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황후 단발사건에 관해 홍대용의 을병연행록이나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는 중국에서의 기록이나 설하고 다르게 나오더라.
을병연행록에서는 황제가 총애하는 귀비랑 싸웠다.
계황후가 조선에서 보내온 고려주(구슬)을 시장에 팔았다. 시위랑 사통했다 등등 설이 있더라고.
열하일기에서는 고려주에 관한 것을 고발한 자가 회후(회족후비) 용비 화탁씨라는 말도 있음.
내 생각이지만 효현순황후 부찰씨는 연희공략의 부찰용음+견환전의 순원처럼 건륭이 사랑했고 자애롭고 죽고나서도 건륭이 그리워한건 맞는데
당시 효현황후가 아들도 있고 집안도 워낙 명문가에다가 빵빵하고 그러니 후궁들도 반발하거나 대적하기 힘들었을거 같음.
반면 계황후 휘파나랍씨는 황후가 되기전에는 자식도 없었고 집안도 만주족이라는거 빼고는 한미한 수준이었고 당시 황귀비가 될 시점 순귀비보다 자식도 없었고 서비보다 집안이 훨씬 못했는데 황후가 된건 건륭도 좋아했고+태후추천으로 된 것 같음.
글구 청나라 역대 황후들 중 계황후가 신분 제일 낮다고해.
내 생각에는 그런 상황에서 황후가 되어서 후궁들도 반발하고 대적하거나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을병연행록에서는 황제가 총애하는 귀비랑 싸웠다.
계황후가 조선에서 보내온 고려주(구슬)을 시장에 팔았다. 시위랑 사통했다 등등 설이 있더라고.
열하일기에서는 고려주에 관한 것을 고발한 자가 회후(회족후비) 용비 화탁씨라는 말도 있음.
내 생각이지만 효현순황후 부찰씨는 연희공략의 부찰용음+견환전의 순원처럼 건륭이 사랑했고 자애롭고 죽고나서도 건륭이 그리워한건 맞는데
당시 효현황후가 아들도 있고 집안도 워낙 명문가에다가 빵빵하고 그러니 후궁들도 반발하거나 대적하기 힘들었을거 같음.
반면 계황후 휘파나랍씨는 황후가 되기전에는 자식도 없었고 집안도 만주족이라는거 빼고는 한미한 수준이었고 당시 황귀비가 될 시점 순귀비보다 자식도 없었고 서비보다 집안이 훨씬 못했는데 황후가 된건 건륭도 좋아했고+태후추천으로 된 것 같음.
글구 청나라 역대 황후들 중 계황후가 신분 제일 낮다고해.
내 생각에는 그런 상황에서 황후가 되어서 후궁들도 반발하고 대적하거나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