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강연인데 참 좋은 강의인 것 같아서 다른 토리들이랑 공유하고 싶어서 들고왔어.
양성평등주의자이며 영화감독, 교육자, 작가, 그리고 문학 평론가인 잭슨 카츠(Jackson Katz)의 강연이야.
아래는 강연 중 내가 마음에 들었던 내용 일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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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지금 여러분들과 생각을 전환하는 시각에서 성별간 폭력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성폭력, 가정 폭력, 학대성 관계 성희롱, 아동 성적 학대 같은 문제들 말이죠. 이런 문제들은 총체적으로 "성적 폭력 문제" 라고 불리고 사람들은 이는 여성 문제로, 몇몇 착한 남성들이 도울 수 있는 문제라 생각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이 문제라 잘못되었고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일부 착한 남성들이 돕는 여성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사실, 이러한 문제들은 그 무엇보다도 남성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 많은 남자들은 "여성 문제"라는 말을 들으면 남성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 나는 남자야. 저건 여자들의 문제야" 라고 말이죠. 결과적으로 많은 남성은 첫번째 문장 그 이상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여성 문제'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 두뇌 속에 칩같은 것이 작동하여 신경 회로가 우리의 관심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것 같습니다. ‘성’을 나타내는 단어 역시 같은 방식으로 적용됩니다. 많은 사람이 ‘성’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여성’이라는 의미를 떠올리기 때문이죠. 그래서 성 문제를 여성 문제와 동의어로 생각합니다.‘성’이라는 용어에 대해 약간의 혼동이 존재합니다.
- 이것은 가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훨씬 깊은 구조적인 사회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여기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죠. 여러분도 알다시피, 가해자들은 늪 밖으로 기어올라와 마을로 들어와서 나쁜 짓을 하고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그런 괴물이 아닙니다. 그건 정말 순진한 생각입니다. 그렇죠? 가해자는 그것보다 훨씬 더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회와 세계에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폭력적인 남성들을 양산하는 데에 사회 기관들은 어떻게 동참하고 있나? 라고 묻고 싶습니다.
- 저는 이제 이런 문제에 대한 인식 고취를 위해 노력하는 많은 여성들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그 여성들의 노력은 어제와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년간 폄하되어 왔습니다. 그런 여성들에게 '남성 비판자' '남성 혐오자'같은 나쁜 수식어가 붙고 심하게는 혐오스럽고 공격적인 '여성주의 나치'라고 불립니다. 그렇죠? 이런 것이 무슨 뜻인지 아시죠? 뜻을 전하는 메신저를 매장시키는 것이죠. 여성 본인과 다른 여성 그리고 남성과 소년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외치는 여성들을현재 구조속에 그대로 안착시키고 순응시키기 위한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배가 흔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 학대적이라고 말을 할 때는, 단순히 여자를 때리는 남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 남자의 친구가 여자 친구를 학대하는 그 순간의 폭력만을 말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적인 변혁을 일으키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남자들이 서로간에 간섭할 수 있도록 말이죠. 예를 들면, 당신이 남자고 여자들이 없는 남자 그룹속에서 포커 게임을 하거나 이야기하며 놀 때 어떤 남자가 성차별적인 발언이나 여성을 희롱하는 말을 했을 때 그에 대해 같이 웃거나 못들은 척 하는 대신 이렇게 말하는게 필요합니다. "이봐, 그런 말 하지 마. 너가 하는 농담의 대상이 우리 여동생이 될 수도 있어. 다른 농담거리도 많잖아.” 또는 “우리 다른 얘기하는 게 어때? 그런 대화 별로 맘에 들지 않아” 라고 얘기해야 합니다.
- 짧은 인생동안 마틴 루터 킹이 남긴 훌륭한 말 중에서 "결국, 가장 크게 상처를 주는 것은 적이 말이 아니라 친구의 침묵입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국, 가장 큰 상처를 남기는 건 적의 말이 아니라 친구의 침묵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여성들과 아이들을 상대로 한 남자들의 비극적이고 계속적인 폭력에 관해 정말 많은 침묵이 남성 문화안에 존재해 왔습니다.
- 여하튼 우리는 여성들에게 빚을 졌어요. 당연한 말입니다. 게다가 우리의 아들들에게도 빚을 졌구요. 전 세계에서 성장하고 있는 젊은 청년들에게도 빚을 졌어요. 특정한 남성성을 가지도록 하는 문화속에서 젊은 청년들은 선택권이 없습니다. 남성다움은 하나의 정해진 틀인거죠그들은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있고 그들에 대한 책임 또한 우리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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