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암투극에 맞춰서 쓰는 글이라 얄팍함 주의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들은 모계 사회의 풍습이 강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신분도 대단히 중요했어. 같은 후궁의 자식이라도 어머니의 출신에 따라 황자들의 등급이 갈렸음. 높은 신분을 가진 어머니를 뒀다면 황위계승 레이스를 해봄직하지만 출신이 낮으면 별 관심도 못받고 그저 그렇게 끝남.

그럼 그 출신은 뭐에 따라 갈리느냐에 대해 말해볼게. 

1. 청나라의 상류층들은 기본적으로 '팔기군' 에 속해있어.

팔기군은 본래 만주족들의 군대인데, 청나라가 건국되고 나서는 행정, 사회, 경제를 아우르는 제도화 되었음.

팔기에 속한 사람들은 '기인' 이라 불렸고 팔기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우리나라 식으로 하면 평민)들은 민인이라 불렸음.

팔기에 속한 여자들이 14~17세가 되면 황실의 후궁, 황가의 복진을 뽑는 수녀 간택에 의무적으로 나가야 해.

궁녀들조차도 이 팔기 소속인들에서 뽑았는데 대부분 '포의' 출신이었대. 포의가 뭔지는 후술

이렇듯 황제의 주변 여자들은 다 팔기인이기 때문에 절대 다수의 후궁들은 팔기인임. 아주 간혹 민인 출신 후궁들(왕부에서 맞은 첩들이라던가 황자가 바친 미녀들이라던가)이 있긴 한데 대접을 제대로 받긴 힘들었지.. 황자를 낳아도 그 황자는 황위계승 근처도 못감.

팔기에 속하지 않은 민인이 팔기로 가거나, 같은 팔기 소속이 다른 팔기로 가는 등 소속을 바꾸는 것을 '대기' 라고 불러.

2. 팔기는 크게 만주족, 몽골족, 한족으로 나눠져 있었어. 한주족은 만군기, 몽골족은 몽군기, 한족은 한군기.

대우는 만군기>=몽군기>한군기 순이었어. 청나라가 세워질때 만몽연합을 해서 힘을 합쳐 명나라를 치고 황제가 되었기 때문에 몽군기는 만군기와 비슷하게 취급받았었음. 청나라 초기 황후, 고위 후궁들이 거의 이 몽군기 출신이었을 정도.

시간이 갈수록 몽군기의 지위는 내려가고 한군기의 지위는 올라갔지만 상대적으로 그렇다는거지 한군기가 제일 밑인건 변함없었음.

청나라 전체 황후를 통틀어서 한군기 출신은 순치제 후궁이었다 강희제 생모가 된 동가씨, 건륭제 후궁이었다 가경제 생모가 된 위가씨밖에 없었어. 그나마도 동가씨는 누르하치와 함께 나라를 세운 건국공신인데다, 본디 만주족이었다 명나라때 투항해서 한족이 되었다 다시 누르하치에게 갔다고 주장하는 케이스라 찐한군기에다 포의 출신이기까지 한 위가씨와는 하늘과 땅차이임.

사실 건륭제의 뒤를 이을 황자는 무조건 한군기 포의 출신 엄마를 둘 수 밖에 없었던게 건륭제가 너무 오래 살아서(...)황자들이 아버지보다 대부분 먼저 죽었거든. 원래 건륭제가 차기 황제로 낙점했던 만주족 출신 어머니를 둔 황자는 다 죽어버리고 남은 황자들의 생모인 위가 씨와 금가씨는 둘 다 한군기 포의 출신이라 어쩔 수 없었던 케이스.

3. 팔기는 상삼기와 하오기로 나뉘어 있어. 상삼기는 양황기, 정황기, 정백기인데 그 중에 제일은 양황기였음. 대부분의 황후들은 여기 출신이고 황위계승이 유력한 황자들의 생모(즉 태후 후보)들도 이쪽으로 대기시켜 줬었어. 황자들이 혹시 황제가 될때 어머니가 낮은 신분이면 곤란하니까ㅇㅇ

하오기는 정홍기, 양백기, 양홍기, 정람기, 양람기였어. 기본적으로 상삼기>하오기지만 구분이 아주 엄격한 것은 아니어서 하오기에서 잘나가고 출세한 관료면 상삼기에서 벼슬도 못하고 빌빌대는 사람보단 대우가 나을 확률이 커. 청나라도 관료제기 때문에 벼슬에 합격하고 그 벼슬이 어느정도까지 가는지는 본인 하기에 많이 달렸음. 물론 이건 기인들 사이의 얘기고 민인은 뭐..

후궁견환전의 견환은 한군기 하오기 출신이고 심미장은 상삼기 출신.

4. 포의는 예전에 만주족에 대항하다가 항복한 사람들 출신이야. 하지만 그건 옛날 얘기고 청나라는 그런 사람들도 포용해서 팔기에 소속시켰었어.  간혹 노비로 오역되는데 노비가 아니고 엄연히 양인들이고 하급귀족에 속하는 사람들이야. 이 포의 출신중에서 과거에 합격하고 출세한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었대.

아무튼 명문 귀족 출신이 험한 궁녀일을 할리가 없으니 이런 포의 출신 중에서 궁녀를 뽑는 거지.

건륭제의 후궁인 순혜황귀비 소씨는 원래 민인 출신이었는데 총애를 많이 받고 황자를 많이 낳으면서 건륭제가 한군기 포의로 대기시켜줬음. 다른 포의출신 황귀비들은 양황기로 대기시켜줘서 짜다고 느껴질수도 있지만 기인조차 아닌 민인 출신을 팔기로 편입시켜줬다는거 자체가 엄청난 출세였음.

5. 왕들의 부인은 복진이라 불렸는데 크게 적복진, 측복진, 그냥 첩(격격이라 불림)으로 나뉘어짐. 가장 지위가 높은 부인인 적복진은 한명이고 측복진은 여럿 둘 수 있음.

측복진은 청나라 초기엔 첩이 아니라 엄연히 정처 중 한명이었기 때문에 명문가에서 가려뽑았음. 보보경심 약희 언니가 만주족에 2품 장군인 아버지를 뒀는데 측복진인 이유. 적복진쯤 되려면 친왕의 외손녀였던 곽락라 명혜처럼 레알 황가와 피가 이어지는 수준이 되어야 함.

그러다가 후기로 갈수록 첩과 비슷해지면서 아들을 낳은 첩이 올라가게 되는 자리.. 정도로 취급됐던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