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직 자지 않고 무얼 하느냐."
"갑갑하여··· 내일은 사냥이나 할까해 활을 보고 있어요.
오라버니야말로 주무시지 않으시고―."
"···쯧!
정결레까지 받은 몸이 무슨 소리야?
사냥이라니!
내 그 활이 무슨 활인지 이제 알겠구나!
너란 아이를 아니 억지로 뺏진 않겠다.
허나, 시집가기 전엔 없애거라!
새악시의 혼물로는 어울리는 물건이 아니다!"
"기, 기다려라!!
내 활과 전통을 누가 멋대로 내가라 했더냐!"
"저어, 아벌한께서 태우라셔서···."
"아가씨, 이런 무구는 신방에 두는 법이 아닙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무타···.
똑바로 보고 있어.
이제 안녕이야.
"그건 내것이니 내일 아침 내 손으로 태울 것이다!
뉘라서 손을 대랴?!
바깥 차일 기둥 아래 치워두어라!"
비웃지마, 무타!
다만 취했을 뿐
그는 너보다 강한 전사고,
너보다 기품있는 남자야.
너보다 가진 것도 많고,
너보다···
그래··· 그는 날 사랑하진 않아.
그리고 어쩜 앞으로도 않을 거야···.
그럼 어때?!
사랑이 없이도 아이들은 태어나고,
권세, 책임, 욕망에 허덕이며
그리 한세상은 가는 거지.
너도 그 불같은 성미에 하마 재만 남아
이미 해조일랑 잊고 새 불을 피웠을 테지···.
그래, 나도 그래!
그런 거잖아!
어차피 이 세상은
나의 의지완 상관없이 굴러가는거야···
"···혼동강가에 불던 바람 같구나···."
"예?"
"아니야―
에벤키 마을에 살 때 말이오. 바람이 참 매운 곳이었거든.
바람이 이리도 매우니 저 북쪽은 날이 더욱 사납겠네···."
"마님께선 심려를 마시옵소서.
물론 고생이야 하옵시겠지만 미루님까지 뒤따름해 가셨으니, 부디―."
해조야
너 이제보니 교활한 여자였구나···.
"그는 에벤키 족장 쿠이친이 이름 모를 여인에게서 얻은 여섯번 째 아들이지.
얼마 전에 쿠이친이 병들어 눕자 형제들 간에 싸움이 벌어졌는데―
그가 이겼다네.
그들은 그렇게 후계자를 정하지.
나이 갓 스물이지만,
용맹하고 문자 속까지 있어 꽤나 똑똑한 자로 알고 있네."
"···그가 작은 부족들의 우두머리로선 드물게 보는 자란 건 알겠소.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게 있소.
물론 나나이스가 우리편을 들고 후룬이 저 편을 들듯
갖가지 편가르기가 생기는 게 현실이지만,
에벤키는 우리네 피난민들을 받아줄 만큼 아주 유대가 좋았던 쪽인데.
어째서―."
"···글쎄···."
당신은 결국 자신의 욕심 때문에
누이를 불행하게 만들 거다!
"그리 말하지 마셔요, 오라버니.
다만―. 그들은 우리의 적이 되어선 안 되기 때문에!
말해 주세요.
설마 저 건너에 있다는 에벤키가···!!
"해조야, 사내란 족속의 마음을 감상적으로만 읽으면 안된다···.
그는 한갖 서자의 무리에서 일약 후계자가 되었다.
작은 군사적 성과라도 에벤키처럼 좁은 동네에선 신화가 되는 법이지.
너는 그에게 있어 핑계거리일 뿐―
놈이 정말 널 생각해 준다면 이럴 순 없는 거야!
조용히 돌아가 규방이나 잘 지켜라.
가라한은 곧 돌아올 것이고,
그때 무타는 자신의 선택이 무모한 미치광이 짓이란 걸 깨닫게 될 것이다."
"···가라한이 어디로 갔는지 저도 알아요, 오라버니···."
"쓸데없는 소문 따위에 기죽을 만큼 네가 나약한 아이더냐?!"
"아뇨···."
아뇨, 오라버니.
부디 곡해하지 마셔요.
저는 그분이 싫다거나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게 아닙니다.
사실은 저도 그분이
좀 보고프기도 한게죠.
다만,
저는요···
저는요···
오라버니.
크게 불행하지도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을 거예요.
그래요.
그는 성미 불 같고 울분도 많았죠.
아마 억눌려진 야심도 컸을 거예요.
그래서 성미 같은 우리는
서로 상처를 빤히 넘겨보며
참 무던히도 다투고
또 화해했죠···.
하지만 오라버님
모르는 것 같네요.
아무도 생각해주지 않는 것 같네요.
형제 중에서
그렇게나 무시당하던 그가
그 자리에 서기까진
무얼 어찌 살아야 했을지···.
"허면 묻고 싶다.
청년아, 카르마키를 돕는 듯, 훼방하는 듯,
이 전장을 휘저으며 네가 노리는 게 대체 무엇이더냐?
네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라면 차라리
세강자리 저습지 쪽에 너희 땅을 더 넓히는 게 손쉬울 것을!"
"···난 머리 좋은 영감님들이 싫어.
나야말로 묻고 싶다!
대체 그대의 가라한은 제 둥지를 두고 어디 가서 뭘 하고 있는 거냐?
내가 그대를 죽이고 이 전선을 차지한 후에야 달려 올 텐가?
그렇다면 그리 해 주겠다!"
나는 속이 상해서
썩어버리려고 한다!
미운 여자를 차지하고도
모른 척 두고 떠난 놈은
더 밉다.
부아가 치미는
이 어리석음이라니···!
나는 다시는
멸시당하고 싶지 않아!
내 부족이 무시당하게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나는―,
그는 타락해버린 용사,
그는 이기적인 변덕쟁이다.
난 아버지같은 남자는
되지 않을 테다.
해조야!!
널 미워할 테다!
널 뺏아가는 아무르를
증오할 테다!
형제들의 피여,
나를 덮어라!
나는 에벤키를
강하게 만들 테다!
결국 내가 해온 짓은
아버지와 다를 게 없는 거지.
너와 맞닥뜨린 그 순간
그걸 깨달았다.
명분 뒤에 웅크린 내 본심.
널 뺏아가겠단 욕망은 이기적이고,
아무르의 재생을 끊어놓겠단
생각은 야비했다.
하지만 해조야!
난··· 한가지를 더
깨달아버렸다···.
그 무엇보다 난,
네가 보고 싶었던 거다.
"···네가 아무르의 가라한인가?!
정분 나눈 계집 하나 때문에,
제 둥지를 비워두고 돌아다닌다는―
그 가라한이 맞는가?
저 뒤의 마차에 그대의 사냥물을 싣고
신나게 돌아오시는 중인가보지?"
"그래, 내가 그 가라한이 맞다.
너는 행색으로 보아 에벤키로구나.
에벤키가 내게 무슨 볼일인가?
그는 딱 잘라서 인정했다.
해조야, 네 남편의 진짜 아내는
네가 아니다.
그를 조롱했지만
조롱받아야 할 건
나인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이 비가 더욱
차다···.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에
마음을 정해야 해···.
···믿을 수가 없어!
그리 가냘프고 해사한 여자가
철검을 만들고
지옥 같은 원행들을 하다니!!
애비도 모를 애를 낳아 기르면서―
그냥도 버티기 힘든 이 세월을 야장으로
살아내다니!
···단지 아파할 뿐,
부끄러워 하지도 않았다.
서글한 눈을
똑바로 뜨고서
너는 다만 껍질일 뿐
오래 전부터 내가
그의 사람이었노라고.
스스로
속이지 마라,
해조야
···목슴을 걸고
그를 은애하노라고···.
당신께는 미안하지만
이 내 몸이 부족도 하지만,
그래도 그것만은 사실아오
라고··· 했지.
그래―
이제 알겠다.
내가 정말로
화내고 있는 게
무엇인지···,
누구에게인지.
설···마···.
···이 매듭은···
이것으로 정말
마지막이다.
다시는···.
"비록 망국민이었으나 공녀로서 자라왔습니다···.
한께서 스스로 명예를 깎고 위험을 높이고 계심,
자신께서 뉘보다 잘 아시리이다.
답해 보세요···.
하나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걸 버려야 할지 모르는데
두렵지도 않으십니까?
젋어 한때 휩쓸린 마음을
평생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십니까?!
하많이 보았어요!
전쟁이 닥치고 권세바람이 들이칠적마다
맹세 따위 먼지보다 못하더이다···.
세상 본시 그런것이니 그리 살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계집은 더구나 그렇지, 세상천지가 떠들더이다!
이제와 당신들은 아니라고 합니까···!"
추운 강가에 내가 누구를 버려두고 떠나왔는지 아십니까···.
오라비와 부족을 위해 그를 버렸지만,
일평생 두 번째로 살기 위해 머리를 올린 건 아닙니다.
그래요···
조금쯤은 당신을 가슴에도 담았습니다···.
배운대로 세상에 섞여서
그저 살다가리라 맘먹었는데
"보셨군요···.
허면 그 삼엽화살에 묶인 청홍띠가
무슨 뜻인지도 아시겠군요···."
"그대가···
내가 모르기를 원한다면 나는 영영 모를 것이오."
"더 덮어 무엇하리까!
제 모든 어리석은 물음 속에―
제 변명과 제 원망이 그대로 나간 것을···!
허니 제게 사죄하지 마십시오!
하여야, 이몸도 한께 사죄하지 않으오리다!"
"···조각들이 맞춰지는군.
돌아오는 길에 쿠이친의 아들 무타란 자를 만났었소."
나는··· 그다지 공자로서 자라온 사람은 못되오.
흙투성이 전사였고―.
그래서 세세한 사람살이엔 매사 서툴고···
정리 앞에선 도망다녔지.
내가··· 말하는 방법이 모자라더라도 알아주시오.
화살에 청홍띠를 매어 여자의 창에 쏘는 것이
에벤키식의 청혼 풍습이라고 알고 있소.
살대에 묶인 그 매듭편지 대로라면
공녀가 마음 정할 시간도 그닥 충분치는 않겠소.
방금 깨달았소.
아까 내게 외친 물음은 과연 그대 자신에게 물은 것이기도 하지···.
이제 내가 물으리이다."
소원하던 불칼의 비밀도 얻지 못하고
목숨을 걸고 쏜 내 청홍띠 화살···
참 보고프던 사람의 마음 또한
아무런 확신이 없지만···
해조야···.
나는 그래도 전사며 수장이다!
나는 내 후손들이 멸시당하게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비싼 수업료를 치른 이 경험들을 잊지 않을 테다!
그 깃발 아래 네가 없다면···
나는 돌아가는 즉시 결혼할 테다!
신방을 여러 개 차려서 아이도 많이 낳아야지.
강력한 족장이 돼야지.
멀쩡한 얼굴로···
사실은 미친 채로···
일생을 그리 살겠지.
난 그것이 두렵고 슬프다···.
그 깃발 아래···
네가··· 없다면···
사랑한다.
나는 너와 결혼하고 싶다.
소롱 샛강지대 나의 수결깃발이 세워진 곳.
그 아래서 사흘밤새 너를 기다리리.
나흘째 날 해가 뜨면 나는 고향으로 간다.
이것이 나의 뜻,
너는 너의 뜻대로···.
+
뱀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