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본 토리들도 있겠지만 내가 출근길에 유기된 아기고양이를 발견해서 글을 쓴 적이 있어.
https://www.dmitory.com/pet/78947410
이 글인데, 이 일의 후기를 써보려고 해.
나는 이 고양이에게 커피라는 이름을 지어줬어.
임보기 때문에 이름은 짓지 않으려고 했는데, 회사 동생이 고양이 이름은 뭘로 할 거냐고 물어봐서...
고양이를 봤더니 등의 무늬가 커피가 흐른 모양 같아서 내가 커피라고 부르자고 했어.
커피는 우리 집에 열흘을 지내다가 좋은 분께 입양되었어.
커피를 주운 그 날의 일은 전 글에 달린 댓글대로이고, 커피는 저 날 이후로 병원에 한 번 더 갔어.
커피를 주운 날이 목요일이었는데 금요일 퇴근하고 보니 커피가 설사를 하고 혈변을 눠서
항문에서 피가 묻어나길래 놀라서 다음 날인 토요일 아침에 동물병원에 데려갔어.
다행해 범백같은 무서운 병은 아니고 커피가 환경이 바뀌고,
먹던 사료도 바뀌고, 굶주리다가 갑자기 먹게 된 게
설사를 하게 했고 설사 때문에 직장에 출혈이 생긴거라고...
잘 먹고 잘 놀고, 사료 양만 적절히 조절해주면 걱정할 것 없다고 하셨어.
커피는 병원 가는 길에는 안절부절 못하더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평온해했어.
나는 그게 왠지 슬프게 느껴졌어.
밖에 데리고 나가니까 자기를 다시 버리려 한다고 생각한걸까 싶어서.
커피는 붙임성이 좋은 개냥이었어.
처음에 온 우리집이 낯설텐데 불안해하지도 않았고,
집에 오자마자 내 무릎에 오르면서 애교를 부렸어.
나는 개나 고양이를 길러본 적이 없어서
고양이도 자기를 사랑하는 주인을 사랑한다는 걸 몰랐어.
커피가 온 다음에 행복한 일만큼 힘든 일도 많았지만
나를 가장 힘들게 한 일은 커피를 떠나보내야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는거였어.
커피와 함께 지내며 내가 커피를 거두는 생각은 수도없이 한 것 같은데
애초에 커피를 주워올 때도 건강만 되찾게 해주고 입양자를 구해서 보낼 작정이었고,
그리고 나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사정이었어. 나는 커피를 키울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어.
나에겐 커피를 키울 시간적, 물질적, 환경적인 여유가 없었으니까.
커피와 나와의 관계가 씁쓸하나마 행복한 것은 우리가 바른 이별을 했기 때문일지도 몰라.
만약 내가 내 감정에 치우쳐서 억지로 커피를 키우려고 했다면
나도 커피도 힘들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민폐를 많이 끼치게 됐을 거 같아.
커피를 돌보면서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는 입양자를 구하는 일이었어.
딤토에서 추천받은 고양이 카페들에 가입을 하고 분양글을 올렸는데
이맘 때가 길고양이들이 새끼를 낳는 때라서 커피 또래의 아기고양이 분양글이 너무 많았어.
그 많은 고양이들 사이에서 커피가 좋은 입양자를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아닌가 생각했어.
길고양이의 삶도 애달프지만 파양당하는 집고양이들의 사정도 정말 슬펐어.
커피 못지않게 저마다의 가슴아픈 사정을 가지고 있었어.
그리고 무책임하고 악한 사람들때문에 생겨난 엄격한 카페의 규율들과
공지 게시판에 올라온 분양시 유의사항 같은 글들도 나를 불안하게 했어.
아기 고양이를 가장 사랑스러운 시절에 입양해서 무책임하게 파양하거나
길에 다시 유기하는 사람들 얘기, 그리고 분양받은 고양이를 학대한 사례들...
보통 때라도 가슴아픈 얘기지만 커피를 분양보내야하는 내 입장에서는
너무 답답하고 숨막히는 현실로 보였어. 이 때 커피를 거두고 싶다는 생각을
제일 많이 한 것 같아. 어떤 카페 운영자가 쓴 글 말미처럼 내 고양이를
나보다 잘 돌봐줄 사람은 세상에 없는 것 같았어.
커피와 시간을 보내는 건 정말 즐거웠어.
출근 시간에 나를 배웅해주고 퇴근 시간에 현관문 잠금장치를 푸는 소리를 듣고
현관 앞까지 마중나오는 커피의 모습은 안타깝지만 고맙고 반가웠어.
커피는 순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한 번도 나를 손톱으로 할퀴지 않았어.
그래서 눈에 안약을 넣는것도, 항문에 연고를 발라주는 것도 어렵지 않게 해줄 수 있었어.
물론 커피는 그런 일들을 싫어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잘 참아줬어.
잠들 때나 일어날 때 내 가슴 위에 누워있거나, 내 옆구리에 살을 맞대고 누워있는,
새벽 동틀 때 나 목을 핥는 감촉이 기분좋았고,
누워있는 내 얼굴을 밟는 차가운 젤리마저도 좋았어.
그리고 내가 앉았을 때 무릎에서 느껴지는 커피의 무게감과 따뜻한 체온이 좋았어.
그런데 그만큼 울면서 보낸 시간들도 많았어.
커피와의 이별을 생각하니 슬프고,
처음 만났던 커피의 애처로운 모습이 생각나서 슬프고,
집 없는 아기고양이에게 관대하지 않은 험악한 세상을 생각하니 슬펐어.
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눈물이 쏟아져서 당혹스러운 순간들이 너무 많았어.
현충일에 커피를 입양하겠다는 분이 나타났어.
나는 그 날 원래 아이스쇼를 보러 갈 예정이었는데, 커피 치료비에 보태려고
예매표를 취소하고 그 날은 종일 커피와 함께 지내면서 분양글을 열심히 올렸던 날이었어.
카페 활동 내역도 없고, 당일 가입한 회원이어서 내가 처음엔 경계했는데
내가 부탁한 요청들도 차근차근 다 들어주시고,
작성해준 입양 신청서에 진실성이 느껴져서 이 분에게 커피를 보내드리기로 했어.
직접 만났을 때도 인상이 선하고 좋은 사람으로 보여서 안심했어.
분양글을 처음 올린 날에는 마음이 너무 초조했는데
일이 진행되려니까 정말 빨리 모든 일이 진행됐어. 커피에게 정이 들어가니까
빨리 입양된 게 나에겐 감사해야할 일이었는데, 그래도 막상 커피를 보내려니 너무 슬펐어.
커피를 보내기로 약속한 전 날에 퇴근하고 자기 전까지 종일 울었던 거 같아.
커피는 누워서 울고있는 내 위로 올라와서 천진난만하게 그릉그릉거렸어.
커피를 보낸 날은 토요일이었는데 그 날도 커피가 깨워서 일찍 일어나
오전 시간을 오롯이 커피와 살을 맞대며 보냈어. 순간 순간 지나가는
1분 1초가 너무 아까워서 조금이라도 커피 모습을 더 남겨놓으려고 커피 영상을 많이 찍었어.
VIDEO
그리고 커피는 갔어.
커피를 데려간 분이 고양이를 처음 키우는 분이라
내가 샀던 커피 물건들을 같이 보내드렸어. 그리고 커피가 환경이 바껴서 불안해할테니까
커피가 매일 깔고 자던 수건도 이동장 안에 같이 깔아서 넣어줬어.
커피가 쓰던 물건은 커피가 쓰던 화장실과 모래삽만 남아서 그것들을 치우는데
얼마나 눈물이 쏟아졌는지 몰라. 저녁 내내 어린애처럼 엉엉 울며 보내다 잠이 들었어.
커피가 좋은 곳으로 갔고, 잘 지내는 사진을 보내주겠다는 약속도 받았으니
기뻐해야 할 일인데 내가 아직 철이 없는 지
커피가 떠났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서 그럴 수가 없었어.
나는 커피가 나에게 도와달라고 해서 길에서 구해준 거였는데,
내 일생에 커피같은 애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선뜻 나서서 도울 수 있을까.
내 성격에 그냥 지나칠 용기가 없어서 도움을 주긴 할 것 같지만
그 고통을 알아버려서... 그 때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커피를 선뜻 도와줄 수 있었던 것 같아.
사람들이 내가 한 행동을 칭찬한 이유는 그만큼 그게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란 걸
커피가 떠나고나서야 절절히 깨달을 수 있었어.
5월 30일 (목요일) : 커피를 처음 발견한 날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고개를 들었을 때 찍은건데 처음 봤을 땐 고개를 앞발에 묻고 있어서 얼굴이 안보였어.
동물병원 가서 대기하면서 찍은 사진. 흰 고양이가 커피를 보고 하악질을 했는데 커피는 기운이 없어서 미동도 안했어.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커피가 치마폭으로 자꾸 숨으려고 했어.
5월 31일 (금요일) : 커피가 혈변을 본 날
아직까진 꼬질꼬질한 모습... 커피는 아기라 목욕 안시키고, 설사해서 다리에 응가 묻었을 때 다리만 물로 씻어줬어. 이때까지도 너무 작은 몸. 등을 쓰다듬을 때마다 등뼈가 걸려서 어떻게 쓰다듬어줘야 할 지 모르겠는...
6월 1일 (토요일) : 커피를 데리고 동네 동물병원에 간 날
아침밥 먹고 저렇게 어깨에 걸쳐서 잠을 잤어.
병원 갔다가 돌아오는 길... 퇴근할 때도 저 쇼핑백에 담아왔었는데, 그 때는 얌전했던 커피가 병원 가는 길에는 엄청 버둥거리면서 쇼핑백 밖으로 나오고 싶어했어. 그래서 돌아오고 바로 몸줄을 주문했어.
돌아올 때는 저도 이제 집에 가는 줄 아는 지 저렇게 얌전해졌어. (족발 미안...) 병원 다녀오고 피곤해서 뻗은 모습... 나 컴퓨터 할 때는 커피가 저렇게 발받침대에 올라와서 자는 때가 많았는데 자꾸 발이 빠져서 수건을 깔아줬어.
커피가 소변 실수를 하던 때라 외출할 때는 휴지박스에 담아놓고 외출했는데 이 사진 찍은 다음 날 아침에 커피가 박스를 탈출해서 그 후로 박스는 안썼어. 저 박스는 회사에서 쓰던 걸 가져온거야.
첫날 병원에서 돌아오고 회사 여직원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여자화장실에 커피 쉴 자리를 저 박스로 꾸며줬었어.
우리 회사가 여직원이 몇 명 없어서 저 곳이 제일 조용하고 안전한 곳이었거든.
커피가 사람 오가고 물내리는 소리에 스트레스 받을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커피는 혼자 있을 땐 잠을 자고
사람이 들어오면 아는 척을 하면서 잘 지냈어. 다행히도 모두 커피를 가엾게 여기고 이뻐해주셨어.
6월 2일 (일요일)
6월 3일 (월요일)
이 날 커피 분양글을 올리려고 사진을 많이 찍었어. 이건 내가 좋아하는 사진... 커피는 가슴팍에 안아주면 저렇게 옷을 타고 올라와서 어깨에 앉아있길 좋아했어. 이건 내가 고양이 유튜브 영상 보여줬을 때 찍은 거. 배 위에 누워서 보는 게 귀여웠어.
통통해진 엉덩이...
6월 4일 (화요일)
커피가 살이 오르고 이뻐지기 시작해서 이때부터 찍은 사진들이 많더라고.
그 전에는 노는 동영상을 주로 찍은 것 같고...
6월 6일 (목요일) : 현충일. 이 날 커피를 입양하겠다는 문의가 들어왔어.
아침에 찍은건데 커피가 너무 예뻐져서 놀라서 찍은 거...
혼자 있을 때마다 열심히 그루밍했는지 얼굴에 낀 때들이 다 벗겨졌어.
내가 귀지는 청소해줄 자신이 없어서 귀지만 좀 많았어. (시도했다가 포기함)
(족발22 미안...)
현충일은 하루종일 커피랑 집에 있어서 찍은 사진이 많았어.
6월 7일 (금요일) : 커피를 떠나보내기 전 날
이 날은 우느라 거의 찍은 사진이 없다... 내 속도 모르고 태평하게 자는 커피...
6월 8일 (토요일) : 커피 떠나던 당일
금요일에 찍은 거 잘못 올린 거 아니고 아침에 일어나니까 이러고 있었어...
떠나는 날에도 빨래에 쉬하는 이벤트를 남겨준 커피.... 나중에 깔아준 요매트 위에도 쉬하고 떠남...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고양이 커피야.
비록 지금은 이별의 슬픔이 내게 너무 쓰게 다가오지만
네가 카푸치노처럼 포근하고 부들부들한 아기 고양이인 만큼
평범한 일상의 반복이 쌓이면 너에 대한 기억이
이제는 따숩고 향긋한 추억이 되어
평범한 일상의 선물처럼 여겨질거라고 믿어.
나에게 가슴 따뜻해지는 선물을 줘서 고마워.
네가 세상 소풍 마치는 날까지 아프지 않고
행복한 고양이로 지낼 수 있기를 기도할게.
▩ 여기서부터는 내가 커피 분양글 쓰려고 찐 커피 움짤이야
커피가 좋은 분께 입양되도록 빌어준 토리들에게 이자리를 빌어서 감사하고싶어.
모두 넘 고마워♡
토리 너무 좋은 일 했다....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