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베니스 영화제에서 첫 공개 이후,
현재 평점은 9.26으로 미친듯이 높은 상태인데 토마토미터는 4개 혹평으로 86%.
(평점이 6~7점대인데.. 그냥저냥 보통인 영화여서 썩토날릴만하진 않아 토마토미터는 100%인 경우는 봤어도..
저런 정반대의 경우는 난 거의 처음보는듯.)
여튼 그중에서도 현재 가장 혹평한 매체는 TIME임.
(중략)여러분도 짐작했겠지만, 아서의 모든 고통은 "당신이 날 어떻게 만들었는지 봐봐"로 나타나는 잔혹성으로 이어지는데
그것은 대부분 광대옷을 입고 있을 때 일어난다.
폭력은(보통 총을 갖고 다니고, 가위나 옛날 방식의 질식사) 그로하여금 자신에 대해 통제력을 느끼게 하고, 덜 한심하게 느끼게 한다.
근데 우리는 이런 병적인 행동에 대해 모르지 않는다.
미국에선 거의 매주마다 아서 같은 사람이 실제로 집단 총격을 사건을 일으키거나 폭력을 시도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불안한 어린양을 보듯 아서에게 동정심을 느껴야 한다. 그가 단지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면서.
(..) 그 영화의 결점들은 가짜 철학으로 잔뜩 채워져 있다.
조커는 어리석은 사춘기 시절스럽게만 어둡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 미묘한 정치적 또는 문화적 지혜를 전달받길 원한다.
아서는 중얼거린다. "모두 서로를 향해 소리만 질러. 그 누구도 예의가 없어."
끔찍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중 그렇게 느끼지 않는 사람은 있어?
아서의 논평은 너무 뻔하며 좌우 진영 둘 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메시지다. 그렇기에 정말 아무 소용 없는 말이다.
아서의 아파트 빌딩의 이웃과 관련된 목적이 불분명한 서브 플롯도 있다.
이웃은 자지 비츠가 연기하는데, 비츠는 개발이 덜 된 역할을 맡았다.
(비츠는 이곳 베니스 축제에서 상영된 또 다른 영화 'Seberg'에 출연하기도 하는데, 그곳에서 그녀는 할 일을 더 많이 받았다.)
아서는 그녀에게 반한 것으로 나오고, 비록 그가 그녀를 해치지는 않지만,
그녀에 대한 그의 조심스런 주의력에는 뭔가 섬뜩한 권리가 담겨있다.
그는 (원한다면) 그녀를 쉽게 인셀의 수호성인으로 채택할 수 있었다.
(..) 아서는 엉망진창이지만 우리는 영화를 보며 그가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 아서는 혼돈과 아나키 사태를 불러일으키지만, 그 영화는 그가 혁명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부자들은 몰락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필요로하는 모든 것을 얻는다.
그리고 데이트도 할 수 없었던 슬픈 남자들은 킬러 영웅이 된다.
이 영화는 어딘가 토나오는 농담인 부분이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 몫이다.
메타는 현재 75점인데
혹평한 다른 매체들도 거의 타임지와 비슷한 맥락에서 혹평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