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한 설명을 배제하고 애초에 이들의 감정에 대해 독자를 설득하기를 시도하지도 않음. 그냥 던져놓음.
보여주기와 모호한 독백으로 퉁치는 작가의 미니멀리즘에 가까운 연출 기법.
이하 약간 자세한 스포 있으니 원치 않는 사람은 뒤로가기 고고
소재는 막장인데 내용 전개에 막장이나 신파적인 요소가 없음.
어떤 신파가 없냐면
주위 사람들이 이 정도의 부도덕을 눈치 채면 보통 난리가 나잖아.
어떻게 인간으로서 그런 짓을! 이라고 멱살잡이하고 퇴학당하거나 강제 전학당하거나 주인공들은 구르고 눈물 짜고
그 부모들은 순식간에 역적 죄인 되어서 주위에 고개도 못 들겠다 울거나 화내거나 머리끄덩이 잡고 골프채 휘두르고 가정 파탄 나고
같은 반 학생들이나 지인들은 손가락질하고 주인공들을 혐오로 고립시키거나
아무튼 그런 대 파란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 만화는 깔끔하게 5권으로 끝난 만큼 그런 거 1도 없음.
주위 사람들이 눈치는 채고 우려는 하는데 모르는 척하고 (결코 지지하거나 바라봐주거나 그런 느낌도 아님)
인간으로서 끝까지 도리와 예의를 다해서 그들을 대하는 게...막장드라마에 익숙한 내 눈에는 굉장히 신선했어.
학생 시절부터 그들의 비밀을 알게 된 친구들이 확실하게 세 명, 최대 네 명까지 나오는데
이게 그냥 생판 남의 일이라서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니라
주인공들을 좋아하고 짝사랑하고 관심 있고 그런 관계들이 얽혀 있어서
심사가 뒤틀리면 그냥 확 폭로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도
어떻게 인간들이 수군대지도 않고 폭로하지도 않고 말없이 선을 지키면서 그냥 있음.
비밀을 알게 된 자들이 자기들끼리 그 문제에 대해 뒷담화를 하거나 의논하지도 않고 각자들 혼자 품고 있네?
세상에 그런 선 안 넘는 인간들이 존재한다니...이게 제일 큰 판타지.
주인공들은 현실 지옥에 떨어졌지만 인복은 참 좋아서 다행이구나.......
인복은 좋은데...그 주변 인물들 가운데 남주를 좋아하는 1명은 감정적으로 불행하다가 다행히 다른 좋은 사람 만남.
여주에게 호기심 비슷한 관심 있던 1명은 다른 사람과 결혼 잘 하고
여주를 좋아하는 1명은 앞으로도 계속 감정적인 지옥 속에 살게 됨.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섭남
주인공들 부모님은 그야말로 미니멀리즘의 극치인데;;
사람이 이혼 후 재결합이 그렇게...쉬운게 아니다? 근데 만화에서는 보통 척척 이혼도 파혼도 하고 재혼도 하고 그러긴 하는데
그럼 재결합할 때 이 사람이 좋다든지 이 사람밖에 없다든지 최소한의 한줄짜리라도 설명은 하거든
근데 여긴 그런 거 없ㅋㅋㅋ엌ㅋㅋㅋ 부모들이 그냥 포스트잇처럼 붙었다 떨어졌다 다시 붙는 그런 존재들.
그 부부가 왜 같이 사는지 완결까지 보고도 모르겠음.
이혼이든 재결합이든 그냥 주인공들을 만나게 하기 위해 쓰이는 도구로 보였어.
심지어 재결합하고도 아빠는 계속 타지 출장 중이어서 작품 내내 등장하지 않다가 완결권에 나와.
그게 1권부터 되게 이상했어. 재결합했다면서 아들만 덜렁 집에 보내놓고 아빠는 안 나와?
처음에는 아빠가 안 나오는 이유가, 작품 전개에 불필요한 사람이어서 꼭 필요한 인원만 갖고 작품을 꾸려가려나 보다 했어.
그런데 갑자기 완결권에서 전개에 중요한 인물이 되어버리고 아빠라는 캐릭터 자체에 강렬한 성격을 부여해.
작품 내내 등장하지도 않던 아빠가, 파멸로 질주하는 딸을 보고
쟤가 나 닮아서 저런다고 시크하게 말하다니...;; (이건 작가의 배분 미스라고 생각) (게다가 아빠도 별로 파멸적이지 않게 나옴)
그리고 이 아빠가 자식들의 파멸을 눈앞에서 보고도 멱살을 잡거나 세간이 박살나는 게 아니라
너희랑은 의절이고 그동안 들인 학비 내놓고 꺼지라고 침착하게 말하는데
나중에 부인과 얘기 나누는 내용 보면 그것마저도 진지하게 내치는 게 아님.
그런데 이 모든 일이 벌어질 동안 주인공들 엄마는 진짜 해맑게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
이 집에서 엄마는 계속 다녀왔다~ 다녀왔니~ 다녀올게~ 잘 다녀와~ 같은 걸로만 등장하는 사람.
아는데 모르는척한다는 단서나 뉘앙스도 일체 주어지지 않음. 진짜 모름.
아빠는 자식을 내치고 나서도 엄마한테는 이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음.
그런 큰 문제를 13년이나 감추고 나누지 않고 살 거면 부부가...왜...같이 사는 거지...?
엄마는 마지막까지 제일 속 편하게 나오고 그래서 다행인 인물.
이혼 후 재결합이라는 큰 사건을 겪은 인물치고는 주어진 역할이 너무 없지만, 그래서 미니멀리즘인가 싶기도 해.
결정적으로 자식들이 서른 살 넘었는데 엄빠 얼굴은 애들 고딩 때 그대로임.
아빠 첫 등장 때도 너무 놀랐는데 (이런 얼굴로 나오려고 이때까지 아껴뒀나?)
아빠 쪽이 병 때문에 얼굴이 핼쓱해진 거 빼곤 부부가 주름살도 없어.
여기까지 쓰고 보니 정말 완벽한 판타지네.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간만에 5권짜리 안 끊기고 깔끔하게 한꺼번에 정발된 순정만화 봐서 좋았어.
소재는 뭐...그런가보다 하려구. 어차피 투디니까.
아 섭남 불쌍한 거 못 보는 사람한테는 비추!! 제목이 인페르노인데 보면 아주 섭남한테만 지옥이야....
난 근친물 좋아해서 만족하는데 중간중간 톨말대로 음? 갑자기? 음? 으음?? 하는 부분들이 좀 있더라...ㅋㅋㅋ 그리고 학창시절 끝나고 갑자기 성인되는데 진짜 급전개... 그래도 근친 특유의 아슬아슬한 배덕감 잘 살린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