어쩔 수 없이 마약음료를 마실 수밖에 없죠

이렇게 57일의 시간이 흐르고, 두 그룹의 모든 쥐가 완전히 마약에 중독됩니다

그리고 다시 물과 마약음료 두 가지를 제공합니다

이제 중독이 됐으니 다들 마약음료를 선택하겠죠?

고민할 것도 없이 A 그룹은 마약음료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B 그룹은 가끔 마약음료를 다시 찾기는 했지만, 대부분 물을 마셨습니다

일부 쥐는 금단현상을 겪으면서도 마약음료를 찾지 않고 버텼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B 그룹의 쥐들은 마약음료를 찾는 빈도가 점점 떨어지더니 거의 원 상태에 가까워졌죠.

알렉산더 박사는 이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자신 있게 이야기합니다.


우리에게 좋은 환경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어떤 중독성이 강한 마약이라도 거부할 수 있다

금단현상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강하지 않다

부정적인 주변 환경이 우리가 금단현상을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느끼게 만들 뿐이다.

 

 

우리 주변에는 마약을 지속해서 복용하지만 중독되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중환자가 치료 기간에 헤로인에 버금가는 아편 계열 진통제를 상습적으로 투여받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병에서 완치되고 난 후에 마약중독 증세를 겪는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베트남전 당시, 참전한 미군의 20퍼센트가 전쟁 기간 중 상습적으로 헤로인을 복용했습니다

당시 언론은 전쟁이 끝나고 나면 헤로인중독자들이 미국으로 쏟아질 거라고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중 95퍼센트는 큰 어려움 없이 헤로인을 끊었습니다

중환자도 참전용사도 마약을 하게 했던 직접적 원인이 사라지자 마약을 쉽게 끊을 수 있었죠.

 

 

빨갱이 칼 마르크스는 헤겔의 법철학 강요를 비평하면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 말 한마디로 이후 전 세계 공산국가에서 종교가 탄압을 받게 됩니다. 끔찍한 일도 많았죠.

하지만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에서 아편은 마약이라기보다는 진통제로 보아야 합니다

당시에 실제로 아편은 인민들의 진통제 역할을 했으니까요

렇게 보면 공산국가의 종교 탄압은 원인과 결과가 완전히 뒤바뀐 정책이었던 거죠.

아픈 사람들이 모두 교회에 가는 걸 보니, 교회가 사람을 아프게 하는군하면서 종교를 탄압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마르크스가 한 말의 정확한 맥락은 

세상이 시궁창 같으니 사람들이 그나마 종교에서 위안을 얻는다라는 거죠

그는 좋은 세상이 와서 진통제가 필요 없게 되면, 자연스레 종교가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지금의 마약금지 조치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힘든 사람들이 마약을 하네. 마약 때문에 힘든가 보다. 마약을 못 하게 해야겠군.”

어쩌면 우리는 완전히 상황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62. 당신 인생의 이야기 / 테드 창 ★★★☆☆

 

믿고 보는 테드 창 단편집.

 

좀 어렵긴 한데 왜 세계적인 작가인지 확 느껴진다. 특히 바벨탑 단편이 좋았음. 진짜 거기 가본 것 같은 세세한 묘사부터 마지막의 엔딩까지 다 너무 좋았다.

 

 

 

 

163. 먼 그대 / 서영은 ★★★★☆

 

스토리는 답답하긴 한데, 처음부터 끝까지 쫙 다 필사하고 싶을 정도의 유려한 문장력.

 

 

 

 

164. 남편을 죽이는 서른 가지 방법 / 서미애 ★★★☆☆

 

짧은 단편. 느슨해지는 부분 없이 쭉 잘 읽히고 재미있었다.

 

 

 

 

165. 있잖아, (한번쯤 터놓고 싶었어) / 김성현, 김유리, 하용아 ★★★☆☆

 

그냥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 속에 묻어뒀던 이야기를 털어놓는 에세이 3. 솔직담백하다.

 

첫번째 이야기는 자신이 겪은 성범죄를 다룬 에세이라서 성범죄 묘사가 많으니 주의.

 

 

 

 

166. 여성의 설득 / 메그 월리처 ★★★★☆

 

부모님의 실수 때문에 예일 대학교에 합격하고도 변두리 대학에 입학하게 된 그리어는 학교 파티에 갔다가 악질 성범죄자 대런에게 성추행을 당한다. 이 학교에서 그에게 성추행을 당한 것은 그리어뿐만이 아니었고, 피해자들은 조용히 덮으려는 대학에 압박을 주어 겨우 징계위원회를 연다. 그러나 대런이 받은 징계는 고작 충동 제어 전문가와의 상담이었다. 그리어의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생각만이 맴돌았다. 그가 학교에 계속 다닐 수 있다는 것은 너무 불공평하다는 것.

 

독서광에 학구열이 넘치지만 세상에 목소리를 내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그리어는 자신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질문에 괴로워한다. ‘너무나 쉽게 여자를 혐오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때마침 그리어는 친구 따라 갔던 강연에서 마치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연상시키는 페이스 프랭크를 만나게 된다. 수십 년간 미국 여성운동의 중심축으로 여겨진 예순세 살의 페미니스트. 이 여성의 우아한 연설에 그리어는 금세 마음을 빼앗긴다. 그리고 졸업 후, 어쩌다 인연이 닿아 페이스의 회사에서 일하게 되는데...

 

 

"현대 여성서사"라는 설명에 걸맞게 현대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의 다양한 군상을 보여준다. 페미니스트는 사람이고, 사람은 완벽하지 않고, 그렇기에 완벽한 페미니스트도 존재할 수 없다. 인간적인 여자들의 서사를 그려내서 더더욱 깊이감이 생기는 책.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도 분명 느꼈을 것이다, 그렇겠지

설령 수년 동안 십대의 혼미함 속에 잠긴 채 모든 반사되는 표면마다 자기 얼굴을 비춰보며 

여드름을 짜다가 유리에 푸르뎅뎅한 액체가 철퍽 튀는 것을 찡그리며 쳐다보고,

친구들에게 멍청한 부모님 욕을 늘어놓거나페이스가 묘사한 것처럼 

자신들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주위에 즐겁게 말하고 다니는 그런 사람이라 해도

오늘 밤 이 교회에 억지로 왔다고 해도, 지금은 그들의 내부에서 깨달음의 종소리가 울렸을 것이다

그 소리는 진동하고 또 진동해서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여기에, 서서히 나타나는 이 불안한 세상에서 그들의 자리에 관해서

굉장히 흥분되는 방식으로 말하는 이 새롭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있으니까

지금의 자기 자신 이상이 되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리어와 지는 13년 전에 대런 틴즐러의 얼굴이 찍힌 티셔츠를 입었고, 그와 그의 서로 멀리 떨어진 눈을 보았다

그는 지금도 비슷해 보였지만 얼굴이 좀 더 넓어지고, 머리카락은 거의 사라졌고, 야구모자 역시 사라졌다

그들의 티셔츠 운동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고, 그날 밤 대학 여자 화장실에서 페이스가

그들에게 대런 틴즐러를 계속 따라다니며 괴롭히면 그에게 동정표가 쏠릴 것이다.”라고 경고했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녀가 틀렸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그걸 계속 했으면 그는 결국에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몇 년이나 뒤따라 다니는 기록을 갖게 되었을 수도 있다고 그리어는 생각했다

어쩌면 세월이 흐르며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는 대신에 계속 관리받고 감시당했을지도 모른다.

 

 

여자를 비하하고 위협하는 남자는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싶게 만든다

소리치고 비명을 지르고, 행진하고, 연설하고, 국회에 24시간 내내 전화하고, 제대로 된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넘치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어린 여자들에게 우리가 완전히 패배한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세계 어디서든 밤에 길거리를 걷는 여자가 느끼는 기분또는 매사추세츠주 매코피에서

대낮에 아이스트림을 들고 퀵스탑에서 나오는 어린 여자아이가 느낀 기분을 바꾸고.

그 여자아이는 가슴이 커지기는 할지,또는 적당하게 커질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원치 않는다면 자신의 육체적인 부분이나 성적인 부분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대로 옷을 입을 수 있고, 유능하고 안전하고 자유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페이스 프랭크가 여자들을 위해서 원한 거였다.

 

 

 


167. 마르타의 일 / 박서련 ★★★★☆

 

봉사녀로 인터넷상에서 일약 스타가 된 SNS 셀럽 리아가 죽었다. 리아의 개명 전 이름은 경아. 급하게 마련된 리아의 장례식장에서 언니 수아는 경찰로부터 리아의 핸드폰을 건네받는다. 그런데, 리아의 SNS에 다이렉트 메시지가 도착했다.

 

[‘경아자살한 거 아닙니다.]

 

SNS 셀럽 임리아의 죽음과 그 죽음의 진실을 알리는 메시지. 임용고시생 수아는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았던 동생 리아의 삶 속으로 들어가며 예쁘고 착하게만 보였던 동생의 삶 이면의 모습과 그녀에게 향한 수많은 말들을 만나게 된다. 이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어떤 의도를 가지고 메시지를 보낸 걸까? 그리고 경아를 죽인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짧은 분량의 책이지만 스토리가 짜임새 있고, 완결성이 있어. 특히 작품 초반부터 쭉 이어지다 마지막에 뭉클한 느낌을 주고 끝나는 마르타-마리아 비유가 좋았어.

 

 

 

구설수가 다 본인 행실에서 나오는 건 아니야. 유명세라는 말 알지

요새는 그냥 유명해졌다, 할 때 쓰곤 하는데 그거 원래 나쁜 말이거든

유명, 에다가 세금 할 때 세 자를 붙인 거야

이름 떨치는 데에 따라붙는 나쁜 부작용들을 유명세라고 해

그래서 유명세를 치른다고 하고.”

 

 

침대 머리맡에 걸어둔 코르크판에는 경아가 해외 봉사활동을 갔을 때 

현지 어린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나 평소 후원하던 어린이에게 받은 엽서 따위가 고정되어 있었고

책상과 일체형인 작은 책장에는 유명 여행작가의 에세이와 여성 CEO가 쓴 자기계발서가 나란히 꽂혀 있었다

다르게 만났더라면 친구가 되긴 힘든 유형이었겠지. 오히려 좀 싫었을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자매라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유일했다.

감상에 빠져서가 아니라, 실로 그러하다고 느꼈다.

 

 

갑자기 익명과 나의 중요한 차이를 알게 된 것 같아 기분이 묘해졌다

말하자면 익명은 구급대의 방식으로, 나는 경찰의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인 게 아닐까

경아를 살리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앞서서 다른 것을 잊어버리고 마는 사람과 

경아를 그렇게 만든 사람을 찾아내서 죽이고 싶은 심정을 앞세울 수밖에 없는 사람의 차이

사실 그건 단순히 그 자리에 있던 사람과 그렇지 않았던 사람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168. 살인협주곡 / 서미애 ★★★☆☆

 

서로를 죽일 계획을 세우는 부부.

 

단편에 딱 어울리는 무난하고 스피디한 플롯.

 

 

 

 

169. 못생긴 생쥐 한 마리 / 서미애 ★★☆☆☆

 

수수께끼의 누군가에게 계속 협박편지를 받는 한 남자.

 

예상 가능한 평이한 플롯과 반전.

 

 

 

 

170. 그녀의 취미생활 / 서미애 ★★★☆☆

 

시골 마을에 자기를 길러준 할머니의 병간호를 하러 내려왔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죽 눌러 살고 있는 주인공과, 어느 날 이사 온 젊은 여자, 그리고 그들 사이에 공유되는 비밀.

 

 

후루룩 읽히는 단편.

 


 

 

171-172. 곰탕 / 김영탁 ★★★☆☆

 

몇 번의 쓰나미 이후 2063년의 부산은 안전한 윗동네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아랫동네로 나뉜다. 먹을 수 있는 고기는 정체를 모를 합성 고기뿐, 옛날의 진짜 동물 고기는 씨가 마른 지 오래다. 그러던 어느 날 고아로 자라 식당 주방 보조로 살아가고 있는 우환에게 큰 금액을 보장하는 제안이 들어온다. ‘곰탕 맛을 배워와라.’ 시간 여행 상품이 개발되었지만, 살아서 돌아온 사람의 이야기는 듣지 못했기에, 죽을 만큼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우환은 목숨을 건 생애 첫 여행을 감행한다. 돈이 욕심나서가 아니었다. “이렇게 사나, 그렇게 죽으나다를 게 없는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슬러 올라간 과거에서 우환은 놀랍게도 어린 시절의 자기 부모를 만나게 되는데...?

 

 

곰탕과 시간여행, 따로 노는 이 소재를 버무리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나 좀 따로국밥이라는 느낌.

 

다소 정신이 없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다.

 

 

 

 

173. 무증거 범죄 / 쯔진천 ★★★☆☆

 

3년 전부터 연쇄살인이 일어나는 번화한 도시. 범인은 살인 현장에 지문과 날 잡아주세요란 메시지가 인쇄된 종이 한 장만을 남기고 다른 어떤 허점도 드러내지 않는다.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한 네 번째 특별조사팀마저 성과 없이 해산되자, 경찰은 수학 교수로 일하고 있는 범죄논리학 전문가 옌량에게 도움을 청한다. 한편 한순간의 실수로 불량배를 죽이게 된 청년 앞에 한 남자가 다가와 증거를 없애줄 테니 범죄를 부인하라며 경찰 대처법을 가르쳐주는데…….

 

 

마무리가 다소 아쉽다.

 

근데 출판사 웃기네... 용의자 X의 살인 아류작이라고 비판받으니까 아예 <중국판 용의자 X의 살인!>이라고 홍보를 때려버리네ㅠㅠㅋㅋㅋㅋㅋㅋ 패기 넘치는 홍보 인정합니다

 

 

 

 

174. 눈물점 / 미야베 미유키 ★★★★☆

 

미야베 미유키 일생의 과업 미시마야 시리즈’ 6!

 

이전까지의 주인공 오치카가 결혼으로 퇴장하고, 새로운 주인공인 도미지로가 흑백의 방에 청자로서 자리한다. 여인에게 씌어 남자를 덮치게 하는 괴이한 '눈물점', 특정 가문의 여자들이 올라가면 반드시 떨어져 죽는 저주의 언덕, 편지를 전하기 위해 달리는 게 일상인 파발꾼에게 따라붙은 귀신, 죄를 지은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기이한 저택... 다양한 사람들이 들려주는 오싹한 괴담 모음집.

 

 

시리즈인 줄 모르고 어쩌다 보니 6권을 먼저 읽어 버렸는데, 매 에피소드마다 달라지는 꽂꽂이와 다과 묘사를 보는 재미가 있다. 이 시대의 (아마 에도인듯...?) 생활상을 생생하게 구현하고, 각 직업마다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공정이 돌아가는지, 어떤 고충이 있고 종사자는 어떤 특징을 갖게 되는지 맛깔나게 묘사해서 흥미진진하다.

 

또한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따스한 시선도 그대로이며, 캐릭터가 정말 살아 있는 사람처럼 표현된다. 주고받는 대화에서도 지혜와 배려가 묻어나서 좋다.

 

우리나라도 이런 괴담 시리즈가 나왔으면 좋겠다.

 

 

 

가게의 고용살이 일꾼은 손님을 응대하고, 손님이 가져온 짐이나 서찰을 맡고, 장부를 쓰고

가게 주위를 깨끗이 청소하고, 불 단속을 하는 등등.

장사를 배우려면 어디에서나 시작은 청소, 끝도 청소입니다.”

 

 

지배인의 주요 임무 가운데 하나가 고용살이 일꾼을 채용하는 일입니다

그중에서도 파발꾼이 될 만한 사람을 찾는 데는 늘 눈을 빛내고 귀를 곤두세워야 하지요

실수가 있었을 때의 처분도 지배인의 실력을 볼 수 있는 부분이고요.”

난폭한 사람도 있는 직업이고 한편으로 돈과 어음도 취급하다 보니 

지배인의 기량이 부족하면 순식간에 가게가 위태로워진다.

 


진자부로는 돈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도박의 한순간 한순간에 탐닉해 있을 뿐이다.

주사위의 눈이 생각한 대로 나온 순간의, 세상 전부를 자신이 조종하고 있는 듯한 사나운 기쁨을 위해서라면

전부 다 내던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이 절박함은 계속 도박에 져서 잔돈조차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되고, 증문도 더 쓸 수 없게 되고,

조금이라도 정산하지 않으면 어느 도박장에도 출입할 수 없어서, 순수하게 승부에서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한순간에 굶주려 있기 때문이다.

만일 팔다리를, 또는 목숨을 조금씩 잘라 팔아서 도박을 할 수 있는 도박장이 있다면

진자부로는 기꺼이 그곳에 다닐 것이다. 목숨의 마지막 한 조각을 걸고지면 죽는다는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그 정도의 승부에 이긴다면, 그 사나운 기쁨 또한 수십 배, 수백 배나 되어 진자부로를 채워 줄 테니까.

 

 

우리의 무엇에 화가 나셨는지요?”

오아키가 망설이기에, 사양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오아키는 얇은 입술을 몇 번이나 적시고,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움츠리더니 겨우 대답했다.

호기심으로 무서운 이야기를 모으고 재미있어하고.”

멋쟁이인 척하고 가게를 선전하고.

하지만 미시마야는 정말로 무서운 건 모르잖아요. 우리 같은 일을 당하지 않았으니까.”

오아키 일행을 덮친 수수께끼와 공포의 근원에는 나라에서 엄하게 금지하고 있는 예수교가 관련되어 있다.

그 한 가지만을 보아도 단순한 괴담과는 전혀 다르다. 오아키가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하고

진자부로 역시 입을 다물어 온 까닭도 이 때문이다.

미시마야의 특이한 괴담 자리는 아무리 수가 쌓여도 그냥 놀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175. 정시 퇴근하겠습니다 / 아케노 가에루코 ★★★★★

 

밀레니얼 세대의 워라밸 사수기!

 

오늘도 칼퇴 사수를 위해 숨만 쉬며 일하는 히가시야마 유이. 야근을 당연시하는 사내 분위기에도 아랑곳 않고 저녁 6시만 되면 자리에서 일어선다. ‘칼퇴 요정유이의 시간당 생산성은 사내에서도 단연 최고다. 하지만 그녀의 야근 제로를 가로막는 괴짜들이 있었으니. 터무니없는 일정과 예산으로 일을 밀어붙이는 무능력한 상사와 개근상녀로 불리며 유이의 연차마저 간섭하려 드는 동료, 여성 최초 임직원 되기를 목표로 출산휴가를 반납한 악바리 슈퍼 워킹맘까지. 사방이 적이고 나날이 점입가경이다.

 

혼자서만 잘하면 된다. 칼퇴만 하면 된다그렇게 생각하던 유이도 전에 없던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과연 그녀는 끝까지 정시에 퇴근을 사수할 수 있을까?

 

 

몰입도 100%로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정말 재미있다! 매력적인 캐릭터, 생생하고 속도감 넘치는 플롯, 다양하게 얼키고설키는 갈등과 작중 내내 묘-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로맨스까지 모든 걸 다 잡은 작품. 왜 드라마화 됐는지 알겠다. 진짜 읽고 나니까 요즘 최고 화제작인 드라마 시리즈 쫙 본 기분ㅋㅋㅋ

 

 

그 기준이라는 거 말인데 이번만 예외로 안 될까?”

안 됩니다.”

고타로는 물러서지 않았다.

기준이 있기에 영업부는 이익률이 높은 일을 따내려 하고 현장은 쓸데없는 작업을 줄이려 노력합니다

그 결과, 회사는 실적을 쌓게 되고 직원들 급여도 오릅니다. 휴가도 쉽게 낼 수 있게 되죠

그러니까 예외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후쿠나가 씨, 지금은 거래처 담당자보다 자기 부하를 생각해야 합니다.

만에 하나 후쿠나가 씨 견적서가 통과된다 치더라도 과연 이익이 남을까요

부하 직원에게 충분한 급여나 휴가를 제공할 수 있을까요

그 점을 진지하게 고려해 주십시오. 그게 바로 매니저의 역할입니다.”

 

 

 

 

176. 흑백 / 미야베 미유키 ★★★★★

 

미시미야 변조괴담 시리즈 그 첫번째!

 

간다 미시마초에 자리 잡은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 주인장 이헤에의 조카딸인 열일곱 살 소녀 오치카는 가슴속에 큰 상처를 간직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산다. 어느 날, 자리를 비운 숙부를 대신하여 숙부가 바둑을 두는 흑백의 방에서 손님을 맞이하게 된 오치카는 그가 털어놓는 아픈 과거를 듣게 되면서 어둠을 껴안고 있는 사람은 자신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한 조카의 변화를 눈치 챈 이헤에는 오치카를 위해 괴담 대회를 열고, ‘흑백의 방에 손님을 초대해 오치카 혼자 그 이야기를 듣게 하는데.

 

 

일본괴담 답지 않게 찝찝하고 음습한 구석이 거의 없고, 대신 인간에 대한 냉철한 통찰과 따뜻한 시선이 묻어난다.

 

자료조사도 굉장히 꼼꼼해서, 그당시 생활상을 생생하게 그려놓은 데다 매 에피소드마다 다른 직업군이 나와서 그 직업군의 애환과 고충을 맛깔나게 말해준다. 내가 청자가 되어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느낌. 그 시대 특유의 미신이나 철칙, 상인들 간 규례 등이 어찌나 재미있는지 모른다.

 

더불어 번역이 내가 읽은 책 중 역대급으로 잘됐다. 현대적 단어가 아니라 그 시절 단어를 사용했는데, 번역도 그에 맞춰 한거 대단함. 생소한 물건이나 풍습이 나오면 역자 주석으로 설명해 주고... 편집자 후기 보니까 미미 작가님이 다른 곳에 판권 훨씬 비싸게 팔수있었는데 예전부터 자기작품 번역해준 출판사에 계속 넘기겠다고 결정하신 걸 출판사가 엄청 고마워하는 게 느껴졌음. 그래서 번역 퀄리티도 진짜 높고... 편집자 후기 자체도 본편과 분위기나 문체 같은 게 닮아 있다. 덕업일치의 현장ㅋㅋㅋ

 


 

세상의 근심도, 장사의 손익 계산도 잠시 잊고 

바둑판 위의 흑백 싸움에 열을 올리려고 찾아온 곳에서 뜻밖에 만주사화 꽃을 만나고

거기에 당신 같은 아가씨가 있었던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 터입니다(...) 

우리 같은 작은 중생 곁에 계시는 부처님께서 저에게

도키치야, 슬슬 네 무거운 짐을 내려놓도록 해라, 하고 타이르고 계시는지도 모르지요

긴 세월, 제가 이 가슴 하나에만 담아온 사연을 밝힐 때가 왔노라고 말입니다.”

잠시 시간을 내 주시겠습니까, 하고 손님은 오치카에게 물었다.

인생의 고갯길에서 내리막으로 접어든 소상인의 옛날 이야기입니다

만주사화 꽃을 아끼는 그 마음으로 들어 주시겠습니까.”

 

 

하지만 이 경우에는 기치조가 사람을 죽인 방식, 사건의 형편 또한 특별히 더 나빴던 게 아닐까.

평소에는 온화하고 성실한 직인이다. 하지만 화를 내면 손을 댈 수 없고

말려도 멈추지 않을 정도로 격해진다. 사람을 쇠 지렛대로 때려죽이기까지 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본디 난폭했거나 손버릇이 나쁜 자보다 오히려 이 경우가 더 다루기 힘들다

기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형과 동생 사이이니 그러한 기질은 아마 서로 닮지 않았을까

얌전하고 부지런한 도키치도 방심할 수 없는 사람이지는 않을까

한 꺼풀 벗기면 형과 같은 얼굴이 나오는 게 아닐까.

고용살이를 시켜준 가게의 주인이,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그런 의심과 불신을 품고 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그들을 향해서 은밀하게 고자질이나 험담을 속삭인 사람들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도키치도.

혹시 살인자인 형과 비슷한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도 나쁜 점은 도키치 자신도 그 생각을 그릇된 의심이라고 일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의 결백을 입증할 수는 없다

시간을 들여서 자신의 일하는 자세와 타고난 마음씨를 보여 주고

나는 형님처럼 성질이 급한 사람이 아닙니다, 라는 신용을 얻어내는 수 말고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동안 들어가는 시간이 불안하다, 싫다, 라고 하니 어쩔 수 없다.

 

 

아버지 다쓰지로는 자물쇠 고치는 일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가게를 낸 것은 아니고, 연장통을 짊어지고 행상을 다닌다

자물쇠를 달고, 떼고, 수선하는 게 주된 일이지만 주인이 열쇠를 잃어버리면 

자물쇠를 따 주기도 하고, 손수 열쇠를 만들기도 한다.

섬세한 수작업이면서 동시에 남의 집에 들어가야 하고경우에 따라서는 

그 집이 남에게 들려주길 꺼리는 사정이나 호주머니 형편까지 추측할 수 있는 장사이니

데퉁스러운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입이 가벼운 사람도 안 된다

다쓰지로는 성실한 성격에 실력도 좋았으며, 이웃 사람들로부터

다쓰 씨는 자신의 입에도 자물쇠를 채우고 있지라는 평을 들을 만큼

말수가 적은 사내였기 때문에 이 직업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마쓰타로 씨는 어차피 남이었어요.”

가족처럼 함께 살아도, 가족 같은 친근함을 느끼고 있어도, 가족은 아니다. 그 사이에는 선이 그어져 있다.

더구나 단순한 남이 아니에요. 어디서 굴러먹던 말 뼈다귀인지 모를 뿐만 아니라 

무서운 일을 겪은, 버림받았을지도 모르는 아이지요. 어떤 나쁜 인연을 달고 있을지 알 수 없어요

그 인연이 언제 불쑥 나타날지도 모르고요.”

그러니 선은 지울 수 없다.

그게 어른의 사고방식이다.

그것이어디서 굴러먹던 말 뼈다귀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주워서 키워 준 은인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177. 안주 / 미야베 미유키 ★★★★★

 

미시마야 변조괴담 그 두번째!

 

에도 간다에 있는 미시마야는 장신구와 주머니를 파는 주머니 가게이다. 이 미시마야에는 멋스러운 주머니 이외에도,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또 하나의 명물, 괴담 대회가 있다. 이야기를 하는 장소는 미시마야 한편에 마련된 흑백의 방’. 본래는 검은 돌과 흰 돌로 바둑을 두는 곳이지만, 지금은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진귀한 이야기들을 흑백의 구분 없이 청해 듣는 장소가 되었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한 번에 한 명.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 이 역시도 단 한 명이다. 바로 이헤에의 조카딸인 꽃다운 나이의 소녀 오치카이다.

 

흑백의 방에서는 이야기를 하고 버리고, 듣고 버리는 것이 규칙입니다.” 사람들에게 잊혀 버린 산신과 인간 소년의 깜찍한 우정. 한 사람이 죽고 나서도 모든 걸 똑같이 해야 한다는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쌍둥이 자매의 가련한 사연. 무너져 가는 빈 저택을 홀로 지키는 기이한 생명체 구로스케의 이야기. 그리고 한 마을을 파멸로 몰고 간 한 남자의 무서운 원한까지. 때로는 귀엽고, 때로는 가슴 아프고, 또 때로는 오싹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1편인 흑백이 다소 오싹한 이야기였다면 안주는 주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로 채워져 있어. 물론 섬뜩한 이야기도 있음. 특히 쌍둥이 자매 이야기에서 인간의 다면성과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함이 아주 돋보였음.

 

이번 편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 뒷맛이 찝찝한 괴담이 아니라는 게 너무 좋음. 인간에 대해 냉정한 시각을 견지하면서도 그 기저에는 사람을 향한 따스한 시선이 기반이 되는 게 여러 모로 요시나가 후미 느낌이 난다.

 

 



오치카 씨는 아실까요. 옛날부터 상인은 쌍둥이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상가뿐만이 아니다. 무가에서도 그렇다. 오치카도 그런 경향이라면 제법 안다

마찬가지로 여관 손님들에게서 주워들은 지식이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다는 일은, 제 주위에서는 없었지만요.”

꼭 닮은 쌍둥이는 집안을 나눈다’, ‘재산을 나눈다고 하여 꺼린다

짐승의 배라는 몹시 불쾌한 표현을 쓸 때도 있다. 개나 고양이는 한 번에 많은 새끼를 낳기 때문이다.

자식이 많은 건 행복한 일인데, 왜 쌍둥이만 나쁜 말을 듣는지 모르겠어요하고 오치카는 말했다.

“‘재산을 나누는게 아니라 재산이 고스란히 두 배가 된다고 생각하면 경사스러운 일일 텐데요.”

오미치는 웃었다. “그렇군요. 모든 일은 말하기 나름, 생각하기 나름이지요

다만 정말로 어려운 점이 있는지도 몰라요.”

어려운 점이라고요.”

. 한 살이라도 나이 차가 나면 형제와 자매로 위아래가 나뉩니다

돈도 그렇고 집을 지을 때도 그렇고, 재산을 물려줄 때도 그게 기준이 되잖아요

하지만 쌍둥이는 위아래를 구분할 수가 없으니까요.”

 


 

왜 곰보 얼굴이 마를 쫓는 것일까.

천연두 신은 역병신 중에서도 특히 강한 힘을 갖고 있다고 하지요.”

천연두가 무서운 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연두에 걸려서 심한 곰보가 남은 사람은

그 몸에 천연두 신의 힘을 다른 이들보다 많이 받은 사람이랍니다.”

따라서 곰보와 함께 사악한 것이나 마를 쫓아낼 수 있는 강한 힘도 얻었다는 뜻이 된다.

신의 힘의 일부를 받아 가호를 입은 셈이니까요.”

신의 가호…….”

. 곰보는 그 증거예요. 천연두 신의 사자라는 증거.

그 힘으로 다른 재앙이나 역병을 물리치는 거지요.”

그래서 정중한 대우를 받는다.

 


 

결국 이 이야기에 유령이 나설 자리는 없었군요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세속적인

그렇기 때문에 남의 일 같지 않은 이 세상의 이야기였어요.”

 


 

가도 신자에몬은 사람을 싫어했다.

그는 자신의 임무를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잘 수행해 왔다

따라서 사람과 교제하는 게 불편하다거나 서툴다는 건 아니리라.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성가셔서 견딜 수가 없다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다.

사소한 충돌에서도 쌍방이 각자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일을 왜곡하며 주장하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이득이 되는 일에는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고, 일을 그르치면 시종 변명을 늘어놓거나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려고 한다. 옹졸하고, 교활하고, 한심하다. 그런 주제에 욕심은 많다.

신자에몬의 이러한 속내를 알고 있는 사람은 하쓰네뿐이다

자식들 앞에서 그는 말수가 적지만 따뜻한 아버지였다. 일을 할 때는 성실하고 근면했다

곤란에 처한 사람에게는 손을 내밀어 주고, 화가 나 있는 사람은 잘 달래고

실수한 자에게는 적절한 조언을 건넨다

그의 직업적인 면에서 귀감이 될 만한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그를 이렇게 돌아다니도록 강요하는 사람들을, 세상을, 진심으로 싫어했다.

 

 


마을 사람들은 도미이치의 머리가 식으면 된다고 여기지는 않았어요

그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처음부터 그럴 작정은 아니었다고 해도, 그 녀석과 오하쓰를 가두고 지지든 볶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여겼을 때부터 고삐가 풀리고 만 거예요!”

사람의 고삐. 사람의 양심이다. 누군가의 위에 군림하고 그 생사여탈을 쥐었을 때

그 고삐가 어이없이 풀릴 때가 있다. 특히 무리를 믿고 일을 벌일 때에는.

 

 

 

 

178.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 와카타케 나나미 ★★★☆☆

 

느닷없이 사보 편집장이 된 와카타케 나나미에게, '새로 창간하는 사보에 단편소설을 실을 것'이라는 상부의 지시가 떨어진다. 와카타케의 간절한 청탁을 받은 대학 선배는 자기 대신 실화에 의외의 해석을 부여하는 재능을 갖고 있는 친구를 소개해 준다.

 

, 연재 조건은, 일기장을 뒤져서 1년간 열두 편의 단편소설을 써주되 작가의 이름과 신상은 일체 비밀에 붙인다는 것. 이렇게 해서 익명 작가 ''의 단편소설이 4월호부터 이듬해 3월호까지 1년간 실린다. 나팔꽃, 빙수, 보름달, 크리스마스 케이크 등의 소재가 암호풀이, 수수께끼, 밀실, 미행, 도난, 의문의 죽음에서부터 초자연 현상과 로맨스, 유머까지, 오밀조밀한 단면들과 미스터리가 어우러져 펼쳐진다. 연재가 끝나자 와카타케는 그 수수께끼의 작가를 만나러 가는데.

 

 

<조용한 무더위> <녹슨 도르래>를 재미있게 읽었기에 이 작가의 초기작도 읽어봤는데, 무난하게 읽을 만하다. 형식이 특이한 소설. 책중책이라고 해야 할까? 매 에피소드마다 나나미가 만드는 사보의 목차가 나오고, 그 사보에 실린 단편소설이 게재되는 형태로 진행된다. 마지막에 전체 이야기를 죽 아울러 주는 반전이 좋다.

 

 








끝! 여기까지 읽은 톨들 정말 수고했어!

올해는 작년보다 단편을 많이 읽어서 넘버가 좀 긴데 분량으로 따지면 2019년이랑 비슷한 것 같아.

혹시 문제될 소지가 있을 시 덧글로 말해주면 최대한 수정할게.

그럼 내년 6월에 봐!



  • tory_1 2020.12.31 22:42
    붕대감기랑 여자둘이살고있습니다 읽어보고싶어졌어
    정성글 고마워 토리야.. 새해 복 많이 받아♥
  • W 2020.12.31 23:06

    둘 다 추천하는 책이야! 톨도 새해 복 많이 받아~

  • tory_2 2020.12.31 23:04

    종이달 재밌어 보인다 ㅠㅠ 정성글 고마워! 새해 복 많이 받아 ㅎㅎ

  • W 2020.12.31 23:06

    심리묘사 촘촘하고 몰입도도 좋아서 추천해. 톨도 새해 복 많이 받아ㅎㅎ 

  • tory_3 2020.12.31 23:05
    우와 정성글은 추천이야
    6달동안 90권이라니 거의 이틀에 한권 꼴이네 톨의 성실함에 박수ㅠㅠㅠ
    톨은 읽으면서 메모를 동시에 하는 편이야?
  • W 2020.12.31 23:08

    난 E북 사용하기 때문에 인상깊은 구절은 읽으면서 하이라이트 쳐놓고, 다 읽은 책은 제목만 간단히 기록해둬! 줄거리랑 감상평은 그때그때 적을 때도 있는데 보통은 몰아서 한꺼번에 적고.

  • tory_5 2020.12.31 23:09

    정성들인 리뷰 정말 고마워!! 토리 글들 참고하면서 책 구매 엄청했었어. 이번에도 고마워!! 토리가 추천해주는 책 기대된다.

  • W 2021.01.01 00:18

    읽어줘서 고마워! 추천도서가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 tory_6 2020.12.31 23:13
    재밌어 보이는 책 많다! 토리 덕분에 2021년에 읽어 보고 싶은 책이 늘어났어~ 새해 복도 많이 많이 받고, 즐거운 독서 생활 하기를 바라!
  • W 2021.01.01 00:18

    톨도 새해복 많이 받아! 추천한 책이 톨 취향에 맞았으면 좋겠네ㅎㅎ

  • tory_7 2020.12.31 23:20
    대박 정성글 찬찬히 읽어보면서 장바구니 좀 채워야겠다!!!! 재밌어보이는게 많아서 설렌다 고마워!!!
  • W 2021.01.01 00:19

    취향에 맞았으면 좋겠다! 새해복 많이받아~

  • tory_8 2020.12.31 23:46
    정성글 짱이다 잘읽었어!
    페미니즘을 팝니다 책이름만 들어봤는데 읽어봐야겠다
  • W 2021.01.01 00:19

    읽기 좀 어렵긴 한데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 즐거운 독서되길!

  • tory_9 2021.01.01 01:15

    헐. 엄청 정성스러운 글이다. 작성하는데도 시간이 오래걸렸을거 같아. 평점에 중간중간 줄거리까지. 정성 고마워. 나중에 참고해서 책 골라볼게.

    더불어 엄청 다독하는구나. 혹시 속독으로 읽니? 나 책 읽는게 너무 느려서 처음시작하는것도 잘 엄두가 안나. 큰맘먹어야행... 읽다보면 중간에 끊기가 힘들어ㅜㅜ

  • W 2021.01.01 01:43

    응 나 속독으로 읽어! 나랑은 반대구나 난 중간에 엄청 끊으면서 보거든ㅠㅠㅋㅋㅋ 대중교통이나 줄서서 기다리는 자투리 시간에 짬짬이 읽는거라 5분읽고 뭐 하고 10분 읽고 또 뭐 하고 그래ㅋㅋㅋ

  • tory_10 2021.01.01 03:59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4/01/27 20:57:42)
  • W 2021.01.01 12:56
    도움됐다니 보람차다~ 고마워!
  • tory_11 2021.01.01 06:20
    와 새해 첫날부터 이렇게 좋은 글을 읽게 해줘서 고마워
    작년엔 주로 에세이를 많이 읽었는데 토리글 보니까 올해는 읽고 싶은 소설이 많아져서 벌써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책들 다 담아놨다
    새해 복 많이 받고 올해도 좋은 책들 많이많이 만나게 되길 바랄게!!
  • W 2021.01.01 12:57
    톨 취향에 맞는 책들이었으면 좋겠다! 톨도 즐거운 독서라이프 보내~
  • tory_12 2021.01.01 07:03
    정성글 고마워. 우선 붕대 감기랑 종이달 읽어 보고 싶다. 새해 복 많이 받고 2021년에도 즐거운 독서 생활 하길 바라.
  • W 2021.01.01 12:58
    둘다 정말 추천하는 책이야. 새해복 많이받아~!
  • tory_13 2021.01.01 10:54
    정시 퇴근하겠습니다랑 붕대감기 읽어보고 싶어졌어. 정성어린 감상 너무 고마워!!!
  • W 2021.01.01 12:58
    두권 다 엄청 재밌어ㅋㅋㅋ 취향에 맞길 바랄게~!
  • tory_14 2021.01.01 11:07
    와 톨이 독서량과 정선스러운 리뷰 및 추천글에 감탄했어. 토리가 4~5점 준 책들은 꼭 다 읽어봐야겠다. 고마워 진짜 좋은 책들 덕분에 많이 알아가.
  • W 2021.01.01 12:59
    책들이 취향에 맞길 바랄게! 즐거운 독서라이프 되길~
  • tory_15 2021.01.01 13:10
    상반기 리뷰 글보고 안그래도 하반기 토리 리뷰 기다리규 있었어!! 곧 결혼을 앞둬서 그런가 여성의 삶에 대한 한국 소설들이 넘 많이 들어오네 붕대감기 280일 잘 읽을게 추천 고마워!!
  • W 2021.01.02 11:31
    결혼 정말 축하해~! 기다려줘서 고마워 취향에 맞았으면 좋겠다!
  • tory_16 2021.01.01 15:24
    내 구독서비스 리스트랑 겹치는게 많아서 반갑다! 나도 붕대감기 정말 잘 읽었어. 기대 훨씬 이상의 책이었음. 미야베 미유키 에도 시리즈도 별 기대 없이 읽어봤는데 재밌었어... 몰입감이 장난 아냐
  • W 2021.01.02 11:33
    나도 붕대감기 무슨내용인지 모르고 읽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좋더라ㅜㅜ 미미작가님 괴담은 이제 대가의 반열에 오른것같아
  • tory_17 2021.01.01 15:27

    우와 토리 진짜 대단하다! 멋져!!!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나도 엄청 재미있게 읽었어서, 반가웠어!

  • W 2021.01.02 11:34
    난 에세이는 거의 안읽는데 이건 진짜 넘 재밌더라구ㅠㅠ 문장 진짜 센스있고 이해잘되게 쓰셔!
  • tory_18 2021.01.01 15:39

    멋지다 토리

    올려준 후기 보고 골라서 읽어봐야겠어 잘봤어

  • W 2021.01.02 11:35
    취향에 맞았으면 좋겠다~!
  • tory_19 2021.01.01 16:43
    94번 리뷰는 한남문학작가들이랑 한남영화감독이 꼭 읽어봤음 좋겠다.. 좋은글 고마워 잘 읽었어!
  • W 2021.01.02 11:35
    좀 화나가지고 격하게 쓴 감은 있어ㅠㅠㅋㅋㅋ 읽어줘서 땡쓰!
  • tory_20 2021.01.01 17:14
    대단하다!!! 나도 올해는 진짜(..) 독서 좀 해야겠다고 다짐... 재밌어보이는게 많다 ㅠㅠ 고마워!!
  • W 2021.01.02 11:36
    취향에 맞았으면 좋겠다ㅎㅎ
  • tory_21 2021.01.01 20:12
    감사합니다 선생님 와씨 나 감동 받았어 고마워 ㅠㅠ
  • W 2021.01.02 11:39
    즐거운 독서라이프 보내~!
  • tory_22 2021.01.01 21:35
    우와 진짜 ㅠㅠㅠㅠ 나랑 취향 비슷해서 마ㅇ설였던 책들 다 넣어둿어! 미시마야 너무 좋지 ㅜㅜ
  • W 2021.01.02 11:40
    진짜 내가 읽어본 괴담집 중 탑인듯!ㅜㅜ
  • tory_23 2021.01.01 22:44
    정성글 대박이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마자 톨 추천작들 읽어볼래 고마워!
  • W 2021.01.02 11:46
    취향에 잘 맞으면 좋겠다!
  • tory_24 2021.01.01 23:25

    무증거범죄 나는 책은 안봤는데 넷플릭스에 드라마판 봤거든? 무증지죄! 배경이 하얼빈쪽인가 북쪽에 추운도시로 옮겨갔는데 분위기며 연출같은게 꽤 괜찮아! 

  • W 2021.01.02 11:47
    드라마도 나왔구나? 몰랐어 한번 찾아볼게!
  • tory_25 2021.01.01 23:32
    우와 정성글ㅠㅠㅠ추천작 꼭 읽어볼게,!!!
  • W 2021.01.02 11:47
    톨 취향에 맞으면 좋겠다...!
  • tory_26 2021.01.02 00:18
    정말 멋지다! 추천작들 잘 읽을게 :)
  • tory_27 2021.01.02 00:24
    정말 뭔일이야 너무 정성글이다 고마워 두고두고 읽어볼게~!
  • tory_28 2021.01.02 00:46
    시녀 이야기도 가학 포르노던데 질 낮은 아류라니ㅎㅎㅎ 꼭 피해가야겠다
  • tory_29 2021.01.02 01:40

    와 정성글 너무 좋다 잘 읽었어 토리야!!!

  • tory_30 2021.01.02 07:53

    추천작 읽어볼게 ㅠㅠ 고마워

  • tory_31 2021.01.02 08:38
    톨아 안그래도 반기마다 올라오는 톨이 글 기다리구 있었는데 너무 반갑다 히히 추천 일단 박고 이번에도 흥미로워보이는 책들이 너무 많아서 앞으로 이거 다 읽어볼 생각에 너무 설레도 두근거려!
    붕대감기 읽어보고싶었는데 톨이 글 보니까 당장 이번 주말부터 꼭 읽어야겠어 항상 정성스런 추천글 너무 고맙고 정말 팬이야 톨이의 독서력에 치얼스..☆
    톨이의 추천작 읽으면서 내년 상반기까지 기다릴게!! 올해도 행복한 독서 하길 바라 새해 복 많이 받어!!
  • W 2021.01.02 11:52
    좋아해줘서 고마워!ㅎㅎ 취향에 맞았으면 좋겠다~ 톨도 새해복 많이 받아!
  • tory_32 2021.01.02 10:51
    톨아 너무 고마워! 톨이 별 만점 준 책들은 일단 다 메모해두었어. 미야베 미유키 작가 좋아하는데 괴담 시리즈 꼭 읽어야지!! 새해 복 많이 받아~~
  • tory_33 2021.01.02 11:33
    와 정말 고마워 참고해서 독서 계획 세워야지!
  • tory_34 2021.01.02 13:06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2/03/10 22:34:19)
  • tory_35 2021.01.02 18:16

    늘 고마워 톨아 난 종이달, 정시 퇴근.. 주문했당!!!

  • tory_36 2021.01.03 02:57
    토리 추천 고마워♡♡
  • tory_37 2021.01.03 10:44
    나 여자둘이 살고있습니다 별점 보고 이 토리의 점수를 믿고 가쟈! 해서4~5점짜리 구경하러 서점 가보려구!(코로나 좀 나아지면 ㅠㅠ흑흑흑) 토리야 정성어린 추천 고마워!
  • tory_38 2021.01.03 23:29
    너무너무 고마워 사랑해 재밌겠다❤️
  • tory_39 2021.01.04 08:25
    독서량 장난 아니다.. 이거 보고 읽고싶은 책이 많아졌어 고마워
  • tory_40 2021.01.04 11:09

    성실하게 열심히 읽었구나! 굉장하다. 책 읽고 메모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더라고.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이 많다.

    추천 고마워!

  • tory_41 2021.01.04 17:38

    와씨 정성대박이다 토리 글 지우지 말아줘 ㅠㅠ 이거 보고 나도 책 봐야지

  • tory_42 2021.01.06 02:30
    진짜 정성이다... 고마워 ❤️
  • tory_43 2021.01.06 08:31
    공들여 쓴 게 느껴진다! 2021년 좋은일만 가득할거야 잘 읽을게!!!
  • tory_44 2021.01.13 09:38

    대단하다! 살펴보니 추리 스릴러물 좋아하는데 취향이 비슷한 것 같아서 스크랩하고 따라 읽어볼게!! 고마워! 

  • tory_45 2021.01.17 03:10

    추천과 스크랩!

  • tory_46 2022.04.28 06:56

    정성글 고마워!!

  • tory_47 2023.01.01 16:23

    와 200권 가까이 읽었구나 언젠가 토리가 읽을 책이 없을 날도 오려나 ?

  • tory_48 2023.02.27 12:38
    스크랩
  • tory_49 2024.01.29 08:50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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