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대중문화팀 정현목 기자, 한국영화 전공의 나리카와 아야 칼럼니스트(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한일간 이슈에 대해 허심탄회한 의견을 나누는 '한남(韓男)일녀(日女)수다'. 14번째 주제는 '트와이스 사나, 과연 무슨 잘못을 했나'입니다. 인기걸그룹 트와이스의 일본인 멤버 사나가 최근 인스타그램에 '레이와(令和)'라는 일본의 새로운 시대를 맞는 감상을 올렸는데, 이에 대한 역사인식 논란이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일본인에게 연호는 어떤 의미인지, 국내에선 왜 연호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얘기를 나눴습니다.
"헤이세이(平成)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헤이세이 시대가 끝난다는 건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지만 헤이세이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레이와(令和)라는 새로운 스타트를 향해 헤이세이의 마지막 날인 오늘을 상쾌한 하루로 만듭시다! 헤이세이 고마워, 레이와 잘 부탁해."
정현목(이하 현목)= 인기 걸그룹 트와이스의 일본인 멤버 사나가 그룹 공식 인스타그램에 이렇게 글을 올렸다가 온라인에서 홍역을 치렀어요. 군국주의 상징인 일본 연호를 일본어로 언급한 건, 역사 인식의 문제가 있다는 일부 네티즌들의 비판을 받은 거죠.
나리카와 아야(이하 나리카와)= 말도 안되는 논란이라 생각해요. 일왕(일본에선 천황) 교체에 따라 연호가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변경되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일 뿐인데.
현목= 저도 송구영신(送舊迎新)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봐요. 하지만 연호 변경이 일왕제와 관련 있고, 일왕은 침략전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서 부적절했다는 의견도 적지 않아요.
645년부터 이어져온 연호, 일본인엔 자연스런 시대구분…종전 뒤 미국, 군국주의 냄새 난다며 연호폐지 요구하기도
나리카와= 일본 연호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순 있겠죠. 하지만 저는 일부 인터넷매체가 논란을 부추겼다고 봐요. 『사나, 일왕 퇴위에 "씁쓸하지만 수고하셨다" 심경글 논란』일부 매체들의 기사 제목이에요. 사나가 올린 글 어디에 일왕에 대한 언급이 있나요? 연호 얘기 밖에 안했는데. 기사가 악의적으로 느껴져요.
현목= 그런 기사는 문제가 있다고 봐요. 하지만 일본 연호를 '천황제'와 분리시켜 볼 수는 없잖아요. 일왕은 권력만 없을 뿐, 여전히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이고, 일왕이 바뀌는 것을 기점으로 새로운 시대를 선포하는 것이니까요. 물론 일본 연호를 천황제에 대한 숭배나 군국주의, 과거사 미화 등과 연결짓는 건 무리가 있겠지만, 일왕을 등에 업은 군부의 폭주로 침략의 피해를 입은 우리로선 일본 연호에 대한 이미지가 좋을 수 만은 없죠. 사나가 그런 의미까지 담아 글을 올린 건 아니겠지만.
나리카와= 그런 부분은 인정합니다만, 현재 일본인들에게 연호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시대구분이에요. 645년부터 이어져온 일본의 뿌리이자 문화 같은 거죠. 일본의 모든 공문서에는 '헤이세이 **년 출생' 이런 식으로 적어요. 2019년 같은 서력을 거의 안써요. 일상적으로 몸에 밴 시대구분이기 때문에 그 시대가 지나간다고 하면 쓸쓸한 느낌이 드는 거죠. 그만큼 자신도 늙었다는 의미니까. 농담삼아 쇼와 시대(1926년 12월 25일~1989년 1월 7일)에 태어난 이는 구세대, 헤이세이 시대(1989년 1월 8일~2019년 4월 30일)에 태어났으면 신세대로 나누기도 해요.
현목= 1996년생인 사나 역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때의 연호인 헤이세이가 끝나고 레이와가 시작됐으니 자신 또한 구세대가 된 듯한 느낌에 그런 글을 올렸을 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일본에서 1년 생활할 때도 각종 문서에 적힌 연호를 보고 당혹스러울 때가 많았어요. 은행이나 관공서에 가니 외국인을 위해 연호를 서력으로 변환하는 표를 준비해두고 있더군요.
나리카와= 일본인들에게 연호가 바뀌는 건 자신이 몸 담았던 한 시대가 간다는 느낌이 더 커요. 일왕이 바뀐다는 의미보다는. 저 또한 쇼와 시대에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 헤이세이 시대가 됐으니까 개인적으로 헤이세이 시대가 지나간 것에 대한 쓸쓸함이 없진 않죠. 그리고 일본사람들이 일왕 이름을 잘 몰라요. 한국에서나 아키히토 일왕이라 하지, 일본에선 헤이세이 텐노(천황)라 하기 때문에 일왕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 않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나가 언급한 연호는 시대에 대한 것이지, 일왕에 대한 것은 절대 아닐 거예요.
새 연호 '레이와' 마케팅으로 일본 열도 떠들썩…아베 정권이 개헌 위해 정치적 이용한다는 지적도
현목= 이번에 레이와 시대를 맞이하는 일본의 모습을 보니 엄청 떠들썩하던데요?
나리카와= 작년말부터 '헤이세이 사이고(最後)' '레이와 사이쇼(最初)'를 앞세운 마케팅을 엄청 해댔어요. 헤이세이 공기를 담은 캔까지 팔았잖아요. SNS에도 '헤이세이 사이고' '레이와 사이쇼'를 언급한 글들이 넘쳐났죠. 퇴임하는 일왕이 살아계신 가운데 새로운 일왕이 즉위하는 건 처음이어서 마케팅 기간도 길고 분위기도 더 뜨거웠어요. 매스컴도 온통 '헤이세이' '레이와' 얘기만 하고. 일부러 만든 것 같은 축제 분위기가 전 싫어요. 저 말고도 그런 사람들이 꽤 있더군요. 그 기간에 일부러 해외여행 가는 일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어요.
현목=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그런 분위기를 더욱 조장한다는 지적도 있던데요?
나리카와= 왜 아니겠어요. 연호가 바뀌는 분위기에 편승해 아베 정권이 헌법 개정을 더욱 더 밀어붙이려 하는 느낌이 들어요. '레이와' 라는 단어도 일본의 가장 오래된 시가집 '만요슈'에서 가져왔다고 하는데, 만요슈의 일부 시가들이 쇼와시대 초기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의도로 군국주의에 악용됐던 적이 있어요. 만요슈의 시에 곡을 붙인 일본 군가가 대표적이죠. 그래서 만요슈에서 가져왔다는 '레이와' 라는 연호를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어요.
현목=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새로운 국민통합의 시대, 헌법 개정을 통해 새롭고 강한 일본을 만들자는 의미의 상징조작으로서 '레이와'를 이용하고 있다는 거네요? 공교롭게도 레이와 시대로 바뀌자마자 친(親) 아베 성향의 요미우리 신문이 개헌논의를 활발히 해야 한다는 취지의 기사를 내보내고, 아베 총리가 극우 성향의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군대를 보유한 정상국가가 되는 개헌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했어요.
나리카와= 아무튼 저는 아베 총리가 만들고 있는 전체주의적 분위기에 거부감을 느껴요. 저와 생각이 비슷한 일본인들도 꽤 있어요. "현 헌법에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므로 왕이 바뀐다고 해서 시대가 바뀌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고요.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느껴져서는 안되잖아요. 전쟁이 끝나고 어느 시기까지는 군국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천황제와 연호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들이 있었는데, 요즘은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죠. 아베의 집권 장기화로 과거사를 잘 안가르치는 경향이 커지면서 더욱 그렇게 됐어요. 역사에 대해 모르는 걸 떠나 아예 아픈 역사는 알고 싶지 않다는 젊은이들도 꽤 있어요.
현목= 전쟁 직후 미국이 패전국 일본에게 군국주의 색채가 드러난다는 이유로 연호 사용 금지를 요구했던 적이 있다고 하네요. 사나 얘기로 다시 돌아오면, 나리카와 상은 사나가 억울하다는 거죠?
나리카와= 엄청 억울할 거예요. 그렇지만 본인이 나서서 억울하다고 말할 수 없는 입장이니, 저라도 대신 말해줘야죠. 같은 오사카 출신이기도 하고 ^^ 물론 지금까지 얘기한 것처럼 일본 연호에는 다소 복잡한 함의가 담겨져 있긴 하지만, 평범한 일본인의 시각에선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시대구분이라는 점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현목= 이번 소동을 계기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 연예인들의 금칙어 리스트에 욱일기, 야스쿠니 외에도 '연호'가 추가된 것 같네요. 별다른 뜻이 없다고 해도, 받아들이는 쪽의 입장에선 다른 해석을 낳을 여지가 있으니까.
트와이스 다현 위안부 티셔츠, 사나 연호 논란…예민한 양국 관계 탓에 일상적 일도 논란으로 번져
나리카와= 일본 연예인들이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이렇게까지 조심하며 살아야 하나, 그런 생각도 들어요. 전 저널리스트니까 비판받아도 견딜 만 하지만, 아이돌 스타는 타격이 크겠죠. 이러다가 유니클로도 못 입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도 ^^
현목= 아무래도 한일 양국 간에 얽혀있는 문제들이 많잖아요. 양국 관계도 최악인 상태이고.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 연예인들도 조심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죠.
나리카와= 작년엔 일본의 한 우익 정치인이 트와이스 다현이 위안부 티셔츠를 입고 있는 사진을 발견해내 우익성향 네티즌들과 함께 문제를 삼은 적이 있었잖아요. 위안부 할머니들을 지원하는 기업이 만든 티셔츠일 뿐, 위안부를 상징하는 그 어떤 문양도 없었는데도 말이죠.
현목= 사나 소동에 대해 혐한 성향의 일본 네티즌들이 "한국인들은 모두 콤플렉스 덩어리" "반일 근본주의 미치광이들" "나치와 같은 수준의 조선 파시즘" 등의 폭언을 쏟아냈어요. 혐한 소재에 늘 굶주려 있는 일본 우익들이 좋은 먹잇감을 찾은 것 같아 입맛이 씁쓸하네요. 사나 입장에서는 이번 소동이 곤혹스러웠겠지만, 공부도 됐을 거예요. 아무리 일상적인 것이라도 양국 관계와 역사가 얽히다 보면 의도치 않게 문제가 커질 수 있다는 점.
나리카와= 사나 자신도 느꼈을 거예요.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현실 자체가 그렇다는 걸.
현목= 결론적으로 사나 소동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별 문제도 아닌 게 문제가 됐지만, 그 뒤에는 복잡한 문제가 있긴 하다.
나리카와= 하하하. 절묘하네요.
[출처: 중앙일보] 트와이스 사나의 연호 논란이 '나치 조선'의 파시즘이라고?
지들 얘기 하나??? 방탄한테 한 짓 좀 생각해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