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정원

항상 냉철하고 자기 감정 드러내지 않는 서희가 길상이 앞에서만 감정 주체 못하는 게 귀여워서 글 쪄봄ㅋㅋ

그만큼 서희가 길상이를 신뢰하고 의지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도 같고ㅎㅎ

토지에 수많은 남녀 관계가 그려지지만 역시 서희-길상 커플이 제일 두근대고 재밌어(*´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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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스포!!






<5권>


시선을 느낀 길상의 얼굴이 굳어지면 굳어질수록 굳어져가는 그 과정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내려고 서희는 기를 쓴다. 도시 무엇을 찾아내려는 걸까.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 어느 물체를 만졌을 때 확실히 손에 잡혀지는 감촉만큼 서희는 자신의 직감을 언제나 신봉한다. 내 직감이 한 번이나 빗나간 일이 있었던가? 틀림없이 길상에게 무슨 변화가 일고 있는 게야, 틀림없이.


[…]


그럴 리가 있나, 그럴 리 없지. 아암 그건 이 더위에서 온 망상이니라. 망상이구말구. 네가 나를 떠나 어딜 간단 말이냐? 너의 이십칠 년의 세월은 나를 위해 있었던 거구 내가 세상에 나온 십구 년의 세월을 너는 내게 충성했었다. 더위에서 온 망상이야. 이부사댁 서방님이 떠난 후 내 마음이 허해진 탓이 아니겠느냐?


[…]


‘내 얼굴에 술을 끼얹고 미친 듯이 뛰어나가던 사람. 아마 다시는 나타나지 않으리. 뜬구름 같은 그 사람을 놓아주고 나는 평생토록 충성하리라 믿은 이 사내를 내 곁에 두려 하였건만 설마한들, 지가 내 곁에서 떠날 수 있을까? 떠날 수 있을까. 겨루던 상대가 물러나 버렸기에 어쩌면 길상이는 제 마음을 단속하는지도 모르겠어. 비겁해지기가 싫어서 말이야. 안됐다는 생각도 들었겠지. 길상이는 그럴 수 있는 사내지. 아아니 뭐라고!’

순간 서희의 감정이 용수철처럼 튄다.

‘뭐라구? 감히 뉘하고 겨룬단 말이나! 이 내 최서희를 두고 누가 뉘에게 겨루어? 그럴 수도 있느냐?’


[…]


‘내 천 길 낭떠러지를 뛰어내리듯 너를 택하려 하기는 했으되 어찌 감히 너 스스로가 생심을 품을 수 있단 말이냐? 하늘의 별을 따지, 어림 반 푼이나 있는 일이겠느냐! 언감생심, 나를 여자로 보아? 계집으로 네 눈에 보이더란 말이나? 그래 너는 장살(杖殺)의 그 숱한 사연도 몰랐더란 말이냐? 내 비록 천애고아로서 이곳까지 왔다마는, 양반이 아직은 썩은 무말랭이가 되진 않았어! 감히 하인의 신분으로서!’

천길만길 뛴다. 그러나 어디까지 그것은 서희의 환상일 따름, 길상은 바위처럼 앉아 있을 뿐이고.


>> 길상이는 가만히 앉아있는데 속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널을 뛰는 서희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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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못에 매달린 목도리를 보았을 때 서희는 여자를 집에 데려다 놓고 길상에게 고통을 주리니 생각했었다. 길상이 자기를 낯선 여관에다 내버려두고 여자 집을 찾아간 행위가 애정 없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 그 무자비한 감정을 무엇이 풀어놨나. 풀린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서희는 스스로, 자기 자신마저 질곡에서 풀어버린 것이다. 용정에 쌓아올려 놓은 자기 성(城)으로 돌아간다면 또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으나 그 끈질긴 숙원과 원한에 사무친 보복심과 잠들 수 없는 자긍을 내어버린 자유, 무겁고 숨막히는 철갑을 벗어버린 자유다. 사랑할 수 있는 자유, 다 버리고 어디든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 그러나 바람에 날려가는 나뭇잎같이 왜 슬프고 외로운지, 고아의 느낌이 가슴을 저미는지 서희는 알 수가 없다. 덮어놓고 걷는다. 하늘 끝까지 내처 걸어갈 것처럼 걷는다. 여관과는 사뭇 방향이 다른 것도 개의치 않는다.

[…]

오복점을 나선 서희는 전혀 뜻밖의 자기 행위에 놀라고 당황한다.

‘어째 내가 이걸 샀을까?’

후회하는 것은 아닌데 화를 내며 주어야 할지 잠자코 내밀어야 할지 난감하다.

>> 반평생을 복수만 생각하며 살았지만 길상이와 함께라면 다 버리고 어디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서희ㅠㅠ
자기도 모르게 오복점에서 길상이 목도리 사고 당황함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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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는 망토를 벗어던지고 방바닥에 굴러떨어진 꾸러미를 주워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러더니 다음 순간 그것을 길상의 얼굴을 향해 냅다 던진다.

“죽여버릴 테다!”

서희는 방바닥에 주질러 앉아 울음을 터뜨린다. 어릴 때처럼, 기가 넘어서 숨이 껄떡 넘어갈 것 같다. 언제나 서희는 그랬었다. 슬퍼서 우는 일은 없었다. 분해서 우는 것이다. 다만 어릴 때와 다르다면 치마꼬리를 꽉 물고 울음소리가 새나지 않게 우는 것뿐이다.

“난 난 길상이하고 도망갈 생각까지 했단 말이야. 다 버리고 달아나도 좋다는 생각을 했단 말이야.”

철없이 주절대며 운다.

“그 여자 방에 그, 그 여자 방에서 목도리를 봤단 말이야, 으흐흐흐흣…….”

길상의 눈동자가 한가운데 박힌다.

“그 꾸러미가 뭔지 알어? 아느냐 말이야! 으흐흐…… 목도리란 말이야 목도리.”

하더니 와락 달려들어 나둥그러진 꾸러미를 낚아챈다. 포장지를 와득와득 잡아 찢는다. 알맹이가 밖으로 나왔다. 그것을 집어든 서희는 또다시 길상의 면상을 향해 집어던진다. 진갈색 목도리가 얼굴을 스쳐서 무릎 위에 떨어진다.

“헌 목도린 내버려! 내버리란 말이야! 흐흐흐…… 으흐흐흣…….”

엄마 데려와! 엄마 데려와! 하며 발광하고 울부짖고 까무라치고 아무거나 잡히는 대로 집어던지고, 그칠 줄 모르게 패악을 부리던 유년시절, 그때 서희를 생생하게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는 길상이지만 길상은 어떻게 할 바를 모른다. 술이 깨고 정신이 번쩍 들지만 무릎 위에 떨어진 목도리를 집었다간 불에 덴 것처럼 놓고 또다시 집었다간 놓고 하면서 서희의 울음을 그치게 할 엄두를 못 낸다. 드디어 그는 목도리를 두 손으로 꽉 움켜쥐고서 마치 훔쳐서 달아나는 도둑처럼 방을 뛰쳐나간다. 문밖에서 엿들으려고 서 있는 여관집 주인 여자와 하마터면 이마빡을 부딪칠 뻔했다. 제 방으로 돌아온 길상은 우리 속에 갇힌 짐승처럼.

“미쳤을까? 애기씬 미쳤을까?”

중얼거리며 맴을 돈다.


>> 명장면 나오셨다!!

어릴 때 꺽꺽 숨 넘어가게 울던 서희 성질머리 여전하고요ㅋㅋㅋ

양반 처녀가 하인 앞에서,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체통 없이 울고불고 난리났고요ㅋㅋㅋㅋ

읽어도 읽어도 재밌고 설레는 장면임 (*´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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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이날 밤 서희는 길상이 들어오기를 고대하였다. 새벽녘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기다렸으나 끝내 길상은 사랑에서 올라오질 않았다. 새벽이 지나고 아침도 지나고 길상은 손님과 함께 하얼빈에 볼일이 있어 떠났다는 전갈이다. 

 “이럴 수가?” 

 도사리고서 밤을 꼬박이 밝힌 서희는 노했다. 격노한 것이다. 서희가 남편 길상에게 이렇게 노해보기는 처음이다. 안절부절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마음, 서희는 이불을 깔고 드러눕고 말았다. 아이들을 멀리하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마구 울었다. 인척이라며 큰절까지 시킨 손님에 대한 짙은 의혹을 풀어주지도 않고 떠난 것도 괘씸하고 분하였으나 행선지가 하얼빈이라는 데도 쌓이고 쌓인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그러나 실컷 울고 난 뒤 해가 중천에 떠올랐을 무렵 서희는 안정을 찾는다. 냉정해지니까 왜 울고 왜 그토록 노하였는지 좀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손님과 함께 하얼빈으로 떠났기로 그것은 종전과 별다를 것이 없는 자신과 길상의 생활인 것이 깨달아진다.

>> 생각해보면 별것도 아닌데 괜히 화나서 이불 뒤집어쓰고 운 서희ㅠㅠ
안쓰러운데 귀여워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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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은 담배를 붙여 물고 서희를 바라본다. 강한 눈길이었다. 서희는 이같이 강한 길상의 눈을 본 일이 없다. 아니 강한 사나이의 그러한 눈길을 본 일이 없다.

‘나는 너를 소유했지만 넌 나를 소유하지 못할 게야. ’

그런 말을 하고 있는 눈 같기도 했었다. 그 강한 눈을 서희는 강하게 받는다. 미동하지 않고 받는다. 그러자 길상의 눈에 말할 수 없는 비애의 그림자가 밀려왔고, 희미한 웃음이 번져나갔다. 비로소 서희는 그 눈에서 자신의 시선을 떨어뜨렸다. 서희는 싸움이라 생각했었지만 그쪽은 그것이 아니었다.

>> 길상이는 정열적으로 바라보는데 혼자 착각해서 싸움 거는 줄 알고ㅋㅋㅋ
평소에는 남의 속 잘 꿰뚫어보면서 왜 남편 마음은 모르냐구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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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권>

“박효영 의사 죽었대요.”

“뭐라구요?”

“그분은 자살을 했대요.”

길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나 다음 뭔지 모를 것이 치밀어올랐다. 서희는 울기 시작했다. 계집아이같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우는 것이었다. 그것은 길상에 대한 무한한 신뢰였는지 모른다. 어릴 적에 떼를 쓰고, 등에 업혀서 버둥거리며 주먹으로 길상의 등짝을 때리며 울던 그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

“왜 아무 말씀 안 하세요?”

흐느껴 울면서 서희는 말했다.

“어째 비난을 안 하십니까.”

또 말했다.

‘뭘 비난하라는 거요?’

길상은 피우던 담배를 던졌다. 일어서서 서희 곁으로 다가왔다. 덥석 팔목을 잡았다. 팔목에 힘이 물려들었다.

“갑시다.”

“이거 놓으세요.”

그러나 길상은 서희 팔목을 거칠게 잡아채듯 하며 걷는다.

“남편 앞에서 다른 사내 죽음을 슬퍼하며 우는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어! 도대체 당신 나이 지금 몇 살이오?”

“이거 놓으세요.”

길상은 손목을 놓아준다. 서희는 소매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 자국을 부지런히 닦으며 걷는다. 걷는데 미쳤구나 하는 생각이 별안간 떠올랐다. 어제 자동차 속에서 울었고 별당에서도 울었고 오늘 또. 철나면서 오늘까지 울어야 할 일이 없어서 울지 않고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천애고아가 되어 이곳까지 오는 동안 뼈 마디마디 으스러지는 슬픔이 어디 한두 번이었겠는가.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보지 않았는가. 길상은 한 마리 염소 새끼를 몰고 가듯 서희를 앞세우고 가면서.

“내가 목석이오? 바지저고리요? 정 그러면 내 머리 깎고 중이 되리다.”

했으나 그 목소리에는 이미 노여움이 없었다.



>> 내가 목도리 장면만큼이나 좋아하는 장면임!!
박의사 죽고 깨닫는 여러 감정 때문에 심란한 마음을 길상이 앞에서는 숨김없이 다 내보이는 서희와
다른 남자 죽었다고 펑펑 우는 아내를 보며 화도 나지만 그냥 다 울 때까지 지켜봐주는 길상이ㅎㅎ

길상이는 서희가 오십 다 되어서도 다섯 살 아이일 때처럼 모든 감정 다 내보일 수 있는 대상이야...참사랑...♡

  • tory_1 2018.07.18 23:27
    어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들만 쏙쏙 모아 놓았어!!!!! 찐톨 천재 아니냐.ㅠㅠㅠㅠㅠㅠ
    나 토지 읽고 이상형이 길상이 같은 남자였는데 없더라 없어 에휴 ㅠㅠㅠㅠㅠㅠ
    둘이 어린 시절부터 넘넘 좋았다ㅠㅠㅠㅠㅠㅠ
  • tory_2 2018.07.18 23:33

    넘 좋음.....ㅠㅠ

  • tory_3 2018.07.18 23:37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서희랑 길상이 장면 모아놓으니 너무 좋다
  • tory_4 2018.07.18 23:47
    이렇게 좋은글은 스크랩을....세상에 넘좋아ㅠㅠㅋㅋㅋ
  • tory_5 2018.07.18 23:54
    스크랩ㅜㅜㅜㅜㅜㅜㅜㅜ토지는 뭔가...좋은데 재탕하기 힘들어서...ㅋㅋㅋㅋㅋㅋ이렇게 모아줘서 고마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tory_6 2018.07.18 23:55
    서희길상 내 최애ㅠㅠㅠㅠㅠ 죽여버릴테다! 장면은 읽을 때마다 설레고 좋다ㅠㅠㅠ 다른 장면들도 다 좋아해ㅠㅠㅠ
  • tory_7 2018.07.19 00:01
    최고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
  • tory_8 2018.07.19 00:47
    고등학교 야자시간에 토지 읽으면서 한권 시작하기 전에 서희길상 부분만 먼저 읽던 그시절이 생각난다...
    진짜 최고야ㅠㅠㅠ
  • tory_9 2018.07.19 01:26
    고등학생때 지문에 나왔던 장면인데ㅠㅠㅠㅠ 아직도 생각난다 ㅠㅠㅠ진짜 그거보고 너무 좋더라고ㅠㅠㅜㅜㅠ
  • tory_10 2018.07.19 01:54
    토정에서 토지 글 볼때마다 토지 뽐뿌오는데 엄두가 안난다...
  • tory_11 2018.07.19 02:46
    2222222 지금 이 글 읽으면서도 뽐뿌 제대로 왔는데 엄두가 안 나.........
  • tory_19 2018.07.19 11:23
    33333
  • tory_23 2018.07.19 12:56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3/08/25 18:54:35)
  • tory_31 2018.07.19 18:12
    왜 엄두가 안나...존잼이람 마랴.제발 읽...어...줘...
  • tory_12 2018.07.19 06:16
    왜 여자 작가는 남성의 감정과 서사를 이토록 매력적으로 풀어내건만 남성 작가는 여성에 대해서만 쓰려고 하면 똥을 제조하는가.. 톨스토이 미만 잡..
  • tory_22 2018.07.19 12:28
    저 내가 작가 잘 몰라서 묻는데 톨스토이 미만 잡이라는게 톨스토이는 잘 썼다는 뜻이지??..ㅠ..
  • tory_23 2018.07.19 12:57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3/08/25 18:54:35)
  • tory_31 2018.07.19 18:13
    @23 222222맞엌ㅋㅋㅋㅋㅋㅋㅋ의도치않은 명작 ㅋㅋㅋㅋ
  • tory_13 2018.07.19 06:34
    나 진짜 목도리 집어던지는 장면 너무 좋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 길상이 너가 어딜 가냐 싶고 막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tory_14 2018.07.19 06:43

    서희가 길상이한테 죽여버릴테다 목도리 던지며 터지듯 질투 쏟아내는 좋은데 길상이 그런 서희를 보며 어쩔줄 모르고 그자리에서 달아나듯 목도리 가지고 뛰쳐나가서 혼자 방안에 돌아와서 애기씨가 미쳤나 진정 못하고 있는것도 넘 좋아ㅠㅠㅠ

  • tory_15 2018.07.19 07:17
    너무 귀여워 ㅠㅠㅠㅠㅠㅠ
  • tory_16 2018.07.19 08:00
    존잼인데 재탕... 너무... 힘들...ㅋㅋㅋㅋㅋ
  • tory_17 2018.07.19 08:46

    토지 1권 읽고 포기했는데 뽐뿌온다ㅋㅋㅋㅋㅋ

  • tory_18 2018.07.19 09:10
    목도리 장면 진심 최고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tory_20 2018.07.19 11:45
    둘이서 터지는 스파크가 장난아냐 ㅋㅋㅋㅠㅠㅠ
    오랜만에 보는건데 또 설렌다...!! 글쪄줘서 고마워 토리야!
  • tory_21 2018.07.19 12:08
    나 마차사고 난 장면도 좋아ㅠㅠㅠ
  • tory_24 2018.07.19 12:57
    나도 뽐뿌 온다!!... 근데 토지가 전체 몇권이었더라...
  • W 2018.07.19 17:26
    20권...ㅋㅋㅋ 하지만 재밌어서 술술 넘어감! 나중에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런 얘기 나오면서 좀 어려워지는데 그 부분은 일단 대충 넘기더라도 완독을 목표로 읽어봐ㅎㅎ
  • tory_25 2018.07.19 12:59

    어느 분이 둘의 관계에 대해서 써놓은 댓글인데 흥미롭다. 이 두사람 ㅋㅋㅋ 참사랑이다 ㅋㅋㅋㅋ

    길상이는 나에게 빨강머리앤 길버트에 이어 영원한 이상형이다...

    여주를 향한 지고지순함이 좋아 참. ㅋㅋ


    스포니까 넘길 톨들은 넘겨 ㅋㅋㅋ

    난 이 댓글읽고 토지 읽고 싶어졌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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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일단. 길상이는 최참판댁 내림종의 신분은 아닙니다.
    우관스님이 절에 버려진 아이(인지... 아닌지... 소설에서는 전혀 말하고 있지 않은데 훗날 저 혼자 얘는 김개주-구천이, 김환의 생부이자 우관스님의 동생.-의 숨겨진 또다른 아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기도 했지요.)를 예닐곱살 무렵에 '중 될 상호는 아닌 것 같으니' 하며 윤씨부인 집안에 맡겨요. 그래서 우관스님의 실제 성씨인 '김'씨를 따서 김길상이 됩니다.

    서희와는 약 7-8살 정도의 나이차가 나고요. 김환이 구천이란 이름으로 최참판댁 머슴노릇을 할 때, 길상이가 절에서 왔다는 말에 관심을 가지며 글자를 가르쳐주고, 소설에서 또 지나가듯 말하는데, 서희의 글스승이었던 김훈장에게서도 글을 배웠던듯 해요. 그래서 머리에 꽤 식자가 든 인물로 나오죠.

    길상이는 간도로 떠나기 전에 이미 서희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 같구요. 하지만 언감생심이죠. 머슴과 상전애기씨였으니까요. 후에, (5부에서) 길상의 첫아들 환국이가 물어요. 아버지도 어머니를 사랑하셨냐고, 어머니는 강한 분인데 그런 분에게도 연민을 느끼겠냐고. 했더니 길상이가 말하죠. 천애고아 혈혈단신, 어찌 연민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고요. 길상이의 서희에 대한 애정은 여러번 드러나요. 곱추도령 병수가 서희를 훔쳐보는 장면에서도 명확히 드러나고요. 하지만, 신분으로 인해 갈등하고, 봉순이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희에 대한 애정때문에 받아주지 못해요.

    봉순이를 아주 강하게 버렸다는 분도 있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는 않았어요. 봉순이가 서희를 좋아하는 길상이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스스로 포기하는 면이 강하죠.
    이상현과의 관계는, 윤씨부인이 이상현을 손주사위로 탐을 내죠. (이상현은 서희보다 두살많아요.) 그러나 이미 정혼을 해 놓은 상태인데다 장남이라, 서희는 데릴사위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조건이 맞지가 않았죠.
    간도로 떠나기 전에 이상현은 이미 결혼을 해서 아내가 있는 상황이었구요.

    -여기까지가 1부내용이구요.

    2부는, 길상이와 서희가 간도에서 부를 일으키는 과정인데요.
    여기서 길상이는 서희의 수족노릇을 합니다. 서희는 안방에 들어앉아 예민한 촉수, 또 공노인의 도움으로 여기 저기가 돈이 되겠다, 하는 판단을 하면 서희의 생각을 현실적으로 옮겨 그 부를 축적해 내는 건 길상이예요. 실제 서희는 전주 역할, 길상이가 사장역할을 하는 셈. 또 한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북쪽으로 와 있는 특성상 길상이의 머슴이라는 신분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냥 잘생기고 능력좋은 남자인거죠.
    이상현은 서희와 마찬가지로 어마어마한 문벌을 등에 지고 있기는 하지만, 딱히 능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구요.

    서희가 길상이를 선택하기 전에 하는 일은 이상현을 버리는 일이에요. 의남매를 맺자는 말로 이상현과 완전히 선을 그어버리죠. (그때까지만해도 철이 없던 이상현은 서희를 데리고 살면서 평생 조선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꿈을 꾸기도 해요.) 그리고 길상이와의 혼인을 성사시켜달라 요청. 이상현은 그것에 충격을 받아 조선으로 돌아가구요.
    서희가 이상현을 좋아했는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아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느꼈어요. 뭐랄까. 철없는 생각? 만약에 이상현이 혼잣몸이었다면 가장 걸맞는 짝이었겠죠. 그랬기 때문에 당연히 이상현을 좋아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그러던 와중에 길상이는 과부댁과 정분이 나요. 1900년대초반이었으니까요. 멀쩡한 새총각이 애 딸린 과부와 정식으로 결혼을 한다는 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일이니, 사실 길상이 입장에서는 책임지지 않아도 좋을 불장난이었던거죠. 길상이가 그것에 관해 스스로 자조하죠. 이기적이고 못된놈이라고. 책임지지 않아도 좋을 사람이기때문에 하는 짓이라는 것을 스스로 아는 거죠. 하여튼, 그 과부댁과 길상이의 정분은 서희에게 위기감-길상이, 즉 자신의 수족이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거대한 부를 쌓아 최참판댁을 재건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을 불러일으켜요. 서희는 행동에 나서죠.

    단 둘이 회령으로 갑니다. 거기서도 막 싸워요. 서희는 난 너랑 도망갈 생각까지 했단 말이야! 라고 이야기를 하고, 길상이는 처음으로 서희에게 막 반말도 해 보고... 그러다가 흐지부지 될 수도 있었는데요... 회령에서 마차사고가 나서 서희 다리가 부러져요. 기절한 서희를 껴안고 병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길상이도 깨닫죠. 서희가 죽을 수도 있다.... 거기서 길상이를 강하게 옥죄고 있던 신분이란 금제가 풀립니다.

    그 덕에 둘이 결혼을 해요. 겉으로 봐서는 서희는 실리를 챙긴 것이고, 길상이는 진심으로 사랑을 했을 뿐인 것 같은데.... 자꾸자꾸 생각을 해보면... 결국 서희도 길상이를 사랑했던 거 아닌가, 싶어요. 이상현을 사랑하고 있다고 우기고(아니 나 정도의 신분인 여자는 이상현 정도를 사랑해야 맞는 거지! 하는 류의 생각? 내가 어찌 머슴인 길상이를 사랑할 수 있겠어? 하고 스스로의 감정을 외면했던 거 아닌가 싶구요. 그 외면했던 감정이 길상이와 과부집의 스캔들로 터져나온.) 있었을 뿐.
    그랬던 서희의 감정은, 간도로 찾아온 봉순이와의 만남에서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서희는 그 종을 최서희의 머리칼 하나 안다치고 최서희 윗자리에 앉힐 테다! 라고 다짐하죠.

    하여간 둘은 간도에서 결혼해서 아들 둘 낳고, 길상이는 서희의 머슴이 아니라 이제 길서상회의 바깥주인이 되어 더욱 거대한 부를 쌓게 됩니다. 조선에서 잃었던 땅도 모두 찾구요-조선의 땅 찾기만큼은 길상이가 돕지를 않아요. 공노인과 서희 둘이 해치우죠. 이번에는 공노인이 서희의 손발이 되어줍니다- 조선에서보다 훨씬 더 큰 부자가 되어요. 그 과정에서 길상이는 권필응을 비롯한 간도와 연해주의 독립지사들과 연이 닿구요.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거죠.

    여기까지가 2부의 내용이구요.

    2부 말은 서희가 조선으로 떠나고 길상이는 간도에 남는 것으로 끝이 나는데요. 여기서 길상이가 서희를 떠나 간도땅에 남는 건,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서인데,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에요.(무슨 말이 웃기죠? ㅎㅎ) 길상이는 알아요. 조선으로 돌아가면 다시 신분의 질곡에 묶이게 된다는 거. 상전아씨가 탄 말고삐를 잡은 머슴이 아니고서는 조선에 돌아갈 수 없다는 거... 자신이 조선으로 돌아가면, 최서희는, 김길상이 그렇게도 절절히 사랑하고, 꾀꼬리같이 아꼈던 바로 그 최서희는 머슴의 아내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걸 알아요. 최서희가 낳은 아이들도 최참판댁의 핏줄이 아니라 머슴 김길상의 아들이 되는 거죠. 그래서 길상이는 독립운동을 핑계로 간도에 남아 실제로도 독립투사가 됩니다. 최서희를 머슴 김길상의 아내가 아니라 독립지사 김길상의 아내로 만들고, 둘의 아들 환국이 윤국이 역시 머슴의 아들이 아닌 나라를 위해 몸바친 분의 아들로 만들기 위해서요. 결국은..... 사랑이죠.

    길상의 그런 의도를 서희는 나중에 깨닫게 되요. 환국이가 같은반 아이와 싸웠던 날이요. 그 아이가 환국이를 넌 종의 아들이라고 비하하자, 서희는 말하죠. 환국이 아버지는 종이 아니었단다, 그리고 그분은 나라를 위해 몸바친 분이야. 라고... 그리고 돌아서서 나와 진주 남강가에서 울면서 그래요.
    여보, 당신이 그곳에 남은 뜻을 이제야 알겠소. 라고. 3부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입니다.

    서희와 박의사와의 관계는... -_- 뭐랄까... 서희가 박의사를 좋아했다거나 한거 같지는 않아요. 단지 박의사의 애정은 알고 있었고, 그 애정에 기대어 약간의 숨 쉴 틈을 얻었다... 하는 거 정도? 길상이 서희를 절절히 사랑한 만큼 서희의 감정도 절절해요.
    3부 후반부에, 간도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길상이 계명회 사건으로 검거되어(드디어 독립투사로 이름을 날리며. ㅎㅎㅎ) 조선으로 압송되어 형무소에 갇혀요. 2년 형을 받지요. 서희는 진주에서 길상이 면회를 다니는데, 그 장면은 이렇게 묘사됩니다.

    '일순간만 같은 길상과의 대면, 창살을 사이에 두고 이쪽과 저쪽에서 서로 바라본 짧은 시간, 목이 타던 시간, 만남은 빗방울이었던가.'

    사랑하지 않는데, 목이 탈 리가 있나요. 그 만남을 빗방울처럼 느낄 리가 있나요.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합니다.

    '남편에 대하여 원망도 존경도 없었다. 그리움도 없었다. 다만 절대적인 관계가 있었을 뿐이다. 절대적인 관계, 현재의 상황만이 팽팽하게 가슴을 조여온다................ 길상의 눈빛은 서희 자신의 눈빛이었다. 그쪽에서 빛이 나면 이쪽도 빛이 난다. 그쪽에서 못 견디면 이쪽에서도 못 견딘다.'

    이런 걸 사랑이라고 하지 않는다면... 대체 뭐가 사랑일까요. ㅎㅎㅎㅎㅎㅎ 저는 결혼 10년이 넘어서야 문득, '다만 절대적인 관계가 있었을 뿐이다.' 라는 말이 갑자기 가슴에 콱 와닿더군요. 절대적인 관계. 남편과 아내라는 절대적인 관계... 그 말이... 미혼일 때는 잘 와닿지않았는데... ㅎㅎㅎㅎ 부부가 되면 그 절대적인 관계에서 오는 사랑이 또 있더라구요.

    자... 이제 박의사와 길상이, 서희의 관계로 돌아가서... ㅎㅎㅎ
    5부에서 징역을 마친 길상이와 서희는 함께 진주 또는 평사리에 기거합니다. 박의사는 길상이도 몇번은 만났겠죠. 그 즈음 박의사는 결국 자살을 하고 말아요. 왤까요? 전 결국 박의사가 자살을 하는 것이나 이상현이 서희에게 술잔을 던지고 도망을 가는 것이나 같은 것으로 봤어요. 희망이 없는 거죠. 이것을 작가는 이렇게 씁니다.
    "그런데도 서희는 박의사를 회피하지 않았다. 쏟아놓은 감정을 마치 박의사 가슴에다 주워담아 주듯이. 그것은 서희의 일관된 태도였다."
    으아....... 이혼남이 유부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고백하고 드러내도 서희는 회피하지 않으면서도 전혀 받아주지 않았군요. 자살할 밖에요. ㅎㅎ 이게 서희의 애정이 있는 거라고 보지 않아요. 물론 서희도 스스로 생각해 보죠. 왜 자신은 박의사를 회피하지 않았을까. 최소한 친구로서 그를 잃지 않으려 했던가. 길상이 만주에 있는 동안 또 감옥에 있는 동안 박의사의 지극한 사랑이 버팀목이 되어준 것은 아니었던가. 아니 그런 것 이상의 감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

    그리고 서희는 울어요. 그런 것 이상의 감정이 있었다고 생각해서 울었을까요? 그런 것 이상의 감정이 전혀 없이... 그야말로 그의 애정을 버팀목 삼기만 했던 자신의 이기심이 미안해서 울었을까요? 전 후자라고 봅니다만.... ㅎㅎㅎㅎㅎ

    그리고 또... 관음탱화 진엄이 끝나고 지리산 계곡가에서 단둘이 앉아, 길상에게 서희가 박의사의 죽음을 전하면서 또 울어요. 길상이는 짜증을 내죠. '남편 앞에서 다른 사내 죽음을 슬퍼하며 우는 여자가 세상에 어디있어! 도대체 당신 나이 지금 몇살이오?' 라고. ㅎㅎㅎㅎㅎㅎㅎ 전 이 장면 너무 좋아하는데. 서희는 여전히 길상이 앞에서는 응석받이, 떼쟁이, 맘 놓고 내 뜻대로 해 버리고, 길상이는 또 그걸 다 받아주고 앉았고. 아이고 좋아라... ㅎㅎㅎㅎㅎ 길상이도 박의사의 감정을 알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길상이는 모른척 해요. 감사한 마음도 있지만 "무엇보다 길상은 서희를 모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라네요.
    우는 서희를 두고, 길상이는 내가 목석이냐, 바지저고리냐, 노여움 없이 화를 내다가, 패주고 싶지만 참는 거다, 해요. 그리고 한참뒤에 서희는 그러죠.

    "저를 패주겠다 하셨습니까? 지가 뭘 어쨌기에요?" 라고 팩 돌아서죠. ㅎㅎㅎ 아이고 서희 답죠.

    죽도록 한 여자에 목을 매는 남자가 아니 정확히는 서로에게 목을 매는 커플이지만, 그래도 여튼 남자의 사랑이 정말 절절하게 짙게 표현되는 커플이

    김환(구천이)-별당아씨
    이용-월선이
    그리고 길상-서희예요.

    저는 넘나 애정하는 세 커플입니다. ㅎㅎㅎㅎㅎㅎ

    이제 둘의 관계가 잘 이해되셨기를.


    ---

    댓글 하나 더 추가 ㅋㅋㅋ 이 분 글 너무 잘쓰셨다 ㅋ


    -----



    사실 서희-길상이 관계를 이해하려면 서희라는 인물에 대한 이해가 먼저 선행되어야 해요.
    토지 1부에서 5부까지 일관되게, 서희는 평사리 인물들을 비롯, 대부분 등장인물들의 보호자 역할을 합니다.
    반면, 서희를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은 길상이 딱 하나예요. 서희에게 있어 아낌없이 주는 나무 역할을 한 건 할머니 윤씨부인을 제외한다면 길상이가 유일하죠.

    서희는 고귀한 신분, 막대한 재력을 가지고 있죠.
    사람들은 다들 서희를 경외하고, 두려워 하고, 부러워하고, 어려워할 뿐.
    이미 너무 높은 자리에 있는 서희에게서 도움과 보호를 바랄 뿐 서희를 보호하고 도와주려하는 사람은 없어요. 이상현도 아버지 이동진을 위해 독립자금을 서희에게 요청하죠. 욕심없이 서희의 재산을 쌓는데 기여하는 공노인 조차 월선이를 위해 서희에게 도움을 청하구요.
    어린시절을 공유한 봉순이(기화)도 서희에게는 친구가 아니고 보호해야 할 대상이 될 뿐이에요

    얼마나 외롭겠어요. 친구하나 없이. 하다못해 외로울 상을 타고났다는 임명희 조차 길여옥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서희는 단 한명의 친구도, 마음을 터놓고 위로해 줄 단 한명의 사람도 없어요. 길상이 외엔.

    길상이는 정말, 아무런 보답을 바라지 않고 서희에게 헌신하죠. 심지어, 아내와 아들을 떠나 보내는 것으로 아내와 아들을 보호해요. 선녀같은 아내, 구슬같은 아들들 떠나보내기가 어디 쉬웠겠나요. 그런데 길상이는 그렇게 하죠.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 같은 독립자금이라도, 이동진은 친구의 딸인 서희에게 요청을 하지만 길상이는 조직을 움직여(4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친일파들에게 탈취를 해요.

    그런 서희였기에, 박의사의 사랑을 회피하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르죠. 서희도 사람인데요. 누군가에게는 기대고 싶지 않았겠어요? 사랑이라기보다는 자신에게 뭔가를 바라지 않는 대상과의 친애, 자신이 보호해줘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지워지지 않은 대상과의 교류가 필요했을 거예요.

    그런 서희의, 길상이에 대한 절절한 애정이 묻어나오는 장면은 또 있어요. (박경리쌤 진짜 대단한게, 길상이는 등장도 하지 않는데도... 둘의 사랑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죠.)

    3부에서, 환국이가 같은반 친구와 싸워서, 서희가 그 친구에게 환국이 아버지는 나라를 위해 몸바치신 분 이라고 말했다고 했죠. 그리고 얼마 뒤, 환국이는 서울의 경기중에 입학을 하고, 임역관의 아들 임명빈의 집에 하숙을 하러 가요. 초행이라 서희가 데려다주기로 하죠. 그걸 알게 된 혜관스님(길상이를 아기때 키워준 금어승)이 찾아와 명빈의 집이 있는 효자동 어귀에 선일여관이라는 데가 있다는 말을 해 줘요. 거기서 무슨 일이 있을 수 있다(즉, 길상을 만날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면서요. 서희는 자신이 한 말(길상이 독립운동가다)이 있기 때문에 길상을 만나면 길상도 위험해지고, 길상이 위험해지면 자신의 아들들도 위험할 수 있다는 모성 때문에 선일여관에 들기를 거부하죠. 하지만... 서울에 가는 내내 서희의 가슴은 두근거리죠.

    "차창에 기댄 서희 가슴에는 위험을 동반한 환희가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낯선 역을 맞이하고 낯선 거리를 기차가 지나칠 때마다 서희는 그 거리에서, 정거장에서 길상을 만났다. 홈에 우뚝 서 있는가 하면 거리를 지나가는 뒷모습이 있었고, 서울에 닿을 때까지 줄곧 차창 밖만 내다보는 조용한 자세였으나 서희는 봄에 눈 뜬 유충같이 세상이 경이에 가득찬 것을 느낀다."

    정말 절절한 사랑이죠? 그리고 서희는 선일여관에 들지 않고 효자동 임명빈의 집에 아들과 함께 묵어요. 엿새를 묵는 동안, 서희로서는 드물게 거의 매일 나들이를 합니다. 효자동 어귀니 오며 가며 항상 선일여관 앞을 지나죠. 그러나

    "그 여관 앞을 오가는 동안 서희는 눈길을 돌리지 아니했다. 이층 창가에 어느 사내가 서 있으리라는 상상만으로 서희는 하루하루의 양식을 마련하는 것 같았던 것이다. 그리고 길상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 것인가를 깨달았을 때 서희는 가파로운 고갯길에서 땀을 닦으며 쉬고 있는 것 같은 자신을 느끼는 것이다."

    ㅠㅠ 세상엔 이런 사랑도 있더라구요.
    그리고 마지막날, 조찬하의 초대를 받아 조찬하의 차를 타고 지나는 길에 처음으로 서희는 차 안에서 고개를 들어 선일여관의 창문을 봅니다. (들킬 위험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겠죠.)

    "이층 창문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그러나 한 사내가 서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서희는 갑자기 자신이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상상이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혜관은 효자동 어귀에 선일여관이 있다고 했지 그곳에 누가 있을 것이란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확실하게 물어보지는 못했을까? 어느 쪽이든 확실하게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희망도 절망도 깡그리 뭉개버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무도 없는 창문, 실제 아무도 없었을 것이란 절망, 차가 멎었을 때 서희는 잠시 눈을 감았다."

    ㅠㅠ
    어쩜 길상이는 등장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절절하게 사랑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지요.

    서희는 길상이 앞에서만은 위엄도 부리지 않고, 응석받이 떼쟁이 예닐곱살 무렵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모습인데 길상이 앞에서만 그래요. 5부 마지막 박효영 의사 죽음에서만 그러는 게 아니라... 같이 살 때도 마찬가지. 결혼을 하기 전에도 마찬가지.
    서희란 인물이, 자신의 위엄을 풀어놓고도 마음을 놓을 수 있다는 자체가 사랑이에요.

    5부 후반에 가면 서희도 너무 힘드니까... 안자 였나 유모였나... 하여튼 집안의 부리는 사람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일이 있어요. 서희의 눈물을 본 하인은 당황하지만, 서희는 그렇게 생각하죠. '오늘 내 눈물은 앞으로 며칠간의 버릇없는 웃음, 반항의 빌미가 될 것이다.' 라구요. 위엄을 잃는 순간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서희는 길상이 앞에서만은 풀어놓는 거죠.


  • tory_27 2018.07.19 15:00
    25 토리 댓글읽고 토지를 읽어봐야겠단 다짐을 했어 ㅋㅋㅋ 이거 대하소설인줄 알고 있었는데 로맨스잖아!!!!!!!!!!!!! 으으으 넘나 취저 ㅜㅜㅜㅜㅜㅜㅜㅜ
  • W 2018.07.19 17:22
    나도 예전에 이 글 봤었는데 진짜 흥미롭게 읽었어ㅋㅋㅋ 논문 수준 아니니ㅋㅋㅋㅋ
  • tory_34 2018.07.20 00:52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19/10/19 01:13:33)
  • tory_36 2018.07.21 18:59
    와... 이댓 짱이다 지우지 말아줘 어떻게 이렇게 잘 읽어내신거지 부러운 능력이다 ㅠㅠㅠㅠㅠ 다시 읽고싶어지네 ㄷㄷ
  • tory_26 2018.07.19 13:46

    와... 원글도 대단한데, 댓글도 짱이다... 너무 좋아 서회랑 길상이... 내 최초의 이상형 길상이... 목도리 던지는 저 장면이랑 뒤에 길상이 방에서 대사는 정말... 아 다시 드라마 해줬으면 좋겠다. 

  • tory_28 2018.07.19 15:02

    토지 영업된당 ㅠㅠㅠㅠ 길상이 서희부분만 골라 읽어도 내용이해 지장없니???

  • W 2018.07.19 17:23
    초반에 최참판댁 이야기는 좀 읽어야지 둘의 관계가 더 잘 이해될 거야. 마을 사람들 나오는 부분은 건너뛰면서 4권까지 읽고 나중에는 서희길상 부분만 골라 읽어도 둘 서사 이해하는 데는 지장 없을 듯!
  • tory_34 2018.07.20 00:53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19/10/19 01:13:31)
  • tory_30 2018.07.19 18:01
    아 미친 이글에 눕는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하 존좋
  • tory_32 2018.07.19 23:08

    와 이글 보니 토지 읽어야될것같아 ㅋㅋㅋㅋ 너무 좋다

  • tory_33 2018.07.20 00:32
    아 이 커플 관계성 너무 좋아ㅠㅠㅠㅠ
  • tory_35 2018.07.20 21:35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2/04/10 03:32:01)
  • tory_36 2018.07.21 19:04
    목도리 부분 정말 안잊혀져 ㅠㅠㅠㅠㅠ 옛날에 읽어서 다까먹었는데 저장면이랑 하나 더있는데 그건 정말 잘 기억남 ㅋㅋ 죽여버릴테다에서 역시 서희다 짱쎄하면서 웃었는데 그 밑에 도망갈 생각까지 했다고 솔직한 마음 드러내는 서희의 말 너무 좋아 ㅠㅠㅠㅠㅠ 신분도 신분인데 상황탓에 더 절절해지는 듯한 둘의 사랑 ㅜㅜ
  • tory_37 2018.07.24 22:59
    우와 이건 전권 다 달려야 느낄 수 있는거지? 대단하다ㅠㅠㅠㅠ트루럽...♡
  • tory_38 2022.05.06 01:02

    다시읽기무섭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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