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드문 일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정태의는 복잡한 심경으로 제 앞에 남자를 마주 보았다.
과히 멀쩡한 상태라고 할 수 없는 남자는 테이블에 커다란 몸을 반쯤 기댄 채 정태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를 대로 오른 취기에 간헐적으로 끄덕대는 상체가 불안정했다. 정태의는 반사적으로 손에 쥔 잔을 꼭 붙들었다. 이대로라면 저 이름 모를 남자와 함께 테이블이 엎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어쩐다지……. 앞으로의 상황을 가늠해보는 정태의의 눈이 가늘어졌다가, 머뭇머뭇 시야의 구석을 훑었다. 멀리 서너 테이블 앞 두 남자의 실루엣은 아직도 한창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렇다고 열렬한 대화는 아니었고, 주로 알랭이―특유의 싱글벙글한 얼굴로―실컷 떠들어 대면 일레이가 따분한 얼굴로 간단히 몇 마디를 되묻는 식이었다. 대화의 주제가 주제이다보니 아마도 대화가 끝나려면 몇십 분은 더 걸리지 싶었다. 이번에도 꽤 복잡한 의뢰를 받게 된 모양이지……. …그런데 그런 대화를 왜 꼭 이런 데에서 해야 하냔 말이야. 하고많은 장소 중에 하필이면 번화가의 클럽이라니. 정말이지 알다가도 모를 놈이다. 이제는 숫제 열변을 토하고 있는 알랭의 모습을 잠시 못마땅하게 흘겨보던 정태의는 결심한 듯 다시 제 앞의 남자에게 시선을 맞췄다.
아니 정말로, 드문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불발났었던―정태의의 첫 경험부터가 그렇지 않았던가. 이제는 이름조차 잊어버린 망할 선배를 포함해 그간 자신을 덮치려 시도했던 다수의 남자들을 곱씹으며 정태의는 문득 땅이 꺼질듯한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이렇게 빈번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저놈이랑 배맞은 뒤로 무언가 인상이라도 바뀐 걸까……. 정말로 뭐, 도화살이라도 피어버린 걸까. 무심코 떠오른 단어의 지독함에 정태의는 되레 이마를 잔뜩 구겼다. 아니, 그게 무엇이건 간에 뒤에 살(煞)이 붙는 무언가인 것은 분명하다.
"어때, 나갈 생각 있어?"
추파는 익숙했다. 자신의 인상이 썩 나쁘지 않다는 것은 정태의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바였다. 어디서 못났다는 말을 듣고 다닌 적도 없었다. 반대라면 모를까. 하지만 익숙한 것은 고운 청년들로부터의 깜찍한 추파였지, 이렇게 욕심난다는 듯 노골적으로 몸을 훑어대는 덩치들의 눈빛은 아니었단 말이다……. 정태의는 낮게 침음하며 남자를 향해 작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거절의 의미와 어이없음이 반쯤 섞인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어떻게 알아들은 건지, 오히려 정태의를 향해 더 낮게 몸을 뻗어왔다.
"왜, 특별히 좋아하는 타입이라도 있어? 나 못하진 않아, 성심성의껏 만족 시켜줄테니까, 응?"
좀 더 가까이에서 마주한 남자의 눈이 의외롭게도 짙은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동공이 잔뜩 풀린 눈이 출처 모를 자신감을 담고 번뜩였다. 막연히 더티 블론드인 줄로만 알았던 머리칼은 자세히 보니 꽤 예쁘장한 색의 진저 블론드다. 클럽의 난잡한 조명이 뒤덮은 남자의 동그란 머리꼭지를 바라보며 정태의는 한숨을 쉬었다. 다른 곳에서, 제정신으로 만났다면 못 봐줄 얼굴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가끔은 제대로 밟아주는 편이 나을지도.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은데. ……나는 이상형이 꽤 까다롭거든."
만족 시킬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정태의의 시선이 얼굴을 떠나 노골적으로 남자의 아랫도리 쪽을 배회하자 남자가 바보 같은 소리 뱉어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태의는 손에 꼭 쥐고 있던 잔―하와이안 칵테일 잔―으로 시선을 돌리며 "이것도 좀 작지, 아마?"하고 덧붙여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서 언뜻 우울한 기색이 묻어났다.
"그래도 키는 제법 비슷하려나? 얼굴은…글쎄. 그놈이 속은 아주 흉흉해도 얼굴은 반비례 한단 말야."
"뭐어…?"
자신의 아랫도리를 바라보다, 잔을 바라보다, 맥락 없는 말을 중얼대던 정태의가 제 잔에 담긴 술을 한 모금 하더니 남자를 향해 빙긋 미소를 짓자, 그제야 자신이 놀림당하고 있음을 깨달았는지 남자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못마땅하다는 듯 커다란 손으로 테이블을 탕, 내려치는 걸 보니 정말로 테이블 엎어먹지 싶었다. 정태의는 잔을 들어 얼른 남은 술을 비웠다.
그리고는 다른 손으로 테이블 위에 얹어진 남자의 손을 도닥여주며 "여하튼, 미안하게 됐어. 난 손이 예쁜 사람이 좋거든." 하고 능청스럽게 속삭였다. 남자의 얼굴이 취기와 함께 완연하게 일그러진다. "이봐, 사람을 놀려도 적당히......"
"이 정도 손이면 어떤가?"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공간을 가른 것은 그때였다. 어지럽게 쏟아지는 멜로디 사이에서도 기묘할 정도로 또렷하게 들리는 나지막한 목소리. 맞아, 이 목소리는 아주 좋아해. 정태의가 속으로 생각하며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방금 전까지는 없던 하얀 손, 그 손이 정태의 앞에서 열심히 추파를 던져대던 남자의 어깨 위에 가지런히 안착해 있었다. 현실감이 없어 무게감도 없을 것처럼 보이는 손이었지만, 저 손이 필요할 때면 얼마나 큰 무게감을 갖는지 정태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글쎄, 너무 어두워서 잘 보이질 않는걸."
"하하아, 그래?"
유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하얀 손가락이 만취한 남자의 어깨 위를 톡톡, 느리게 두드렸다.
라는걸 시작으로...보고싶다. 물론 나타난 남자는 알랭이랑 대화를 끝낸 일레이고.
둘이 저 상태에서 클럽에서 처음 만난것처럼 서로 플러팅하는게 보고싶어.
취한 남자 일레이가 대충 멱살 잡아서 치워버리고 태의 옆에 앉아서 손 보여주고, 태의가 손 맘에 든다고 하면서 이름 물어오면
일레이가 피식 웃고는 릭이라고 답해서 태의가 웃었음 좋겠다ㅋㅋㅋㅋ 그리고 자기도 김영수라고 답해줄듯ㅋㅋㅋㅋㅋㅋ
저게 일레이가 스위트 한국 클럽에섴ㅋㅋㅋ 있던 일 이후로 자꾸 장난처럼 첫 만남 롤플레잉 해오는건데
태의도 나름 재밌어서 자주 장난치듯 어울려주는거였음 좋겠어. 여튼 서로 릭이랑 김영수라고 부르면서 나와서
머무는 호텔 가는데 가서도 계속 처음 만나서 눈맞고 원나잇 하는거처럼 롤플레잉 하면서
뜨밤까지 했으면 좋겠다...^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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