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스펙업 방 톨들ㅎㅎ 나 톨은 경력 5년이 안된 햇병아리 초등 교사야.
요즘 취업난이 너무 심각해서 온오프에서 교육대학교 진학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스펙업 방에서도 몇번 관련 글을 봤었고 나한테 실제로 상담한 현실 지인들도 있었어.
교육대학교 진학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는게 바로 '적성'인 듯 해. 사실 이 적성은 부딪혀 보지 않으면 확실히 모르긴 하지만 적성을 걱정하는 톨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해서 다음의 체크리스트를 준비했어. 여기에있는 체크리스트는 O이라면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 오래 버틸만하다 수준이지 꼭 이걸할 줄 알아야 한다는건 아니니까 이 점 꼭 기억하면 좋겠어'ㅅ' 초등교사의 진로를 고민하는 톨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해.
1. 멘탈적 조건
1) 기분이 나쁜 말을 들어도 참고 넘어갈 수 있는가?
: 주로 학부모. 학부모의 최애는 무조건 아이들이기 때문에 자기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온다고 생각하면 격하게 반응하는 학부모들이 많아. 아이들의 잘잘못을 떠나 우리 아이는 무조건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솔직히 거의 모든 학부모에게 있음. 그 중에서도 진상으로 분류될 정도의 학부모는 아이들에 대한 방어본능이 지나치게 강해 교사의 조언이나 지도에 삐딱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음. 극단적인 경우는 자기 아이의 잘못은 무조건 교사 탓이라고 매도하기도 함ㅎㅎ 하지만 절대 여기서 화내서는 안되고 아이의 발전 가능성을 언급하며 살살 구슬려야 함... 내가 학부모랑 싸워봤자 학부모가 민원 넣어버리면 끝이야. 학교는 절대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이건 근데 세상 모든 사회 생활 공통일듯ㅋㅋㅋ
2) 여러가지 일이 한꺼번에 벌어졌을 때 당황하지 않고 순서대로 처리할 수 있는가?
: 아이들의 연령이 어릴 수록 해당.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수도권 중소도시~신도시 같은 경우에는 최소 십수명부터 34명까지의 아이들을 교사 한 명이 케어해야 함. 그러다보니 아이들의 사고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남. A와 B가 싸워서 중재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C는 코피를 흘리고, D는 바지에 실례를 하는(실제 사례)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음. 이 와중에 쉬는 시간도 끝나서 바로 수업에 들어가야 함. 이 때 당황하지 않고 순서대로 처리하는게 중요함.
3) 감정기복이 적은 편인가?
: 분명히 매일 30명 중 누군가는 날 기쁘게 하고 누군가는 날 빡치게 함... 이 때 감정이 빠르게 왔다갔다하면 힘들어. 아마 대부분의 톨들이 학창시절 왠지 기분이 나빠져있는 선생님한테 괜히 혼난 적이 있을거야ㅋㅋㅋ 사람이라면 다들 그럴 수 있는데 이게 정도가 심하면 본인도 힘들고 본인이 가르치는 아이들도 힘들겠지?
4) 말을 잘 포장하여 예쁘게 하는 편인가?
: 1-1과 관련됨. 아이들의 장점은 최대한 크게, 단점은 부드럽게. 진상 학부모라면 아이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에서 교사의 어휘 하나하나를 잡고 늘어짐. 나같은 경우는 분노 조절이 잘 안되어서 화가 나면 교사와 친구들에게 쌍욕하고 때리는 아이의 단점을 이야기 할 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에 서툴어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스스로 배려하기 위해 노력하며 성찰하는 자세가 바람직 함'이라고 이야기 했었음.
5) 아이들의 상태 및 감정을 섬세하게 관찰할 수 있는가?
: 자기가 속상하거나 아프면 교사에게 바로바로 이야기 하는 아이가 있고, 혼자 속으로 삭이는 아이들이 있음. 전자 아이들은 교사가 눈치채고 그 때 그 때 처리해줬으니 앙금이 적은데, 후자 아이들은 본인은 말하지 않았지만 선생님이 알아주지 않아서 속상한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음. 그런 아이들의 상태를 금방금방 알아차리면 아이들, 학부모와의 관계가 보다 쉬움.
2. 신체적 조건
1) 성대가 튼튼하며 목소리가 큰가? 발음이 정확한가?
: 교사 직업병이 성대결절, 하지정맥류, 방광염 등인데 뒤에 두개는 그렇다치고 첫번째건 선천적인 신체조건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 평소에 성대가 강해서 목감기 따윈 걸린 적 없다/목소리가 커서 다른 사람들이 말할 때 귀가 아프다고 할 정도다라면 제일 좋아. 나는 어릴 때부터 우리 엄마가 제발 작게 말하라고 귀 아프다고 할 정도로 튼튼한 성대와 큰 목소리를 가진 톨인데 일한지 1년만에 환절기마다 극심한 목감기에 시달림... 애초부터 성대가 약한 친구들은 정말 3년 안에 성대결절 오더라구. 특히 여자 교사들은 위엄있는 목소리(=낮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목을 쥐어짜다보니 더 그래. 성대를 보호하기 위해 마이크를 쓰면 안되냐?? 하겠지만 마이크 쓰면 정신력이 약한거라며;; 싫어하는 막장 관리자들도 있고 학부모들 중에서도 애들 귀에 안좋지 않겠냐며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어서....ㅠㅠ 처음부터 성대가 좋다면 좋아.
발음 정확 여부는 꼭 필요한건 아닌데 아이들이 못알아듣고 계~~~속 질문할 수도 있음. 그리고 고학년 중 못된 애들은 선생님 발음 따라하면서 놀릴 수도 있고. 이건 발음은 아닌데 나 아는 선생님은 강원도 사투리가 너무 심하다는(경기도 근무) 학부모들 민원 때문에 속 앓이 하셨었음. 표준어를 안쓰면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구...
2) 체력이 좋은가?
: 자주 아플 수는 있는데 너무 자주 아파서 수업에 영향을 많이 줄 정도라면 본인도 주위도 괴로워. 1년 중 하루 이틀은 괜찮지만 그 이상은... 교사는 기본적으로 학기 중 연가, 병가를 쓰기가 굉장히 힘들어ㅠㅠ 본인이 아파서 결근하면 그 날 학급 아이들을 대신 봐줄 사람을 구하기가 힘들기 때문... 운이 좋으면 그 날 공강이 있는 전담 선생님이나 다른 반 선생님이 들어오시겠지만 기본적으로 다른 반 보결들어가는걸 동료 선생님들이 안좋아함... 솔직히 민폐라고 보시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아. 정말 쓰러질 정도 아니면 수업 시간 중까지는 버티고 애들 하교하고 난 다음에 조퇴를 쓰지 처음부터 병가를 내기는 힘든 편. 보결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동료 교사와 관리자(교장, 교감) 선생님이 계신 학교라도 '아이들을 봐주는 교사가 계속 바뀌는게 싫다, 불안하다'는 학부모도 계시니... 현실적으로 담임이 학기 중 자주 쉬기는 어렵다고 봐야해.
3) 카리스마가 있는가? 덩치가 크거나 힘이 센가?(필수는 아님)
: 특히 여자 선생님. 학기 시작하고 3월은 교사와 아이들의 힘겨루기 시즌이야. 아이들을 억압하고 독재하라는 뜻이 아니라, 원칙이 분명하고 단호한 선생님으로 보여야 해. 너무 친근하고 친구같은 선생님이야 초반에는 좋겠지만 학기 후반이 되면 교실이 난장판이 된다. 일명 학급 붕괴... 적어도 호락호락한 선생님으로 보이지 않는게 중요해. 선생님 떠보는건 남자 아이들, 여자 아이들 공통이야ㅠㅠ 남자 선생님은 솔직히 애들이 알아서 인정하는게 있어서 상관없지만 젊은 여자 선생님은 꼭 중요함. 근데 이건 대부분 현장 와서 구르면서 강해지더라구....
덩치 크거나 힘이 센가? -> 이거는 필수는 아니지만 아이들을 휘어잡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때리라는 말이 아님. 분위기가 중요함), 가끔 충동 조절이 안되는 학생이 있으면 크게 도움이 됨. 몇년 전 우리 반의 분노 조절이 안되는 학생은 기분이 나빠졌을 때 나와 친구들을 때렸는데 내가 끌어안고 버티면 어느 정도 진정하더라구... 이 때 힘이 밀려버리면 하기 힘들 것 같더라... 그 아이는 저학년이라 그나마 버텼지 고학년 되면 걍 내가 맞고 떨어져 나갔을듯
3. 그 외 자잘한 조건(잘 하면 편함)
1) 식사 빨리 함
: 식사 중 사고치는 애들 뒤치닥거리 하기 좋음. 특히 저학년이면 더더욱. 밥 먹다가 식판 엎으면 내 밥 포기하고 가서 닦아줘야 함.
2) 뒤로 걷는거 잘함
: 애들 줄세워서 걸을 때 뒤에 오는 애들 사고치는지 보기 좋음. 저학년이면 필수
3) 한글, 엑셀, 파워포인트 잘 다룸
: 공문서 쓸 때 좋음 짱 좋음 속도가 다르다. 파워포인트는 수업 자료 만들 때 좋음.
4) 애들한테 정 많이 안줌
: 책임감은 있되 애들한테 너무 많은 애정을 주면 본인이 힘듦. 아이들은 아직 미성숙한 존재라서 교사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고 실망을 주기도 하니까. 아이들을 굉~장히 많이 사랑하는 참교사st 선생님보다 교사를 그냥 직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더 잘 버티는 이유는 그건 것 같음. 그리고 1년 보면 보내야 하는 아이들이라...ㅠㅠ 내가 너무 애정을 줘버리면 1월, 2월에 힘들어... 나도 정 많이 안주는 타입인데 첫 제자들 때는 1월 한 달 내내 자기 전에 울었던 것 같음ㅋㅋㅋㅋ
5) 애들을 내가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내가 이 아이들을 바른 길로 이끌겠다는 거창한 생각을 안함
: 물론 어떤 아이들은 1년동안 만난 선생님으로 인생이 달라질 정도로 큰 변화를 겪을 수도 있겠지. 아이들의 삶에서 내가 좋은 멘토로 남는다면 굉장히 기쁠거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아이들은 굉장히 적음. 아이들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존재는 선생이 아니라 부모라서ㅎㅎㅎ 문제 행동이 있는 학생을 내가 사랑과 훈육으로 1년동안 이끌어도 담임 바뀌고 주 양육자인 부모와 가정환경이 안바뀌면 그 후에 다시 도루묵됨. 거기다 교사인 나의 판단이 늘 옳은 것도 아니니 내가 이 아이의 개성을 문제 행동으로 오판하고 있는게 아닐까 늘 조심스러워야 하고. 그래서 나는 그냥 아이들에게 1년동안 즐거운 기억, 행복한 기억을 준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 내 의견이 꼭 정답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3-5처럼 생각하는 선생님이 교직에서 오래 버티기는 하는 것 같아. 현타가 덜 와서....
6) 사람들 앞에서 잘 나댐(?)/뻔뻔함
: 애들 앞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웃기지도 않는 개그도 치고 장구도 치고 단소도 하니까...?? 근데 교대 다니다 보면 다 늘어... 걱정마...
7) 직장에서 뒷말 오지게 돌아도 뻔뻔하게 잘 들이댈 수 있다
: 학교 뒷말 오지게 하더라... 6학년 선생님이 그 날 병가를 쓰면 그날 방과후에 1학년 선생님들 전체가 병가 쓴 선생이 누군지, 왜 썼는지 구구절절 알게됨. 교직사회도 엄청 좁아서 옆학교 몇학년에서 있던 일도 다 알더라곸ㅋㅋㅋ 교대 시절(N년전) 누구랑 누가 CC였는지도 아는 수준.다들 서로에게 엄청나게 관심이 많고 뒷말도 오지니 크게 신경쓰지 않으면 참 좋음. 초등은 1년에 한번씩 업무와 학년이 바뀌며 동료 선생도 다 바뀌는데 예전에 내 뒷말했던 선생님랑 동학년 됐다고 어색하게 지내기는 참 힘들더라...
내가 생각하는 필요한 적성은 대충 이 정도인 것 같아. 쓰다보니 한탄처럼 된 부분도 있는데^^;;; 사실 나는 초등교사라는 직업이 적성이 맞는 사람들한텐 굉장히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해. 일단 본인 의지가 따른다면 정년이 보장되고, 복지도 괜찮고, 워라밸도 좋으니까. 교직 사회가 비교적 수평적이고 각자의 사무실(교실)이 주어져서 개별적으로 업무 처리를 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지.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는 이 직업이 내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게 노력할 동기를 준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아무래도 내가 초등교사 외에 다른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교사만의 어려움이 아니라 전반적인 직업 사회의 어려움인 부분(연가 사용이라든가)도 있을거야. 다른 직업이 어렵지 않다고 무시하거나 내 직업이 제일 힘들다고 하소연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으니 혹시나 오류가 있다면 부드럽게 이야기해주면 좋을 것 같아.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네ㅠㅠ 이 글이 진지하게 교대 진학을 고민하는 톨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랄게.
어... 어떻게 마무리하지??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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