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더 이상은 못 참겠어.”

K가 말했다.

“너무 역겨워…구역질이 나고 머리가 아파.”

K의 옆에 앉아 팔을 붙들고 있는 U가 말했다.

“이대로는 안 돼. 전부 죽여 버리자.”

U 옆에서 이를 갈던 Z가 의자 손잡이를 꽉 붙든 채 으르렁댔다.

“하지만 들키면 어떻게 해?”

Z 옆에서 엄지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A가 말했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거야.”

어둠 속에서 B가 말했다.

모두가 B를 바라보았다. B가 어둠 속에서 한 손을 뻗었다. 그러자 Z가 제일 먼저 B의 손을 잡았다. 그다음은 K였다. 그 다음은 U. 망설이던 A도 이내 손을 붙잡았다.

그렇게 모두가 어둠 속에서 한데 손을 모아 붙잡았다.

붙잡은 손 사이로 새파란 불빛이 작열했고 한 줄기로 모여 허공으로 치솟았다. 천장에 닿아 갈 곳을 잃고 헤매던 불빛은 이내 천장을 거세게 뚫고 나갔다.

모두 고개를 들어 천장의 구멍을 바라보았다. 새파란 불빛은 별이 빼곡하게 박힌 밤하늘 위를 맴돌다가, 수십 수백 수천 조각으로 흩어져 온 사방으로 날아갔다.


***


처음으로 남자가 죽은 곳은 대중교통이었다. 지하철 구석에서 가장 좋은 자리 두 개를 차지하고 쩍벌한 채 앉아 있던 중년 남자의 머리가 폭발했다. 모두들 놀랐다. 테러가 일어난 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옆 칸으로 재빨리 도망치려 하던 안경 쓴 남자의 머리 역시 폭발했다. 사람들은 겁을 먹었다.

하지만 여자들은 뭔가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혼비백산한 사람 중 어떤 여자의 머리도 터지지 않았던 것이다. 비록 주변에서 터진 남자의 피와 뼈와 살점을 맞아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지만, 다친 여자는 단 하나도 없었다. 고함을 지르고 절망에 빠지고 목숨을 구걸하는 것은 남자들뿐이었다. 여자들은 피칠갑을 한 채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한 여자가 웃었다.

왜냐하면 그 광경이 정말 웃기기만 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남자들은 다치고 아프고 고통받고 비명을 지르는 것에 정말 익숙하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의아한 눈으로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폭발음 사이로 울려 퍼졌다.

남자들은 계속 죽었다.


***


많고, 많고, 많고, 많고, 많고, 많은 남자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남자들은 자신들이 죽는 이유를 밝혀냈다. 이유는 터무니없었다. 그저 그들은 밝은 빛 아래에 있으면 머리가 터져 죽는 것뿐이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 있거나, 사무실의 전깃불 아래에 있거나 매한가지였다. 그제야 남자들은 집 안에 숨기 시작했다. 빛이 들어오는 곳을 전부 막고 방 안에 틀어박힌 채 밖으로 나돌지 않기 시작했다.

그런 비통한 현실에 대해 남자들은 불평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쉽지 않았다. 온라인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빛이 나오는 모니터나 액정을 바라봐야 했는데 그러자면 머리가 터져 버렸기 때문이다. 멍청하게도 화면을 어둡게 바꾸는 것을 잊어버린 남자들이 불에 달려드는 나방처럼 무수히 죽었고, 굶주린 채 냉장고 문을 열다가 그 안에서 새어나온 불빛 때문에 머리가 터진 자들이 수두룩했다.

그렇게 남자들은 자꾸 조용히 어딘가 어두운 곳에서 홀로 죽어갔다.

여자들은 그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여자들이 그런 남자들을 동정해야 했을까? 사람이라면 본디 그래야 하는 걸까? 하지만 여자들은, 그냥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었다. 남자들은 울부짖었다. 이렇게 외롭고 고통스럽게 죽고 싶지 않다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여자들은 의아하기만 했다.

그럼 너흰 이제까지 그걸 몰랐다고?

하도 하찮은 일이라 여자들은 금방 남자들의 고통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대신 새로 주어진 자유를 맘껏 즐기기 시작했다. 일단 여자들은 밖에 나가서 자유롭게 걷고, 달리고, 웃고, 소리를 질렀다. 낮에도 밤에도 밖에서 맘껏 소리를 질렀다. 특히 밤이 더했다. 역사상 여자가 밤에 이토록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여자들은 술에 취한 채 거리를 휘청이며 고함을 질렀고 그러고 있자면 이따금 집들의 문틈에서 고통에 찬 남자들의 신음이 들려왔다.

그러면 여자들은 더 신이 났다.

여자들은 웃었다.

웃고 웃고 또 웃다가 울었다. 서로 끌어안고 많이 울었다.

그리고 다시 웃었다.

아주 크게.


--------------

너무 빡쳐서 적어봤어...재밌게 읽었길 바라.
  • tory_1 2020.07.07 10:02

    진짜 너무 재밌게 읽었따...!!
    밤을 달리는 그 거리가 상상이 된다!

  • tory_2 2020.07.08 17:03

    ㅋㅋㅋㅋ재미있엌ㅋㅋㅋ나도 한밤중에 몸사리지않고 자유롭게 바깥을 나돌아다니고싶다!!

  • tory_3 2020.07.14 14:44

    진짜 너무 유쾌하다! 걱정없이 호흡하고 놀 수 있는 하늘 아래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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