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했죠, 아가씨?
당신은 나의 세계고,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고,
당신은 뿌리 그 자체인 것을.
어둠 속을 헤매며 희고 가느다란 더듬이로 세상을 보는
당신은 벌레와도 같아서 나의 뿌리를 좀먹는다는 것을.
친애하는 마가렛,
여기는 다시 오랜 만의 윈터폰드입니다.
윈터폰드의 겨울은 언제나처럼 고요하고 모든 것이 신비롭군요.
크리스마스 카드를 동봉합니다.
신년에도 늘 그대에게 행복한 일만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친애하는 유안에게.
날씨가 많이 풀렸어요.
이제는 제법 봄 내음이 나네요.
할아버지는 조만간 의회 참석을 위해 런던으로 가실 예정이에요.
당신과 에드워드도 조만간 새 학기가 시작되겠군요.
사실은 빨리 여름이 되어 당신을 만나고 싶어요.
이 생명의 계절에, 그대의 윈터폰드 역시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겠죠.
바라건데 언젠가 내게 윈터폰드를 알게 해 주세요.
그대의 세계를.
그 끝없는 애정이 깃든 윈터폰드를.
하필이면 그 여자한테 그런 모습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당신과 나,
둘 중 누가 더 불쌍할까.
그동안
사실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어.
그래서 불안했던 거야.
이제야 알았다.
유안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당신을 사랑해요, 마가렛.
전장에서 당신에 대한 생각이 날 버티게 했어요.
그런데 막상 당신이 조금 다르게 느껴져요.
차갑게 구는 것 같다고.
내 착각인가요?
유안.
당신이 무사히 돌아와서 행복해지는 것 외에는
난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어요.
우리는 계속 서로 사랑할 거예요. 그 형태가 어떻든.
연인일 수도, 친구일 수도, 가족일 수도 있겠죠.
어떻게 된다고 해도 나는 당신을 계속 아끼고 싶어요.
물론 시간이 지나서... 언젠가 당신이 약혼녀를 데려와
보여준다면 난 분명 질투할 거예요.
제가 생각보다 못됐거든요.
... 내가 뭔가 잘못했나요?
... 아무것도요.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거짓말해서... 상처 입혀서...
내가 다... 다 잘못했어. 미안해요.
용서해줘... 마가렛...
나를... 나를 계속 사랑해줘...
결혼하자. 행복하게 해 줄게. 내가 반드시...
정원을 새로 만들자.
처음엔 좀 작겠지만 당신 어머니의 꽃을 옮겨 심는 거야.
로즈마리, 헤더, 과꽃, 리시안서스... 그리고 마가렛도.
날씨가 좋으면 정원에 앉아서 책을 읽어줄게.
당신이 읽고싶은 걸로.
매일 방을 장식할 꽃도 당신이 정해. 그날 그날 기분에 따라서.
내가 혹시라도 마음에 안 들게 하면 그 날은 피오니 꽃인 거야. 어때?
밤에는 화롯가에 앉아서 당신과 이야기를 할 거야.
당신의 하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알고 싶어.
그리고 당신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싶어.
정말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어.
우리들이 너무 빨리 잃어버렸던 만큼...
이번에는 정말로 행복한 가족을.
너와 함께 살고 싶어, 마가렛
전쟁이 끝나면...
우리가 계속 함께 하게 되면 말이야...
그 때는 정말 아무데도 가지 말아줘.
꼭 내게 다시 돌아와.
다시 돌아와...
응.
그 때 봤던 너의 모습을 몇 번이고 되새기고 있어.
지금은 어떨까.
너의 걸음거리, 목소리, 웃는 얼굴은 역시 여전하겠지.
머리는 더 길었을까.
이제는 더 두꺼운 옷을 입었을까.
다시 만났을 때는 가장 먼저 내게 무슨 말을 해 줄까.
지금은 분명 너의 정원에 꽃이 지는 계절이겠지.
나는 늘 유안을 생각하거든요.
어쩔 수가 없나봐요. 너무 오랫동안 계속 해오던 일이라서.
이제 그만 하는 법을 모르겠어요.
다시는 그 어떤 것에도 고개 숙이지 않으리라 결심했던 소년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에도 마땅히 고개를 숙이리라.
마가렛. 네가 내게 기회를 준 거라면, 나를 용서한 거라면.
나는 이제야 소년처럼 사랑할 것이다.
어느 여름, 네가 사랑했던 그 소년이 되어 나도 너를 사랑할 것이다.
마가렛. 꽃의 이름을 한 나의 마가렛.
네가 나를 용서한 거라면 나는 반드시 알 수가 있어.
운명이 나를 다시 네 곁에 데려다 줄 테니까.
이제 겨울과 봄이 지나면 다시 여름이 올 거야.
너와 처음 만났던 빛나는 계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