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숲
<<조선 14대 국왕 선조 이균의 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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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인왕후 박씨

출생 = 1555년 5월 5일
사망 = 1600년 8월 5일 (만 45세)

(슬하 자녀 없음)

선조의 첫부인이자 첫번째 정궁왕후. 영돈녕부사 박응순의 딸로 선조의 즉위 2년째인 1569년에 열다섯 살의 나이로 왕비로 책봉되었음.

그러나 의인왕후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불임이었고 선조는 후궁인 공빈 김씨와 인빈김씨를 총애하였기 때문에 왕비임에도 불구하고 왕실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었음. 그런 이유로 그녀는 자식의 생산을 기원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 원찰을 설치하였고 건봉사와 법주사 등을 비롯한 여러 사찰에 자주 재물을 베풀었지만 끝내 자식을 얻지 못했어.

그녀는 성격이 매우 어질고 착했으며 외모 또한 아름다웠기에 두 왕대비전들(인종비 인성왕후. 명종비 인순왕후)이 매우 아꼈다고 전해짐. 그녀의 이러한 인품은 아버지인 박응순이라는 사람이 정말 성격이 검소하고 바른 사람이어서, 선조의 국구(장인)인 줄 몰랐다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겸손한 성격이었다고 전해져

슬하에 자녀가 없던터라 일찍 죽은 공빈김씨의 차남 광해군을 양자로 들였고 세자로 책봉하는것에 나름 지대한 영향을 미쳤어. 광해군도 그녀를 친모처럼 여김.

또한 다른 후궁들의 자식들도 친자식처럼 아꼈다고 하며 본인이 불임이여서인지 후궁의 자식들을 아꼈다는 일화가 많아. 특히 2살에 어미를 잃은 광해군을 엄청 아꼈어.

하지만 진짜 최악의 남편이던 선조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중전(왕비)였던 의인왕후를 궁에 냅다 버리고 후궁인 인빈김씨만을 데리고 피난을 가버림...그녀는 의붓아들 광해군과 함께 피난을 갔고 그 뒤 3년만에 1595년 남편 선조를 만나게 됨.

그리고 왜군이 철수할 때까지 환도하지 못하다가 2년뒤인 1599년에 돌아올 수 있었음. 하지만 임진왜란 중 피난으로 몸이 약해져 결핵을 앓게 되었고 회복하지 못한채로 1600년 8월 여름 만 45세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어.

만일 의인왕후가 딱 60살까지만 살았으면 선조가 말년에 새장가를 가서 인목왕후를 왕비로 삼는일도 없었을꺼고 광해군이 폐출되는 일도 없었을꺼고 인목왕후는 평범한 양반가로 시집가서 평범하게 잘살았을꺼임.......

선조는 그녀가 죽고 꽤 슬퍼했다고 하며 많이 후회했다고 전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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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목왕후 김씨

출생 = 1584년 12월 13일
사망 = 1632년 8월 13일 (만 47세)

(슬하 1남 1녀)

연흥부원군 김제남의 딸로 임진왜란 중 혼기를 놓쳐서 당시로써는 늦은 나이까지 미혼으로 있다가 1602년 의인왕후 사후 선조의 왕비로 간택되었는데 선조보다 32세 연하였음. 조선시대에는 15~16세에 2세 보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으니 거의 할아버지와 손녀수준의 나이차이..현대로 치면 아빠와 딸 수준의 나이차이였음.

어쨌든 선조의 왕비가 되어 정명공주와 영창대군을 낳았는데 이미 선조에게는 세자 광해군이 있었기에 나이 어린 계모와 의붓아들의 갈등의 시작점이 생김...전체적으로 특별할 것 없는 왕비였음.

다만 명문가 영애로 태어나 세상물정 모르고 자라다 어린 나이에 왕비가 된 터라, 철이 너무 없어서 처신을 잘못한 점은 있었음. 선조의 총애를 반던 후궁 인빈 김씨가 처음에는 자기 아들 신성군을 세자로 만들려고 암암리에 움직이다가 결국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된 후엔 재빨리 광해군으로 갈아타 관계를 개선했던 것과는 정반대였는데

영창대군을 낳자마자 선조에게 "왕자를 세자로 부를 것인지, 아니면 대군으로 부를 것인지"를 물어보는 경솔한 짓을 했으며, 선조에게 부탁을 해서 무려 400여명에 이르는 궁녀들을 자신의 처소에서 시중을 드는 궁녀로 만들었는데, 이 궁녀들 중에는 원래 광해군 처소에 있던 궁녀가 100명이나 포함되어 있었다고 함.

또 영창대군을 마치 세자처럼 차려입히는가 하면, 친정아버지 김제남과 함께 치부에 힘을 써서 재물을 모으는 데 열중하여 눈총을 사기도 했고, 중궁전 소속 나인들이 동궁 소속 나인들을 핍박하거나 광해군 앞에서 방자하게 구는데도 이를 제어하지 못하였음..

특히 인목왕후의 나인들은 입궁한 지 얼마 안 된 인목왕후가 궁 내부 사정을 잘 모른다는 것을 이용하여 온갖 행패를 부리다가, 정작 광해군이 임금이 되고 영창대군에 역모에 휩싸인 후에는 너도 나도 있지도 않은 거짓 고변을 하여 인목왕후를 궁지에 몰아넣는 일을 저지름...본인도 궁중의 법도를 어기고 영창대군을 세자처럼 입히는 등, 철없고 위험한 실책도 저질렀음.

선조 사망 당시 20대 초중반이였고 의붓아들 광해군이 즉위하도록 전업(왕비가 왕을 대신해 명함)을 내려 즉위시켰고 그녀는 왕대비가 되었어. 즉위 당시 광해군은 16년에 달하는 실무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더구나 조선 역사상 유례가 없는 분조를 이끈 경력의 소유자였음. 영창 대군보다 31살이나 많았고 종법해석상으로도 우위에 있었으며. 결국 영창대군이 왕비 소생이란 점도, 광해군의 넘사벽 스펙 앞에선 결정적인 고려 대상이 못되었음.


하지만 광해군 시절 친정부친 김제남과 친정 오빠,남동생이 역모를 꾀했다는 이유로 처형되고 친정모친 노씨는 노비가 되어 제주도로 귀양을 갔고 그녀의 아들 영창대군도 귀양지에서 처형되는 아픔을 경험함. 그녀 역시 왕대비에서 "서궁"으로 낮춰져서 유폐되는 비극을 경험하게 되었음.

유폐된 기간동안 숨죽여 살던 그녀는 남편 선조와 인빈김씨의 손자인 능양군(인조)가 반정을 일으키고 즉위하자 비로소 다시 풀려나는데 인목왕후는 인조를 만나보고는 그 전에 "이혼(광해군) 부자의 머리를 가져오세요. 그 머리를 씹겠습니다. 그 살점을 씹고 전교를 내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져.

어찌나 한이 깊었는지 인목왕후는 처음엔 "광해군을 사사시켜야 한다"고 윽박질렀고 이후 "2번 절하며 청한다"고 할 정도로 간절하게 먼 곳으로 광해군을 유배보낼 것을 요청했음.

인조가 즉위하고 대왕대비(인조는 남편 선조의 손자)로 복권되었고 궁에서 남은 말년을 보내게 됨. 또한 유일하게 살아남은 딸 정명공주를 시집보냈고 사위를 엄청 예뻐했는지 사위에게 오직 임금만이 탈 수 있는 어구마까지 내려줬다가 비판받은 적도 있었음.

한편 그녀의 건강이 오랜 유폐생활도 좋아지지 않자 인조는 그녀의 마음을 달랠려고 홍주원(정명공주의 남편)의 벼슬품계를 올려주는 등의 행동을 했으나 1632년 8월 아이러니하게도 의붓아들 광해군보다 일찍 만 47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

그녀의 모친 광산부부인은 80세. 딸 정명공주는 82세까지 산걸 보면 장수 Dna가 있는듯 하지만 서궁유폐생활에 친정가족들의 비극과 어린 아들의 죽음을 견뎌내기 힘들었는지 47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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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빈 김씨 (공성왕후)

출생 = 1553년 11월 16일
사망 = 1577년 6월 13일 (만 23세)

(슬하 2남)

의정부 영의정 해령부원군 김희철의 딸로 선조의 간택후궁 출신임. 선조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던 인물로 장남 임해군을 임신했을때 종2품 숙의로 봉해지고 차남 광해군을 임신했을때 종1품 귀인에 봉해짐. 그리고 광해군을 낳고 정1품 빈에 봉해졌어.

그녀는 선조의 사랑을 독차지하였고, 그 때문에 다른 후궁들은 선조에게 외면당하기 일쑤였다고 전해져. 그녀는 자신의 목숨이 위독해지자 누군가 자신을 저주하고 있다며 이를 선조가 조사하지 않아 자신이 죽게 되는 것이라는 말을 선조에게 아뢰었는데, 이 말을 듣고 난 후 선조는 다른 후궁들에게 더욱 모질게 대하였다고 함.

아들 광해군을 낳고 병을 앓다가 1577년 만 23세 이른 나이로 사망했고 그녀의 부친 김희철 역시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동하다 전사하면서 광해군을 지켜줄 세력들이 없어 한때는 세자의 지위가 위태로운 지경이 되버림.

아들 광해군이 즉위하자 "공성왕후"로 추존되었지만 광해군이 폐위되면서 그녀의 존호 역시 추탈되었고 다시 정1품 빈으로 지위가 내려가게 되었음.광해군이 죽기 직전에 생모의 무덤 근처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유언대로 실행되어, 광해군묘가 그녀의 묘 근처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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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빈 김씨

출생 = 1555년 3월 21일
사망 = 1613년 12월 10일 (만 58세)

(슬하 4남 5녀)

추존왕 원조의 모친이자 인조의 할머니임. 외사촌 언니이자 명종의 후궁이었던 숙의 이씨가 김씨를 데려다가 궁중에서 양육했는데, 명종의 왕비인 인순왕후의 눈에 들어 그녀의 심부름을 하게 되었고 그러다 훗날 인순왕후가 선조에게 후궁으로 추천하여 후궁이 되었고 정3품 소용이 되었어.

그녀가 등장하기 전에는 공빈 김씨가 선조의 총애를 받고 있었는데 선조의 정실 의인왕후 박씨가 아이를 낳지 못하고 있는 동안, 공빈은 두 아들 임해군과 광해군을 낳아 왕실로부터 사랑을 받았음. 그러나 공빈은 광해군을 낳고 2년뒤 죽으면서 선조의 사랑은 김씨에게 욺겨가게 됨.

남편 선조와 사이에 아들4명(의안군,신성군,원종,의창군)과 딸 5명(정신옹주,정혜옹주,정숙옹주,정안옹주,정휘옹주)를 자녀로 두었어. 그리고 후궁품계도 정3품 소용 - 정2품 숙의 - 종1품 귀인을 거쳐서 정1품 빈자리까지 올라감.

임진왜란 이전 세자 책봉이 유력했던 인빈 김씨의 장남 신성군을 무반 명가 평산 신씨의 일원이자 조선 최고의 맹장으로 이름 높았던 신립의 딸과 혼인시키고, 차남 정원군 역시 서인 명문가이자 평산 신씨와 쌍벽을 이룬 무반 명가 능산 구씨 집안과 혼인시켜 배경을 든든히 하고, 정철을 쳐내려는 이산해와 연합하는 등, 자기 소생을 차기 왕으로 만들기 위해 움직였음.

하지만 왜란 중 신성군이 죽고 아들들이 사고를 치고 다니며 세자 자리는 공빈김씨 소생의 광해군에게 돌아가는데..그녀는 여기서 머리를 써서 광해군을 적극 밀어주고 후원해주기로 결심했음.

자신의 외조카(숙원 신씨)를 광해군의 후궁으로 들이고 인목왕후와 재혼한 선조에게 광해군 편을 많이 들어주는 등 광해군과의 관계 개선에 힘써, 의심 많은 광해군조차 "내가 지금 자리에 있게 된 데는 서모의 공이 컸다."라고 공개적으로 말할 정도로 사이가 원만해졌음.

남편 선조가 죽고 궁밖을 나와 사가에 살며 옷을 허름하게 입고 말수를 줄이는 등 조용히 살다가 1613년 만 5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남.

이렇게 사이가 원만해져 광해군 즉위 후 인빈 김씨에 대한 보복은 없었고 그녀의 아들 정원군은 왕실 어른으로 대우받으며 살아갔음. 그러나 광해군의 의심병은 끝내 피해갈 수 없어 광해군은 정원군의 3남 능창군( 당시 16세)을 역모죄로 유배를 보내고, 능창군은 스스로 자살했음.

어린 아들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정원군은 술로 세월을 보내다 홧병으로 죽었고 광해군에 의해 아버지와 동생을 잃게 된 정원군의 장남 능양군이 인조반정을 일으키게 된 원인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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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온빈 한씨

출생 = 1581년 11월 2일
사망 = 1664년 12월 10일 (만 83세)

(슬하 3남 1녀)

선조의 부인들중 두번째로 장수한 인물. 양반가 따님으로 12살 나이에 후궁으로 간택되어 종4품 숙원. 종2품 숙의. 종1품 귀인을 거쳐서 정1품 빈자리까지 올라감. 남편 선조와 사이에 아들 3명(흥안군,경평군,영성군)과 딸 1명(정화옹주)를 두었어.

28살에 남편 선조가 죽자 사가로 나가서 살았는데 그녀의 자식들이 문제가 됨....

아들 흥안군과 경평군은 늙은 부녀자들뿐만 아니라 양반들도 폭행하고 집까지 빼앗고 과부들을 성추행하고 궁궐 하인들을 몰래 데려갈정도로 광해군~인조 시절에 여러 번 탄핵되지만 그때마다 왕들이 말려서 넘어가지만, 흥안군은 이괄의 난에 휘말려 처형됨.

또한 차남 경평군 역시 백성들의 음식과 땅을 빼앗고 몰래 도둑질해놓고 그걸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우고, 하다하다 자신의 집을 짓는데 해조에서 돈을 안 주었다며 관원들에게서 돈을 빼앗고 채무자를 가뒀다고 탄핵까지 받음.

유일한 딸 정화옹주 역시 12살까지 말을 못할정도로 심각한 지병을 앓았고 24살때, 이복언니 정선옹주의 남편 권대임의 재종동생 권대항과 혼인하지만 자식을 낳지못했음.

병자호란 중 의붓손자 인조는 그녀에게 각별한 대우를 해주었고 그녀는 남편 선조의 고손자인 현종 시절인 1664년 만 83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

선조의 부인들중 가장 장수했고 선조,광해군,인조,효종,현종까지 5대왕을 거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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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정빈 민씨

출생 = 1567년 3월 1일
사망 = 1626년 11월 1일 (만 59세)

(슬하 2남 3녀)

선조의 후궁으로 성종의 딸 경숙옹주의 증손녀임. 1580년 종2품 숙의로 간택되어 입궁하게 되었음. 이때 간원이 민씨의 출신이 성종의 외손 집안이니 선발에서 제외하라고 간하였지만 선조가 윤허하지 않았음.

그리고 그 후 정2품 소의, 종1품 귀인을 거쳐 정1품 빈자리에 올랐고 선조와 사이에 아들 2명(인성군,인흥군)과 딸3명 (정인옹주,정선옹주,정근옹주)를 두었음.

중전 못지않은 명문가 출신에 정 1품 빈의 자리에 오르지만 선조에게 친정 가족들의 벼슬을 부탁하지도 않고 선조와 의인왕후에게 항상 예의를 갖추고 조용히 지냈다고 전해짐.

장남 인성군은 1624년 역모에 휘말려 유배되는데 1626년 11월 정빈이 위독해지자 인조는 인성군이 민씨를 만날 수 있도록 풀어주었으나  민씨는 아들 인성군이 한성에 도착하기 전에 만 59세 나이로 세상을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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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정빈 홍씨

출생 = 1563년 7월 27일
사망 = 1638년 3월 1일 (만 74세)

(슬하 1남 1녀)

인동현감 홍여겸의 딸로 1580년 정빈민씨,숙의정씨와 함께 후궁으로 간택되어 종2품 숙의첩지를 받고 입궁함. 이후 언제 진봉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당시 정1품 빈이였던걸로 봐서 그 이전에 "빈" 작위를 받은듯함.

당시 그녀는 임진왜란으로 인해 피난을 가야 했는데, 음력 5월 8일부터 그녀를 비롯한 선조의 후궁들에게 하루 세 끼가 지급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음. 선조와 사이에 아들 경창군과 딸 정정옹주를 자녀로 두었음.

그러나 홍씨는 인조 연간에 발발한 정묘호란으로 인해 또 피난을 가야 하는 신세가 되었는데 당시 홍씨는 충청도 제천에 있었는데, 인조는 홍씨 등에게 해당 고을에서 음식 등에 각별히 신경쓰도록 명을 내림.

한참 정묘호란으로 시끄러운 1638년 3월 만 74세로 세상을 떠났고 그 장례조차 격식있게 치루지 못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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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귀인 정씨

출생 = 1557년 음력 10월
사망 = 1579년 음력 4월 (만 21세)

(슬하 아이 1명)

정황이라는 자의 딸로 인종 후궁 귀인정씨는 그녀의 고모였다고 함. 1571년 15세 나이에 후궁인 정2품 소의로 간택되어 입궁하였고 1577년 명종 비 인순왕후의 장례가 끝나자 종1품 귀인으로 책봉되었어.

이후 정씨는 임신을 하였는데, 원래 후궁이 임신을 하면 친정어머니가 궁중으로 들어와 해산을 도와주는 것이 관례임에도 정씨는 외부인이 궁중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거부하였다고 해.. 결국 선조는 정씨에게 궁 밖에서 친정어머니와 함께 해산을 할 수 있도록 명하였으나, 정씨가 궁 밖으로 나갔을 때에는 이미 인사불성의 상태였고 결국 얼마 안가서 세상을 떠남.

아이를 낳다 죽은터라 슬하 자녀가 없고 그 이후부터 후궁은 임신하면 반드시 궁에서 아이를 낳도록 아예 법도가 정해졌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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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숙의 정씨

출생 = 1564년 5월 5일
사망 = 1580년 11월 1일 (만 16세)

(슬하 자녀 없음)

정순희의 딸로 정빈민씨, 정빈홍씨와 함께 1580년 17세 나이로 후궁에 간택되어 종2품 숙의에 봉해졌어. 하지만 그 해 겨울인 11월 만 16세 나이에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림. 슬하에 자녀는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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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순빈 김씨

출생 = 1559년 1월 14일
사망 = 1647년 1월 20일 (만 88세)

(슬하 1남)

선조의 부인들중 가장 장수한 인물. 공식적인 조선 왕의 부인들(왕비,후궁 포함)중 그녀보다 오래 산 인물은 없음. 자그마치 88년을 살았는데 이사람은 선조의 망나니 아들 순화군의 어머니임.

궁녀 출신으로 숙원, 소용, 숙의를 걸쳐 정1품 빈이 되었음. 근데 그녀의 아들 순화군은 ㄹㅇ 싸이코패스로 유명한데...

아버지 선조가 "순화군이 어려서부터 동물을 잔인하게 학대하거나 죽였다"고 회상할정도였고 황해도 신계에 살때는 신계 주민들에게 트집을 잡아 하루에 여러 명씩 형장을 때릴 정도로 잔학해서 이이첨의 건의로 삭탈 관직을 당할 정도였음.

또한 의인왕후의 장례기간에 재궁(관)을 모신 건물 옆에서 궁녀를 겁탈하여 유배를 가기도 했고 거기서도 위세를 부린 탓에 수원 부사 따위가 단속할 도리가 없었음. 형구를 마음대로 꺼내가서 하인들에게 멋대로 형벌을 가하도록 해서 향리들이 죽을 지경으로 처맞았으며, 관리들이 순화군을 피해 도망친 탓에 유배지의 행정업무가 완전히 마비되고, 심지어 부사마저 도망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임..

유배지였던 수원이 사람들이 죄다 도망가서 아예 지역이 망할지경이 되자 어쩔 수 없이 다시 서울로 불러들여 가택 연금해두었다. 하지만 여전히 담을 허물고 나가 사람을 붙잡아다가 곤장을 치는 등 아주 망나니 짓을 벌였고...결국 폐서인이 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2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남.

순빈은 외아들 순화군이 망가지는걸 보고 살다가 아들 순화군이 죽은지 40년이 지난 1647년 1월 만 8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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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소원 윤씨 (윤귀희)

출생 = 1586년 출생
사망 = 1632년 10월 23일 (만 47~48세)

(슬하 자녀 없음)

공식적으로 정황상 선조가 마지막으로 들인 후궁으로 워낙 선조가 연상이였던탓에 둘 사이에 자녀는 없음. 그 외 기록이 없으나 인조 10년인 1632년 궁중의 저주사건의 배후로 밝혀져서 만 47~48세 나이에 사약을 먹고 세상을 떠남.

그녀에게 사약을 내린다는 내용의 기록에 그녀의 이름이 "윤귀희"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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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상궁 김씨 (김개시)

출생 = 미상
사망 = 1623년 3월 13일

(슬하 자녀 없음)

이름은 "김개시" "김가희"로 알려져 있으며 천민의 딸이었지만 선조 때 광해군의 궁녀로 들어가게 됨. 그러다가 선조의 궁녀로 자리를 옮기게 되는데, 이 때문에 광해군과 선조의 나쁜 관계를 잘 중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임. 선조가 광해군을 눈엣가시로 여기고 영창 대군을 세자로 바꾸려고 하는 상황에서 광해군을 김개시가 도왔다는 기록이 존재해.

광해군이 김개시를 총애했지만 끝내 후궁으로 삼지 못한 이유는 그녀가 선조의 승은을 입었기 때문임. 야사에도 김개시를 침실로 들이려던 광해군에게 나이 든 궁녀가 "개시는 선조 대왕의 은혜를 입었다" 라고 간언하자, 광해군의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드러났다는 일화가 있음.

선조가 급사한 후 광해군이 왕이 되자 김개시는 광해군의 총애를 받게됨. 택에 국정에 관여하여, 권신 이이첨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권력을 휘둘렀음. 거의 후궁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녀의 지위는 상궁에 머물렀음. 권력을 잡고 난 이후 김개시는 관직을 돈을 받고 파는 매관매직을 일삼는 등 큰 비리를 저질렀다고 전해짐.

심지어 광해군 치세 말기에는 광해군에게 모반의 징조가 있다는 상소가 여러번 올라왔었는데, 김개시가 그럴 리가 없다고 광해군을 안심시켰다는 기록이 있을정도...김개시가 반정 세력과 내통하였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에 대한 확실한 근거는 없음..

결국 인조반정이 일어난 1623년 그녀는 반정군에 의해 처형당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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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상궁 박씨

출생 = 1578년
사망 = 1660년 (만 81~82세)

(슬하 자녀 없음)

선조의 승은을 입었으나 끝내 후궁이 되지 못한 인물임. 선조 사후 정업원으로 가서 비구니로 지내다가 광해군,인조,효종을 거쳐 선조의 고손자 현종 시절인 1660년 81~82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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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숙의 김씨

출생 = 미상
사망 = 미상

(슬하 자녀 없음)

선조의 후궁으로 성은 김씨, 품계는 종2품 숙의였다는게 기록의 끝임. 선조와 사이에 자녀는 없으며 생몰년도조차 알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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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숙의 한씨

출생 = 미상
사망 = 미상

(슬하 자녀 없음)

선조의 후궁으로 성은 한씨, 품계는 종2품 숙의였다는게 기록의 끝임. 선조와 사이에 자녀는 없으며 생몰년도조차 알 수 없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선조는 15명의 부인들과 사이에서 아들 14명. 딸 11명을 자녀로 두었음.
  • tory_1 2020.02.13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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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2 2020.02.1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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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 2020.02.1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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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4 2020.02.13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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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 2020.02.13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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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5 2020.02.13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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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 2020.02.1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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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6 2020.02.1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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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8 2020.03.28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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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7 2020.02.1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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