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한번 봤었는데
리디에서 몇 시간에 한 편씩 보여주는 거 보다가 그냥 감질나서 쫙 봤어.
안고가 결국 무리에 들어가지 못하고 떠나는 엔딩에 대해서 싫어하는 사람이 많던데
개인적으로는 다시 보다보니까 많은 생각이 들더라.
먼저 안고의 출생에서부터 이제까지의 인생에 대해 다 알고 있으니 많은 사람이 동정하기 쉬운데
왜 그 캐릭터에게 하필 하나의 강간 미수라는 사건을 줘서 성범죄자로 전락시키느냐.
근데 난 개인적으로 이게 현실적일 수 있다고 봐.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보면 나치에 대항해서 싸운 여성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성들이 전쟁에 대해 얘기할 때 남자 군인들은 든든한 동료들인데
그렇게 해서 결국 베를린을 차지했을 때 남자 군인들은 베를린에 남아 있던 여자들을 강간을 했지.
남자들에게 여자를 강간하는 건 니 편, 내 편 상관없이 강자가 약자를, 승자가 패자를 점령하는 방식이잖아.
이제까지 수많은 전쟁에서 그러했듯이.
그건 남자의 방식.
그래서 누구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서 안도가 (원수의 자식인) 하나를 성적으로 억압하려는 게 전혀 무리하게 느껴지지 않았어.
일본 만화를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결국 용서를 하고 동료가 되는 이야기들이 정말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받지 못할 일이 있다, 라는 게 나온 게 인상적이었어.
심지어 안도는 정말로 뉘우치고 성장하고 그들과 함께 하고 싶고 뒤에서 돕고 하다가 진심어린 사과를 하잖아.
그런데도 피해자가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그건 다른 누가 뭐라고 생각하든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게, 일본 만화라서 더 특이하게 느껴졌어.
타무라 유미의 만화를 보면 그런 전형적인 일본의 정서에서 벗어난 이야기들이 많은데
현실에서는 위안부의 역사를 두고서도 사과했는데 언젯적 일을 가지고 질질 끄냐, 이제 좀 잊어라, 거기에서 벗어나라 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많지만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있다, 라는 이야기가 나는 와닿더라고.
또 하나는 곱슬머리.
유난히 곱슬머리가 많아보이지 않아?
극중에서도 고루리를 통해서 곱슬머리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지.
이 시대는 파마도 없으니까 다 천연 곱슬머리인데
내가 곱슬머리라서 그런지, 이 곱슬머리에 대한 관심? 애정? 집착? 이 너무나 신경쓰였어.
심지어 최신작인 <미스터리라 하지 말지어다>를 보면 주인공이 높은 단계의 곱슬이고 그게 개성 중 하나잖아.
곱슬머리... 왜일까.
이 작가가 곱슬머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작가는 과연 곱슬머리인지 너무나 궁금해졌어.
어쨌든 다시 봤지만 굉장히 커다란 이야기를 능숙하게 다루고
다양한 인물상들을 생생하게 그려내서 감탄을 했어.
넷플릭스에 있는 애니가 좀 잘 나왔으면 좋았을텐데 작화가 너무 구리더라.
옛날에 만화대여점 잘 이용하던 시절에 이 만화... 어떤 만화인 줄도 모르고 그림체가 내 취향이 전혀 아니라고 한번 책장 넘겨볼 생각도 안 했는데 아쉽다.
그 때 봤으면 한 권 한 권, 엄청 전개를 궁금해하면서 읽었을텐데.
뭐 대신 완결 나고 읽어서 방대한 양을 단숨에 읽을 수 있는 것도 좋긴 했지만.
아무튼 비범한 작가야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