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낙태여행>
출판사 - 봄알람
저자 - 우유니게, 이두루, 이민경, 정혜윤
수술의 통계적 현실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낙태가 매우 드문 일처럼 여겨지는 것도 현실과 달라요. 낙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행해지는 의료 시술입니다. 한국에서도 그렇고, 일생에서 낙태를 경험하는 여성은 전체 여성의 3분의 1정도 되어요. 그래서 낙태를 비난하는 남성들에게 우리는 이렇게 말하죠. '당신 어머니에게, 이모에게, 할머니에게 가서 물어보세요'"
이런 통계적 사실을 똑바로 보고 있다면 낙태가 비윤리적이고 비난받아야 할 일이라는 생각은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런 오해를 해체해야 한다. 사람들을 낙태권 문제에 더 공감하게 하기 위해서도 이는 중요하다.
"사람들은 낙태를 하는 건 소수의 나쁜 여자들뿐이라고 생각하지만 낙태라는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아주 많은 사람이 경험하는 상당히 보편적인 일이란 걸 이해하면 생명을 둘러싸고 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레베카는 "낙태는 윤리적인 선택"이라고 말했다.
고통을 예방해주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임신을 했을 때 자신이 아이를 낳아 제대로 양육할 수 없는 상황이라 판단할 수 있고, 또 그에게 이미 자녀가 있다면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막중한 책임이 부과되는 일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채 아이를 낳을 경우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을 쏟지 못할 수 있고, 이는 아동학대로 이어질 수도 있다.
"생명을 두고 선택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삶의 일부예요"
현실적으로 페미니스트의 수가 적다면 온라인 공간에서의 싸움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가시적인 전략을 취하느냐에 따라 적은 수로도 커다란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플로랑스는 거듭, 낙태권이 여성 인권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임을 강조했다.
"그에 비해 낙태권이 제대로 보장된 나라는 아직 지구상에 어디에도 없어요"
낙태에 대한 무지와 오해들부터가 그렇다. 우리가 "낙태 합법화를 원한다"고 말하면 어떤 이들은 여자들이 무책임한 섹스를 하고 나서 태아를 죽이려 한다고 받아들인다.
"낙태권에 대해 얘기하면 낙태를 일삼으려는 줄 안다니까요?"
언짢아지는 남자들을 상대로 설명하는 일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할까. 카르멘의 단체가 겪은 일은 이미 우리도 수없이 반복을 보아온 종류의 것이기에 한숨이 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남자들이 화를 낸다는 건 우리가 뭔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죠."
카르멘의 말에 우리는 박장대소했다.
레베카는 설명했다. 유럽의 여러 나라가 지구상 많은 국가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국가들의 낙태불법화를 야기했다. 낙태에 대한 죄악시는 성경에도 코란에도 토라에도 없다는 것이다.
"가톨릭의 경우에는 1862년 교황이 피임에 대해 처음 이야기를 하는데요, 전부 정치적인 맥락에서 하는 얘기예요. 산업화 이후 인구가 더 많이 필요해지면서 이런 수사를 동원한거죠. 지정학적 맥락을 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어요. 성경에 써있지 않아도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써 있어도 말하지 않기도 하니까요."
교회의 낙태 반대 집회들을 떠올리면 성경에 낙태는 죄악이라고 백 번쯤 써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지만, 결국 정치적인 문제다. 그러면서 레베카는 자신의 설명이 개인적인 관점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임신이 여성의 쾌락에 따른 형벌이라는 관념은 사실 '섹스를 했으면 책임을 져라'같은 논리로 여전히 통용된다.
"그런데 씨를 뿌린 남자한테는 책임을 지라고 하지 않잖아요?"
레베카는 어깨를 으쓱했다. 낙태를 할 때에는 무대에 여자만이 존재한다. 그 상황을 감당하고 책임져야 하는 것은 여성이다.
그런데 아기가 태어나면 그는 돌연 아빠의 아이가 된다. 어쩌면 이게 여성의 낙태를 그토록 다 함께 손가락질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아이는 국가와 남성의 재산인데 그것에 대한 선택을 여성이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도 금방 무슨 일인지 이해가 됐다. 한국에서느 낙태약을 처방하거나 사용해본 적도 없으면서 '위험해서 안 된다'고 말하는 의사들이 수두룩하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아직 '낙태'라고 하면 약물 낙태를 떠올리지조차 않고 바로 임신 중절 수술을 상상한다. 낙태에 대한 인식은 여러 요인이 결합된 결과로 만들어지고 거기에는 권력이나 경제 논리도 포함된다. 한국 사회의 터부와 잘못된 정보들, 법적 여건의 열악함 가운데서 낙태를 선택하고 위민 온 웹에 "나 자신에게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는 리뷰를 남긴 여성은 얼마나 현명하고 용감한가.
예컨대 바람을 피우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사람들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일이 반드시 법적으로 처벌받아야 하는 일은 아니라고 레베카는 말했다. 낙태뿐 아니라 누군가가 삶에서 하는 어떤 결정이든 누군가에게는 도덕적 비난거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꼭 법적 판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낙태라는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국가에 의해 처벌받을 죄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어떤 행위에 잘잘못을 판단하게 만드는 사회윤리 안에서 자라났지만 사실 삶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는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것이지요. 개인의 결정을 존중하는 건 사회의 기본이고 낙태도 다르지 않아요."
윤리와 법에 따라 타인이 타인의 삶을 결정하는 사회에 살고 싶은지, 개개인의 상황에 따른 선택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지를 생각하면 답은 명백하다고 레베카는 설명했다.
그런의미에서도 낙태를 개인의 선택으로서 존중하기 위해 낙태와 관련해 근거 없이 자리한 믿음들을 해체하는 일이 정말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