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국여성민우회에서 미디어 속 여성혐오에 대한 연속특강을 했는데, 그중 3강이 웹툰이었어. 강사는 위근우.
<한국 웹툰 안에서의 여성혐오 양상 - 백래시의 맥락에서 지난 3년을 중심으로->라는 주제였음.
그 때 나눠줬던 유인물 맨 마지막에 있던 내용인데, 문득 생각나서 같이 보면 좋을 것 같아서 가져왔어.
1. 어떤 표현에 대한 비판과 표현의 자유 침해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2. 표현의 자유는 비판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다.
-> '표현에 대한 비판'을 '표현의 자유 침해'로 호도하는 사람이 너무x10000 많은 것 같음.
표현할 자유가 있으면 비판할 자유도 있다!!^^ 제발...
3. 표현의 자유가 표현의 윤리값에 대한 프리패스가 될 수는 없다.
-> 창작물에서는 뭐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4. 작가의 의도가 작품의 의미는 아니다.
-> <외모지상주의>에서 남친 있는데 바람 핀 여캐를 무차별적으로 구타하는 장면이 나옴. 설사 작가의 의도가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는 캐릭터를 비판하는 거였더라고 하더라도, 이 장면은 여캐가 '맞아도 싼' 행동을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처벌은 마땅하며 그 폭력이 '정의구현'처럼 읽힐 여지가 매우 다분하기 때문에 문제적이야. 실제로 많은 독자들이 그렇게 읽었고.
5. 작품의 윤리적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그 작품을 소비하는 것의 비윤리적 맥락을 '제거'해주진 않는다.
-> 저기 프린트에 '우익?'은 내가 쓴 거야. 우익작품 소비에 대한 논의가 오갈 때 '난 이 작품이 어느 부분에서 문제적인지 알고 있다. 알고 보는 게 차라리 낫고 덜 위험하다'라는 논지를 본 게 생각나서. 소위 '빻은 작품' 볼 때의 딜레마가 떠오르지 않을까 싶어.
6. 좋아하는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비판이 내 인생에 대한 부정은 아니다.
-> 이건 솔직히 덕후들 모두가 머리에 새겼으면 좋겠어.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쓴소리 듣는 게 기분 안 좋을 수는 있는데, 덕질 대상에 자아의탁하지말기...
7. 장르적 문법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이 아니다.
-> <너의 이름은>에서 남주가 바뀐 몸 여주의 가슴 조물락거리는 장면이 불필요하게 많이 나왔고, 그에 대한 비판도 많았지.
근데 옹호론 논지 중 하나가 '너네가 오타쿠 문법을 몰라서 그래. 일본 애니는 원래 이래.'였는데 여기에 딱 들어맞는 말.
판치라니 바스트 모핑이니 하는 특히 일본소년만화에서 많이 나오는 빻은 관습 옹호론자들이 새겨야 할 말이라고 생각해.
8. 실재하는 폭력과 혐오가 2D안에서 벌어진다면, 그것은 결코 독립적인 맥락으로 존재할 수 없다.
-> 여캐에 대한 폭력과 남캐에 대한 폭력, 여캐 성적 대상화와 남캐 성적대상화가 결코 동등하지 않은 이유.
9. 여성 작가도 여성혐오에 동참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여성 작가 비판이 여성혐오는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여성 작가가 여성이기에 더 욕을 먹는 것은 아닌지, 혹은 더 쉽게 욕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고 또 고민할 것)
-> 씁쓸하지만 사실이라고 생각해. 여자라고 여혐 안하는 건 아니지. 하지만 괄호 속 말도 매우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
고민하고 또 고민할 것.
10. 여성 캐릭터의 잘못이 '여성' 캐릭터의 잘못으로 드러나는 것과 여성 '캐릭터'의 잘못으로 드러나는 것은 다르다.
-> 여성 캐릭터도 고민하고, 실수하고, 과오를 저지를 수 있어. 근데 그게 '여자는 멍청하니까' '여자는 약해서' 뭐 이런거면 말도 안된다는 이야기. <더 페이버릿>이 여적여 영화라고 했던 평이 생각나는 부분..ㅎㅎ '여적여'에 대한 비판이 많아지면서 여자랑 여자가 갈등하는 걸 모두 '여적여'로 독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 같아. 뭐 과도기니까.
사실 이건 작가가 많이 고민하고 주의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 작품 내에서 캐릭터의 잘못을 어떻게 그려낼지 세심하게 고민하기.
위근우 ㄹㅇ 내가 한남에게 일말의 희망을 갖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