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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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조 왕비) 신의왕후 한씨

출생 : 1337년 10월 06일
서거 : 1391년 11월 25일
향년 : 54세
사인 : 위장병 추정

조선 1대 국왕 태조 이성계의 첫번째 정실부인으로 15살에 이성계와 혼인해서 6남 2녀(8남매) 자식들을 19세부터 46세까지 낳았음. 이성계가 벼슬에 진출해서 높은 자리에 가기까지 크게 기여했다고 함.

조선 건국 이전에 지병인 위장병으로 54세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에 사후 왕후로써 존호만 받았음. 건국 당시 이미 고인이였기에 생전 어떤 인품이였는지에 대한 정보도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됨.

남편 이성계는 고려 풍습대로 정실부인을 2명을 둬서 만약 신의왕후가 조선 건국 이후에도 살아있었다면 신덕왕후와 같이 지위논란이 있었을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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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태조 계비) 신덕왕후 강씨

출생 : 1356년 07월 20일
서거 : 1396년 09월 23일
향년 : 40세
사인 : 음수증 (신부전증) 추정

조선 최초의 왕비이자 태조 이성계의 두번째 부인, 이사람이 유명한 건 의붓아들 태종 이방원과의 갈등이 큰 이유일듯. 16살 나이에 21살 많은 태조 이성계의 경처로써 혼인하게 됨.

상당히 야망있고 카리스마 있는 성격으로 조선 건국 후 왕비가 되자 자신의 아들을 왕세자로 올렸을 당시 서슬퍼런 의붓아들들조차 신덕왕후 생전에 왕좌를 노리지 못했다고 함.

원래 의붓아들 이방원과 사이가 좋았지만 자기 아들을 세자로 올리면서 둘 사이는 끝나게 됨. 이성계와 나이차이를 고려하면 당연히 남편보다 훨씬 장수하는게 맞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먼저 죽게 되었음

사실 강씨가 일찍 죽은건 아들 왕세자 방석의 탓이 컸음. 야사에는 방석이 궁궐로 기생을 불러 놀자 이를 안 이성계가 강씨탓을 크게 했고 이로 인해 강씨가 화병이 나서 그 원인으로 승하한것이라고 함

실록에도 강씨가 철없는 아들을 꾸짖은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 여러번 나옴. 의외로 왕세자였던 이방석은 성격이 놀기를 좋아하고 상당히 철이 없었다고 함

정리하면 화병으로 인해 식욕부진, 불안 등 증상이 생겼고 이로 인해 탈수, 저혈압 증상이 지속되다가 신부전증에 걸려 세상을 떠나게 되었음.

1396년 6월 신부전이 발병해서 앓아눕게 되었고 태조가 어떻게든 병을 낫게 하려고 여러명의 죄수들을 석방하기까지 했지만 3개월 뒤 40세 나이에 승하하게 됨

사후 왕자의 난때 강씨가 낳은 아들들은 전부 살해되었고 그녀 역시 왕비에서 폐출되었다가 수백년뒤에야 다시 왕비로 복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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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종 왕비) 정안왕후 김씨

출생 : 1355년 01월 30일
서거 : 1412년 08월 11일
향년 : 57세
사인 : 폐질환 추정

조선 2대 국왕 정종 이방과의 정실부인으로 조선 최초의 왕대비, 조선 건국 이전 이방과와 혼인했고 조선 건국 이후 남편이 왕세자가 되자 세자빈이 되었으며 남편 즉위 후 왕비가 되었음.

정종과 사이는 매우 좋았지만 불임이였던탓에 자녀가 없었음. 그래서 정종이 후궁들과 사이에서 낳은 자녀들을 친자녀처럼 양육하는걸 즐겼다고 함. 정종이 동생 이방원에게 양위하는것을 가장 먼저 권했던 인물이기도 함.

지병으로 천식을 앓았다고 하며 만성질환으로 기침이 심해서 관련된 치료를 여러번 받았다고 함.정종이 상왕이 되자 조선 역대 왕비들중 처음으로 왕대비가 되었으며 수강궁에서 살다가 1412년 여름에 57세 나이에 폐질환으로 승하했음.

승하 일주일 전 태종이 문병을 간 기록으로 봐서 이때부터 위독했던것으로 추측됨. 사후 정안왕후라는 존호를 받았고 몇년뒤 남편 정종 역시 승하 후 두사람은 한곳에 나란히 묻히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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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태종 왕비) 원경왕후 민씨

출생 : 1365년 08월 06일
서거 : 1420년 08월 27일
향년 : 55세
사인 : 학질 (말라리아) 추정

조선 3대 국왕 태종 이방원의 왕비로 8남 4녀 자녀들을 낳아 가장 아이를 많이 낳은 왕비이기도 함. 원래 왕이 될 가능성이 매우 낮던 남편을 왕으로 만들었으나 이로 인해 친정이 박살나버린 비운의 인물

상당히 걸걸한 성격으로 이방원이 왕이 된 이후 후궁을 들일 당시에도 한마디 했고 이방원이 왕자였던 시절 직접 갑옷을 입힐정도로 야망있는 성격이였음.

하지만 왕비가 된 이후 본인이 들인 노력은 철저히 팽당하게 되면서 남편과의 갈등이 심해짐. 그런데도 47세 나이에 늦둥이를 낳을정도로 부부사이는 심각한 파탄은 아니였던걸로 예상됨.

장남 양녕대군이 세자 자리에서 쫒겨나고 셋째아들 이도(세종)가 즉위하면서 남편 이방원이 상왕으로 물러나자 왕대비가 되어 수강궁에서 거주하게 되었음.

1420년 초여름 학질(말라리아)에 걸리게 되었고 세종은 민씨의 병을 낫게 하려고 피접까지 나갈정도로 노력했지만 더운 여름에 병이 급속도로 악화된터라 55세 나이에 승하함. 사후 2년뒤 이방원 역시 승하했고 같은 자리에 부부의 릉이 조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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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세종 왕비) 소헌왕후 심씨

출생 : 1395년 10월 20일
서거 : 1446년 04월 28일
향년 : 50세
사인 : 풍질환 (중풍) 추정

조선 4대 국왕 세종 이도의 왕비로 조선 역대 왕비들중 가장 평가가 좋은 인물, 원래 왕이 될 운명이 아니였던 세종과 혼인 후 대군부인으로 지내다가 그가 왕세자가 되자 왕세자빈이 됨.

그 뒤 남편이 시아버지로부터 양위받아 즉위하자 왕비가 되지만 외척을 경계하던 시아버지로 인해 친정이 아예 박살나버리게 되었음. 본인도 폐비 직전까지 갔지만 이미 낳은 자녀가 여러명이여서 폐비까지 가지 않은것으로 보여짐.

이런 상황에서도 세종과 사이에 8남 2녀 총 10명의 자식들을 낳음. 성격도 왕실에서 원하는 왕비같은 성격이여서 후궁들을 상대로 투기조차 안했다고 함.

지병으로 풍병이 있었는데 1440년 3월 2일에 온천에서 치료를 받은 기록이 있음. 이후 병이 잠잠해졌지만 친정어머니 안씨와 아들이 둘이나 연속으로 죽자 다시 재발하게 됨.

1446년 3월 10일 병이 급격히 악화되서 차남 수양대군(세조)의 집에서 요양을 하지만 2주뒤 50세 나이로 승하함. 만약 20년정도 더 살았으면 단종이 즉위했을때 대왕대비로 존재했었기에 계유정난이 없었을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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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문종 왕비) 현덕왕후 권씨

출생 : 1418년 04월 26일
서거 : 1441년 08월 19일
향년 : 23세
사인 : 양수색전증 (산후병) 추정

조선 5대 국왕 문종 이향의 왕비로 왕세자빈 시절 죽어서 사후 왕비로 추존되었음. 원래 왕세자였던 문종의 후궁이 되었고 딸을 2명 연속으로 낳음. 당시 문종의 세자빈들이 연속으로 폐출되자 이미 딸을 2명이나 낳은 권씨가 세자빈이 됨.

이후 아들 이홍위(단종)을 낳지만 얼마뒤 세상을 떠나게 됨. 현대에서는 양수색전증이라는 질환으로 추정되는데 양수와 그 내용물이 산모의 자궁 내 정맥으로 들어가 폐색전증을 일으키는 병임

지금은 21세기니까 당연히 치료가 가능하지만 저때는 15세기임. 물론 치료하지 못하고 권씨는 죽었고 훗날 단종이 왕이 되었을때 왕대비가 없어서 계유정난이 일어나는 계기가 됨.

사후 아들 단종이 즉위했다가 강제로 양위했을때 친정 모친과 남동생도 복위운동에 휘말려 사형 당했고 권씨도 왕비자리에서 쫒겨났다가 수백년뒤에야 다시 왕비 존호를 받을 수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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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단종 왕비) 정순왕후 송씨

출생 : 1440년 04월 01일
서거 : 1521년 07월 17일
향년 : 81세
사인 : 노환 추정

조선 6대 국왕 단종 이홍위의 부인으로 왕비 - 왕대비 - 군부인의 신분변화를 경험했고 남편이 워낙 이른 나이에 양위한터라 불과 15세 나이에 왕대비로 책봉된 이력이 있음.

간택 당시 왕실에 왕대비, 대왕대비 등 어른들이 없어서 종친들이 직접 뽑은 왕비로 왕비가 된지 몇년 안되서 남편이 상왕으로 물러나자 왕대비가 되었음. 하지만 이후 복위운동이 계속되자 남편 단종은 노산군으로 격하되었고 그녀 역시 군부인으로 격하되어 궁밖으로 쫒겨나게 됨.

남편 단종이 처형된 이후 지금의 동대문 밖에 초가집을 짓고 살다가 시누이 경혜공주의 아들로 그녀에게는 시조카가 되는 정미수가 수양아들로 들어오면서 정미수의 집에 거주함. 정미수보다도 더 오래 살았는데 16세기에 80세를 넘겼음.

생전 폐비 신분이였던탓에 어디가 아팠는지 무슨 병을 앓았는지 기록이 없지만 나이로 봐서는 노환으로 인해 자연사한것으로 추정됨. 사후 단종이 다시 왕으로 복권되자 송씨 역시 왕비로 복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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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세조 왕비) 정희왕후 윤씨

출생 : 1418년 12월 23일
서거 : 1483년 05월 15일
향년 : 64세
사인 : 폐결핵 추정

조선 7대 국왕 세조 이유의 왕비, 원래 왕비가 될 운명이 아니였지만 남편이 반정으로 즉위하면서 왕비 자리에 오르게 됨. 조선 역대 왕비들중 최초로 3대 왕을 거처 대왕대비 자리에 올랐고 최초로 섭정을 한 이력이 존재함.

야사에 따르면 남편 세조와 혼인을 할 사람은 그녀의 언니였지만 당시 그녀의 집을 방문한 상궁이 윤씨의 행동가짐이 더 왕실에 어울린다고 생각하여 소헌왕후에게 보고했고 대군이던 세조의 베필이 됨.

시부모(세종,소헌왕후)와 사이가 좋았고 장남 도원군(덕종)을 법도를 깨고 궁안에서 낳았다고 함. 남편 네조와 사이가 좋았는데 남편이 왕이 된 이후 왕비 신분에 말을 타고 나들이를 갔다는 기록이 있음.

남편 세조 사후 차남 예종이 왕이 되지만 예종 역시 즉위하고 얼마 뒤 급사하자 일찍 죽은 장남 의경세자(덕종)의 차남 자을산군(성종)을 즉위시킨 후 대왕대비로써 6년간 섭정을 했음.

글을 몰라서 사실상 대신들의 도움을 받아 대신 정치를 했고 평가는 역대 왕비들의 섭정들중 가장 모범적인것으로 평가받음. 섭정을 하던 시절 남편에게 희생당한 이들을 대부분 복권시켰음.

섭정을 거둔 이후 거의 정사에 간여하지 않았지만 성종의 계비 폐비 윤씨의 행실을 극도로 싫어해서 윤씨를 폐출시키는데 가장 크게 지지했다고 함. 사극에서는 정희왕후보다 소혜왕후가 폐비윤씨를 극도로 싫어한것으로 표현되나 역사 기록은 정반대임.

1481년 2월부터 한증을 앓았고 4개월뒤에도 병세가 지속되자 성종은 대신들과 온양온천으로 요양가는걸 논의했지만 당시 이미 환갑을 넘겼기에 대부분 대신들은 다들 반대했음.

하지만 다다음해 1483년 2월 온양온천으로 요양을 가게 됨. 그런데 5월 14일 온천욕을 한뒤로 몸이 피로해서 식사를 못한다는 소식이 왔고 하루뒤 64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음

사인은 결핵으로 추정되는데 대왕대비를 모시던 상궁들이 빈전(빈소)을 지키던 중 피가 섞인 기침을 토하고 코피를 흘리는 등 증상을 보였음. 

또한  오랫동안 적취(몸 안에 쌓이는 병)로 고생했다는 기록이 있음. 아마 이 적취가 결핵이였을것으로 예상됨. 아마 오랫동안 앓던 병이 결핵이였을것으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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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덕종 왕비) 소혜왕후 한씨

출생 : 1437년 10월 16일
서거 : 1504년 05월 21일
향년 : 66세
사인 : 소갈증 (당뇨병) 추정

조선의 추존 국왕 덕종(의경세자)의 정실부인이자 성종의 어머니, 흔히 대비 시절 존호인 '인수대비'로 더 잘 알려졌음. 남편 덕종의 행장에 기록된 그녀의 이름은 '한숙덕(韓淑德)'임.

13세 나이에 수양대군의 장남 도원군과 혼인했고 수양대군이 반정으로 왕이 되자 남편 도원군(의경세자)이 왕세자가 되면서 왕세자빈이 됨. 둘 사이에 2남 1녀 자녀들이 있었고 이대로라면 왕비 자리까지 갈 수 있었으나 의경세자가 일찍 죽어버림.

그래서 세자녀를 데리고 궁밖에 나가 살다가 시아버지 세조 사후 왕이 된 시동생 예종이 일찍 요절하며 당대 최고 권신이던 한명회의 사위였던 그녀의 차남 자을산군(성종)이 왕이 되었음.

이후 남편 의경세자가 의경왕으로 추승되면서 인수왕비로 불리다가 덕종이라는 존호를 받으며 인수왕대비로 불리게 됨. 매우 똑똑해서 산스크리트어를 구사할줄 알았고 글을 모르는 시어머니 정희왕후를 대신해서 섭정에 도움을 주기도 함.

아들 성종 사후 손자 연산군이 즉위하면서 대왕대비가 되었고 연산군 즉위 초년에는 매우 사이가 좋았던것으로 추정됨. 하지만 만성 지병이던 소갈증(당뇨)으로 점차 건강이 안좋아짐.

1504년 1월에는 대신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연산군이 꼭 고기반찬을 먹게 하라고 당부했고 이후 건강이 급격히 안좋아져서 사경을 해맬정도로 상태가 안좋아서 신하들이 장례준비를 한 기록도 있음.

갑자사화 당시 연산군이 이복형제이자 귀인 정씨의 소생 안양군과 봉안군의 생 머리카락을 잡고 인수대비에게 질질 끌고 가서 "왜 제 어머니를 죽이셨습니까?"라고 하며 '불손한 말이 많았다'고 나와 있음.

이후 건강이 급격히 쇠약해져서 66세 나이로 승하하게 됨. 며느리 폐비윤씨와 고부갈등이 유명하지만 역사기록으로는 그녀가 아니라 정희왕후가 윤씨의 폐출에 앞장섰고 소혜왕후는 전형적인 유교식 사상을 가져서 크게 나선 기록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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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예종 정비) 장순왕후 한씨

출생 : 1445년 03월 03일
서거 : 1462년 01월 14일
향년 : 16세
사인 : 임신중독증 추정

조선 8대 국왕 예종 이황의 첫번째 왕비로 당대 최고 권신이던 한명회의 딸, 전해지는 이름은 "한냉이(韓冷伊)"로 왕세자가 된 예종의 세자빈이 되었지만 장남 인성대군을 낳고 16세 나이에 임신중독증으로 세상을 떠났음.

그녀가 낳은 아들 인성대군 역시 얼마 살지 못하고 이른 나이에 죽었으며 이후 왕세자 예종의 후궁이던 소훈 한씨(안순왕후)가 예종 즉위 후 왕비로 책봉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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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예종 계비) 안순왕후 한씨

출생 : 1445년 04월 27일
서거 : 1499년 02월 12일
향년 : 53세
사인 : 위장병(위암) 추정

조선 8대 국왕 예종 이황의 두번째 정실부인으로 원래 왕세자였던 예종의 후궁으로 입궁했음. 이후 세자녀를 낳았고 예종의 세자빈이던 장순왕후가 당시 고인이였던탓에 실질적인 세자빈으로 예우받음.

예종이 즉위하면서 세조의 유언대로 왕비가 되었으나 예종이 젊은 나이에 급사해버림. 당시 한씨가 낳은 원자(제안대군)는 이제 2살이였기에 일찍 죽은 시숙 의경세자의 차남 자을산군(성종)이 왕으로 즉위하면서 왕대비가 됨.

사실 왕실내에서는 손윗동서 소혜왕후가 살아있어서 늘 예우면에서 밀렸지만 아들 제안대군의 여성편력으로 며느리들을 여러번 이혼시키거나 남편이랑 사이가 최악이던 딸 현숙공주의 자작극에 논란을 일으키는 등 오히려 소혜왕후보다 더 성격이 드센 성격이였던걸로 추정됨.

만성지병으로 위장병을 앓았음. 1479년 12월 20일 기록에는 왕대비가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해서 구토를 했다는 기록이 있고 1488년 9월 12일에도 비슷한 증상을 보인 기록이 있음.

이후 건강에 관한 기록이 없다가 성종 승하 후 연산군이 즉위하자 대왕대비로 존봉됨. 1499년 2월 11일 또식사를 하는것에 있어 곤란을 겪는다는 기록이 있는데 바로 그 다음날 53세 나이로 승하함.

아마 현대로 치면 소화성 궤양에 가까운 위장병이 위암까지 발전해서 결국 세상을 떠난것으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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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성종 정비) 공혜왕후 한씨

출생 : 1456년 11월 17일
서거 : 1474년 05월 19일
향년 : 17세
사인 : 폐결핵 추정

조선 9대 국왕 성종 이혈의 첫 왕비로 당대 최고 권신 한명회의 막내딸, 전해지는 이름은 "한송이(韓松伊)"로 성종이 즉위하기 이전 자을산군이였던 시절에 혼인했음.

시삼촌이자 형부인 예종이 젊은 나이에 죽고 남편 성종이 왕이 되자 왕비가 되었음. 하지만 17세 나이에 후사없이 폐결핵으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남. 현대로 치면 결핵으로 추정되는데 남편 성종이 그녀 사후 결핵 증상을 보였기 때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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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성종 계비) 폐비 윤씨

출생 : 1455년 07월 24일
서거 : 1482년 09월 07일
향년 : 27세
사인 : 사형 (사사)

조선 성종의 계비이자 10대 국왕 연산군의 어머니로 후궁에서 왕비, 폐비를 거처 사형까지 당한 인생사 때문에 여러번 미디어에서 드라마로 인생이 그려짐.

원래 성종의 후궁이였는데 공혜왕후 사후 3대비(정희왕후, 소혜왕후, 안순왕후)의 낙점으로 왕비 자리에 오르게 되었음. 왕비 책봉 당시 임신중이였고 성종의 장남 연산군을 낳게 됨.

원래 매우 유순하고 착한 성격이였지만 출산 후 성종이 후궁들을 연속으로 들이게 되면서 조헌병이 발병하게 되었고 말 그대로 미쳐버림. 독약을 가지고 다니거나 남편에게 막말을 하거나 시할머니 정희왕후에게 대드는 등 완전 정신이 나가버렸음.

이후 저대로 두면 무슨 짓을 벌리게 될지 모른다는 시할머니 정희왕후의 주도로 왕비 자리에서 쫒겨나서 궁밖으로 쫒겨남. 연산군 이후 또 왕자를 낳았고 이 왕자는 윤씨가 쫒겨날 당시 갓난아기였음. 하지만 생모가 폐출된 이후 얼마 못살고 요절함. 폐위 후 3년을 사가에서 살았는데 사가에서 살때에는 전혀 논란을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산것으로 봐서는 정신병이 잠잠해진듯.

하지만 그녀에게 맺힌게 많았던 남편 성종이 사약을 보내서 사형시켜버림. 드라마에 나오는 피 묻은 적삼은 정사에는 기록이 없는 야사로 실제로는 죽을때 무슨 유언을 남겼는지 미상임.

사후 그녀의 아들 연산군이 왕이 되면서 갑자사화를 일으켰는데 연산군도 즉위 초년에는 성군으로 평가받다가 폭군이 된것으로 보아 어머니 윤씨로부터 조헌병이 유전된것으로 보여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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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성종 제2계비) 정희왕후 윤씨

출생 : 1462년 07월 30일
서거 : 1530년 09월 23일
향년 : 68세
사인 : 뇌수막염 추정

조선 9대 국왕 성종 이혈의 제2계비(3번째 왕비)로 11대 국왕 중종의 어머니, 전해지는 그녀의 이름은 " 윤창년(尹昌年)"으로 원래 성종의 후궁으로 입궁했지만 폐비 윤씨 폐위 후 왕비 자리에 오르게 됨.

남편 성종과 사이에 1남 3녀 자녀들을 낳았지만 공주들은 모두 요절했고 유일하게 아들 진성대군(중종)만 성인기까지 살아남았음.

의붓아들 연산군이 갑자사화 이전에는 친어머니로 인지했을정도로 사이가 좋았음. 하지만 갑자사화 당시 연산군이 왕대비였던 그녀의 처소에도 칼을 들고 쳐들어올정도로 정신을 놔버렸다고 함.

의붓아들 연산군이 반정으로 폐위되고 친아들 중종이 즉위하자 법도대로라면 3대왕을 거처 대왕대비가 되어야 하나 연산군의 부인 신씨 역시 폐출되어 그대로 왕대비 신분으로 남게 됨.

1522년 8월 환갑 무렵에 풍증을 앓았다는 기록이 있지만 증상이 잠잠해졌다가 8년뒤인 1530년 6월에 다시 병환에 걸림. 실록에 나온 증상은 정신이 흐릿하고 맥이 풀려 졸음이 많고 미열이 있고 입이 마르고 숨이 가쁘고 말을 더듬는 증상이였음.

3주뒤인 7월 증상이 호전되나 싶었지만 8월 초 구역질, 구토증상이 생겼으며 혼수상태에 빠진 후 8월 23일 68세 나이로 승하했음.

병환이 여름마다 발생했고 열, 구토, 의식장애 증상을 보인것으로 보아 현대로 치면 뇌수막염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것으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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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연산군 정비) 거창군부인 신씨

출생 : 1476년 12월 24일
서거 : 1537년 05월 26일
향년 : 60세
사인 : 화병 추정

조선 10대 국왕 연산군 이융의 정실부인으로 연산군이 세자였던 시절 세자빈이 되어 왕비까지 되었으나 반정으로 남편이 쫒겨나며 그녀 역시 폐비가 되어 궁밖에서 여생을 보내게 됨.

남편과 사이에 4남 3녀 자녀들이 있고 15세부터 26세까지 아이를 계속 낳았음. 성격이 너무 착해서 궁녀들한테도 존댓말을 사용했고 신하들도 왕비가 너무 착해서 답답하다고 말한것으로 보아 찐으로 착했던것으로 추정.

중종반정으로 폐비가 된 이후에도 왕비 시절 거느리던 이들의 도움으로 잘 살았지만 두 아들이 모두 처형되고 딸 휘신공주는 이혼당하는 등 자식들의 인생은 불행했음.

사실상 유일한 딸 휘신공주마저 1524년 신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고 대군부인에 가까운 예우를 받다가 1537년 5월에 60세 나이로 세상을 떠남. 사실 자연사로 보기에는 당시에도 이른 나이였기에 아마 화병을 앓다가 죽은것으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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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중종 정비) 단경왕후 신씨

출생 : 1487년 02월 16일
서거 : 1558년 01월 06일
향년 : 70세
사인 : 병사 추정

조선 11대 국왕 중종 이역의 첫번째 정실부인으로 중종이 대군이던 시절 혼인했고 반정 이후 남편이 왕이 되자 왕비가 됨. 하지만 연산군의 정실부인 신씨의 조카였고 반정으로 인해 친정이 작살난터라 후환을 두려워한 반정공신들의 강요로 폐위되었음.

만약 딸이라도 있었으면 이 딸의 지위논란이 있었기에 폐비가 안될수도 있었지만 중종과 혼인 후 수년의 결혼생활에도 아예 자녀가 없어서 허망하게 폐비가 되버림.

폐비가 된 이후 고모이자 손윗동서 연산군부인 신씨를 의지하며 살았고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사후 복위논란이 있었지만 실현되지 않았음. 이후 폐비로 수십년을 살다가 의붓아들 명종 시절 70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함.

폐비가 된 이후 일명 '폐비궁'으로 불리며 의붓아들 인종, 명종으로부터 여러 경제적 지원을 받은 기록이 있음. 왜 죽었는지 무슨 병을 앓았는지 기록은 없지만 사망 당시 나이가 70세였던걸로 봐서 노령으로 인한 병사로 예상됨.

사후 200년이 지나서야 왕비로 복권되서 단경왕후라는 존호를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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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중종 계비) 장경왕후 윤씨

출생 : 1491년 08월 19일
서거 : 1515년 03월 26일
향년 : 23세
사인 : 산욕기감염 추정

조선 11대 국왕 중종 이역의 계비로 12대 국왕 인종의 어머니, 원래 중종의 후궁으로 책봉되었고 단경왕후 폐위 후 왕비 자리에 오르게 됨. 장녀 효혜공주를 낳고 뒤이어 장남 인종을 낳았지만 출산 일주일 후 갑자기 승하했음.

현대로 치면 산욕기감염으로 추정되는데 16세기 의술의 수준 상 출산 후 세균성감염으로 인해 승하한것으로 추정됨. 장경왕후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뒤 아들 인종 역시 즉위 후 계모 문정왕후로부터 핍박당하는 계기가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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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중종 제2계비) 문정왕후 윤씨

출생 : 1501년 12월 12일
서거 : 1565년 05월 15일
향년 : 63세
사인 : 폐렴 추정

조선 11대 국왕 중종 이역의 제2계비(3번째 왕비)로 13대 국왕 명종의 어머니, 장경왕후 사후 중종의 왕비로 간택되어 입궁했음. 이후 딸만 4명을 연속으로 낳아 뒷방늙은이 확정이였지만 뒤늦게 아들 명종을 낳으면서 권력의 중심이 됨.

의붓아들 인종이 즉위 후 여러 야사가 있지만 정사 기록상으로는 뚜렷한 갈등은 없음. 오히려 인종이 아파서 자리보전하게 되자 명산대천에 기도를 올리게 했음. 인종 사후 친아들 명종이 즉위하자 명종의 형수이자 인종의 왕비인 인성왕후가 왕대비가 되어 있었으므로 문정왕후는 대왕대비가 되어 섭정을 하게 됨.

섭정하던 시절 권력이 워낙 막강해서 그녀의 치세는 호불호가 매우 갈리는 편임. 20살이 된 명종이 친정을 하자 편전을 내주고 물러난 문정왕후는 여전히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동생 윤원형을 이용해 조정의 뜻을 모았음.

실제로 문정왕후의 권한이 막강하기는 했지만 수렴청정을 거두면서까지 정치에 크게 개입은 하지 않았고 명종의 정책에 문정왕후가 크게 제동을 건 기록도 발견되지 않음.

건강했던 그녀가 세상을 떠난건 평소 신임하던 승려 보우 때문인데 명종의 외아들이자 하나뿐인 손자 순회세자가 죽자 보우의 말대로 명종의 후사를 잇기 위한 복을 기원하려고 불교행사를 열게 됨.

이 당시 목욕재계를 했는데 이후 오한이 들고 심열까지 생기면서 폐렴에 걸리게 됨. 승하 하루전에도 신하들에게 자신이 왜 폐렴에 걸렸는지 설명할정도로 의식이 있었지만 다음날 위독해져서 세상을 떠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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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인종 왕비) 인성왕후 박씨

출생 : 1514년 10월 28일
서거 : 1578년 01월 16일
향년 : 63세
사인 : 담천 (천식) 추정

조선 12대 국왕 인종 이호의 정실부인으로 인종이 왕세자였던 시절 혼인해서 왕세자빈이 되었고 그가 왕이 되면서 왕비가 됨. 둘은 부부사이가 매우 좋았지만 인종이 불임이였던터라 자녀를 아예 낳지 못했음.

남편 인종 사후 시동생 명종이 즉위하면서 왕대비가 되었는데 시어머니 대왕대비 문정왕후와 사이는 원만했다고 함. 성격이 워낙 착해서 왕실 내부에서 적을 만드는 성향이 아니였음.

명종 사후 중종의 손자 선조가 명종의 양자 자격으로 즉위했고 이미 대왕대비의 자리가 비어있었음에도 명종비 인순왕후와 같은 항렬이라는 이유로 대왕대비로 승봉되지 못하였으며 섭정 역시 인순왕후가 직접 하게 됨.

남편 인종이 워낙 일찍 죽어서 박씨도 일찍 죽었을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환갑 넘께 장수한 왕비이기도 한 인물임. 다만 몸이 허약해서 잔병치레를 자주 한것으로 보여지고 지병으로 천식(담천)을 앓았음.

1573년 5월 지병인 천식으로 위독하다는 말이 나올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지만 회복했고 이후 또 병환이 심해짐. 1575년 1월에는 아예 거동도 안될정도로 병이 심해져서 방석에 앉아 이동했다는 기록도 실록에 남아있음.

가래가 끓어서 누워있을수 없을정도로 병환이 심갘했고 담증,심열 증상을 앓았다고 함.

이후 병이 회복되지만 2년뒤인 1577년 6월 다시 발병해서 투병끝에 63세 나이로 승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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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명종 왕비) 인순왕후 심씨

출생 : 1532년 07월 07일
서거 : 1575년 02월 22일
향년 : 42세
사인 : 만성 폐쇄성 폐질환 추정

조선 13대 국왕 명종 이환의 정실부인, 명종이 왕이 되기 이전 대군시절 혼인했고 명종이 즉위하면서 왕비 자리에 오름. 외아들 순회세자가 있지만 일찍 죽어서 대가 끊기자 시아버지 중종의 손자 선조를 양아들로 입적시켜 즉위시킨 후 섭정을 함.

수렴청정을 하는 동안에도 대신들과 사림들의 의견에 반하는 의사를 보인 적이 거의 없었음. 이는 그녀가 한문을 몰랐기 때문에 섭정하는 동안은 이준경을 비롯한 신하들의 도움을 받아서 어린 선조를 보조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으로 보임.

남편 명종과 사별하고 양자인 선조의 법적 모후로서 수렴청정을 하면서 인순왕후는 척신(외척)을 멀리하고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와 같은 도학정치(왕도정치)를 꿈꾸는 사림들에게 기회를 크게 주었음. 선조 초기 유능한 인재가 많았던 것은 인순왕후의 사심이 없던 공적인 처신에서 나왔다고 함.

그녀의 건강은 다소 체력이 허약했다고 하며 음력으로 1568년 7월 16일, 1571년 9월 4일 당시 목안에서 담 끓는 증상과 숨이 차는 증상으로 치료를 받은 기록이 있는데 지병으로 폐질환이 있던것으로 보여짐.

승하 한달전부터 증상이 재발해서 투병하다가 42세 나이에 승하했음. 사후 남편 명종 옆자리에 안장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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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선조 정비) 의인왕후 박씨

출생 : 1555년 05월 15일
서거 : 1600년 07월 16일
향년 : 45세
사인 : 속립결핵 추정

조선 14대 국왕 선조 이연의 정실부인으로 왕이 된 선조의 왕비가 되었지만 불임이였던탓에 자식을 못낳아서 후궁이 낳은 아들들중 한명 광해군을 양아들로 삼아서 그의 후원자가 되었음.

남편 선조는 성품이 어질었던 의인왕후보다는 후궁들을 더 가까이했고 임진왜란 당시 의인왕후는 내팽겨치고 후궁 인빈 김씨만 데리고 피난을 가서 왕후는 왕세자 광해군을 따라 이리저리 피난을 다님.

실록의 병록은 32세 당시 인후증으로 수일간 고생했지만 완쾌했고 승하 당해인 1600년에 병이 발병하게 되었다고 함.

음식을 먹지 못하고 목에서 가래가 끓고 잠을 못자고 몸이 편치 않은 증상이였는데 왕후 본인은 더위를 먹어서 그런거라고 오히려 담당의관을 안심시킴. 하지만 이틀뒤 증상이 지속되자 의관이 다시 처방을 했는데도 위독해져서 갑자기 세상을 떠남.

사인은 속립결핵으로 추정되는데  이 병은 균이 폐정맥으로 들어가면서 심장의 좌측에 자리잡아 열,식욕부진의 증상을 일으킴. 환절기에는 감기, 여름에는 더위로 착각하기 쉬워서 이 질환으로 세상을 떠난것으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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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선조 계비) 인목왕후 김씨

출생 : 1584년 12월 05일
서거 : 1632년 08월 03일
향년 : 47세
사인 : 갑상선질환으로 인한 탈수 추정

조선 14대 국왕 선조 이연의 계비로 의인왕후 승하 후 29살 많은 선조의 왕비로 간택됨. 전쟁시기였기에 당시 기준 혼기를 놓친 18세 나이에 왕비가 되었으며 선조와 사이에 정명공주와 적장자 영창대군을 낳음.

철없는 성격탓에 세자 광해군이 있는데 아들 영창대군한테 세자가 입는 옷을 입혔다는 기록이 있는걸로 봐서는 눈치를 잘 못보는 성격이였던걸로 예상됨. 선조 사후 의붓아들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왕대비가 되었음.

하지만 이후 광해군으로부터 친정이 박살나고 아들 영창대군이 사형당하고 본인도 왕대비에서 쫒겨나 유폐되는 신세가 됨. 그러나 인조반정으로 의붓손자 인조가 즉위하자 대왕대비로 복권됨.

반정 당시 광해군에 대한 증오가 매우 심했는지 실록에 나온 언행은 상상 그 이상임. 대왕대비가 된 이후 이괄의 난으로 인해 피난을 다니는 등 말년에도 신체적인 고생을 좀 했음.

승하 당 해 1632년 여름부터 식사를 못하고 목이 붓는 증상을 보이다가 8월 47세 나이로 승하함. 아마 갑상선질환으로 인한 탈수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난것으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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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광해군 부인) 문성군부인 유씨

출생 : 1576년 08월 25일
서거 : 1623년 10월 51일
향년 : 47세
사인 : 자살 (아사) 추정

조선 15대 국왕 광해군 이혼의 왕비로 광해군이 왕세자였던 시절 혼인해 세자빈이 되었으며 그가 즉위하자 왕비자리에 오르게 됨. 광해군과 같이 온갖 고생을 다한 조강지처였지만 부부사이가 좋지 않았음.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반대하고 친명배금을 주장했으며, 성리학이 아닌 불교를 신봉했고 다음 생에는 "왕가의 며느리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유달리 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짐.

명목상 시어머니였던 인목왕후와도 사이가 좋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역적(광해군) 부부가 내인을 동원해 흉측한 술책을 행하였다'며 관련 내인들을 극형에 처할 것을 요구한 인목왕후의 전교가 있음.

이를 볼 때 실제로 술책이 있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문성군부인에게도 인목왕후는 적대감이 심했던거 같음.

반정으로 남편이 쫒겨나자 같이 귀양을 갔고 아들 폐세자 이질이 탈출을 시도하다가 잡힌 후 자결하자 곡기를 끊고 스스로 굶어죽는것을 택해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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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원종 왕비) 인헌왕후 구씨

출생 : 1578년 06월 02일
서거 : 1626년 02월 10일
향년 : 47세
사인 : 중풍

조선 추존 국왕 원종 이부의 정실부인으로 인조의 어머니. 아들 인조가 반정으로 왕이 되면서 남편 원종이 대원군으로 추승되자 부대부인이 되어 '계운궁'이라는 궁호를 받고 궁에서 살게 됨.

1625년 11월부터 중풍을 앓았으며 3개월간 투병끝에 47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음. 사후 남편이 원종으로 추승되자 그녀 역시 인헌왕후라는 존호를 받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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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인조 정비) 인열왕후 한씨

출생 : 1594년 08월 06일
서거 : 1636년 01월 06일
향년 : 41세
사인 : 산욕기감염 추정

조선 16대 국왕 인조 이종의 왕비로 인조가 왕자였던 시절 혼인후 그가 왕이 되자 왕비가 되었음. 왕가에 시집을 왔지만 중전과는 거리가 멀었음에도 후덕하면서도 강단있는 성격으로 남편이 왕자였던 시절 살림이 어려워졌는데, 직접 자신의 재물을 모아 팔아서 살림을 꾸렸다고 함.

인조와 사이에서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늦둥이를 낳을정도로 사이가 좋았고 슬하에 6남 1녀 총 7명의 자식들을 낳았음.

사인은 41세 늦은 나이에 노산으로 아들을 낳았지만 이후 산욕기감염으로 인해 세상을 떠남. 당시 인렬왕후는 손주까지 본 할머니였음.

만약 일찍 죽지 않고 환갑정도까지 살았다면 소현세자가 무사히 왕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은게 남편 인조와 사이가 워낙 좋았기에 충분히 가능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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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인조 계비) 장렬왕후 조씨

출생 : 1624년 12월 06일
서거 : 1688년 09월 10일
향년 : 63세
사인 : 폐렴 추정

조선 16대 국왕 인조 이종의 계비로 인조보다 29살이나 어린 왕비, 인렬왕후 승하 후 왕비로 간택되었고 인렬왕후가 낳은 의붓아들들보다도 어렸고 전해지는 이름은 " 조화임(趙和任) "으로 추정됨.

왕비 시절 인조의 후궁 귀인조씨의 이간질로 인해 인조와 사이가 그닥이였음. 일단 조선 왕실 법도상 왕이 왕비와 잠지리를 안할 수 없었기에 자녀가 없던것으로 봐서 아이를 못낳았던걸로 추정됨.

왕비 시절 지병으로 간질이 있어 여러번 치료받은 기록이 있음. 남편 인조 사후 의붓아들 효종이 즉위하자 25세 나이에 왕대비가 됨. 10년뒤 의붓손자 현종이 즉위하면서 35세에 대왕대비가 되었음.

조선 역사상 10명의 대왕대비들중 가장 어린 나이에 대왕대비가 됨. 현종 사후 의붓증손자 숙종이 즉위했을 당시 대왕대비보다 높은 직책을 만들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당시 효종비 인선왕후는 이미 고인이였고 현종비 명성왕후만이 선왕비로 생존해서 그대로 대왕대비 자리에 있게 됨.

자식이 없었기에 대비 시절에도 늘 입지가 약했고 손자며느리 명성왕후는 그녀가 들인 궁녀 장씨(장희빈)을 내쫒을정도로 드센 성격이였지만 시할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남.

1688년 5월 목욕을 한 뒤 감기에 걸려 한달넘께 고생하던 중 처소인 대왕대비전에 불이 나서 처소를 욺기게 됨. 이후 감기가 폐렴으로 악화되어 3개월간 고생하다가 63세 나이로 승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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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효종 왕비) 인선왕후 장씨

출생 : 1619년 01월 30일
서거 : 1674년 03월 20일
향년 : 55세
사인 : 결핵 추정

조선 17대 국왕 효종 이호의 정실부인, 원래 왕비가 될 운명이 아니였으나 시숙 소현세자 내외가 시부 인조로부터 사실상 숙청되며 남편이 왕세자가 되었고 뒤이어 즉위하자 왕비가 됨.

남편과 부부사이가 좋았고 둘 사이에 3남 7녀, 10명의 자식들이 있었음. 15세부터 29세까지 계속 자녀들을 낳았다고 함. 성격은 상당히 착했던것으로 보여지며 후궁이 낳은 옹주도 잘 대해줌.

젊은 시절 몸이 뚱뚱하고 볼살이 많은 체형이였다고 전해졌지만 왕비가 된 이후부터 급격히 살이 빠져 몸이 야위게 되었다고 함. 남편 효종 사후 아들 현종이 즉위하자 왕대비가 되었고 1674년 55세 나이로 승하함.

큰 잔병치레가 없다가 50대 들어서면서 건강이 안좋아졌는데 1672년 2월 머리에 난 종기로 인해 치료를 받았고 사망 당 해 1674년 1월부터 담화, 심열 등의 증상과 10년 동안 체중이 감소하는 등의 결핵증상을 보이다가 두달뒤 세상을 떠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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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현종 왕비) 명성왕후 김씨

출생 : 1642년 06월 03일
서거 : 1684년 01월 11일
향년 : 41세
사인 : 폐렴 추정

조선 18대 국왕 현종 이원의 정실부인, 조선 역사상 가장 성격이 강했던 왕비로 친정 자체가 매우 똑똑했던 집안인지라 왕비 본인도 정치력이 비상했던 왕비로 역사에 남아있음.

현종이 왕세자였던 시절 혼인하여 세자빈이 되었고 그가 즉위하자 왕비가 됨. 현종과 사이에서 1남 4녀 총 5명의 자녀들을 낳았음. 현종이 죽고 아들 숙종이 즉위하자 왕대비가 됨.

당시 숙종은 미성년인지라 섭정을 받아야 했지만 시할머니 장렬왕후가 생존중이였고 명성왕후와 반대되는 정치적 입장이였기에 아들의 친정을 지지하게 되었다고 함. 하지만 이후 계속 정사에 간여해서 대신들로부터 비판을 받음.

아들 숙종이 천연두에 걸리자 무당의 말대로 한겨울에 목욕재계를 하다 얻은 감기가 폐렴이 되서 41세 나이에 승하함. 역대 조선 왕비들 평균수명보다 많이 단명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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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숙종 정비) 인경왕후 김씨

출생 : 1661년 10월 15일
서거 : 1680년 12월 06일
향년 : 19세
사인 : 천연두 추정

조선 19대 국왕 숙종 이순의 정실부인으로 본명은 " 김옥혜(金玉惠)"라고 전해짐. 숙종이 왕세자였던 시절 세자빈으로 간택되었으며 남편이 왕이 되자 왕비로 책봉됨.

둘 사이에 딸이 2명 있었고 승하 당시 임신중인 상황이였음. 숙종과 부부사이는 매우 좋았다는걸로 봐서 인경왕후가 오래 살았으면 인현왕후, 장희빈의 인생이 달라졌을것으로 추정됨.

천연두에 걸린지 8일만에 급격히 악화되서 손 쓸 방법도 없이 19세 나이에 승하함. 당시 숙종도 몸이 안좋았는데 왕대비 명성왕후가 왕비의 죽음을 당장 알리지 말라고 지시해서 이게 논란이 되기도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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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숙종 계비) 인현왕후 민씨

출생 : 1667년 05월 15일
서거 : 1701년 09월 16일
향년 : 34세
사인 : 울혈성 심부전증 추정

조선 19대 국왕 숙종 이순의 두번째 정실부인으로 한국사 역대 왕비들중 가장 유명한 분인듯. 본명은 "민정신(閔正愼)"으로 추정됨. 역대 왕비들중 유일하게 폐비가 된 이후 다시 왕비로 복권됨.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 승하 후 왕비가 되었지만 당시 숙종은 후궁 장씨에게 빠져있던터라 왕비로써 후사를 낳을수 없었음. 성격이 사대부집 딸이였고 후궁 장씨는 중인이였기에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숙종의 눈밖에 나서 폐비가 됨.

폐비가 된 이후 사가에서 살았는데 신분이 죄인이다 보니까 제대로 끼니도 먹지 않았고 이후 몸이 약해져 늘 누워지내다 보니까 만성지병으로 종기질환을 얻게 되었음.

이후 숙종의 환국정치로 다시 왕비가 되지만 이미 몸이 다 망가져서 아이를 낳을수 있는 상황도 아니였고 건강이 급격히 악화됨. 사극에서는 어느날 갑자기 픽하고 쓰러져 깔끔히 유언을 남기지만 실제로는 1년 6개월이나 처절하게 투병함.

기록에 따르면 인현왕후는 양쪽 다리가 붓고 통증이 심해 참기도 어려운 상태였으며 밤이 되면 통증이 더 심해져서 손으로 만지기만 해도 너무 따가워서 고통을 호소했다고 함. 뒤이어 경련 증세가 나타났는데 처음에는 다리에 경련이 일다가 전신으로 확대되어 의료진까지 놀라게 하는 것이 1달 가량 이어졌음.

허리 밑이 곪아서 침으로 종기를 땄는데 이때 이미 손으로 만져보면 근육과 피부가 분리되는 것이 만져지는 상태가 되었고 그러다 결국 소변이 막히고 구강(입안)에 부스럼이 생기는 등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결국 승하하게 됨.

현대의 의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고관절 부위에서 화농성 관절염이 생겼고  이것이 뇌수막염으로 번져 경련 증상이 생겼으며  점차 복부로 퍼져 복통, 구토, 설사 등을 동반하는 복막염이 되고 끝내 심장으로 퍼져 심내막염이 되어 합병증으로 인한 호흡곤란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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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숙종 제2계비) 옥산부대빈 장씨

출생 : 1659년 11월 03일
서거 : 1701년 11월 09일
향년 : 42세
사인 : 자진 (자살) 추정

조선 19대 국왕 숙종 이순의 제2계비였지만 후궁으로 강등되고 결국 사형까지 당한 인물, 본명은 "장옥정(張玉貞)"으로 유일하게 양반이 아닌 신분에도 왕비 자리까지 올랐음.

기록에 따르면 실록에 매우 예쁘다고 묘사한걸로 봐서 진짜로 예뻤던걸로 추정됨.

원래 숙종의 계증조모 대왕대비 장렬왕후의 나인으로 있다가 숙종의 승은을 받고 후궁이 되지만 왕대비 명성왕후가 남인 집안 출신이라고 쫒아냈고 명성왕후 사후 왕비 인현왕후의 주도로 다시 입궁함.

후궁 시절 다소 오만방자했던 성품으로 인해 인현왕후에게 회초리를 맞은적이 있음. 이는 역대 왕의 후궁들중 유일하게 왕비로부터 체벌을 당한 사례임. 숙종과 사이에 두 아들을 낳았음.

인현왕후 폐출 후 왕비가 되지만 몸이 약했는지 잔병치레를 한 기록이 많음. 숙환으로 화병을 앓았다고 함. 왕비가 된 이후 인생이 해피엔딩이 될 줄 알았지만 숙종이 주도한 환국으로 인해 다시 후궁으로 강등되어버림.

드라마에서는 이후 성격이 괴팍해진 뒷방늙은이로 묘사되지만 실제 역사에서 그녀는 사실상 후궁으로 강등된 이후에도 준 왕비로 대우받았고 아들 경종으로부터 문안도 받았음. 그냥 일방적인 후궁이 아님

인현왕후 사후 아들 경종이 천연두로 아팠을때 본인의 처소에 은밀하게 차린 신당이 인현왕후를 저주하기 위한 신당으로 둔갑되어 숙종의 어명으로 인해 스스로 자진(자살)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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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숙종 제3계비) 인원왕후 김씨

출생 : 1687년 10월 24일
서거 : 1757년 05월 02일
향년 : 69세
사인 : 심장질환 추정

조선 19대 국왕 숙종 이순의 3번째 계비로 인현왕후 사후 26살 많은 숙종의 왕비가 됨. 숙종과 18년을 같이 살아 가장 오래 부부생활을 한 왕비지만 둘 사이에 자녀는 없었음. 아마 왕비가 불임이였던걸로 추정됨.

왕비 시절 종기,천연두,홍역,치통 종기를 앓았던걸로 봐서 잔병치례가 많았는데 왕대비, 대왕대비 시절에는 스트레스가 없었는지 병을 앓은 기록이 없음.

숙종 사후 경종이 즉위하자 왕대비가 되었고 이 당시 실질적 경종의 후계자 연잉군(영조)의 후견인이 되어 그를 보호함. 경종 사후 영조가 즉위할 당시 경종의 계비 선의왕후가 살아있어서 대왕대비로 진봉됨.

자식이 없어서 영조가 후궁들과 사이에서 낳은 자녀들을 예뻐했고 특히 사도세자(장조)를 진짜 예뻐했다고 함. 매우 음식을 많이 먹여서 세자가 소아비만에 걸릴정도로 예뻐했음.

평소 건강했지만 1757년 4월 3일부터 가슴통증을 호소했고 조금씩 쇠약해져 영조가 한달동안 직접 간병을 했지만 5월 2일 69세 나이로 승하함. 아마 심장질환이 있었던것으로 추측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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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경종 정비) 단의왕후 심씨

출생 : 1686년 07월 01일
서거 : 1718년 02월 25일
향년 : 31세
사인 : 타까야수동맥염 추정

조선 20대 국왕 경종 이윤의 정실부인으로 왕세자빈 시절 세상을 떠나 사후 남편이 즉위하면서 왕비로 추존되었음. 남편 경종에게도 문제가 있었고 본인도 몸이 약해 자녀를 낳지 못함.

흔히 병약한 왕세자를 곁에서 극진히 모시다가 급환을 얻어 사망한 것으로 묘사되지만 숙종실록의 기록을 확인하면 오히려 왕세자 경종 건강한 편이었고 병약한 쪽은 심씨였음.

지병으로 풍이 있었고 왕세자빈이 될 당시에도 복통이 심해서 결혼식을 못할뻔함. 1718년 2월 갑자기 쓰러져 31세로 세상을 떠났음.

결혼식 당시 복통은 복부혈관장애로 추정되며 지병이던 풍질환은 뇌혈관장애로 예상됨. 그리고 갑자기 죽은건 심장에 혈액을 제공하는 관상동맥에 문제가 생겼을것임. 아마 대동맥과 대동맥에서 분지된 동맥혈관에 종양이 생기는 수동맥염으로 사망한것으로 보여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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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경종 계비) 선의왕후 어씨

출생 : 1705년 12월 03일
서거 : 1730년 08월 01일
향년 : 24세
사인 : 화병 추정

조선 20대 국왕 경종의 계비로 경종이 왕세자였던 시절 17살 많은 경종의 세자빈이 되었음. 경종 즉위 후 왕비가 되지만 남편 경종이 자녀를 만들수 없어서 시동생 연잉군(영조)이 왕이 되게 됨.

시동생 영조와 사이가 극악이여서 왕대비가 된 이후 영조와 관련된 왕실행사는 모두 불참했고 영조 역시 왕대비를 아예 무시했던걸로 추정

이인좌의 난 당시 "왕실의 씨가 바뀌었으니 바로 잡아라"는 하교를 내렸고 이후 효장세자 독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처소에 유폐당하는 신세가 됨.

실록에 승하 전날의 기록을 보면 죽기 직전까지 몸을 떨며 통곡을 하고 우는 소리를 내다가 손으로 뭔가를 치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에 영조가 의관들에게 그러한 증후를 본 적이 있는지 묻자 중관이 헛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함.

그 뒤 하루만에 24살 젊은 나이에 죽어버림. 야사에는 독살되었다는 등 말이 많지만 사후 왕대비였는데도 장례절차가 대거 축소되서 말이 나오기도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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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영조 정비) 정성왕후 서씨

출생 : 1693년 01월 02일
서거 : 1757년 03월 23일
향년 : 64세
사인 : 소화성 궤양, 부정맥 추정

조선 21대 국왕 영조 이금의 정실부인, 영조가 왕이 되기 전 왕자 시절 결혼했는데 부부사이가 진짜 안좋아서 둘 사이에 아예 자녀가 없었음. 영조 즉위 후 왕비가 되지만 아예 궁궐을 따로 쓸정도로 사이는 최악이였다고 함.

평생 남편 영조에게 홀대받아서 단명한게 아니냐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남편이 워낙 장수해서 그런거지 역대 조선 왕비들중 환갑을 넘긴 장수한 왕비들중 한명이며 가장 오랜 기간 왕비로 지닌 인물임.

승하 전 날 피를 한 요강이나 토하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다음날 3월 23일 64세 나이로 승하했음. 현대로 치면 소화성 궤양을 앓고 있었고 위장에서 계속 출혈이 있다가 토혈을 했고 부정맥이 겹쳐 세상을 떠난것으로 보여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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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영조 계비) 정순왕후 김씨

출생 : 1745년 12월 02일
서거 : 1805년 02월 11일
향년 : 59세
사인 : 뇌졸증 추정

조선 21대 국왕 영조 이금의 두번째 정실부인으로 정성왕후 승하 후 본인보다 51살이나 많은 영조의 두번째 왕비가 되었어. 결혼 당시 영조는 워낙 고령이였기에 둘 사이에 자녀는 생기지 않았음.

영조 사후 의붓손자 정조가 즉위하자 왕대비가 되었음. 법적으로 정조의 계조모였기에 대왕대비로 존봉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당시 정조의 법적 어머니 효순왕후가 이미 고인이여서 그대로 왕대비 자리에 남게 되었음.

사극에서 표현되는것과 달리 정조와 사이는 괜찮았고 사실상 정치적 동맹 관계였음. 정조 승하 후 의붓증손 순조가 즉위하자 대왕대비 자격으로 섭정을 했음. 이 당시 천주교 탄압이 역사적으로 유명함.

섭정을 거둔 이후 왕실 어른으로 대우받으며 지내다가 2월 10일 심각한 두통을 호소해서 의관들이 치료에 나섰지만 다음날 2월 11일 59세 나이로 승하했음

현대로 치면 뇌출혈이나 뇌졸증으로 추정됨. 역대 조선의 대왕대비들이 대부분 환갑을 넘겨서 다소 단명한거 같지만 59세까지 살아 평균 왕비들의 수명만큼은 살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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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진종 왕비) 효순왕후 조씨

출생 : 1715년 12월 28일
서거 : 1751년 12월 20일
향년 : 35세
사인 : 종기질환 추정

조선 추존 국왕 진종(효장세자) 이행의 정실부인으로 남편이 왕세자 신분으로 죽었고 본인도 세자빈 신분으로 죽었지만 사후 시조카 정조가 양자로 입적되어 남편과 함께 왕, 왕후로 추존되었음.

12살 나이에 왕세자빈이 되지만 2년 뒤 사별하면서 14살 나이에 자녀 없이 홀로 됨. 이후에도 궁궐에서 살며 왕실 어른들을 잘 모셨고 영조가 매우 예뻐했다고 함. 영조는 그녀를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두 자식(다른 한명은 화평옹주) 중 한 명이라고 했음.

지병으로 토황증(역류성식도염)을 앓았으며 종기 질환으로 치료를 받던 중 갑자기 상태가 안좋아져 하루만에 승하하게 됨. 정조 즉위 후 효순왕후로 추존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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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장조 왕비) 헌경왕후 홍씨

출생 : 1735년 07월 26일
서거 : 1816년 01월 01일
향년 : 80세
사인 : 심장질환(노환) 추정

조선 추존 국왕 장조(사도세자) 이훤의 정실부인으로 22대 국왕 정조의 어머니, 남편이 죄인 신분이였기에 아들이 일찍 죽은 시숙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된터라 세상을 떠날 당시 왕세자빈 신분이였고 사후 한참 뒤 남편과 함께 추승되어 왕비로 존봉되었음.

남편 장조가 세자였던 시절 세자빈이 되었고 둘 사이에 2남 2녀 자녀들을 낳았음. 남편이 시아버지 영조에 의해 처형된 이후 잠깐 사가에 나가게 되지만 다시 입궁했고 아들 정조 후 궁호를 받아 혜경궁이라고 불리게 됨.

매우 장수했고 아들 정조가 먼저 죽은 뒤 16년을 더 살았음. 얼마나 오래 살았냐면 역대 조선 왕비들중 3번째로 오래 살았고 장녀 청연공주쪽을 통해 고손자까지 봤음.

평소 건강했고 왕세자빈 시절에도 질병을 앓은적이 없었으나 행장에 나온 기록으로는 1815년 가을부터 담현증(심장질환)으로 건강이 안좋아졌고 병세가 좋아지다 나빠지다를 반복하다 악화되어 1816년 1월 80세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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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정조 왕비) 효의왕후 김씨

출생 : 1753년 12월 25일
서거 : 1821년 03월 29일
향년 : 67세
사인 : 폐렴 추정

조선 22대 국왕 정조 이산의 정실부인으로 정조가 왕세손이던 시절 혼인 후 왕비를 거처 왕대비 자리까지 올랐음. 불임이였던탓에 자녀를 낳지 못했고 본인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상상임신까지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음.

매우 인자했던 성격으로 후궁들에게 친절하게 잘해주고 주위 사람들한테도 잘 대해줘서 왕실 내부에서 적이 없었다고 함. 후궁이 낳은 정조의 후계자 순조를 친아들처럼 잘 대해줬음.

정조 승하 후 의붓아들 순조가 즉위하자 왕대비가 되었는데 존호를 받지 않았음. 왜냐면 시어머니 혜경궁이 살아있었기 때문에 시어머니를 의식했던것으로 보여짐.

혜경궁이 노환으로 인한 심장병으로 오늘 내일 할 당시 환갑이 넘은 나이에 직접 간병을 했다고 함. 혜경궁 사후 왕실 최고 어른이 되었을 당시 자신의 생일을 간소하게 치르자고 하교하는 등 검소하게 살았음.

승하 10일 전인 3월 19일 오한,기침 등 감기증상으로 의관의 치료를 받았지만 몸상태가 이후 급격히 악화되어 3월 29일 67세 나이로 승하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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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순조 왕비) 순원왕후 김씨

출생 : 1789년 05월 28일
서거 : 1857년 09월 09일
향년 : 68세
사인 : 심근경색 추정

조선 23대 국왕 순조 이홍의 정실부인, 조선 역사상 섭정을 두번이나 한 유일한 왕비로 원래 순조가 세자였던 시절 혼인해 세자빈이 될 예정이였으나 정조가 갑자기 승하해서 순조 즉위 후 왕비로써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음.

슬하에 2남 3녀 총 5명의 자녀들이 있지만 모두 본인보다 먼저 앞세웠음. 남편 순조 승하 후 손자 헌종이 즉위하고 아들 효명세자가 왕으로 추존되고 며느리 조씨가 세자빈에서 왕대비로 추봉되자 그녀는 왕비에서 대왕대비로 추봉되었음.

어린 손자 헌종을 대신 섭정을 했고 헌종이 친정을 할 당시 본인의 친정을 권력에서 멀어지게 하자 대놓고 손자를 마음에 안들어하기도 함.

언문 어찰에서는 그가 헌종이 죽기 며칠 전엔 손자를 폐위하기를 바랐고 그가 죽자 '거리 낄 것이 없어서 속 시원하다'고 여겼다는 대목도 있음. 실제로 실록에서만 해도 죽은 헌종에 대해 '남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 의심이 많으며 시기심이 강하다'고 언급한 대목이 있음.

헌종 사후 먼 왕실종친 철종을 본인의 양아들로 삼아 즉위시켰고 철종을 대신해서 또 섭정을 함. 섭정을 거둔 이후 1857년 9월 9일 담체(심근경색)로 인해 갑자기 승하하게 됨.

당시 68세로 상당히 고령이였지만 평소 건강했기에 예기치 못한 죽음이였다는 상황이 실록에도 나와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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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문조 왕비) 신정왕후 조씨

출생 : 1809년 01월 09일
서거 : 1890년 05월 23일
향년 : 81세
사인 : 노환 추정

조선 추존 왕 문조(효명세자) 이영의 정실부인으로 24대 국왕 헌종의 어머니, 왕세자빈이 된 이후 외아들 헌종을 낳았고 남편이 대리청정을 하며 왕비가 될 수 있었는데 남편 효명세자가 요절해버림.

이후 "세자빈궁"으로 불리다 아들 헌종이 즉위한 이후 남편 효명세자가 문조로 추존되며 왕대비가 되었음. 왕대비가 된 이후 노후가 편안할 줄 알았지만 헌종이 일찍 요절하면서 먼 왕실 종친이던 철종이 시부모(순조,순원왕후)의 양자로써 입적되어 즉위하게 됨

시어머니 순원왕후 승하 후 왕대비에서 대왕대비로 진봉됨. 원래 왕실 내명부는 왕비 - 왕대비 - 대왕대비 순서였는데 헌종 승하 당시 헌종비 효정왕후, 신정왕후, 순원왕후까지 대비가 3명인지라 왕대비 아래 대비라는 자리를 새롭게 만들었음. 그래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게 됨.

철종 마저 후사없이 죽자 다시 왕실 종친이던 고종을 본인과 일찍 죽은 남편 문조의 양자로 입적시킨 후 섭정을 했음. 섭정을 거둔 이후 정사에 간여한 기록이 없고 노후를 조용히 지냄

고종과 명성황후는 흥선대원군과 사이가 나빠서 법적 적모였던 그녀에게 엄청 효도했다고 함. 역대 조선 대비들중 유일하게 생전에 팔순생일을 치르기도 했던 인물임.

조선 왕비들중 최장수 왕비로 갑신정변을 거처 경복궁에 전기가 들어오는걸 지켜봄. 1890년 1월 감기를 앓은 이후 노환으로 급격히 쇠약해졌고 5월 23일 81세 나이로 승하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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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헌종 왕비) 효현왕후 김씨

출생 : 1828년 04월 15일
서거 : 1843년 10월 06일
향년 : 15세
사인 : 천연두 추정

조선 24대 국왕 헌종 이환의 정실부인으로 시할머니 순원왕후와 같은 집안 출신, 헌종의 왕비로 간택되어 왕비가 되었지만 15세 어린 나이에 후사없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음.

10월 05일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었고 다음날 승하했는데 그녀가 죽고 한달 뒤 남편 헌종 역시 악성천연두에 걸렸던것으로 보아 천연두로 인해 세상을 떠난걸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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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헌종 계비) 효정왕후 홍씨

출생 : 1831년 02월 22일
서거 : 1903년 12월 20일
향년 : 72세
사인 : 폐렴 추정

조선 24대 국왕 헌종 이환의 두번째 정실부인으로 효헌왕후 승하 후 헌종의 계비로 간택되서 왕비가 되었다고 함. 결혼식 당시 폐결핵에 걸려 혼자 거처하다가 이후 중궁전에 들어오게 됨.

헌종은 왕비 홍씨보다 후궁 경빈 김씨를 더 아꼈기에 둘 사이에 자녀가 없었고 헌종이 요절한 이후 왕실 종친 철종이 즉위함. 당시 왕실에는 대비가 될 선대왕비가 3명이나 있어 왕대비 아래 대비 작위를 만들어 효정왕후는 대비가 되었음.

철종은 순조의 양자로 입적되어 즉위한터라 대비 시절 지위문제가 있었고 선왕비로써 대우도 제대로 못받아서 순원왕후, 신정왕후가 대신 챙겨줄 정도로 큰 대접은 못받음.

순원왕후 사후 왕실에 대비가 신정왕후와 그녀뿐이였기에 대비에서 왕대비로 존봉됨. 철종 마저 후사없이 죽고 고종이 즉위한 이후 정사에 간여하지 않고 조용히 노년을 보냄.

시어머니 신정왕후 사후 3대왕을 거쳤는데도 대왕대비가 되지 못했는데 왕실에 대비가 그녀 혼자뿐이였기 때문임. 갑오개혁 이후 자주국이 되면서 왕대비에서 왕태후로 불리게 되었음. 하지만 대한제국 건국 당시 황태후가 되지는 못했는데 남편 헌종이 황제가 아닌 국왕 신분이였기 때문임.

1903년 12월 17일부터 감기와 기침으로 치료를 받았지만 노령의 나이에 극복하지 못하고 3일뒤인 12월 20일에 72세 나이로 승하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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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철종 왕비) 철인왕후 김씨

출생 : 1837년 04월 15일
서거 : 1878년 05월 31일
향년 : 41세
사인 : 폐결핵 추정

조선 25대 국왕 철종 이변의 정실부인으로 법적 시어머니 순원왕후, 시조카며느리 효현왕후와 같은 안동김씨 가문 출신임. 철종이 즉위한 이후 왕비로 간택되어 입궁했음.

하지만 단지 가문의 이해를 위해 간택되었을 뿐, 정작 왕후 본인은 한 번도 정사에 나서거나 가문을 두둔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고 함.

슬하에 아들 한명이 있었는데 일찍 요절했고 이후 자녀를 낳지 못함. 성품이 매우 인자하고 착해서 왕실의 대비들(순원왕후,신정왕후,효정왕후)과 사이도 좋았다는 말이 전해짐.

남편 철종 승하 후 고종이 즉위했을 당시 그녀 포함 효정왕후, 신정왕후가 생존해있어서 왕비 - 왕대비 - 대왕대비의 순서를 왕비 - 대비 - 왕대비 - 대왕대비로 바꿔서 철인왕후는 대비가 되었음.

이 당시 신정왕후와 법적으로 동서지간인지라 대왕대비로 존봉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철종보다 헌종이 선왕이였던터라 서열문제로 현실화되지 않음.

대비가 된 이후 1871년 10월 병치레를 했고 철종의 딸 영혜옹주를 친딸처럼 아꼈지만 옹주가 죽은 뒤 몸이 더 안좋아짐. 남편 철종이 앓던 폐결핵을 똑같이 앓다가 1878년 5월 31일 41세 나이로 승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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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고종 황후) 명성태황후 민씨

출생 : 1851년 11월 17일
서거 : 1895년 10월 08일
향년 : 43세
사인 : 살해 (자상) 추정

조선 26대 국왕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 고종 이재황의 정실부인으로 살아생전 왕비 - 왕후 신분이였으나 사후 대한제국 개국 이후에 황후로 추존됨. 전해지는 본명은 "민아영(閔娥暎)"임

역대 조선 왕비들중 왕비 시절 가장 큰 권력을 누렸고 시아버지 흥선대원군과 권력다툼으로 잘 알려졌지만 조선의 멸망에 크게 기여했다는 비판을 받음. 남편 고종과 사이에 4남 1녀 5명의 자녀를 낳지만 아들 순종 이외에 전부 요절함.

을미사변 당시 43세 나이에 경복궁 건청궁에서 피신하던 중 일본 낭인의 칼에 의해 시해당했음. 사후 시신은 태워졌다가 유골만 수습해서 장례를 치른것으로 알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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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순종 정후) 순명효황후 민씨

출생 : 1872년 11월 08일
서거 : 1904년 10월 23일
향년 : 31세
사인 : 위암 추정

대한제국 2대 황제 순종 이척의 정실부인으로 순종이 황제가 되기 이전 세상을 떠나 순종 즉위 후 황후로 추존되었음. 순종이 왕세자였던 시절 세자빈으로 간택되었는데 남편 순종이 불임이였던탓에 자녀를 두지 못했음.

시어머니 명성황후와 같은 가문 출신인데 야사에는 명성황후로부터 시집살이를 심하게 당했다고 하지만 확인된 사실이 없음. 을미사변 당시 같은 현장에 있었다는 말이 전해짐.

1904년 8월 병에 들어 자리에 누웠고 두달뒤인 10월 31세 나이로 홍서함. 사인이 위암이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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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순종 계후) 순정효황후 윤씨

출생 : 1894년 09월 07일
서거 : 1966년 02월 03일
향년 : 71세
사인 : 심장마비

대한제국 2대 황제 순종 이척의 정실부인으로 사실상 대한제국 최초 겸 마지막 황후, 순종보다 20살 이상 어렸고 자녀 조차 없었지만 부부사이는 좋았음. 대한제국 멸망 이후 "이왕대비"로 불리게 됨.

6.25 전쟁과 4.19혁명, 5.16 쿠테타를 거처 1960년대까지 살았고 말년에는 창덕궁 낙선재에서 살면서 국가에서 지원하는 연금을 받고 삼. 1966년 71세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음.




대략 이정도라고 보면 될듯

왕비들은 왕과 달리 의관한테 진찰을 받더라도 증상만 기록되어 있을 뿐 추정되는 질환만 예상됨

심지어 폐비들은 아예 기록된것도 없고 죽고 나면 "졸하였다"라고만 표현되서 뭐 어디가 아팠는지 지병이 있었는지 이런 정보는 아예 없음

왕비들 수명을 장수한대로 정리하면

1. (문조비) 신정왕후 조씨 : 81년 4개월
2. (단종비) 정순왕후 송씨 : 81년 3개월
3. (장조비) 헌경왕후 홍씨 : 80년 5개월
4. (헌종비) 효정왕후 홍씨 : 72년 9개월
5. (순종후) 순정효황후 윤씨 : 71년 4개월
6. (중종비) 단경왕후 신씨 : 70년 10개월
7. (숙종비) 인원왕후 김씨 : 69년 6개월
8. (순조비) 순원왕후 김씨 : 68년 3개월
9. (성종비) 정현왕후 윤씨 : 68년 1개월
10. (정조비) 효의왕후 김씨 : 67년 2개월
11. (덕종비) 소혜왕후 한씨 : 66년 6개월
12. (세조비) 정희왕후 윤씨 : 64년 4개월
13. (인조비) 장렬왕후 조씨 : 63년 8개월
14. (중종비) 문정왕후 윤씨 : 63년 4개월
15. (인종비) 인성왕후 박씨 : 63년 2개월
16. (영조비) 정성왕후 서씨 : 63년 1개월
17. (연산군부인) 신씨 : 60년 4개월
18. (영조비) 정순왕후 김씨 : 59년 1개월
19. (정종비) 정안왕후 김씨 : 57년 6개월
20. (효종비) 인선왕후 장씨 : 55년 1개월

이 순서라고 보면 됨
  • tory_1 2023.10.12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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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1 2023.10.12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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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3 2023.10.12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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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7 2023.10.12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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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4 2023.10.12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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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8 2023.10.12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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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9 2023.10.12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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