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게리온) 신극장판 보고 에바가 더 이상 센세이셔널한 작품이 아니라는 게 느껴져서 슬펐어 ㅠ(호/불호 다 있음)

구에바는 진짜 충격과 새로움 그 자체였는데...

비록 요소요소들은 여기저기서 따온 게 많다지만 당대 상업애니에서 그만큼 당돌한 표현과 영상은 없었단 말이야

엔드오브 에반게리온 처음 봤을 때, 아 나는 세상에 없었던 것을 봤다! 하는 묘한 쾌감을 느꼈다고

그런데 신극장판은 ㅠㅠ 그런 카타르시스를 전혀 느끼지 못했음

메시지는 재탕이요

연출은 자가복제

메타적 요소와 해석들도 이제 한물 갔음

에바가 더 이상 새롭게 느껴지지 않고 진짜 이건 예토전생된 시체구나 하는 실감이 확 들었음

에반게리온이라는 콘텐츠의 종말을 스스로 고해버리는 콘텐츠로서는 마땅한 일이긴 한데

이런 점까지 >에바는 이제 끝이다<라는 주제의식(ㅋㅋ)에 맞물려 떨어지는 점도 슬펐음

그냥 작품의 오래된 팬으로서 졸업식에서 구질구질해지는 건 어쩔수 없나봄...

아니 억울하다고...잠깐만 이거 놔봐 난 아직 졸업하고 싶지 않아 왜 맘대로 강제 졸업식 여는 건데 ㅠㅠ

농담이고 그만큼 안노가 하고싶은 말 '에바에서 그만 졸업해라~!' 주제 전달력은 높았다고 생각하고

솔직히 작품으로서 주제 전달력이 높은 건 장점이지....

모션캡쳐며 3d 그래픽이며 실사영화 경험을 통해 실사영화 촬영기법을 애니메이션에 녹여내려고 한 실험적 시도도 좋다고 생각함

그리고 실망한 거랑 별개로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이 요즘 나오는 웬만한 극장판 애니메이션보다 잘 만들었다는 생각은 들어

그냥 구판 에바를 생각했을 때 아쉬운 점이 많이 남는 거지

하...물론 러닝타임 문제도 있었겠지만 주제표현에 급급하느라 개연성이라든지 뭔가 좀 많이 희생되지 않았니? ㅠㅠ

캐릭터들은 산뜻하게 더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한발짝 더 나아간 모습으로 그려졌고...이거 자체는 좋았음

문제는 캐릭터들의 성장을 뒷받침해야 할 부분들이 부실해서 서사의 완성도를 떨어트림

특히 신지... 공식설정상 Q이후 신지는 실어증(feat.극장팸플릿) 걸렸을 정도로 정신병자가 된 상태인데 후반부에 갑자기 멘탈딴딴 초인이 되어 나타나서는 모든 갈등을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해결함

뭐 그럴수있음 러닝타임이 짧으니까 급성장할수도 있지

근데 신지가 성장할 수 있었던 상황이... 여유로운 농촌사회에서 농활하며 주변에서 부둥부둥받고 힐링했어요+레이의 죽음으로 성장 요거 때문이란 거 아냐

근데 신지의 고통이란 게 그냥...그 정도로 해소될 수 있는 정도의 것이었나...?

내 안의 신지는 아직 아픈 것 같은데... 애가 막 이것저것 뚝딱 해결하고 있는 화면을 보고 있으면 괴리감이 너무 큰 거임....

걍 신지에게 편의주의적인 세상이어서 신지가 다시 일어섰다 정도로밖엔 안 느껴짐

그리고 농활 묘사도 구린게 ㅋㅋ 임신 출산 엄마 이런 요소들 엄청 강조해대서 지브리가 그리는 이상향 농촌생활의 묘사만 못하게 됐음 최소한 지브리는 여성주의적인 면에서는 진보적이었다

걍 꼰대아재가 마! 신지! 너 뭐 고생이라고 그래 풀죽었나! 그런 정신병 같은 거 농활 함 가뿌면 다 낫는다! 하는 구시대적 라떼 정신론을 영상화한거 같음

심지어 이 꼰대아재는 지는 농활 제대로 해본적이 없는게 분명함 모내기를 누가 앞으로 하냐 뒤로 하지

한편으로 원작에선 또 다른 주인공이었던 미사토의 경우는 뭐 신극장판 서 처음부터 신지 뺨따구 대신 자기 뺨따구를 때릴 정도로 이미 성장해 있었고 네르프 지하의 거인이 아담이 아니라 릴리스였단 것도 다 알고 있었어서 걍 성장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라고 할 만한 게 일절 없음... 엄마됐다! 어머니로서 희생! 끗! 아니 이제와서 갑자기 감동 분위기 잡을 거면 Q에서는 왜 그렇게까지 차가워야 했나요 미사토씨...?

아스카는 구극에서 작품 메인서사(인류보완계획)랑은 가장 동떨어져 있었지만 개인서사가 풍부하고 작품 주제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캐릭터였음. 근데 신극에선 걍 개인서사 대폭 압축되고 인류보완계획 부품1로 전락하면서 전체 서사상의 중요도 자체가 폭락해버림.

Q에서 나름 성장해서 어른이 되어 나타나긴 했는데 완전히 어른이 된 것도 아니고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반편이 어른인 데다가 성장하기까지의 공백의 14년 묘사 따위 일절 없음

등장 자체는 많은데 대부분 서비스씬...전투씬... 얘가 피셜상 소류랑 다른 캐릭터란 게 그나마 위안거리랄까 ㅋㅋ

시키나미 아스카란 캐릭터 자체는 매력적이지만(안대끼고 나이먹으면서 쌉싸름한 매력이 생겼음) 기존 구에바에서 아스카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캐릭터는 결코 아니란 생각이 들었음

카오루는 뭐...신극장판 내내 폼잡다가 삽질하고 퇴장한 빙구 캐릭터가 되어버렸고....

사실 카오루에게 나름의 구원을 주려고 노력했고 신적인 존재로서의 아담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나기사 카오루를 부각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점은 알겠음...알겠는데...신지를 위해 수도없이 루프한 끝이 귀농엔딩... 싱겁고 김새....

레이는 이제와선 신극장판 설정상 릴리스 영혼이 맞는지 아닌지도 모르겠어 ㅋㅋ 아니 뭐 별다른 설명 없으니까 걍 릴리스려니 하는거지 신극에서 레이가 딱히 릴리스로서 등장하는 장면이 없지 않나

릴리스가 레이 모습을 하고 나타나긴 했지만 그건 서드임팩트/포스임팩트 재료로 아야나미 시리즈 클론이 사용돼서 그런거고 (특히 뚝딱거리는 어드밴스드 아야나미 시리즈 모습을 한 릴리스 넘나 불쾌한 골짜기 ㅠ)

뭐 신극장판 자체가 신의 심판 대신 인간의 의지로 스스로의 길을 개척한다는 게 작품내적인 주제(이 주제 자체는 좋아함 뻐렁찼음)라서 레이랑 카오루에게서 신적인 모습 자체가 많이 빠진 점은 이해가 가긴 함. 일종의 작품 외적인 '신 죽이기'로도 느껴졌음 ㅋㅋ 근데 우르르뚝딱 신지킁의 심리상담 고민해결 클리닉 파트가 너무 김빠지는 표현방식이었어 구TV판이랑 엔드 오브 에바를 이미 본 입장에선 더더욱...

TV판과 EOE의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던 처절함이 고작 이 정도로 해소될 만한 무게였나?

그런 의문이 계속 남더라고

그리고 제레놈들이 실컷 떠들었던 릴리스의 계약 어쩌고 원래 제레의 계획이 어쩌고 카오루랑 무슨 관계고 사실 유이는 골고다오브젝트에서 온 신적인 존재다 어쩌고 하는 무뜬금 설정들 대다수가 걍 맥거핀으로만 남아버리는 게 찝찝해

그 중 최고봉이 마리라고 생각되는데 데우스 엑스 마키나인지 마키나미인지 하는 마리는 뭐든지 다 슝슝 해치워 해피엔딩으로 신지를 인도하는 만능 키가 되어버림 왜 얘가 그런 캐릭터인지에 대한 설명은 작중에 1도 없어

심지어 겐도유이 이어준 것도 마리로 나옴 ㅋㅋ 대체 어디까지 마리의 설계인 거냐고....

볼때는 좋다고 눈물 흘리면서 박수치는 나만의 졸업식을 가졌지만 보고 난 감상을 곰씹으면 곰씹을수록 찝찝한 것이 참...ㅋㅋ 씁쓸하다

에휴 구질구질 불만사항 잔뜩 늘어놓긴 했지만 굳이 따지자면 호랑 불호 중에선 호에 가까움

사실 내가 에바를 좋아해서 더 불만이 많은 것 같기도 해 ㅋㅋㅋㅋㅋ 구작 안봤으면 아묻따 극호였을 것 같고

걍 에바가 오와콘이란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흑흑 안노가 지금도 스크린 너머로 "토리씨 에바 졸업하세요~" 하고 외치는 것 같아서 짜증나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