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일본애니는 물론이고 일본문화에도 굉장히 익숙해져 있고 일본어도 만화책 원서는 꽤 술술 읽을 정도로 할 줄 알아
20대 초반까지는 내가 관심 있는 분야니까 별 거리낌 없이 일본 문화를 받아들였고 이런 저런 만화나 애니메이션 보면서도 별 상각이 안 들었었어
근데 좀 더 시간이 흐르고 나니까 일본 만화/애니에 스며들어있는 일본 특유의 정서 같은 게 불편해지더라
내가 말하는 건 일색이나 일뽕 같은 게 아니야 물론 일뽕은 보기 싫지만 일색이 드러나는 건 그게 일본인이 만든 작품인 이상 당연하니까 별 상관 없어
근데 그런 거 말고 뭐라 콕 찝어 단정할 수는 없지만 작품 보다가 일본 특유의 정서 같은 걸 진하게 느끼는 때가 있는데 그게 언젠가부터 자꾸 거슬리는 거야
그게 나쁜 건 아닌데 내가 가진 정서랑 다르다보니까 그게 되게 거슬린다고 해야하나
예전엔 별 생각 없이 넘겼는데 이제는 그게 하나하나 신경 쓰여
예를 들어 피해자는 가해자를 용서해줘야 한다 같은 거? 그런 정서가 대놓고 나오진 않더라도 작품 전반에 은은하게 깔려 나오는데 그게 납득이 안 되고 쟤 왜 저래? 이게 이렇게 넘어간다고?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
예를 들어 후르츠바스켓이 그런데 난 토오루도 좋아하고 이 작품도 좋아해. 근데 토오루가 모두를 용서하고 아키토나 카케루 같은 애들이 용서받고 행복하게 잘 사는 건 진심 모를 일이야
이것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은 당연스레 공감할 수 있는데 일본인이 아닌 사람들은 되게 이질감 느낄만한 요소들이 있잖아
내가 아무리 일본어를 할 줄 안다고 쳐도 공감할 수 없는 그런 것들?
사실 일본 만화만 덕질하던 때는 이런 걸 잘 몰랐어 내가 일본어 할 줄 알게되면서부턴 그런 걸 더 못 느꼈기도 하고
근데 내가 한국 문화 덕질하고 그걸 덕질하는 다른 해외팬들을 만나면서 반대 입장이 되고 보니까 알겠는 거 있지. 암만 그 덕질대상이 좋고 오랜 시간을 덕질한다 해도 기본적인 문화나 정서 차이에서 오는 갭을 메꿀 수가 있는 게 아니더라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니까 약간 일본 문화를 덕질하는 데에 현타가 왔다고 해야 하나? 내가 태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이전보다 더 예민하게 느껴지고 깊게 덕질하는 게 좀 힘들어졌어
이렇게 말은 해도 내 최애작품이 일본 작품인데 그래도 그 작품은 내가 말한 요소가 적기는 해. 그래도 분명히 내가 공감하기 힘든 일본 특유의 정서가 느껴지는 부분이 존재하고, 특히 제작진들 보면 아 이건 정말 일본 작품이구나 하는 느낌이 팍팍 들어서 가아아아끔 현타가 와.
난 캐해석 하는 걸 좋아해서 작중 인물들에 관한 글을 많이 썼는데 내가 암만 이래도 너희를 완전히 이해하긴 힘들겠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 ㅋㅋㅋ 물론 한 캐릭터를 완전히 이해하는 건 힘들겠지만 내 최애들이랑 급 멀어진 기분이 들었어 ㅋㅋㅋ
이래봤자 이 작품은 정말 인생작품이라 내가 하하호호 할머니 될 때까지 덕질할 거 같지만 이제 다른 일본 작품은 더 깊게 못 좋아할 거 같아. 작품을 깊게 파다 보면 그걸 그려낸 제작자에 대해서도 알게 될 수밖에 없는데 그 사람한테서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존재하는 견고한 벽을 느끼면 아 이건 진짜 어쩔 수 없구나 하고 깨닫게 돼 ㅋㅋㅋ
아무튼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자꾸 드네 ㅎ 나같은 토리들 있으려나?
그래서 걍 까면서 덕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