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어그로성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데....
정말 좋아하는 일 하지 마. 좋아하는 일 업으로 삼지 말았으면 좋겠어.
좋아하는 일을 그대로 업으로 삼고 싶다면
1) 돈 걱정이 향후 2~3년 간 전혀 없어야 하고
2) 남이 뭐라든 완벽하게 무시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3) 이 일 실패하면 B플랜이 있어야 해.
4) B플랜이 아니더라도, 1)을 위해서도 시간 할애할 마음가짐이 되어 있어야 해.
그게 안되면 차라리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겠다는 마음 안 가졌으면 좋겠어.
왜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 안되냐면
1) 네가 좋아하는 일의 좋아하는 부분이 그 일의 전체가 아닐 수 있어.
나는 코덕이야. 색조, 향수 등등 눈에 띄는 부분을 좋아해. 그래서 향수회사 마케팅부서에서 일했고, 좋은 점도 돌아보면 많았어.
시장조사한다고 백화점 맘껏 돌아다니고 화려한 옷 입고 트렌드 공부한다고 화장품 쓸어담고 엄청 했는데, 맘에 안드는 일도 많았어.
백화점 매니저한테 니네 브랜드 왜 이렇게 돈이 안되냐고 닦이기, 본사 영업부서에서 니네 진짜 수입 안한다고 욕먹기....
결국 그 회사 때려쳤고 이제 그 동네도 안 다녀. 꼴보기 싫어서. 향수도 안 쓴지 오조오억년 됐다. 그 꼴 보기 싫어서.
2) 돈이 얽히면 그 재미가 재미가 아니게 돼.
내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벌면 좋지, 근데 일로 하는 것들은 다 일정 이상 수준을 요구하고, 자기네 기준을 강요해.
예를 들어 내 친구는 웹툰 작가야. 친구 그림도 정말 잘 그리고 스토리도 기발하다고 칭찬 정말 많이 듣던 친구야.
근데 얘는 성격도 세심하고 그림에도 공을 들여야 되니까 손이 빠르질 못한거야....그런데 연재웹툰은 요구하는 컷수가 정해져 있어.
그래서 손목을 위시한 모든 건강을 부어서 하루하루 더 아파하면서 그림 그리고 있어.
그냥 연재 중이니까 어떻게든 그리는 거지 다신 못하겠다고 하더라고....근데 이 친구는 업계 사람들 중에서 건강한 편이라고 하더라.
물론 이건 다 부조리한 일이고, 고쳐져야 할 일이지만 아직 완벽하게 합리적인 직장은 없고 그때까지 버티는 건 온전히 본인 몫이야....
그 조건 다 갖출 때까지 손놓고 기다릴 수도 없고. 그러다보면 결국 다시 몸 갈아가며 일하게 되더라.
3)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일에 실패하면 더는 갈 곳이 없고, 좌절감도 더 커.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와서,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책읽는 걸 좋아했어. 초등학교 때부터 학술서적도 읽었어. 그냥 재밌어서.
그러다 운이 좋아서 외국에 살 기회가 있었고 덕분에 언어를 좀더 쉽게 배웠고, 번역을 하게 됐어. 정확히는 번역회사에서 일하게 됐어.
하지만 번역가로 진로를 옮기기는 쉽지 않더라. 번역관리로 들어왔다보니 번역관리를 더 하게 되더라고. 여기까진 괜찮았어.
근데 내 코앞에서 내가 원하는 분야 직무 딱 채가고 다시는 내가 그쪽으로 갈 수 없게끔 회사에서 견제하는 거 보니까 진짜 눈앞이 깜깜하더라.
이직하면 그 분야로 꼭 가고 싶다고 어필할 수야 있겠지만 요즘 이직시장 어려운 거....다들 알잖아.
근속연수도 영 모자라서 근속연수라도 좀 채우고, 회사는 잠시 설렁설렁 다니고 집에서 취미생활이나 해야겠다 싶었거든.
근데 이젠 새로 뭘 읽으면 좋을지도 생각이 안 나고 친구들한테 추천받아서 산 책도 보기가 싫어.
책을 보면 이건 번역을 어떻게 해야 되지? 이건 원문이 이상하지 않나? 이거 번역 누가 했는데 이렇지 잡생각만 나고 머리만 아파....
그러니까 좋아하는 일 무조건 업으로 삼겠다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있을 때 정말 좋은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거야.
일할때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그 일을 도저히 할 수 없지는 않게 만들어주는 정도 역할밖엔 못하는 것 같아.
위에 말한 네 가지 조건을 바로바로 다 댈 수 있고, 그 길을 향해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가 바로바로 나올 정도가 아니면 꿈은 잘때 꾸자.
누구나 다 자기만의 꿈이 있고, 그 꿈을 온전히 이룰 수 있는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만....
내 꿈이 뭔지 잘 모르겠고, 꿈을 갖고 싶은데 좋아하는 일을 하면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정도 생각으로는 정말 살기 힘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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