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정원
요즘 한국 소설 좋은 게 너무 많아서 신나게 읽고 있는데, 읽고나서 그냥 감상만 남으면 허무하기도 하고 슬플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던 구절 적어놨거든.
토리들이랑 나누고 싶어서 가지고 왔어.
여기에 가져온 책 모두 정말 잘 읽은 책이라, 혹시 무슨 소설 읽을지 고민하는 토리들 있으면, 이 중에 아무거나 골라도 대체적으로 괜찬을 거라고 나는 생각함.
아 그런데 이 안에 SF소설책이 꽤 들어가 있고, 과학적인 개념이 종종 나오기는 한다는 건 미리 밝히고 싶음.
나도 작년부터 SF 읽기 시작해서 정말 완전 어려운 개념 들어간 것은 이해할 자신이 없는데, 적어도 여기에 있는 SF소설들은 그렇게까지 머리에 쥐가 나지는 않았음.


돌이킬 수 있는
문목하

236P
심판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한테 받는 거야.

280P
갈 거야. 다시 시작하자. 성공을 빌어줘.
나는 당신의 고통을 빌게.

412P
"왜겠어요?"
정여준은 미소 지었다.
최주상이 그를 완전히 처음 보는 낯선 이로 느낄 만큼 찬란한 미소였다. 

**************************************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15P 
지난 세기 여성들의 마음엔 절벽의 풍경이 하나씩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최근에 더욱 하게 되었다. 십 년 전 세상을 뜬 할머니를 깨워, 날마다 모멸감을 어떻게 견뎠느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었다.

20P
안쪽에 찌그러지고 뾰족한 철사가 있는 사람들, 배우자로든 비즈니스 파트너로든 아무데도 못 갖다 써요. 꼭 누군가를 해치니까.

100P
엄마. 나는 죽지 않았어. 죽지 않았으니까 사는 것처럼 살아야지.

178P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그가 죽이고 싶었던 것은 그 자신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도 나의 행복, 나의 예술, 나의 사랑이었던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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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34P
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이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영광도 그들의 것이 되어야 마땅했다. 영화는, 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89P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105P
상대의 고통을 같이 나눠 질 수 없다면, 상대의 삶을 일정부분 같이 살아낼 용기도 없다면 어설픈 애정보다는 무정함을 택하는 것이 나았다.

164P
기억은 재능이야. 넌 그런 재능을 타고 났어. ...하지만 그건 고통스러운 일이란다. 그러니 너 자신을 조금이라도 무디게 해라. 행복한 기억이라면 더더욱 조심하렴. 행복한 기억은 보물처럼 보이지만 타오르는 숯과 같아. 두 손에 쥐고 있으면 너만 다치니 털어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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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14P
우리는 마시고 내쉬는 숨 그 자체일 뿐이라고 이경은 생각했다. 한없이 상승하면서도 동시에 깊이 추락하는 하나의 숨결이라고.

29P
저는 그 사람을 위로했고, 그 사람도 저를 위로했죠. 어떻게 우리가 두 사람일 수 있는지 의아할 때도 있었어요. 네가 아픈 걸 내가 고스란히 느낄 수 있고, 내가 아프면 네가 우는데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일 수 있는 거지? 그 착각이 지금의 우리를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들로 만들었는지도 몰라요

121P
그렇게 부모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어린 나에게는 부모가 나를 제대로 사랑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나를 그저 화풀이 대상으로 삼았다고 인정하는 것보다는 쉬운 일이었다.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가짜 이유라도 만들어서 믿고 싶었다.

127P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그건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였다. 

131P
나의 선택으로 공무를 만났고, 일상을 나눴고, 내 마음이 무슨 물렁한 반죽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금씩 떼어 그애에게 전했으니 공무는 나의 일부를 지닌 셈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공무와 떨어져 있는 나는 온전한 나라고 할 수 없었다.

138P
공무가 어땠냐고. 마냥 혼자였지. 마냥 혼자였어, 그애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였던 사람처럼 혼자였어.

179P
사람이란 신기하지. 서로를 쓰다듬을 수 있는 손과 키스할 수 있는 입술이 있는데도, 그 손으로 상대를 때리고 그 입술로 가슴을 무너뜨리는 말을 주고받아. 난 인간이라면 모든 걸 다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

181, 182P
사랑만큼 불공평한 감정은 없는 것 같다고 나는 종종 생각한다. 아무리 둘이 서로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더 사랑하는 사람과 덜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누군가가 비참해서도, 누군가가 비열해서도 아니라 사랑의 모양이 그래서.

202P
시간이 상처를 무디게 해준다는 사람들의 말은 많은 경우 옳았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진상을 알아갈수록 더 깊은 상처를 주기도 했다.

298P
그녀는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넌 네 삶을 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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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물질의 사랑
천선란

18P
엄마의 병은 그녀가 살아오며 들이마신 숨의 값이었지만 그 과정에는 필시 외로움이 끼어들었을 것이다.

35P
어느 곳이든 네가 나아가는 곳이 길이고, 길은 늘 외롭단다. 적당히 외로움을 길 밖으로 내던지며 나아가야 한다. 외로움이 적재되면 도로도 쉽게 무너지니까. 알겠니?

97P
사람들은 가끔 이유 없이 누군가를 미워해. 그냥 상처 주고 싶어 해. 그러니까 저 사람이 왜 나에게 상처를 주려는지 네가 생각할 필요 없어.

143P
웃긴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건 생각보다 중요해요. 그걸 알아야 해요. 이 지구에 같은 인간은 없어요. 모두가 다 서로에게 외계인인 걸, 모두가 같은 사람인 척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요.

153P
결국 너는 너야. 끝까지 무엇이라고 굳이 규정하지 않아도 돼.

250P
눈치 보고 자란 딸들은 가끔 그래. 짐이 덜 되기 위해서 자꾸 자신의 부피를 줄여. 몸짓도, 소리도, 존재감도.

328P
"행복하면 인간은 어떻게 되나요?"
한나는 오래도록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미래를 걱정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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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닮았는가
김보영

30P
꽃이 피는 순간을 기다려보았니. 꽃은 지켜보고 있으면 피지 않아. 아무리 그 순간을 포착하고 싶어도 꽃은 언제나 네가 한눈을 판 사이에 이미 피어 있지. 그건 네 관찰이 양자적 혼돈 상태를 안정된 상태로 만들기 때문이란다.

31P
사람은 자신이 관찰한 것밖에 알 수가 없어. 누구나 일생 자신의 인생밖에 살아본 적이 없지.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온 세상을 보고 온 것처럼 큰소리치곤 한단다. 

56P
맨날 그러잖아요. 애들은 다 똑같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 여자는 똑같다. 남자는 똑같다. 엄마는 똑같다. 자식은 똑같다. 얼마나 인식 범위가 좁으면 그 수없이 많은 파형이 다 똑같게 보일까요? 세상을 평균값 하나로밖에 보지 못하나 봐요.

62P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고, 쉰이 되고, 예순 살이 되겠어. 
오늘의 나를 위해서 늙어갈 거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위해서.

96P
기성세대가 원하는 건 현상유지가 아니예요. 세상이 자신에게 익숙한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바라는 거죠. 좀 더 거칠고 야만적이었던 시절로요. 하지만 세상은 그대로 두면 변해요.

122P
우리는 내일을 말하고 어제를 말하며 한 번도 오늘을 살지 않았다. 우리의 시간은 다 그렇게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내가 그대를 그리워함은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형편없지 않을 수도 있었던 그 시간들을 그리워한다.

244P
앎이 멈추면 시간도 멎는다. 앎이 멈춘 사람의 시간은 멎으며 그 사람은 더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시간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사람마다 다른 속도로 흐르는 것이다.

288P
“인간이 볼 수 있는 의식은 단 하나, 자신의 의식뿐이야. 타인의 의식은 단지 추측할 수 있을 뿐이야. 실상 인간이 타인에게 자아가 있다고 추측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자신과 얼마나 닮았는가.’”
  • tory_1 2021.01.04 20:18

    와 천선영 김보영.. 문장 너무 좋아 ㅠㅠㅠ

  • tory_2 2021.01.04 20:53

    김보영 작가 옛날 책 읽고 너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그만 뒀는데 위에 책은 한번 읽어보고싶다. 


    돌이킬수있는 정말 너무 좋아해. 


    여성작가들 파이팅 

  • tory_3 2021.01.04 23:29
    갈 거야. 다시 시작하자. 성공을 빌어줘.
    나는 당신의 고통을 빌게.

    이 글귀때문에 내가 <돌이킬 수 있는>을 보기로 했지,, 최고였어👍
  • tory_4 2021.01.05 00:24
    내게 무해한 사람
    나도 저 부분이 좋았어
  • tory_5 2021.01.05 10:26

    김보영 작가책 처음 읽었는데 너무 좋더라

  • tory_6 2021.01.09 00:29
    쇼코의 미소 생각이 난다 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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