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서울시 송파구 롯데월드 앞에서 직장인 유모씨(58·여)는 지인들과 여행을 다녀온 뒤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던 중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눈가에 피 흘리는 분장을 한 학생들과 수녀복을 입은 학생들이 흰 렌즈를 끼고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날은 롯데월드에서 개최된 ‘호러 할로윈 :THE VIRUS’ 파티 날. 11월4일까지 진행되는 롯데월드 할로윈 파티를 즐기기 위해 분장한 학생들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할로윈데이가 10월31일인 것은 알았지만 주말부터 할로윈축제를 하는 것을 알지 못했던 유모씨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을 뻔했다.
◆젊은층 문화로 파고든 ‘할로윈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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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31일. 오늘은 바로 할로윈데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축제기간 내내 10~20대 젊은 층이 좀비, 귀신이나 유명 캐릭터 코스튬을 하고 거리를 활보한다. 붉은색 페이스페인팅과 핏자국처럼 꾸민 의상으로 할로윈 축제를 즐기는 분위기가 급속도로 확산됐다.
매년 10월31일 할로윈데이를 맞아 유통업계 및 식품업계는 이색상품과 프로모션을 잇따라 출시하며 소비를 촉진하는 데 여념이 없다. 미국의 대표적인 축제인 할로윈은 미국 전역에서 매년 10월31일 열린다. 아이들이 괴물이나 마녀, 유령으로 분장하고 이웃집을 찾아다니면서 ‘과자를 안 주면 장난칠 거야!’라는 의미의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을 외친다. 대개 이웃들로부터 사탕과 초콜릿을 얻는다.
사실 할로윈은 켈트인의 전통축제 ‘사윈’에서 기인한 것이다. 고대 켈트족은 한해의 마지막 날이 되면 죽음의 신에게 제의를 올려 죽은 이들의 혼을 달래고 악령을 쫓았다. 이때 악령들을 두려워한 사람들이 자신을 같은 악령으로 착각하도록 유령이나 괴물 복장을 하고 즐기는 축제였던 '할로윈데이' 축제 문화가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도 깊숙하게 자리잡았다.
특히 할로윈데이를 앞둔 지난 주말 서울시내 중심가 여기저기에 귀신이나 가지각색 코스프레를 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적지 않았다. 백화점과 영화관등에서도 ‘할로윈데이’를 겨냥한 캐릭터나 코스프레 상품 판매 등 할로윈데이를 적극적으로 상술에 이용하기 시작했다.
◆방송가에도 퍼진 ‘할로윈’ 문화
사진=놀라운토요일, 파자마프렌즈, SM공식인스타그램 |
지난 27일 방송된 케이블채널 ‘파자마 프렌즈’에서는 여자연예인들이 할로윈 파티를 맞이해 섹시 커플, ‘처키, ‘미니언즈’ 등으로 색다르게 변신하는 모습이 방송됐다. 할로윈 데이를 앞두고 방송계에서도 할로윈 특집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여기에 연예인 등 셀럽들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할로윈데이를 즐기거나 셀피(selfie)를 찍어 할로윈데이 홍보를 톡톡히하고 있다.
전국 시장 속 핫한 음식을 걸고 노래 가사 받아쓰기 게임을 하는 세대 초월 음악 예능프로그램 tvN '놀라운 토요일'에서도 할로윈 특집으로 유령신부, 직쏘, 가오나시, 슈퍼마리오 등으로 분한 모습이 방송되기도 했다. 또 지난 25일 방송된 Mnet 음악프로그램 '엠카운트다운'에서는 경찰제복, 뱀파이어 등으로 변신한 연예인들이 화려한 퍼포먼스를 뽐냈다.
뿐만 아니라 SM엔터테인먼트는 매년 성대한 할로윈 파티를 즐기기로 유명하다. 최대 규모의 회사답게 이수만 대표와 프로듀서뿐 아니라 소속 연예인 모두 평소와 다른 분위기의 파티, 코스프레 복장 등을 하고 매년 할로윈 파티에 참석한다. 몇년 전 처음 시작할 때는 생소했으나 시간이 흘러 현재는 SM 아이돌 팬들이 기대하고 소속 연예인들도 즐기는 SM 고유의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할로윈데이 분장 ‘논란’도
지난 2017년 페이스북 페이지 '간호학과, 간호사 대나무숲’에 올라온 간호사 분장을 규탄 글. /사진=페이스북 캡처 |
이렇듯 할로윈은 이제 우리에게 어느정도 익숙해진 문화가 됐지만 할로윈데이 때마다 논란은 식지 않는다. 일부는 몸에 꼭 맞는 간호사 복장을 하고 망사스타킹에 가터벨트를 한다. 그런가 하면 가슴골이 보이는 수녀복도 등장한다. 일부에서는 호러 영화 ‘컨저링’에 출연하는 수녀의 모습을 재연하기도 한다.
사실상 축제를 이유로 특정 직업군을 성적 대상화하거나 비하하는 일이 발생하는 셈이다. 지난해 페이스북 익명 페이지인 ‘간호학과, 간호사 대나무 숲’에는 “또 할로윈 시즌이 왔다”면서 그냥 일반 코스프레를 하면 되는데 왜 꼭 성적으로 코스프레하는지 도무지 제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러면서 “왜 굳이 가슴 푹 파인 옷, 짧은 치마, 몸에 달라붙어 움직이기도 불편해 보이는 옷을 입고 코스프레하는 겁니까. 도대체 왜 그래요. 저희가 야동에서 환자에게 성적 행위를 하는 간호사, 원나잇을 즐겨하는 간호사, 이런 일부 시선을 무시하고 개선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데요”라고 토로했다.
이어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로 ‘간호사’만 쳐도 ‘코스프레’라는 추천 해시태그가 뜹니다. 제발 의료인으로서의 권위를 떨어뜨리지 말아 주세요. 정말 화가 납니다”라고 덧붙인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11년 옥주현은 마이클 잭슨의 영정 사진 앞에 제사상을 차려놓은 사진과 파티에 참여한 동료 한명이 유관순 열사를 코스프레한 사진 등을 트위터에 올렸다. 옥주현은 사진을 올리면서 ‘마이클잭슨을 위한 제사상도 차린, 참 갖출 거 다 갖춘 할로윈파티였음’, ‘한잔 걸치시고 블랙베리 쓰는 유관순 조상님과 넝마주의 미이라&맞아 죽은 유 병장 귀신’이라는 글을 올렸었다.
당시 이 사진은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유관순 열사를 희롱했다”는 논란이 일었고 소속사 측이 공식 사과문을 남기며 일단락됐다.
◆연예인의 ‘할로윈’ 홍보, 외국문화 따라하기?
할로윈데이 축제에 열광하는 연예인들. 어쩌면 이들이 할로윈데이 문화 확산에 큰 기여를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연예인들이 패션이나 분장을 통해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며 할로윈데이의 훌륭한 홍보수단이 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할로윈데이 분장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면서 일반인들도 적극적으로 즐기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영어유치원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할로윈 문화를 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외국 유학을 다녀온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성인에게도 많이 퍼졌다”면서 “연예인들이 경쟁적으로 본인의 할로윈 분장 사진을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것도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연예인들의 할로윈데이 문화 챙기기가 무분별한 외국문화 따라하기 아니냐는 부정적인 지적도 일고 있다. 할로윈데이는 본래 성직자들이 죽은 이의 모습을 하고 악귀를 쫓는다는 켈트족 신앙에서 시작한 미국의 행사지만 국내에서는 무분별한 파티 등 여흥을 일삼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국문화를 지나치게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다. 단순히 외국문화를 모방하기만 하고 그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불미스러운 사건사고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단지 하루를 즐기고 소비하는 파티나 유흥이 아닌 건강한 할로윈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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