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정원

최근에 정말 좋은 책을 읽어서 추천하려고 몇 군데 발췌해왔어.

제목은 '언어의 줄다리기'고 부제가 '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인데 부제가 책의 정확한 설명이야!

우리가 무심코 쓰는 단어들, 혹은 거부감이 들지만 왜 거부감이 드는지 뚜렷이 몰랐던 단어들을 살펴보면서

그 속에 숨은 의미와 사회적 맥락들을 파헤쳐보는 과정이 매우 재밌어.

생각보다 술술 쉽게 잘 읽혀서 좋았어. 이북도 있다!



목차:


첫 번째 경기장 : ‘대통령 각하’와 ‘대통령님’의 줄다리기
두 번째 경기장 : ‘대통령’은 지금 줄다리기를 기다리는 중
세 번째 경기장 :관점과 관점 사이의 줄다리기
네 번째 경기장 : 미혼과 비혼의 줄다리기
다섯 번째 경기장 : 미망인과 유가족의 줄다리기
여섯 번째 경기장 : 여교사와 여성 교사의 줄다리기
일곱 번째 경기장 : 청년과 젊은이의 줄다리기
여덟 번째 경기장 : ‘요즘 애들’과 ‘요즘 어른들’의 줄다리기
아홉 번째 경기장 : 자장면과 짜장면의 줄다리기
열 번째 경기장 : 용천과 룡천의 줄다리기




발췌:



‘대통령 각하’와 ‘대통령님’의 줄다리기


- 과거 신분이 높은 순서대로 경칭을 나열하면 폐하-전하-저하-합하-각하인데 왜 대통령에게 가장 낮은 경칭인 '각하'를 붙일까? 각하를 쓰면 안 되는 이유는 대통령의 격에 너무 낮은 표현이라서인가?

"각하가 담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사람의 신분에는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신분제를 전제하는 이 표현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부인하는, 반민주공화국적 표현이 되는 것이다." (p.39, 언어의 줄다리기, 신지영, 21세기북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고급관료와 고위 군인에게 각하 칭호를 썼다. 조선총독은 일본 왕이 임명한 고급관료였기에 각하라는 경칭으로 불리게 된다. 각하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조선에서 가장 높은 경칭으로 자리 잡아가게 된다." (p.52)




‘대통령’은 지금 줄다리기를 기다리는 중


- 각하라는 경칭만 문제인가? 대통령이라는 단어는 괜찮은가?

"한.중.일. 모두 president의 번역에 공통적으로 '통'자가 쓰이고 있다. 즉 '거느리다'라는 뜻이 단어에 들어가 있다. 매우 수직적이고 서열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민주주의가 낯선 군주제 상황에서 '앞에 앉는 사람(pre+side), 즉 회의의 주재자'라는 의미를 가진 president가 어느새 '크게 거느리고 다스리는 사람(대통령)'혹은 '총괄하여 거느리는 사람(총통)'이 되어버린 것이다." (p.72)




관점과 관점 사이의 줄다리기


- 아파트 입구에 '경축, 정밀 안전진단 통과'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걸 보고 '아파트가 오래됐지만 튼튼하게 잘 지었구나'라고 생각했던 필자.

"그런데 알고 보니 이 현수막의 의미는 정반대였다. 정밀 안전진단 결과 시설물의 안전성이 미흡하거나 불량한 정도라는 뜻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밀 안전진단을 실시해보니 안전하지 못한 아파트라는 판정이 내려졌다는 뜻인데, 그 결과를 왜 경축한다는 것일까? 우선 의아했다. 게다가 그 결과를 왜 그렇게 눈에 잘 띄는 아파트 입구 대로변에 걸어놓았을까. 부끄럽지도 않은가? 그다음으로 의아했던 점이다. 그런데 정밀 안전진단에서 안전성이 미흡하거나 불량해야, 즉 안전 등급이 D등급이나 E등급 판정이 나와야 재건축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모든 의문이 풀렸다. 그러니까 그 현수막이 경축하고 있는 것은 '불량 아파트'가 아니라 '재건축 임박'이었던 것이다." (p.92)



미혼과 비혼의 줄다리기


- 비혼이나 돌싱, 사별한 사람은 문서에 어떻게 표기해야 할까?

"그런데 일상에서 만나는 다양한 문서가 우리에게 주는 선택지는 기혼과 미혼 딱 둘 뿐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기혼과 미혼은 현재의 결혼 상태에 대한 답이 아니다. 다만 과거의 결혼 경험 유무에 대한 답으로 유효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양식을 통해 얻고자 하는 정보가 우리의 과거 결혼 경험 유무가 아니라 현재의 결혼 상태 여부라는 데 있다. 그러니까 엄격히 말해 질문과 답이 잘 맞지 않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p.131-132)


"단지 이혼한 경우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별한 경우를 생각해 보자. 사별한 사람의 경우도 기혼과 미혼의 이분법적인 범주만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예외 없이 기혼과 미혼 중 하나로 자신의 정체성을 밝혀야 한다. 사별도 결혼을 전제한 것인 만큼 미혼이 아니다. 그렇다고 배우자가 없는 상황에서 기혼은 의미가 없다. 특히 사별한 사람을 기혼으로 분류한다면, 그것은 배우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에도 과거의 결혼 상태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뒤에 숨어있는 것이다." (p.143)




미망인과 유가족의 줄다리기

- 전쟁을 통해 아내를 잃을 수도 있고, 전쟁을 통해 자식을 잃을 수도 있는데 왜 '전쟁미망인'과 '전쟁고아'라는 표현만 존재할까?

"전쟁을 통해 남편을 잃은 여인과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들을 특정하는 표현이 존재하는 이유는 여성과 아동의 경제적 지위와 무관하지 않다. 여성과 아동이 경제적으로 약자이고 의존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강자이며 독립적인 존재인 남성과 부모를 잃게 되면 큰 곤란을 겪게 된다. 전쟁미망인이라는 표현이 전쟁고아와 함께 존재했음을 통해 우리는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아동만큼 낮았었음을 읽어낼 수 있다." (p.162-163)




여교사와 여성 교사의 줄다리기

- 정말 교단에 한쪽 성별이 많아지는 게 문제일까?

"그야말로 단골 기사가 바로 '교단(직)'의 여성화'와 관련된 기사다. 날짜를 가리고 사람들에게 기사를 보여준다면 이 기사가 몇 년에 작성된 것인지 알기가 어려울 정도로 거의 내용이 유사하다. 기사의 틀도 거의 유사하다.

교단의 여초 현상과 관련된 기사로 필자가 찾은 첫 번째 기사는 1971년 1월 16일 동아일보 사회면 기사였다." (p.177)

"만약 남성 교사의 비율이 20%%대에 머물고 있는 초등학교 교단의 여성화가 문제라면 여성 교사의 비율이 20%대에 머물러 있던 2000년까지의 고등학교 교단의 남성화도 문제시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고등학교 교단의 남초 현상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교단에 남성 교사가 너무 많아서 여학생들이 남성화되어 걱정이라거나, 여학생들의 생활지도가 걱정이라거나, 여학생들에게 롤모델이 될 만한 여성 교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왜 그 오랜 시간 동안 나오지 않았는지 의문스럽다." (p.183)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남초 현상이 여전히 심각한 지금도, 남초 현상이 더 심각했던 과거에도 대학 강단의 남성화가 심각한 문제임을 인식하는 우려의 목소리는 일부 여성계를 제외하고 거의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4년제 대학의 여학생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여 1990년대 이후로는 거의 성비 균형이 잡힌 상태라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왜 이렇게 교육계의 여성화는 문제인데 남성화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교육자는 남자여야 한다는 생각이 그 이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일은 남성이 해야 하는 일인데 여성이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이 매우 낯설고 이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표현되기에 이른 것이다. 결국 교사와 교수, 즉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남자'라는 이데올로기가 여교사와 여교수라는 단어에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p.186-187)



청년과 젊은이의 줄다리기


"이렇게 언어는 우리의 의식을 지배한다. 청년이 남성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청년실업이라는 언어 표현을 통해 청년실업의 문제가 젊은 남성의 문제라는 의식을 갖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여성의 실업 문제는 젊은 남성의 실업 문제보다 후순위에 놓이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p.205-206)


- - - - -


이외에도 흥미로운 부분들 많으니까 꼭 읽어보길 추천해!

(북한은 왜 두음법칙을 안 쓸까? 이설주랑 리설주 중 뭐가 옳은 표기일까? 등등ㅋㅋ)

  • tory_1 2020.12.22 15:43
    흥미롭다 좋은 책 추천 고마워
    발췌 부분 재밌게 읽었우
  • tory_2 2020.12.22 16:27
    와 글 고마워 읽어보고 싶다!
  • tory_3 2020.12.22 18:19

    재밌겠다! 추천 고마워!

  • tory_4 2020.12.22 19:01
    와 재밌겠다!!! 고마워 토리! 꼭 읽어볼게!!
  • tory_5 2020.12.22 19:36

    오 재밌어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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