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정원

책은 그렇게 두껍지 않고 가볍게 잘 읽히는 종류야. 


추천 이유는 여성으로서 살아온 삶에 대한 공감과 여성간의 연대에 대해서 잘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야. 

문구들이 맛깔나고 재미있어. 


저자는 삼남매 중 막내고, 첫째는 언니, 둘째는 장애가 있는 오빠야. 부모님은 오빠 때문에 너를 낳았다고 이야기하지. 

시간이 흘러서 지은이는 경찰이 되는데, 합격 후 교육을 위해 중앙경찰학교를 가게 돼. 

그곳에서 경찰 중 얼마 안되지만 뭉쳐서 연대할 수 있었던 '언니'들을 만나면서 관점과 삶이 바뀌는 것을 경험해. 


자기가 경험한 언니들과 언니들이 준 사랑과 또 언니들이 경험한 삶들, 동생들과의 일화에서 시작해서

경찰로 경험한 여자들의 삶과 피해자가 된 여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여성들간의 연대와 응원으로 마치는 글이야. 


좋았던 구절 몇 개 적어놓고 갈께! 

다른 부분들도 다 좋으니까 책을 읽어보면 좋을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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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의 가자미처럼 살았다. 바다 아래에 납작하게 엎드려 여기가 바닥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한쪽으로 쏠린 눈을 게슴츠레 뜨고서 그저 살아지니까 살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성도 저렇게 다채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고향도, 나이도, 경력도, 성격도 모두 제각각인 여성들이 

경찰동기라는 이유 하나로 똘똘 뭉치는 모습은 얼마나 큰 울림을 주던지!

'개인'이던 여성이 하나의 공통점으로 '우리'가 되자 세계는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성별을 물어보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다. 

남자 상관이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쟤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맞혀보라고 외치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귀가 시원한 투블록을 포기하고 구렛나룻을 귀 뒤로 넘길 정도로만 길렀는데도 주변 시선의 변화는 엄청났다. 

한국에서 성별이란 구레나룻 길이 하나로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것이고 

그로 인한 사회적 위치도, 하물며 내 돈 주고 먹는 밥의 양마저 내 의사와 상관없이 바뀐다. 

난 나에게 남자냐 여자냐 묻는 사람들이, 정말 내 성별이 궁금해서 묻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라? 넌 여자인데 머리가 짧네? 너는 잘못됐어. 왜 너 혼자 그러고 돌아다니냐. 질문에 가려진 그들의 본심을 내가 모를리 없다. 


그 시대 여자, 장녀의 일생에는 서글픈 구석이 많다. 같은 시절을 지나왔어도 언니와 오빠의 태도는 판이하게 다르다. 

왜 여자들은, 언니들은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걸까. 또 행여나 희생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뭔가.


장소는 다르지만 피해자는 언제나 여성. 

여성은 언제나 당해왔으니까. 늘 있던 일이니까. 전혀 새로울 것이 없으니까 처벌 수위도 거기서 거기인 걸까?

언니, 어쩌면 이 세상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이상한 곳일지도 몰라. 눈 뜨고 보는 모든 일상이 거짓말 같아. 

누군가 산산이 부서져도 어찌 됐건 세상은 굴러가고는 있다는게, 부서지는 대상은 늘 정해져 있다는게 말이야. 


오늘도 끝끝내 조심히 가지 못한 언니들을 본다. 조심히 가지 않은게 아니라 조심히 가지 '못한' 언니들을 본다.

무슨 말을 건내야 할지 모를 안타까운 사연들이 피바다를 이룬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언니들에게, 그리고 우리의 뒤를 따라올 동생들에게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조심히 가. 그럼에도 우리는 살자. 어떻게라도. 조심히 오고 가자. 잘가, 언니, 다들. 조심히가, 멀리 안 나갈께.

조만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보자. 조심히 가. 도착하면 연락해. 


구멍이 숭숭 난 스펀지처럼 균열많은 내 인생에, 그렇게 언니들은 말없이 다가와 그 틈을 메워주었다. 

나는 수많은 언니들에게 목숨을 빚졌다. 진작 무너졌을 모래성 같은 생이 지금껏 유지된 것은 오롯이 언니들 덕분이다.

필사적인 용기를 내어준 여성들 덕분이다. 그리고 그게 내가 가진 유일한 운이다. 


지금껏 남성들은 운이 너무 좋았다. 자신들에게 감정이입하여 죄인이 되지 않도록 힘써줬던 사법기관 구성원을 만났고,

무조건적으로 관대한 각종 인사계 직원들이 있었으며, 

무슨 일이든 남자에게 마이크를 넘겨주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해주는 그들만의 카르텔은 철옹성보다 단단했다. 

이제는 여성들이 운 좋을 차례다. 여성들의 운수좋은 사회를 위해 나 또한 진심으로 노력할 것이다. 

나를 억세게 운 좋은 동생으로 만들어준 언니들의 노력과 희생을 떠올리면서. 

어디선가 홀로 울고 있을지 모를 동생들을 위해서라도. 

  • tory_1 2021.04.15 09:47

    와 작가분이 경찰관이시구나.

    꼭 읽어볼게!

  • tory_2 2021.04.15 12:39
    마자마자 이 책 진짜 강추!! 전작인 경찰관속으로도 넘 좋앗어
  • tory_1 2021.04.15 15:01

    헉... 어쩐지 토리 소개글 보면서 경찰관 속으로 생각나서 혹시 같은 분일까? 했는데

    같은 분 많구나!!! 더 기대된다!

  • tory_3 2021.04.19 03:08
    흥미롭다 읽어보고싶어!! 추천 고마워 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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