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가면>의 세기의 라이벌 마야와 아유미는 헬렌 켈러와 설리번 선생님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기적의 사람> (실존하는 연극입니다)에 헬렌 켈러 역으로 더블캐스팅되어 대결을 펼칩니다.
마야와 아유미는 연극의 하이라이트 부분, 어둠 속에 갇혀 살았던 헬렌이 '언어'라는 것을 처음 인식하는 장면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각자 연구에 매진하지요.
아유미는 헬렌의 입장이 되어 물이라는 개념을 언어인 water로 쓴다는 것을 깨우치는 장면을 느껴보고자 했습니다.
그러다 실수로 전류에 감전되면서 격한 짜릿함을 느끼고, 아유미는 헬렌이 언어를 인식하는 순간을 이처럼 전류에 감전된 듯한 짜릿한 순간으로 표현했지요.
반면 마야는 헬렌이 언어를 인식하는 장면을 그녀 안에서 풍선이 천천히 차오르다가 마침내 한 순간에 팍 터져나오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두 사람 다 자신만의 철학과 경험을 통해서 헬렌을 멋지게 표현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야의 해석 쪽이 조금 더 마음에 들어요.
왜나하면, 아유미의 해석은 그동안 어둠속에 있었던 헬렌이 갑자기 계시라도 받은 듯, 언어의 개념을 자기 혼자 스스로 '갑자기' 깨우쳤다는 느낌인데,
마야의 해석은 좀 더 설리번이 헬렌에게 언어를 인식하도록 이끌었던 수많은 노력들을 인정해 주고 있으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자기 혼자 스스로 일어나는 법이 없으며, 수많은 우연들과 '나-세상'의 상호작용이 겹쳐지면서 마침내 뭔가가 발생한다는 내 인생관과 마야의 해석이 닮아있기에.
마치 마야가 해석한 헬렌 켈러처럼.
상당한 시간 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영향력이 축적되고, 마침내 적절한 타이밍이 다가왔을 때 그게 절묘하게 터져나오면서 뭔가 이뤄진다는 걸...
헬렌이 언어를 인식하기까지 그동안 맨날 헬렌한테 거부당하고 얻어터지고 물벼락맞고 머리채를 쥐어잡혀야 했던 설리번 선생님의 노고가 생각났어요.
그동안 설리번 선생님이 헛고생한게 아니라 헬렌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안에서 언어의 개념이 차츰차츰 싹트고 있었다는 걸...
만약 내가 이 연극을 실제로 보았다면, 나는 마야의 해석 쪽이 좀 더 내 취향에 맞았을 것입니다.
나 말고도 많은 독자들이 마야의 해석을 더 좋아한다는 걸 언젠가 어떤 커뮤니티에서 보았다.
다들 나와 같은 생각으로 마야의 해석을 지지하겠죠?
여담이지만 유리가면 캐릭터 중 제가 더 좋아하는 쪽은 오히려 아유미예요.
마야랑 달리 아유미는 감전되어서 생사를 오가기까지 하면서 캐릭터의 표현법을 익혔는데, 그만큼의 희생이 없던 마야가 아유미 못지 않은 감동적인 연기 해석을 내놓았으니...
이 에피소드 말고도 아유미는 언제나 마야 대비 더 노력하고 연기를 위해 몸 사리지 않다가 더 다치고 더 희생하는 편인데, 정작 결과물은 마야보다 덜 얻어가는 편이라...
모든 걸 다 갖춘 엄친딸 아유미가 겉보기에 별 거 없는 마야를 질투하고 열등감을 느끼는 이유 너무 잘 알겠습니다.
출처 : 브런치. (작가님께 허락받고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