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정원
시이유에 올렸던 글인데 못 본 톨 있을까봐 여기에도 올림
이런 글 안 되면 댓으로 말해줘






<해리포터> 시리즈를 처음 접한 것은 해리포터의 첫 번째 이야기<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한국에서 번역 발간되고 일 년 후인 2000년이었다. 

반질반질한 감촉의 주황색 표지에 금색으로 멋들어지게 ‘해리포터’라고 새겨진 책은 이전에 한 번도 느껴보지도 예상치도 못했던 전율을 선물했다. 



'나는 초등학교에서 벌써 3년이나 배웠고 나름대로 아는 것도 많아!'라고 자부했던 열 살 꼬마는 세상은 넓고 자신이 모르는 건 아직도 너무나 많다는 막연한 깨달음을 <해리포터>를 읽으면서 얻었더랬다.

2000년에 처음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책을 접하고 2011년 마지막 시리즈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을 영화로 볼 때까지 해리포터와 함께한 시간은 12년. 열 살 어린이는 스물한 살 대학생이 되었지만 지금도 <해리포터> 책을 잡을 때마다 생경한 감각에 휩싸여 막연한 무지함을 느낀다. 
나는 여태까지 살아온 삶의 절반 이상을 해리포터와 함께 보낸 '해리포터 세대'다.



알로호모라(Alohomora)! 
자물쇠로 잠긴 문을 열 때 사용하는 주문

  어린 시절의 나는 많은 동화와 TV애니메이션, 청소년 소설을 접하면서도 '이건 만들어진 얘기잖아'라는 인식을 지우지 못했다. 
이런 나에게 '어쩌면 우리와 같은 세계에 사는 마법사들이 호그와트 같은 학교에 모여 공부하고 있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하도록 만든 것이 바로 <해리포터>시리즈였다. 
호그와트는 어떻게 생겼을지,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기분은 어떨지, 신문의 사진 속 사람들이 말을 하고 벽에 걸린 초상화의 주인공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것은 어떤 느낌일지 끊임없이 상상했다. 

2001년에 <마법사의 돌>이 영화로 개봉되면서 눈앞에 실제로 펼쳐지는 인물들의 모습과 호그와트의 전경에 나의 상상력은 금방 다시 무뎌졌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은 <해리포터>가 처음 전해준 참 고마운 생소함이었다.


성인이 된 지금도 <해리포터> 시리즈를 보며 막연한 무지함을 느끼는 이유는 아마 이 환상의 세계가 아주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묘사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머리가 커질수록 해리포터가 살고 있는 세상은 현실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자세하고 생동감 있는 묘사는 지구상의 어떤 나라보다 '다이애건 앨리¹'와 '호그스미드²'를 더 현실적으로 와 닿게 만들었다.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조금만 먼 곳의 얘기여도 잘 모르면서 마법사들의 삶은 이렇게 풍부한 감성으로 느끼고 있다는 괴리감에 아직도 종종 우물 안 개구리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은 “세상을 바꾸는 데 마법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 내면에 이미 그 힘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상상력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그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했더라면 이만큼 와 닿지 않았을 것이다. 진짜 마법보다 뛰어난 상상력의 마법을 나는 해리를 통해 처음 경험했다. 해리포터가 열어준 새로운 세상이었다.





아레스토 모멘텀(Aresto Momentom)! 
덤블도어 교수가 공중에서 추락하는 해리를 구할 때 사용한 주문

여섯 번째 시리즈인 <해리포터와 혼혈왕자>부터는 한 시리즈를 이루는 여러 권의 책이 한 권씩 따로 번역되어 출간됐다. 그 때마다 전교생은 학교에서 책을 돌려봤다. 번역에 걸리는 시간 때문에 한글판 시리즈가 나오는 데에는 각 권마다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의 기간이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다음 권이 시중에 나오면 당장 그 책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나곤 했다. 

엄마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사주지 않으셨고 학교 도서관에는 신간도서가 빨리 들어오지 않았다. 동네 대여점의 책도 발 빠른 사람들 차지였다. 
그래서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중학생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책을 산 친구에게 다 읽은 책을 빌려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반 친구 중 한 명이 책을 사서 학교로 들고 오면 쉬는 시간에는 "너 다음에 나!", "그럼 쟤 다음에는 나!" 라는 급박한 외침이 어김없이 이어졌고 그 중 몇 명은 수업시간에 몰래 <해리포터>를 보다 들켜서 책을 압수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책 돌려읽기'는 고등학교 때까지 쭉 이어져 학창시절의 즐거운 추억 중 하나로 남아있다.



어른들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내게 줄곧 "그 때가 가장 좋은 때야"라고 말씀하셨고 고교를 졸업한지 겨우 2년째인 나 역시 이제는 그 말을 이해한다. 
그러나 이 말은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는 학생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아무리 가도 끝이 없어 보이는 입시의 길과 실감나지 않는 수많은 경쟁자들, 노력에 비해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와 더 열심히 하라는 다그침. 돌이켜보면 '얼마나'라는 양이 정해져있지 않은 채 그저 '더'만을 요구 당하는 것이 나는 가장 불편하고 힘들었다. 
결과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단 한 번의 입시를 위해 무조건 '더 열심히'만 해야 했던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해리포터> 시리즈는 현실로부터의 달콤한 도피처였고 위로였으며 기대였다. 
헤르미온느보다 성적은 좋지 않지만 용기와 도전 정신으로 늘 고난을 극복해내는 해리를 보면서 나도 힘을 내야겠다는 위로를 받았다. 
해리를 죽일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해리를 살려준 말포이를 보면서 세상이 점점 이기적으로 변한다고 해도 세상엔 말포이 같은 사람이 더 많을 거라고 기대했다. 



한낱 판타지 소설에 불과하지만 놀 거리도, 스트레스를 풀 방출구도 마땅찮은 중고등학생들에게 <해리포터>는 꽤 많은 의미를 주었다. 소설과 영화로 번갈아 찾아온 <해리포터>는 힘든 시기에 휘청거리고 있던 나를 감동과 희망으로 붙들어주었다.





익스펙토 패트로눔(Expecto Patronum)! 
디멘터를 물리치는 패트로누스를 만드는 주문

  ‘디멘터'는 육체적인 고통을 선사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가장 행복한 기억을 앗아간다. 그래서 디멘터에게 키스를 당한 마법사는 미쳐 버리거나 생기를 잃는다.
현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적지 않은 '디멘터'들을 만난다. 2011년 5월에 경제협력개발지구(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OECD가입국 34개국 중 행복지수 26위를 차지했다. 세계 이혼율과 자살률은 모두 1위였다. 
다양한 사회, 경제, 정치, 문화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커다랗고 무서운 디멘터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겨우 스무 해를 살면서 아직 겪지 않은 문제들이 더 많지만 내 생에도 디멘터와 싸움을 벌여야 했던 적은 있었다. 특히 입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고2 겨울방학에는 디멘터를 자주 마주쳤다.


디멘터를 이기기 위해서는 패트로누스를 만드는 익스펙토 패트로눔 마법을 써야한다. 익스펙토 패트로눔 마법은 주문만 외무면 손쉽게 실행되는 마법이 아니다. 

주문을 외우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행복한 기억을 떠올려야 하고 행복한 기억이 강할수록 마법의 힘도 커진다. 하지만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일이 닥쳤을 때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기란 어렵다. 그래서 익스펙토 패트로눔은 어려운 주문에 속한다.





어렸을 때부터 이미 십년 가까이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어왔던 나는 '더는 못하겠다' 생각이 들 때마다 이상하게 이 주문이 생각나곤 했다. 
고2 겨울과 고3 겨울 내 패트로누스는 해리포터의 그것처럼 강력하진 못했다. 대체로 작고 약했으며 디멘터에게 밀릴 때도 많았다. 

그래도 입시 디멘터에게 완전히 먹히는 일은 없었다. 
'익스펙토 패트로눔'은 내가 현실에서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마법이었다. 좋은 기억을 강하게 떠올리다보면 더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슬럼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단순한 책이나 영화, 그 이상이었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에 비해서 갈수록 어둡고 진지해졌던 후반부를 거치며 나 또한 걱정 없고 마냥 모든 것이 재밌던 시절을 벗어나 현실적인 문제를 두고 끊임없이 걱정하고 선택해야 하는 나이로 성장했다. 
시리즈가 완전히 끝나고 성인이 된 내게 이제 <해리포터>는 하나의 행복한 추억이 됐다. 부모님 몰래 침대 위에서 손전등을 켜고 밤새 <해리포터>를 봤던 기억, 명절이면 소파에 드러누워 TV에서 방영되는 <해리포터>를 꼭꼭 챙겨봤던 기억, 친구들과 덤블도어의 생사 여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던 기억, 스네이프의 죽음을 보며 펑펑 울었던 기억. 
이 행복한 기억들은 이제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를 두고 혼자 성장해나갈 나에게 새로운 패트로누스가 될 것이다. 나는 내가 해리포터 세대여서 행복하다.


권은율 기자 applegreen@ewhadew.com

ㅊㅊ
http://m.storyofseoul.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8






https://img.dmitory.com/img/202008/BiO/NZK/BiONZK2tKUOCqakIuCQiy.jpg

https://img.dmitory.com/img/202008/3mB/5V5/3mB5V5YJ3OqqaaKgu8wuIY.jpg

https://img.dmitory.com/img/202008/71s/dRF/71sdRFHyTusYoGOKuAkwCK.gif

https://img.dmitory.com/img/202008/zcB/VWO/zcBVWOUYyQk0MEg6ikmCE.gif

https://img.dmitory.com/img/202008/6M3/TZo/6M3TZokz9mkK4csimaM8US.gif

https://img.dmitory.com/img/202008/7uo/n6F/7uon6FDaxioke2k6sWSw4C.jpg
  • tory_1 2020.08.03 18:05
    아 이젠 내 또래가 해리포터 세대로 불리는 나이가 됐구나..
    난 학창시절을 해리포터와 함께했는데 초등학교 1학년때 해리포터 마법사의 돌 영화로 처음 본 날 잊지 모태
    실은 영화보다 무서워서 울고 나옴 ㅋㅋㅋㅋㅋㅋㅋ 그 뒤로 해리포터 덕후돼서 책 시리즈로 다 사서 읽고 엠마왓슨 사진 들고 다니고 스티커 만들고 그랬었는데 이젠 이게 다 추억이구나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조회
전체 【영화이벤트】 이미 2024년 최고의 공포 🎬 <악마와의 토크쇼> 레트로 핼러윈 시사회 77 2024.04.16 3197
전체 【영화이벤트】 두 청춘의 설렘 가득 과몰입 유발💝 🎬 <목소리의 형태> 시사회 12 2024.04.16 2026
전체 【영화이벤트】 🎬 <극장판 실바니안 패밀리: 프레야의 선물> with 실바니안 프렌즈 무대인사 시사회 17 2024.04.12 5086
전체 디미토리 전체 이용규칙 2021.04.26 564301
공지 [영화] 게시판 신설 OPEN 안내 🎉 2022.09.03 7385
공지 토리정원 공지 129 2018.04.19 58801
모든 공지 확인하기()
7359 도서 책 많이 읽은 톨 있니ㅠㅠㅠ 5 03:28 136
7358 도서 토정방 북클럽: 4월 19일 금요일 주말 밤의 독서 모임 5 2024.04.19 41
7357 도서 민음사 북클럽 가입한 토리 있어?? 5 2024.04.18 348
7356 도서 토정방 북클럽: 4월 18일 조금만 더 힘내서 버텨보는 목요일, 함께 독서해요! 2 2024.04.18 65
7355 도서 레이먼드 카버 추천해줄 톨? 4 2024.04.18 119
7354 도서 혹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연봉이 2천만원 적은데 평생 여성용품에 소비하는 돈이 2천만원이라는 문장있는 책 찾아줄 수 있어? 2 2024.04.18 234
7353 도서 '코딱지 대장 김영만' 추천해 2 2024.04.18 166
7352 도서 토정방 북클럽: 4월 17일 수요일, 공기가 안 좋은 밤은 집콕 독서로 하루를 마무리해요 4 2024.04.17 65
7351 도서 개취인데 출판사에서 책에 안어울리는 인물 일러스트 표지 8 2024.04.17 270
7350 도서 젊은 느티나무 진짜 최고같아 11 2024.04.17 556
7349 도서 토정방 북클럽: 4월 16일 화요일, 미세먼지 안 좋은 날은 집콕 독서가 최고! 4 2024.04.16 78
7348 도서 토정방 북클럽: 4월 15일 비 내리는 흐린 월요일 밤 책으로 안락하게 보내요! 7 2024.04.15 100
7347 도서 사랑에 관한 소설 추천해줘! 17 2024.04.15 375
7346 도서 토정방 북클럽: 4월 14일, 일요일 밤의 독서 함께 해요! 1 2024.04.14 61
7345 도서 요즘 책 읽으면서 느끼는게 8 2024.04.14 684
7344 도서 이런 책 공통점 잘 모르겠는데,,, 추천해줄 톨 구함니다 2 2024.04.14 220
7343 도서 토정방 북클럽: 4월 13일 토요일, 조금 늦었지만 함께 모여서 책 읽어요! 5 2024.04.13 83
7342 도서 독서는 다른건 모르겠고 1 2024.04.13 329
7341 도서 톨들이 좋아하는 책 주제는 뭐야? 13 2024.04.13 259
7340 도서 가끔 책 읽다가 신기할 때 있어 3 2024.04.13 283
목록  BEST 인기글
Board Pagination 1 2 3 4 5 6 7 8 9 10 ... 368
/ 368

Copyright ⓒ 2017 - dmitor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