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탕아야···
네가 망친 여자의 인생이 몇 개인데
너는 한 번의 버림 받음으로 그리 울고 부느냐?
세상 여자들이 얼마나 밟히며 울고 사는지
너, 아느냐?"
2
"그 까다롭고 예민하신 비마마께서
요번에 순산을 하셨으니 한시름 놓긴 했지만요···.
기왕에 아드님을 보셨더라면
모두의 사기도 올라가고 좀 좋았을까요?"
"···을화야, 우리들 또한 딸이다.
적어도 딸이―
딸을 그렇게 말해서는 아니된다!"
3
왕비가··· 어찌 이럴꼬!
빼앗긴 궁성보다 남편의 가슴
한자락 얻기에 온 마음이 송곳이 되다니···.
못났구나, 비파녀···.
가엾구나, 여자란 이름이···.
"아가···!
울지 마라, 울지 마라.
엄마가 잘못했다···."
모진 세상 딸로 태어난 것도 서러운데,
세상 어미들이 딸을 낳고
너도 나처럼 살겠구나며 절로 눈물이 난다던데···.
"울지 마라···."
4
"너···는 왜 여기 있느냐?
무슨 낯으로 여기 있어?
저 놈들한테 애걸하려므나!
나는 당신네 새끼를 뱄노라고,
이 애비가 이러저러하다고!
잘 먹여주겠지!
계집이라면 엎어지는 놈들인데 아무렴!
포로라니 가당치도 않고 말고!
원수 놈하고 살 섞고 산 년!
꼴도 보기 싫다.
왜 여기 있니!
왜 여기 있니!
그 더러운 새끼 싸 안고 나가라···
나가란 말이다!!"
"무슨 짓이오!
그만 둬요!
그대 여인네들은,
어찌해 그리 스스로를 박대하오?!
세상 누가 뭐라 해도 당신네들은!
이 사람을 이해하고 감싸주어야 할 것인데···!
여기 누가 이 사람만큼 일했소?
적에게나 던질 돌을 왜 비겁하게 이리 던지오?!
허면 내게도 던져봐―!
나도 놈들에게 몸팔아 목숨 부지했소! 쳐 봐···.
누가 그리 떳떳하오?
왜 우리 끼리 이래야 돼?!"
"···저 년도 미쳤지···.
다··· 무슨 소용이야!
오랑캐를 다 죽인다고
죽은 낭군이 살아돌아 올까···
내 새끼들이 살아올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배 곪긴 한가진데···
내가 누구 좋으라고 미친 년 마냥 일을 했누!
자식 남편―
생 목숨 뜯겨가며···
어른님들이야 좋겠지!
아무렴 우리네 같을라고!
분해 분해 못 살겠네···.
봄이 온들 그게 어디 내 봄일 거나···."
5
"내 손으로 모조리 태워 죽이고 싶지만
고로 일이라면 절벽이니···
애 보기나 거들 밖에···!
절대 죽진 말어!
이 바보같은 여자야.
애미없는 애새끼처럼 못 볼 꼴은 없으니깐."
"고마워요, 청산녀···!
다치지 않았어요?"
"괜찮여···
안죽고 왔구먼."
6
"네 애비도 그러더니
저 애 애비도···
저 애도···.
모다 나만 나무라고 차는구나.
저희들 힘자랑에 저희들 좋을대로
사람 팔자를 휘저어 놓고!!
웃어가며 참아가며···
세월 버팅긴 게 내 죄더냐?!
잘 났구나···
참들 잘 났구나···."
7
"을화야···
왜 사람의 마음 하나가 마음대로 안될까?"
무얼 위해 그 고통을 감수하냐고 물었더냐?
카르마키의 여인아.
그래···
네가 마녀라면 나도 마녀겠지.
종국엔 피를 부르는 목숨들!
부정 않으마!
내게도 그리움과 시새움으로 잠 못드는 밤이 있고
온갖 세상사 때문에 진저리치는 시간이 있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진
저 여인네들이 차라리 부러워서···
한숨 쉴 때도 있다···.
그래, 달리 무어라 답하겠느냐?!
그 모든 것들을 느끼며 견디며···
나 또한 그저 참된 해답을
계속 찾아가는 중일 뿐!
8
"허지만 모르겠다.
내 서방이 이 골짝에 쏟은 피도
아직 안 말랐을걸···.
내가 자네한테 퍼부은 걸
곱씹어서가 아녀.
나는 참말 이젠 인연 맺기가 무섭네···.
사내야 죽어버리면 그뿐이지만
여자 팔자는 어디 그런가?
기다리고··· 애가 끓고··· 괄시받고···
다아 지긋해···."
9
···바리.
당신 말이 멋있어요.
그리고 옳아···.
이미 내 지아비는 죽었지만
내가 반한 분네들은 아름답고 아름다워···
나는 행복한 여자,
복받은 백성이오.
미천한 내 면박에 화도 안내고
내 아기··· 불쌍한 아기···
어여삐 이름까지 주고 간 착한 사람.
소망대로 검도 주었고
더운 가슴 느껴도 보았으니
이제야 덤으로 하늘에 빌린 목숨!
다루를 위해서도
더는 울고 약해지면 안되는거야.
무엇으로 다시 만나든―
절대 그 사람 앞에
부끄러운 모습이고 싶진 않아!
사람 잡는 무기라 소름돋는 일이어도―
내 님 피일랑 아끼고 우리 봄 활짝 피게 도움 닿는 일이라면
나는···
누가 뭐라건
얼마든지 불과 벗해
불과 싸워나갈 수 있어···!
10
그가 누구를
마음에 품건
내가 시새워할 일이 아닌데.
오히려···
그 절벽같은 외로움에
작은 위로가 될까
기도라도 해 주어야
할 일인데···.
내 사람은 될 수 없어도···
하늘 아래 가장 가까운 여인이 나라고
나는 위안삼고 있었던가!
11
죽어라!
모조리 죽어버렷!
거짓 태양의 자식들!
이 더러운 운명의 테두리 안에 얼쩡거리는 사내는 모조리···!
무슨 말로 치장을 하든,
죄 없는 하얀 꽃 위에 핀 왕조란
내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래, 그렇게―
나의 세계도 피의 바다 위에서 세워질 것이다!!
근거 없는 압제자들!
야비하고 허세뿐인 사내자식들아!
너희들의 무덤 위에서···!!
12
"···그래, 나는 마녀다.
헌데··· 넌 무에냐?
지금 가련한 어미역을 떠드는 네가,
자식 손에 선물 쥐어주며
내 침전으로 등 떠밀던 그 곤지녀 맞느냐?!
그 아들이 속으로 얼마나 곪아 들어가든,
상처를 어디다 터뜨리든···
왕이 주는 금부스러기나 나눠주면서
달콤한 눈물을 찔끔대는 아름다운 후궁마마.
대체 여자의 힘이란 것이 매음의 웃음 아니면 구걸의 눈물뿐이더냐?
세상 원망이나 하면서 질질 끌려다닌 인생이 무슨 자랑이더냐?
나는 너 같은 여자를 보면 짜증이 난다!"
13
어쩌다가 여자로 태어나
무지한 오랑캐 늙은 호색한에게 팔려가는 구나.
울며울며 그 머나먼 길 왔다가···.
비록 아주 따습지는 않아도
청수한 젊은 얼굴,
기품있는 그 자태에 마음 홀려
그래도 가슴 뛰고 행복했는데···.
시샘과 욕심이 들킬까봐
신녀 얼굴 바로 보기가 두려웠네.
원도 없고 한도 없는지!
명경 같은 그 얼굴, 난 모르겠네.
딴 여자를 품은 남편이 무에 이쁘다고
목숨까지 내던진 원비 맘일랑 더더욱 모르겠네···.
이런 맘으로―
불쌍해라, 내 아기!
사특한 내 속을 다 보고 다 들을라―.
14
"···여러분들 지금 대체 무엇들을 하고 있소?!"
"남정네들은 이상하구려···.
그 자가 벌인 짓거리를 뻔히 보고도―
그런 자의 입에서 나온 말을
터럭 끝만치라도 믿을 수가 있단 말이오?!"
가라한이··· 어떤 분인지 모두 겪어보고선···
무에가 무서워서!
혀끝까지 나온 말을 밀어넣고
서로를 물어뜯는 거요?
우리 가라한이 모시는 우리 임금님이,
그리 작은 분이실리가 없소!
다 짐작하시지요?!
그 자는 우리 임금을 거짓 내세워
우리를 저 남쪽나라에 팔아 넘기려는 거 아니오?!"
"나···는,
내가 아무르에 불칼을 가져온 사람이오!
누가 뭐래도 그건 사실이오!
···치욕 참아가며 하루 하루···
오직 불 하나에 의지해서···
당신네 남정네가 그 심정을 아오?
죽기보다 괴롭게 몸을 더럽혀가며
오로지 불칼! 불칼···!
어디가 내 목숨 뿐일까?!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었는데···!!
이건 도적질, 강도질이오!
명색 우리 편입네 콧대 세우는 자들이
비단 조각과 창칼로 사람을 갖고 놀다니!
창피하게도 종실 사람을 개로 내세워서···!
대체 여러분들은 분하지도 않소···!!"
15
"공녀로서 일족의 위해 봉사했고,
가문의 영광과 미래를 위해 결혼도 했어요···.
언젠간 아이도 주렁주렁 낳겠죠!
이제 됐잖아요?!
무엇도 아니고 무엇도 아닌,
그저 계집 해조로서―
한 번 울고 다신 아니 울려 갑니다!
제게도 그 정도의 권리는 있잖아요···."
16
"흘기지 말어···.
저놈 하는 양 보니
아라녀 신세도 우리보다
나을 거 하나 없네."
"···아니오.
세상 흘긴 거우."
"그럼 뭐 하나···.
내 뭘 기다리고 제발 미치지도 않는지 모르겠네···.
···여자로 난 죄지···."
17
"여자야,
우리가 나라간의 전쟁을 하는 줄 아느냐···."
"···내 막연히 느꼈다만 과연 너희가 그러하구나···.
네 주인에게 돌아가 이르거라!
우주 만물의 원리가 본시 화합이니―,
본시 둥근 원이요,
위 아래, 안과 밖의 차별있는 것이 이니리라.
모두가 불행해지는데는 원을 깨뜨림 한번이면 족하나,
조금이라도 행복해지는데는 수천 수만번―
원의 어지러짐을 이리 갈고 저리 닦아야 함이나···.
그것이 가볍고 어리석다 말할 것이냐?!
네 주인이 꿈을 이루려면
먼저 자신의 어린애 같은 껍질부터 깨야 하리라!"
"···잘도··· 잘난 척 지껄이는 구나···.
우리 모신께서 왜 널 저어하시는지 알겠다···."
18
"어째서···
그가 나 같은 거 땜에 적의 소굴로 올거라고···.
그를 꾀어서 해칠 건가요?
당신은 전쟁을 이런 식으로 하나요?!"
"···내가 어찌 싸우든 네가 따질 처지일까?
그게 어째서 오느냐고? 너한테 미쳐 있기 때문이지!
난 근본적으로 사내들의 짐승같은 색욕따윈 믿지 않지만―,
어느 정도 기간까진 그게 효과있는 것도 사실이거든.
너 또한 그를 품고 있지?
얼마나 많은 계집들과 사내들이
그 한갖되고 믿을 수 없는 '감정'이런 것 때문에
스스로 파멸해 갔을까···.
사실, 나는 네가 특별히 미운 건 아니다.
네 세월을 알고 보니 너도 내 딸 될 자격이 충분하더구나···.
세상도 그 사내도 네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았지.
어떠냐?
불쌍한 아무르의 여자야.
내 품으로 들어오면 널 죽이진 않겠다.
넌 훨씬 다르게 살 수도 있단다···."
"···싫소!"
"가소롭고 우습구나···.
어째서 여자들이 수치심도 증오심도 모르는지 알 수가 없다.
배신과 능욕의 더미가 여태 모자라?
보렴― 네 꼴을!
노예나 벌레처럼 이리저리 채이며 살다 가도 좋단 말이냐!"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 마음을 다 아는 척 얘기 했군요.
당신은 그래도 여신이고
무녀중의 무녀일 텐데
하늘님과 사람네 이어주는 그런 사람이 어째서!
사람을 이용해 사람을 해칠 궁리나 하면서!
대체 무에가 잘났다고 남의 인생을 비웃는 거요?
아무리 하찮고 초라해 보여도
나는 노예나 벌레의 마음으로 사랑한 것이 아니오!"
19
여인을···
함부로 망치는 사내란 짐승을 경멸하면서,
한 여인의 안부만 내리 묻는 저 사내,
모진 단심이 왜 이다지 미울꼬?!
가엾은 내 딸들!
나도 모를 내 속을 너희가 먼저 알아···
그리 울며,
목숨을 내던졌더냐!
20
···어찌해서
어찌해서 우리는 이리 싸워야 할까.
서로의 생각을 나누어 볼 여유조차 없이···.
네 마음을 안다.
하지만,
만약 따뜻한 가슴이 없는 야망이란
네가 증요하는 폭압들의 또다른 이름이 아닐까···.
21
굶주린 색귀,
추한 독사처럼이라도···
나는 명을 부지하리라!
그 여자를 없애리라!
모두를 무릎 꿇리리라!
어긋난 왕!
날조된 여신일망정,
카라는 고개 숙이며 살지 않는다···!!
22
"수장의 부인이란 무얼 하며 지내는 건지 모르겠지만
불일 같은 거 당신한테···
더 해끼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난···
그래요.
소호바르에서처럼 일하고 싶어!
당신이―
그리도 열심히 싸우듯이 나도···
나도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23
"괜찮아요!
다 괜찮아―!
제발 마음 닫지 말아요!
내가 왜 모를까봐··· 청산녀!
제발― 청산녀···."
"이녁···
미안허우···
나, 이녁이··· 불쌍해서."
24
"엄마가 네 동생을 밴 것 같구나.
용서해주렴.
엄마는 정말.
몹시도··· 몹시도 기쁘단다···!"
아라녀
···그래
···그랬지.
25
"어느 마음이 먼저였던가···.
용의 심장을 도려내어 용을 미치게 할려는 전략과
그저 그 계집을 없애 버리고픈 심보···.
어느 쪽이든 한심하군!
성공할 수 있었을 테지만···,
실패했고, 결국 또 내 아일 잃었다.
···여자로 하여금 죄없는 여자를 치게 했으니
너희는 나의 이 이율배반을 비난해도 된다."
26
"여기 네 백성의 피는 없구나.
네 말대로였다면 누구도 궁을 해방시킬 수 없었겠지."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후회하고 있다···
이래서 계집은 안된다니까."
"아니야···
그래서 되는 거다."
어쩌면 좀 더 잘 할 수도 있었겠지.
좀 더 현명해질 수도 있었겠지.
그러나
삶에 연습이란 없고,
꿈에 실험이란 없다.
때론···
악몽일지라도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도 있는 것이다.
"나는 다시, 또··· 다시··· 태어날 테다."
27
그리고 벗들아, 우리도 계속 가자.
이 세상에는 없고
어쩌면 저 세상에도 없을
그 어딘가를 향해서.
잠시나마
그런 나라, 그런 꿈을
꾸게 해주신 이가 계셨다.
끝내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홀로 꼿꼿이 서 있던 그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