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 9살때 돌아가신 할머니 이야기를 좀해보려구
세상 그런 천사가 없다는 할머니는
목소리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를 내지 않는 분이셨어
여느 평범한 농사짓는집 촌부셨는데
농부에게 시집와 7남매를 낳으시고 50대초반에 돌아가셨어
순하고 서글서글하게 생긴 얼굴로 약간 구부정히 걸어 다니시던게
20년이 넘었는데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지금도 아빠 삼촌 고모들은
우리엄마 음식 맛이 기가막혔는데
정말 그렇게 착하고 순할 수 없었는데
하고 회상하신다 ㅎㅎ
나는 그 당시 7-9살 정도여서
잘 기억은 안나는데
돌아가시기 전 2,3년정도
정말 이상한 행동을 하셨어
허공을 보면서 중얼중얼중얼
돌아가셔서 나는 뵙지도 못했던
할머니의 시어머니(나에게증조할머니)가 옆에서 자꾸 말씀을 하신다면서
중얼거리셨어
할머니를 많이 따르던 우리 엄마가
자꾸 말을 걸면서 현실감각으로 돌아오게끔
노력했는데도 결국은 다시 중얼거리기를 반복하시더라구
인지능력도 많이 떨어지셔서
설명드리고 병원에 모시고 가는데도
'마카 다 어데가노, 내 델꼬 어데가노'
차에 타는걸 무서워 하시기도 하고
하루종일 한자리에 앉아있기만 하시면서
배고프다던지 화장실 가고싶다던지
표현도 안하셨어
나는 그맘때 할머니가 웃지도 않고
넋나간 표정으로 허공을 보면서 자꾸 중얼거리기만 하는게
많이 무서워서
말도 못붙이고 가만히 옆에 앉아 있기만 했었거든..
폭력적이거나 어거지를 쓰거나 아이처럼 돌아가는 행동은 전혀 없으셨어
지금 돌이켜보면 치매랑은 완전히 다른증상이었는데..
우리가족은
할머니의 이상행동이 시작되자
치매인가? 어디 많이 편찮은신게 아닌가하고
각종 병원, 그리고 정신병원까지 다녀봤지만
차도가 전혀 없으셨어
결국 기치료나 무당쪽으로 지푸라기를 잡기 시작했어
그렇게 2년정도 우리집과 시골집을 오가며
엄청나게 병원 혹은 기치료를 받으러 다니셨는데
마지막엔 결국
무당이 시골집에 와서 굿을 벌이고
자정이 넘어 끝났는데, 그 아침에 주무시다가 돌아가셨어
나는 굿이 벌어지던날
하루종일 할머니를 방석에 앉혀서 빙글빙글 돌리면서
무당이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춤추는걸 보고 듣다가
그밤에 잠이 들었어서 자세한건 몰랐는데
나중에 어른들끼리
무당이 그렇게 하루종일 토할때까지 빙글빙글 돌렸는데
쇠약해진 몸이 못견딘것 같다고
괜히 굿을 해서 할머니 고생만 시킨게 아닌가
아니다, 할 수 있는건 다해봤는데 어쩔 수 없다
서로 후회하고 위안하는 이야기를 하더라구
장례식은 시골집에서 치뤄졌어
옛날방식 장례식으로 마당에 천막과 돗자리가 깔리고
모든 친척들 손님들이 와서 밤새 왁자지껄 술마시고 인사하고
우리부모님과 직계가족들은 모두
아이고아이고 울면서 곡소리를 내고
엄청 정신없고 시끌벅적한 장례식이었어
장례식은 삼촌들이 상여를 매고
다른 가족들 친척들이 엉엉울며
뒤를 따르면서 끝났던 것 같아
그렇게 엄청난 상을 치르고
가족들과 친척들은 몇일간 시골집에 계속 있었었어
집에 사람은 많지만 다들 너무 바쁘게 지냈던 것 같아
나는 남동생이 있었는데(나는 9살, 동생3살)
그때는 날이 선선한 가을이었고
내동생은 파란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어
나는 자주 시골집을 왕래하면서
시골집근처 냇가에서 노는게 아주 익숙한 아이였고
동생은 진짜 아무것도 모르고 누나누나 따라다니던 애기였어
우리는 아무도 상대해주는 어른이 없이
우리끼리만 놀고 있다가 심심해지니
냇가에 가기로 했어
하필이면 직전에 큰비가 와서
난 전에 본적 없을 정도로
물이 불어서 흙탕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물이 불어서 돌멩이를 만지고 놀지 못하겠다고 생각하고
냇가 가까이에 서서 동생과 나뭇가지 따위를 주워서
냇가로 던지는? 그런 장난을 치고 놀았어
곧 지겨워지자
나는 동생에게 이제 집에 가자고 업히라고 등을 보이며 돌아 앉았는데
뒤에서 누우나! 이렇게 나를 부르는거야
그래서 돌아보니 동생이 내가 안보는새에
흙탕물이 흐르는 냇가로 들어가 있었어..
혼자 들어가서 나뭇가지를 띄운다고 신난 얼굴이었는데...
내가 뛰어가 잡긴했지만 물에 휩쓸리고 말았어
결론적으로 나도 같이 물에 빠지고
강한 물살에 휩쓸리긴 했지만 튀어나온 뿌리?같은걸 잡고 일어나
살아남았고
동생은 너무 작은 아이라서
그 날 오후늦게 아주 멀리 물살이 약하고 크게 휘는
하류에서 발견했어
내가 냇가 건너편에서
물에 쫄딱 젖은채로 외쳤다나봐
'살려주세요!
동생이 물에 빠졌어요!
파란색옷을 입었어요!'
아빠 사촌형제분이(나는 삼촌이라고 불러)
소방대원이신데 내가 외치던말이 떠올라서
파란색옷을 입고 있던 동생을 발견했데
우리 가족은
그 해 그 달에
7일간격으로 할머니와 하나뿐인 손주 둘다 잃게 되었어
(나는 손녀이니까)
정말 거짓말처럼 일주일간격 이었다더라
그리고 다음해인가? IMF가 터져서
우리 아빠도 하던 사업이 어떻게 된건지 집에 빨간딱지가 붙었었어
쫒기듯 이사를 했고, 새로 이사한 집에선 나와 12살 터울인 여동생이 태어났어
그리고 여동생은 18살이 되었고
나는 20여년이 지나서 유난히 태풍이 많이 오는 가을에 이 이야기를 쓰고있네..
그냥
이번 추석에 엄마의 반짇고리에서
오래전 동생이 편안히 가길 바라는?
그런 주문이 적혀있는 하늘색 종이를 발견해서 적어봤어
닳고 달았는데 아직도 못버리고 가지고 있더라
나는 그때 어렸어서
동생을 화장할때 아무도 데려가주지 않았는데
그다음날 동생과 할머니가
내가 읽던 완두콩이 여행하는 동화내용대로
손잡고 떠나는 그런 꿈을 꿨었어
할머니가 동생을 잘 돌봐 주려고
어짜피 명줄이 짧은 아이를 딱 7일째 되던날
같이 데려간걸까?
(20살쯤 사주를 봤는데, 얘기하지도 않은 내동생 이야기를 하더라구
뿌리가 없는 사주를 타고난 아이라 아마 일찍 죽었을거라고..
그리고 아빠사주엔 아들이 없데)
우리 할머니의 병은 정확히 뭐였을까
정말 영적으로 시달리고 계시는 거였다면
왜 굿을 했는데 돌아가신걸까
의문은 정말 많은데
우리가족은 아직도 그 이야기를 아무도 못꺼낸다
어려서 자세히 알 수 없어서 생긴 의문이나
내이야기는 아마 앞으로도 엄마나 아빠에게 할 수 없을것 같아서
그래서 한번 적어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