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정원

ㅇㅋ시절 추천받았던 책인데

다른책들 읽느라, 방치하고 있다가

오늘 반신욕하면서 읽고... 한동안 멍하니 욕조에 앉아 있었어..오랜만에, 좋은 책 만난거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답!


완전 나른해서 뻗기전에

문장들이 너무 사무쳐서, 토리들과 함께 나눠본다 :D


자세한 줄거리와, 내 감상들을 말하면

스포가 될 것 같아서 자제할게!







# . 

여행은 우리를 저만치 돌려세운다. 지루하고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풍토, 이국적인 표정과 부딪치다 보면 가슴속에서 짜릿한 폭음과 함께 불꽃이 터진다. 하지만 거기에 감탄하는 건 우리가 다름 아닌 여행자이기 때문이다. 스쳐 지나가는 낯선 풍광은 삶에 너무 깊이 끼어들지 않기로, 개연성 없는 농담처럼 유쾌하기로, 후에 돌아갈 남루한 진짜 생활을 위하여 사진첩의 얇은 낭만에 머물러 주기로 미리 약속되어 있다.

   그게 원칙이긴 한데, 가끔은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 . 

데카르트는 그의 유명한 책에서 '내가 육신이 없는척,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척, 내가 있는 장소도 숫제 존재하지 않은 척 가장할 수는 있어도, 내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척 가장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럼으로써 '이 순간 사유하고 있는 자기 존재에 대한 부인할 수 없는 확신'으로 나아갔다.

  지랄하네.






# . 

물론 여행은 즐거운 방식으로 우리를 저만치 돌려세운다. 지루하고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풍토, 이국적인 표정과 부딪치다보면 짜릿한 폭음과 함께 불꽃이 터진다. 하지만 거기에 감탄하는 건 우리가 다름 아닌 여행자이기 때문이다. 스쳐 지나가는 낯선 풍광은 삶에 너무 깊이 끼어들지 않기로, 개연성 없는 농담처럼 유쾌하기로, 후에 돌아갈 남루한 진짜 생활을 위하여 사진첩의 얇은 낭만에 머물러 주기로 미리 약속되어 있다. 그 얄팍한 계약이 우리의 눈을 가리고, 사물의 본래 색을 바꿔치며, 모든걸 연극으로 전락 시킨다.

  인생에는 그런 기만이 없다. 실제의 삶 속에서 우리는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골목으로 접어들고, 되돌릴 수 없는 짓을 저지르고, 매일매일 루비콘 강을 건넌다. 시간은 멈추거나 거꾸로 흐르는 법이 없다. 언제나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방향으로만 흐른다.





# . 

십이 년이라는 시간을 무시한 건 실수였다.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는 것만 원한 건 잘못이었다.  자유를 냉담으로, 구속을 사랑으로 믿은 건 노예에게나 어울릴 착각이었다. 이따금 에릭의 꿈을 꾸었다. 무뚝뚝한 척, 고개를 저쪽으로 돌리고 있으면서도 항상 손 내밀 준비가 되어 있는 에릭을 보았다. 꿈에서 깨어나면 항상 밥이 있었다. 매번 사랑의 수사로써 소유를 확인하는 밥이 있었다.





# . 

플로이는 입구에서 가장 먼 안쪽에 벽과 나란히 자신의 매트를 깔았다. 벽에 난 창으로 오후의 강렬한 햇빛이 들어오면 촌스러운 색채가 억눌리고 흑백의 명암만 두드러져, 누가 뭐래도 그녀가 이 방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레오 자신은 플로이의 왼쪽 혹은 오른쪽, 매트 끄트머리 간당간당하게 걸친 꼴로 방에 머물렀다. 그 어정쩡한 위치가 바로 레오에게 허락된 공간이었으며, 사람의 인생에 기껏해야 한 번밖에 찾아오지 않는, 그것도 운이 꽤 좋아야 한번쯤 겪어볼 수 있는 저 뜨겁고 뜨거운 시절에 레오가 정물처럼 머물러 있던 자리였다.



# . 

누군가 몸을 툭툭 건드리기도 했지만 레오는 깊은 잠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다. 이따금 얼굴에 미소가 번지기도 했고, 악몽을 꾸는 것 처럼 슬픈 표정을 짓기도 했다. 레오는 계속 잠만 잔 게 아니었다. 그러나 깨어 있을 때에도 눈을 뜨지 않았다. 밥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 눈을 감고 계속 플로이만 호흡했다.



#. 

저에게는 여행인 것이 우웨에는 유배였다. 저에게 가볍게 흘러가는 풍경인 것이 우웨한테는 생존의 엄숙한 배경이었다. 자신은 날렵하고 자유롭고, 우웨는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인간으로 그 거리에 뿌리고 있었다. 그토록 다른데 무슨 수로 이해한단 말인가? 설령 사정이 똑같다 해도 마찬가지다. 영혼은, 인간은 그 자체로서 각각 하나의 우주다.



 #. 

이해가 아니었다. 레오가 소이 식스틴에서 그간 줄기차게 해온 작업은, 이해가 아니라 해석이었다. 만약에 멋대로 남을 해석하는 대신 고스란히 상대에게 이입된다면, 정말로 이해한다면, 거기에는 사랑도 증오도 끼어들 틈이 없다. 상대의 즐거움과 아픔을 동시에 느끼며 상대와 동일한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그건 사람한테는 불가능한 일이다.









마무리는 작가의 말로 대신할게 :D






이 책은 여행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항상 어디론가 떠나고 돌아온다. 하지만 돌아온 우리가 떠날때 우리가 아니듯, 돌아온 곳도 떠날 때의 그곳이 아니다. 우리는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여행의 매 순간 치러내며 살고 있다. 그 무정한 비가역성에 주목했다.



이 소설을 쓰는 내내, 반드시 넣었어야 할 문장 하나를 빼먹었다는 더러운 꿈에 시달렸다. 그래서 위태롭기 짝이 없는 구조물이며, 언젠가 와르르 무너지고 말리라는 예감에 불안해 했다. 그 악몽이 현실이 되었는지 어쩐지 모르겠다.


당신의 영혼은 처음부터 이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혼돈의 형태였다. 당신이 이 책을 구입하기 위해 지한 돈은, 그 혼돈에 일련의 질서를 부여한 내 노동의 댓가다.


2010년 5월

박형서







  • tory_1 2018.01.04 23:38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1/09/15 21:13:26)
  • tory_2 2018.01.04 23:57
    나도 ㅇㅋ때 추천받아서 대출해온적 있었는데 ㅋㅋㅋ초반부 줄거리나 문체가 내가 기대했던(제목이 주는, 내지는 작가의말을 미리읽었을때의 인상? )거랑은 좀 많이 달라서 포기했었거든... 다시 읽어보고싶당! 그때는 감상을 같이 나눠보자ㅎㅎㅎ
  • W 2018.01.04 23:58
    초반은 그렇지 근데 그 날것들 때문에 마지막에 메시지가 더 강력해지더라고 나는 ㅋㅋㅋㅋ
  • tory_4 2018.01.05 01:06
    새벽의 나나... 진짜 명작이지ㅠㅠ....
    소재때문에 좀 거부감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개인적으론 충격적이면서도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집요한 힘이 있는 책이었어... 올해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고마워 톨아!
  • tory_5 2018.01.05 10:23
    나도 이책 너무 좋았는데 ㅜ 이런 흡입력 있는 소설 또 없니..?ㅠㅠ
  • tory_6 2018.01.05 22:47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18/02/06 23: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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