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드라마

토리들 안녕!! 메리 크리스마스

진작 디토로 이사 왔었는데 이번 달 현생이 너무 바빠서 이제야 글 옮겨

그냥 글만 옮기려고 하니까 이 글 의식의 흐름대로 막 써서 오탈자도 많고 기준도 없고 엉망이더라고

그래서 수정도 좀 하고 디토가 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 보충도 했어

후궁견환전에 등장한 황자들 외가도 추가하고 



일단 본문의 품계와 기적은 후궁이었던 시기 기준이야. 태후, 태비 시절은 따로 언급할게 ex) 덕비(O), 효공인황후(X) 

가족은 아버지는 무조건 넣고 조부와 형제는 1품급 고위 관료만, 그 외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람만 적었어

여자 가족들은 황실과 관련 있는 사람 위주로 적었고

그리고 작위와 관직 두 가지 모두 적었어. 작위는 공후백자남을 말하고 관직은 태사, 영시위내대신 등등 이런 것들이야 

왜냐하면 작위는 명예고, 관직은 권력이라...작위만 높고 관직은 낮은 경우도 종종 있거든 

예를 들어 황후의 직계 조상들에게는 자동으로 초품인 일등공이 주어지고 작위는 세습되는데 

딸이 황후가 되거나 조상의 작위를 세습 받아서 작위는 높은데 본인 관직은 낮으면 사실상 명예만 있고 권력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그리고 이해를 돕기 위한 배경으로 신분제와 대기제도 두 가지만 언급하고 시작할게 




신분제 

청나라의 신분은 크게 기인(특권계층), 민인(평민), 천민으로 나뉘어


기인은 다시 4개로 나뉘는데

1) 상삼기인: 상삼기(양황기, 정황기, 정백기)에 속하는 기인으로 최고 계층이자 고위 관직을 독점하는 세력 

2) 하오기인: 하오기(정홍기, 양백기, 양홍기, 정람기, 양람기)에 속하는 기인으로 주로 중하급 관료들 

3) 내무부포의: 상삼기의 포의로 황실 직속 부서에서 일하는 계층, 대부분 궁녀가 이 계층 

4) 하오기포의: 하오기의 포의로 왕부 직속 부서에서 일하는 계층 




대기 

견환이 희비로 환궁할 때 황썅이 견환을 ‘양황기로 대기하라‘라고 했었잖아 

견환처럼 하오기에서 상삼기로 올라가는 것, 몽군기나 한군기에서 만군기로 올라가는 것, 포의에서 본기로 올라가는 것을 ‘대기’라고 해 

간단히 말하면 신분 상승이지 











첫 번째 그룹 (10황자 생모, 2황자 생모, 4황자 양모) 



10황자 생모 온희귀비 뉴호록씨 


기적: 양황기 만주(상삼기인) 

→ 온희귀비는 1681년에 귀비에 책봉됐는데 입궁해서 첫 품계를 귀비로 받은 후궁이야

측복진에서 귀비가 되거나, 후궁 제도가 완비되기 전에 비정식 비(妃)로 수십년간 머물다가 진급한 경우는 있어도 어린 후궁이 커리어를 귀비로 시작한 건 전무후무했어

효의인황후가 죽은 뒤 황후의 역할을 했던 후궁이기도 하고, 이런 이유로 지위도 조금 특수했어

온희귀비의 장례는 황후와 동일하게 5일간 조회를 정지했고, 두 자 시호를 받은 유일한 귀비이기도 해

그리고 뉴호록씨는 청나라 전체를 통틀어 최고 명문 가문이야

가장 많은 황후를 배출한 가문이기도 하고, 고위관료와 복진 등등 모든 면에서 최상류층을 많이 배출한 가문

뉴호록씨 중에서도 액역도의 후손인 ‘홍의공가’가 가장 강한 가문이었고, 홍의공가 중에서도 16방인 알필륭의 후손들이 가장 강했어

온희귀비 자매는 뉴호록씨 홍의공가 16방 출신 



조부: 개국오대신의 수장 액역도 

→ 뉴호록씨가 이렇게 강할 수 있었던 이유인 인물ㅇㅇ

일단 액역도는 후금의 관료라서 밑의 다른 관료들하고는 체계가 좀 달라

후금 시절 서열은 한(황제) > 패륵 > 패자 > 오대신 > (이하생략)이었어. 오대신이 누르하치 한과 고위 황족들 바로 다음인거지

개국공신들은 더 있는데 개국오대신(뉴호록 액역도, 과이가 비영동, 동악 하화례, 동가 호이한, 각이찰 안비양고)은 다른 차원의 명예였어

이 중에서도 누르하치 직속이자 수장격인 액역도와 비영동은 한 단계 위였고

특히 액역도는 누르하치에게 특별할 수밖에 없었던 게 누르하치의 첫 번째 신하가 액역도야

아직 아무것도 아니었던 22살 누르하치가 우연히 액역도의 고모집에 며칠 머물게 됐는데 거기서 19살이었던 액역도를 만났어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고 액역도가 누르하치를 따라 집을 나가겠다고 선언했지

그렇게 둘이 한집에서 살다가 정확히 3년 뒤 누르하치의 첫 전투가 시작됐어. 그때의 총 병력 집안 노비 100명ㅋㅋ 

다른 신하들은 이후에 하나씩 정복하면서 투항한거고 액역도는 아무것도 아닌 시절에 만난 첫 신하니까 다를 수밖에 없었지

물론 공적도 제일 많았다고 기록되어있고

그래서 액역도의 자녀는 누르하치가 궁에서 키우고, 액역도가 죽은 뒤에는 태묘에 배향하고, 제사도 후대 황제들이 직접 지냈어 



조모: 화석공주 목고십 (태조의 4공주) 


부친: 초품 일등공 겸 정1품 태사 겸 보정대신 알필륭 

→ 강희제는 8살에 황제가 돼. 근데 8살짜리 애가 직접 통치를 할 수는 없으니까 4명의 대신들에게 황권을 맡겨서 대신 국정을 운영했어

그게 보정대신이었고 그 중 한명이 알필륭이야

그리고 위에서 황후의 아버지에게는 일등공이 주어진다고 했는데, 뉴호록씨 집안의 일등공들만 황후와 상관없이 받은거야

알필륭은 자녀들이 죄다 늦둥이라 효소인황후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등공이 됐었고 딸이 황후가 되는 것도 못보고 죽었거든

황후의 조상 자격으로 받는 공작은 승은공이고, 자기 공적으로 받는 공작은 따로 호가 붙는데 알필륭은 과의공이었어

당연한 얘기지만 같은 일등공이라도 사실상 자기 공적으로 받은 일등공들이 승은공보다는 위였음



백부: 팔대신의 수장 도이격  

→ 직계가족 외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만 언급하기로 했었는데 온희귀비 숙부들 중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너무 많아

그래서 다 빼고 도이격만 잠깐 언급하고 갈게

태조에게 오대신이 있었다면 태종에겐 팔대신이 있었는데 그 중 한명이야

그냥 간단하게 청나라가 망할 때까지 가장 추앙받았던 공신들은 위의 개국오대신 5명 그리고 서목록 양고리, 뉴호록 도이격, 과이가 도뢰, 마가 도해야. 모두 태묘에 배향된 공신이고. 이걸로 도이격의 정치적 위상은 말 다한거지ㅇㅇ

그리고 가족 내에서는 사실상 온희귀비의 할아버지같은 백부였어

왜냐하면 알필륭의 어머니인 목고십공주가 액역도가 죽고 난 뒤에 의붓아들인 도이격과 재혼하거든(놀라지말자! 시대는 후금이다ㅋㅋ) 

알필륭에게 도이격은 이복형이자 새아버지인거지. 그래서 도이격의 작위도 알필륭이 계승했고 



형제: 일등공 겸 영시위내대신 법객, 일등공 겸 영시위내대신 겸 의정대신 윤덕, 일등공 겸 영시위내대신 겸 의정대신 아령아

→ 한 줄에 쓰기 위해서 품계는 생략할게

먼저 의정대신은 밑에서도 몇 명 더 나올텐데 권력의 핵심이야. 심의나 군사자문했던 청나라 초기 최고 핵심기구의 대신들

보정대신 색니나 알필륭도 당연히 의정대신 출신이고

법객은 서자이지만 효소인황후, 온희귀비 자매의 유일한 동복형제이고 알필륭의 성장한 아들 중 장자라 무려 4살에 일등공이 돼

(마찬가지로 효소,온희 자매도 서녀야ㅇㅇ 알필륭 정실부인은 황족이고 생모 서서각라씨는 측실)

윤덕은 옹정제의 공신이야. 옹정이 공신들을 기리기위해 만든 현량사에 13황자 등등과 함께 들어간 인물이기도 하고

아령아는 유일한 적자로 17살에 일등공이 됨. 참고로 보보경심에 등장한 아령아는 아니야. 이 아령아는 옹정이 즉위하기 병으로 죽어

여담으로 아내가 덕비의 여동생이라 10황자의 외숙부이자 4,14황자의 이모부임



자매: 몽골 파림왕비, 효소인황후(강희제 황후), 보국공 계부인(태종의 손주며느리)



고모: 태종 대복진, 정친왕 적복진, 경근장친왕 적복진 

→ 태종 대복진만 언급하고 갈게. 청에서의 황후에 해당하는 호칭이 후금의 대복진이었어

태종에게는 정실부인이 3명이 있었어. 첫 번째 대복진이 뉴호록씨, 두 번째 대복진이 오랍나랍씨, 세 번째 대복진이 박이제길특씨

그리고 박이제길특씨가 대복진이던 시절에 후금에서 청으로 국호를 바꾸면서 박이제길특씨가 첫 번째 황후 효단문황후가 된거지



질녀: 간혜친왕 적복진, 17황자 적복진 

→ 17황자가 후궁견환전의 과군왕이야. 그래서 완벽의 모델을 17황자 적복진 뉴호록씨로 보기도하더라

위에서 말한 아령아의 딸인데 효소인황후의 조카인 동시에 옹정제의 이종사촌이기도 해서 강희제 며느리들 중 집안이 투톱으로 좋았던 복진이야

정말 다시 봐도 파격적인 완벽의 신분상승ㅋㅋ







2. 황태자 생모 효성인황후 혁사리씨 


기적: 정황기 만주(상삼기인) 

→ 강희제의 첫 번째 황후야. 22살에 태자를 낳고 난산으로 죽은 비운의 황후지

효성인황후가 간택됐을 때 하인 집안이란 소리까지 나와서 혁사리씨를 약한 집안이라고 오해하기도 하는데 그건 절대 아니야

상대가 뉴호록씨라서 그렇지 혁사리씨도 청나라 초기의 대단한 명문가였어

근데 초기 한정이라는게 조금 흠이지

그래서 수정하면서 동가씨랑 순서를 바꾸는게 낫지않을까...생각도 해봤는데 이 글은 보보경심 시작(1704년)을 기준으로 하기로 하고 그냥 둘게

참고로 혁사리 가문은 태자 1차 폐위(1708년) 때 몰락해....태자가 외가를 말아먹음 



조부: 초품 일등공 겸 종1품 내대신 겸 보정대신의 수장 색니 

→ 위에서 언급한 알필륭과 같은 보정대신이야. 보정대신 4인방의 수장이기도 했고 

하지만 실질적인 권한은 오배와 알필륭이 더 컸지

당시 보정공신 4인방의 정치적인 포지션을 보면 (황권) 색니-소극살합-알필륭-오배 (신권)이었어 

색니와 오배가 심각하게 대립했고 소극살합과 알필륭은 중립이었지만 각각 색니, 오배에 더 가까웠어 

그래서 태황태후가 알필륭의 딸이 황후로 내정되어 있는 분위기를 깨고 색니의 손녀를 황후로 뽑은거야 

신하들은 ‘하인의 딸’이라는 소리까지 하면서 반발했지만 태황태후가 ‘만주 기인이면 됐지 뭘 따지시오?’ 라면서 밀어붙였어 

그리고 색니의 일등공 작위는 효성인황후의 조부 자격으로 받은거지만 그 전에 자기 공적으로 일등백 작위를 받았어

백작 작위도 초품이라서 자기 힘으로 초품까지 올라간 인물이야



부친: 초품 일등공 겸 정1품 영시위내대신 갈포라 


숙부: 초품 일등공 겸 정1품 영시위내대신 겸 의정대신 색액도, 황태자당 핵심인물

→ 아버지 갈포라보다 할 얘기가 많은게 숙부 색액도야

강희제가 16살이 될 때까지 권력은 오배와 알필륭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이 때 강희제는 색액도를 자주 불러서 싸움 놀이나 하면서 놀았어

근데 그 싸움 놀이가 사실은 자기 친위 부대를 만드는거였지

그리고 기회를 봤다가 색액도와 함께 오배를 쳐. 오배가 실각한 다음 색액도는 강희제의 오른팔이 됐고

이 색액도가 황태자당의 중심이 돼 

하지만 혁사리 가문을 말아먹은 장본인이기도 한...

강희제는 태자가 엇나가는걸 색액도 탓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색액도를 죽여

오배조차도 공적은 인정해주면서 연금했던 강희제가 색액도는 모든 공적을 취소하고 본조 제1의 죄인이라고 하면서 죽여버림

근데 문제는 태자가 색액도 복수를 하겠다면서 돌아다녔다는거지.......색액도를 죽인건 강희제인데ㅋㅋ 

이것때문에 강희제는 태자가 모반을 할거라는 의심을 품게되고 결국 태자 폐위의 불씨가 됨

태자가 폐위될 때 색액도의 아들들도 죽였고 이 이후 혁사리 가문에서 고위 관료는 거의 씨가 말랐어

그리고 보보경심 8황자 대사에서 나오는 분이 이 분

‘태자에겐 색액도가 있고 큰형에겐 명주가 있고 4형에겐 융과다가 있지만 난 아무것도 없었어!!’ 



형제: 초품 일등공 겸 정1품 영시위내대신 상태 


자매: 평비 (강희제 후궁) 

→ 조졸한 황자 윤기의 생모이고 생전에는 책봉을 못 받았다가 죽은 뒤 평비로 추봉됐어

음....밑으로 정식 책봉 못 받은 후궁들이 몇 명 더 나올거라서 미리 언급하고 갈게

우리가 알고 있는 청나라 후궁 품계는 강희제 초기에 만들어진거야. 하지만 강희제 중기까지도 완벽히 정리가 안 됨

그래서 강희제 초중기에는 정식 책봉을 받은 후궁과 책봉을 못받은 비정식 후궁이 공존해

책봉 못받은 후궁들도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비(妃)로 책봉은 해야되겠는데 비 4자리가 모두 차서 책봉을 못한 경우 → 이런 경우는 대우는 비 급으로 받는 비정식 비(妃)로 뒀어. 평비나 밑에 나올 동가귀비가 이런 케이스

하나는 귀인은 아쉽고 빈 이상으로 책봉하고 싶은데 출신이 부족한 경우 → 13황자 생모같은 경우

하나는 신분이 낮아서 후궁으로 책봉을 안 한 경우



고모: 안친왕 2계복진 

→ 보보경심에서 명혜, 명옥 자매 소개할 때 '어머니는 안친왕의 딸 화석격격' 이랬잖아

그 안친왕이야ㅇㅇ 명혜 어머니는 안친왕 측복진 소생이라서 혁사리씨가 외할머니인건 아니지만



질녀: 10황자 계복진 

→ 10황자의 첫 번째 부인은 몽골 왕녀인 박이제길특씨인데 일찍 죽었고 두 번째 복진이 혁사리씨

그리고 명옥은 가상 인물이야. 10황자 첩 중에 곽락라씨는 있는데 8황자 복진과는 전혀 관계없고 성만 같은 인물







3. 4황자 양모 효의인황후 동가씨 

강희제가 후궁 제도를 만들고 처음으로 후궁을 책봉한 해가 1677년이야

효의인황후는 이 때 귀비로 책봉됐는데 다음해 효소인황후가 사망해서 품계는 귀비였지만 사실상 황후 역할을 대신했어

1681년에 황귀비로 진급했다가 1689년 죽기 전날 황후가 됐고

효의인황후는 자녀가 없었어. 공주를 하나를 낳았지만 한달도 못 채우고 사망했고

대신 양자인 4황자를 친 아들 이상으로 키웠어

청나라는 빈(嬪) 이상의 후궁에게만 양육권이 있는데 4황자를 낳았을 때 덕비의 품계가 낮았기때문에 4황자는 효의인황후가 키웠거든

강희제가 정무를 볼 때 4황자 데리고 다니면서 눈도장도 찍게 하고 정치도 가르쳤었고 죽을 때까지 4황자 교육에 신경썼다고 해

효의인황후는 4황자를 자기 자식처럼 애정주면서 키웠고 4황자도 친어머니로 따랐으니까 친 모자관계나 다름없었어

그래서 효의인황후의 동생인 융과다가 4황자의 오른팔이 된거였고



기적: 정람기 한군(하오기인)→양황기 한군(상삼기인)→양황기 만주(상삼기인) 

→ 동가씨는 여러번 대기했는데 원래는 한군기의 하오기 소속이었고 성도 동씨였어

하지만 강희제가 황제가 되면서 강희제의 생모인 효강장황후의 친정이라는 이유로 1669년에 상삼기인 양황기로 대기해

이후로는 황후의 친정은 상삼기로 대기하는게 원칙이 됨

그리고 1688년에 동국유의 청으로 효강장황후의 직계는 만군기로 다시 대기했고 성도 동가씨로 다시 돌아갔어

 


조부: 초품 일등공 겸 종1품 태자태보 동도뢰 

→ 효의인황후의 할아버지이자 강희제의 외할아버지야. 강희제와 효의인황후는 사촌 근친이었어 



부친: 초품 일등공 겸 정1품 영시위내대신 겸 의정대신 동국유 

→ 강희제의 외삼촌으로 내대신, 영시위내대신을 역임했고, 가르단을 평정할 때 오른팔 역할을 했던 강희제의 최측근이야 

참고로 동국유는 황8자당이었어. 황태자vs1황자vs8황자로 싸우고 있을 때 누가 봐도 인물은 8황자였으니까

이 때 4황자는 태자 밑에서 숨죽이고 있을 때였고 아들 융과다부터 본격적으로 황4자당에 들어가기 시작해 



형제: 초품 일등공 겸 종1품 이부상서 융과다, 황4자당 핵심인물 

→ 강희제가 사망할 때 융과다의 직책이 보군통령이었는데, 보군통령은 유사시 수도를 통제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가진 직책이었어

게다가 융과다는 강희제의 유언을 받아적은 고명대신이기도 했음

그래서 옹정제 황위 찬탈설이 그렇게 많았던거야.....옹정제 최측근이자 외숙부인 융과다가 군사력으로 통제하고 강희제 유언을 전해서 

원래 융과다는 황태자vs1황자vs8황자로 싸울 때만 해도 8황자를 지지했어 

그런데 4황자가 야심을 가지고 있다는걸 알고 4황자로 갈아탐 

핏줄은 아니었지만 효의인황후나 동가귀비에게 아들이 없었고, 효의인황후가 4황자를 친 아들처럼 키웠기 때문에

융과다는 4황자를 자기 조카라고 생각했어. 4황자도 융과다를 자기 외숙부라고 생각했고 



조카: 정1품 영시위내대신 순안안 

→ 순안안은 4황자의 친 여동생이자 14황자의 친 누나인 고륜온헌공주의 부마야 

온헌공주는 강희제와 황태후가 제일 아꼈던 공주라고 알려져 있어

그래서 청나라의 공주들은 거의 몽골로 시집갔는데 강희제의 공주들 중 유일하게 온헌공주만 만주족과 혼인해서 가까이 살았지

안타깝게도 20살의 나이에 요절하지만...

참고로 순안안은 8황자당이었어. 그래서 액부 작위를 박탈당하고 잠깐동안 연금되기도 했었음



자매: 동가귀비

→ 동가귀비는 입궁해서 약 20년간은 정식 책봉을 받지 못하고 비공식 비(妃)였어 (평비 항목 참고해줘)

그랬다가 1700년에 귀비로 책봉돼서 강희제가 사망할 때까지 22년간 황후 역할을 대신해

보보경심은 1704년부터 시작되니까 보보경심 전체가 이 시기에 해당하지

그리고 약희 수녀 간택 때 드라마에서는 ‘황후께서 거절이 힘들어 권력의 균형을 위해 폐하의 궁녀로 보내셨다’ 라고 했잖아

원작 소설에서는 귀비로 나오거든. 이때는 황후가 없고 동가귀비가 황후 역할을 하던 시기라서 소설이 맞아

동가귀비는 1년간 건륭제를 키우기도 했었는데 그 공으로 옹정이 즉위한 뒤 황귀비로 존숭됐어. 최종 시호는 각혜황귀비



고모: 효강장황후 (강희제의 생모, 순치제 후궁) 








==================================================================================








두 번째 그룹 (1황자 생모, 5-9황자 생모, 4-14황자 생모, 3황자 생모) 



4. 1황자 생모, 8황자 양모 혜비 나랍씨 


추가) 혜비는 원래 엽혁나랍씨라는 설이 정설이었는데 최근에 오라나랍씨 설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어

일단 혜비의 아버지는 '낭중 색이화'야 (낭중은 관직이고 색이화는 이름)

건륭제 시기 저서인 <영헌록>에 '혜비는 엽혁나랍 명주의 누이'라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엽혁나랍씨 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졌거든

물론 명주의 누이라는 건 명백한 오류야

하지만 혜비의 아버지 이름이 색이화고 명주의 사촌 중에 색이화라는 사람이 있으니 조카를 누이로 잘못 적었다고 해석했었어

이렇게 되면 엽혁나랍 색이화의 관직은 이부시랑인데 왜 혜비의 기록에는 아버지가 낭중으로 기록되어 있을까? 라는 의문이 남지만 승진 전의 관직을 적는 일은 다른 후궁들에게도 종종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별로 문제가 되지는 않았어


하지만 강희제 초기 후궁들의 대우를 알 수 있는 문서들이 나오면서 반론이 생겼어

혜비는 엽혁나랍 직계 가문의 후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낮은 대우를 받았거든

다른 황제라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만 강희제는 총애보다는 가문으로 후궁을 대우했기 때문에 의아한 부분이 있었지


그런데 이름은 색이화, 성은 나랍씨, 관직은 낭중, 가문은 명문가 방계 혈통이지만 포의, 나이는 혜비 부모 연령대

모든 조건에 딱 맞는 오라나랍 색이화의 기록을 발견하면서 혜비의 아버지는 엽혁나랍 색이화가 아니라 오라나랍 색이화라는 설에 무게가 실림

물론 이것도 영헌록의 기록때문에 의문은 남아

하지만 영헌록이 원래 오류가 있는 편이고 명주와 1황자가 혈육 이상으로 가까웠던 건 사실이니까 착각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봐


어쨌든 지금은 양쪽 설을 다 적어놓을게

지우고 수정하자니 이러다가 또 다른 근거가 나와서 혜비는 엽혁나랍씨가 맞았다! 라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서ㅋㅋ





1) 오라나랍 버전


기적: 정황기 포의(내무부포의)

→오라나랍씨는 누르하치가 정복한 해서여진 오랍부 부족장 가문의 후손들이야

당시 오랍부 부족장이 포점태인데 이 포점태의 직계 후손들은 팔대가문에 준하는 명문가가 됨

그리고 포점태의 방계 친척들은 세력에 따라 상삼기부터 포의까지 나뉘었어

혜비 가문은 부족장과 혈연이 먼 방계에 세력도 약했기때문에 정황기 포의로 편입이 됨

시작은 옹정제의 효경헌황후(견환전 황후)가 혜비 가문이랑 가장 유사해

혜비는 포점태의 10촌 손녀, 효경헌황후는 12촌 손녀로 먼 방계 가문이었고 둘 다 정황기 포의로 시작했지

하지만 효경헌황후의 아버지는 고위 관료가 되면서 정황기 만주인으로 신분 상승을 했고 혜비네 가족은 못했고 이게 두 가문의 미래를 가르는 큰 차이점이 됨


부친: 정5품 낭중 색이화





2) 엽혁나랍 버전


기적: 정황기 만주(상삼기인) 

→사실 혜비는 1.5그룹 정도가 적당해. 위 세명과도 다르지만 아래 세명과도 달라 

하지만 강희 4비를 묶어서 얘기하고 싶어서 두 번째 그룹으로 넣을게 

혜비는 누르하치가 정복한 해서여진 엽혁부 부족장 가문의 후손인데 사실 가문 자체만 보면 혁사리, 동가보다도 위인 아주 명문가야

그래서 아래 세명과는 다르다고 한거고 위 세명과 다르다고 한건 혜비 아버지의 품계가 낮아서



부친: 정2품 이등남 겸 종2품 이부시랑 색이화 



당숙부: 정1품 대학사 명주, 황장자당 핵심 인물 

→ 품계만 봐도 감 오겠지만 혜비 집안에서는 혜비 아버지보다 당숙부가 더 중요했어 

보보경심 8황자 대사에서 ‘큰형에게는 명주가 있고’의 명주가 이 사람이야 

위에서 혜비 집안 자체는 아주 명문가라고 했었지? 

만약 혜비가 색이화의 딸이 아니라 명주의 딸이었으면 효소인황후/온희귀비 자매 바로 아래였을거야 

그정도로 명주의 힘이 강했다는 말ㅇㅇ 

그래서 4황자나 8황자와는 달리 1황자는 대놓고 황태자와 대립하기도 했어 

명주는 강희제의 엄청난 신임을 받아서 형부상서, 병부상서, 이부상서, 태자태사까지 요직이란 요직은 다 차지하는데 1황자가 유폐될 때 같이 실각함 



고모: 정친왕 계복진, 2계복진(소태태후) 

→ 자매가 한 남자한테 시집가서 계복진과 2계복진이 된 케이스인데 계복진은 특별한게 없고 2계복진만 잠깐 언급하고 갈게 

혜비의 작은 고모, 즉 정친왕 2계복진은 원래 몽골 린단칸의 3대복진이었어

이해하기 쉽게 한족식으로 바꾸면 몽골의 제3황후격이었지. 린단칸이 죽은 뒤에는 태후가 됐고 

하지만 청태종이 몽골을 정복하고 칸의 지위를 (강제) 양위 받으면서 린단칸의 부인들은 청나라 황족들과 재혼해

소태태후도 그 과정에서 정친왕과 재혼한거고 







5. 5-9황자 생모 의비 곽락라씨 


기적: 양황기 포의(내무부포의)→양황기 만주(상삼기인) 

의비도 혜비와 마찬가지로 1677년에 의빈이 됐고 1681년에 의비로 진급했어 

의비 가문이 언제 포의에서 본기로 대기했는지는 알 수 없는데 아마 강희 연간으로 추정돼 

확실한건 강희 초중기에는 포의였고 옹정-건륭 시기에는 상삼기인이었음 

그리고 곽락라씨는 명혜, 명옥 자매로 익숙할텐데 의비와 8황자 복진이 친척인건 아니야 

동족은 맞는데 거의 뿌리찾기 수준으로 올라가야 혈연관계를 찾을 수 있는 수준이라... 



부친: 종2품 공부시랑 삼관보 


자매: 귀인 곽락라씨 

→ 강희제의 후궁이야. 고륜각정공주와 조졸한 황자 윤위의 어머니이고 

이걸로 강희제의 부인 네 가문 자매 완성이네 

효성-평비 혁사리자매, 효소-온희 뉴호록자매, 효의-각혜 동가자매, 의비-귀인 곽락라자매 







6. 4-14황자 생모, 13황자 양모 덕비 오아씨 


기적: 정황기 포의(내무부포의)→정황기 만주(상삼기인) 

→덕비는 4비들 중 가장 늦게 후궁이 됐고 빈에 책봉되는 것도 2년 늦어

4황자를 낳고 그 다음해인 1679년에 덕빈이 되거든 

하지만 1681년에 혜,의,영빈과 함께 진급해서 비 책봉은 같이 받았고

덕비 가문은 포의 출신인데 강희 연간에 덕비 직계 가족들은 정황기로 대기했어

먼 친척들까지 포함한 전족 대기는 옹정이 즉위한 다음에 했고

그리고 포의라고 해도 아래의 13황자, 8황자 외가랑 비슷한 수준이었던건 아니야

덕비 집안은 증조부 때부터 누르하치의 신임을 받아서 벼슬을 하던 집안이고, 덕비 증조부인 액백근은 누르하치가 궁에서 키웠거든



조부: 초품 일등공 겸 종1품 내대신 액삼 

→ 일등공은 황태후의 조부 자격으로 받았다고 쳐도 액삼이 생전에 받은 관직이 종1품 내대신이야. 이걸로 말 끝났지ㅇㅇ 

오아씨는 덕비 덕분에 포의에서 벗어났으니 완전한 명문가로 일으켜 세운건 덕비지만 덕비 이전에도 평범한 포의 가문은 아니었어



부친: 초품 일등공 겸 정3품 호군참령 위무 


자매: 일등공 아령아 정부인 

→ 황실과 관련된 것 위주로 언급하기로 했지만 덕비 여동생은 예외로 잠깐만 언급하고 갈게 

ㅇㅋ댓글중에 덕비가 총애 받았느냐고 물어본 댓글이 있었는데 그 답으로 딱 좋은 예라서...덕비 집안의 성장을 보여주는 예시이기도 하고

강희제는 처제들을 뉴호록 가문의 효소인황후 남동생들에게 시집보냈어. 황후 셋을 인척 관계로 묶은거지 

효성인황후의 여동생은 3남 법객의 두 번째 부인이 됐고, 효의인황후의 여동생은 4남 안주의 부인이 됐어 

그런데 황후의 여동생들에 이어 덕비의 여동생을 7남 아령아의 정실부인으로 시집보냄

중요한건 법객과 안주는 서자고 아령아는 적장자라는거지. 알필륭의 작위를 계승한 적장자 

참고로 뉴호록 가문 적자들은 공주나 황족과 결혼했어. 서자인 법객의 첫 번째 부인도 황족이었고 

아주 파격적인 결혼이었고, 강희제가 덕비를 얼마나 챙겼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7. 3황자 생모 영비 마가씨 


기적: 정황기 만주(상삼기인) 

부친: 종5품 원외랑 개산 


→ 영비도 혜비, 의비와 마찬가지로 1677년에 영빈이 됐고, 1681년에 영비가 됐어

일단 마가씨는 굉장한 명문가야 

위에서 가장 추앙받았던 공신 9인방 중에 마가 도해가 있었지? 영비는 도해의 친척이야

하지만 도해의 직계 후손이 아니라 방계 친척이고, 영비 아버지의 품계도 낮아서 영비 집안은 강한 편이 아니었어





강희4비

위의 혜비, 의비, 덕비, 영비가 강희 4비야

1681년에 같이 비(妃)로 책봉 됐고 모두 서열은 같지만 배위 순서는 혜비>의비>덕비>영비 순이었어

후궁견환전 보면 같은 비(妃)라도 자리 배치나 인사 받는 순서는 화비>단비>경비>제비 순이었거든 

이 순서가 배위 순서야


강희4비는 강희제의 조강지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황후와 황후 역할을 했던 후비들 중에 효성인황후, 효소인황후, 효의인황후, 온희귀비는 일찍 죽었고 반대로 동가귀비는 늦게 시집왔고

강희제가 어릴 때 시집와서 죽을 때까지 고위급 후궁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강희4비라서 대우도 보통의 비(妃) 이상으로 좋았어

뒤에 나올 8황자 생모도 품계는 비(妃)인데 강희4비랑 다른 비(양비, 선비, 성비, 화비)는 대우에서 차이가 많이 났었지


강희제는 효소인황후가 죽은 뒤부터 황후 책봉을 하지 않았어. 그래서 약 45년간 황후 자리가 공석이었음

효의인황후도 황귀비 자격으로 내명부를 통솔하다가 죽기 하루 전날 황후가 됐고, 효의인황후가 죽은 뒤에는 아예 황귀비 책봉도 하지 않아

그래서 강희제 때의 실질적인 대우는 귀비=황후, 4비=귀비, 양선성화비=비 였어

또 온희귀비가 죽은 뒤 6년간 귀비 자리가 공석이었는데 이 6년동안 강희4비가 내명부를 통솔하기도 했고

중심은 혜비와 영비였고ㅇㅇ 황태후가 명문가 출신이라는 이유로 혜비와 영비에게 최종 권한을 줬거든 







==================================================================================








세 번째 그룹 (13황자 생모, 8황자 생모, 17황자 생모) 



8. 13황자 생모 민비 장가씨 


기적: 양황기 포의(내무부포의) 

→민비가 전형적인 내무부 포의 출신 후궁이야 

평범한 포의 집안에서 평범하게 궁녀로 들어와서 후궁이 된 뒤에 높은 품계는 받지 못한 전형적인 포의 출신 후궁

민비는 생전에는 책봉을 받지 못했고 대신 1699년에 죽고난 뒤 민비로 추봉을 받았어

한번에 비(妃)로 추봉한 것 보면 강희제가 상당히 총애하긴 했던 것 같음

13황자의 생모였기 때문에 옹정이 즉위한 뒤 제대로 신분상승 했는데 일단 품계는 경민황귀비로 올라갔어

장가 가문은 포의에서 벗어나서 양황기로 대기했고

또 황귀비는 황귀비릉에 따로 매장하는게 원칙이었는데 이거 무시하고 강희제의 경릉으로 이장함

후궁이 황제릉에 매장된 최초의 사례



부친: 정6품 효기교 석색 

백부: 정4품 이등시위 해관 

→ 민비 아버지 관련해서 하나 짚고 넘어갈게 있는데 민비 친아버지가 석색이 맞긴 해

하지만 석색은 민비가 어렸을 때 죽었고 민비는 큰아버지인 해관의 딸 자격으로 궁녀로 입궁했어 

그래서 공식 기록에서는 해관을 민비의 아버지로 기록해. 해관은 백부이자 양부로 생각하면 될 듯함







9. 8황자 생모 양비 위씨 


기적: 정황기 포의(내무부 신자고포의) 

부친: 정5품 내관령 아포내 


→ 양비는 출신이 왜곡돼서 알려졌어. 먼저 왜곡 안된 신분은 위의 민비와 거의 똑같아

내무부 포의 출신이고 궁녀로 들어와서 높은 품계는 못 받은 후궁

양비는 민비와 달리 생전에 비(妃)로 책봉되기는 하지만 8황자가 결혼까지 하고 난 뒤에 빈(嬪)에 책봉된거라서 진급은 아주 늦었거든

양비로 진급한 연도는 기록이 없지만 1707년까지 양빈으로 기록되어 있으니까 빨라도 1707년 이후야

그러니까 보보경심 초반에 양비라고 등장한건 작은 고증 오류....저 때는 양빈이 맞아

그래도 비(妃)는 최대 4명까지 둘 수 있다는 법을 처음으로 깬 후궁이기도 하니까 강희제의 총애를 받았던건 확실함

신분이 낮아서 진급이 늦었던 것뿐이지


그럼 왜 미천한 신분으로 왜곡되었느냐? 

양비는 신자고 출신인데 만주어인 신자고를 한족 학자들이 해석을 잘 못해서 벌어진 일이야 

신자고에는 포의도 있었고 죄를 지어서 노비가 된 사람들도 있었어

근데 학자들이 신자고 전체를 죄를 지어서 노비가 된 집단으로 해석하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야 

양비는 확실한 포의 출신이야

노비는 관직을 가질 수 없었는데 양비는 아버지, 할아버지, 형제들, 조카들 전부 관료였거든

형제들 중에 정2품 내무부 총관까지 올라온 사람도 있었고







10. 17황자 생모 근빈 진씨 


기적: 양황기 포의(내무부포의) 

부친: 정4품 이등시위 진희민 


→ 후궁견환전의 과군왕이 17황자야

견환전에서는 원작 봉호를 따와서 서태비로 등장했었는데 실제 과군왕의 생모는 근빈이야

강희제 말년인 1718년에 근빈으로 책봉되었다가, 옹정이 즉위하고 1726년에 근비로 올려서 최종 품계는 비

후궁 시절에는 포의였는데 1734년에 양황기 본기로 대기해서 태비 시절에는 상삼기인이었어

민비, 양비랑 같은 포의이긴하지만 민비, 양비는 만주족이고 근빈은 한족이라서 굳이 따지자면 살짝 아래







==================================================================================







네 번째 그룹 (21황자 생모) 



11. 21황자 생모 후궁 진씨 

부친: 진옥경 


→ 후궁견환전의 신패륵이 21황자야

완벽이 옥요한테 신패륵 어머니 신분이 낮은건 괜찮냐고 했던거 기억하니? 

황자와 후궁상대로 신분 운운하는 완벽의 패기가 어이없긴 했지만 신패륵 어머니 신분이 진짜 낮긴 낮았어

민인 출신이었거든......민인은 원칙적으로 후궁은커녕 궁녀도 될 수 없었어

하지만 강희제는 장난 지역 여성들을 뽑아서 입궁시켰거든. 장난 지역 여성들이 미녀로 통했어서(...) 

이 여성들은 교육받고 궁녀가 됐다가 일부는 후궁까지 됐는데 21황자 생모가 이런 과정으로 후궁이 된 케이스야

21황자 생모 외에도 강희제 말년에 총애 받아서 황자를 낳은 어린 후궁 6명 중 5명이 장난 지역 미녀들이었어

대신 민인 출신 후궁들은 현역으로는 빈(嬪) 이상으로 올라갈 수 없었어

후대 황제가 효도의 의미로 선황제의 후궁 품계 높이는건 관례였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태빈으로 올라갈수는 있었지만

강희제는 장난 민인 출신 후궁들에게는 황자를 낳더라도 정식 품계를 주지 않아서 21황자 생모는 후궁 시절에는 품계가 없었어

나중에 옹정이 즉위하면서 귀인에 됐고, 건륭이 즉위하면서 희빈으로 추존받은거지

그러니까 후궁견환전에서 희태빈이라고 불렀던건 고증 오류였고 그 시절이면 귀인이 맞아










-끝-



그리고 질문해준 댓글 덕분에 답댓글도 나름 길게 썼었는데 그거 그냥 날려버리려니까 아깝더라고

그렇다고 본문에 다 추가하자니 스압이 감당이 안 되고

또 이 글 스압 줄여보겠다고 썼다가 지워버린게 많아서 이 글만으로는 이해안되는 것들도 있을것같거든

그래서 댓글에 썼던 내용들이랑 보충 설명 필요한 것들은 정리해서 나중에 새 글로 쪄볼게 





  • tory_1 2017.12.25 21:30
    톨아 고마워~
    지난번에도 봤었는데 ㅎㅎㅎ다시 읽으니까 좋네
    다시 보보경심 보고 싶어진다 ㅎㅎㅎ
  • tory_2 2017.12.25 23:03
    와! 이런거 좋다. 고마워. 잘읽을게.
  • tory_3 2017.12.25 23:30
    와 ㅇㅋ에서 글 봤었는데 왔구나! 찐톨이 글 보면서 보보경심 정주행 하고 싶어졌어 8ㅅ8! 정성 가득한 글 잘 읽었어!
  • tory_4 2017.12.25 23:48
    진짜 잘봤어 진짜진짜.. 지식이 풍부해지는 느낌이야 담에 새 글 찌는 것도 꼭 봐야지
  • tory_5 2017.12.25 23:51
    나 ㅇㅋ에서도 이글 너무 좋아해서 스크랩하고 가끔 봤었는데ㅠㅠㅠㅠ 토리도 왔구나 또 볼 수 있어서 너무 좋다!!
  • tory_6 2017.12.26 00:54
    청대 드라마 보다보니 관심은 많아졌는데 중국어 1도 못해가지고ㅜㅜ 얻는 정보에 한계가 많아서 늘 아쉬웠는데 이렇게 글 쪄줘서 정말 고마워!
  • tory_7 2017.12.26 14:13
    전 글 댓글들도 진짜 너무 좋았었는데 ㅠㅠㅠㅠㅠㅠ 그치만 글 옮겨와줘서 넘 고마워 ㅠㅠㅠㅠ 드월방에서 젤 좋아한 글 시리즈가 이거랑 후궁견환전 꽃시리즈였는데 그 중 하나가 일루왔네!!!! 넘넘넘 좋아ㅠㅠㅠ
  • tory_8 2017.12.26 17:42
    다시봐도 저런 쩌는 외가를 두고도 황제가 못된 10황자는.... 10황이 보통만 됐어도 황권 레이스는 없었을거 같은데 얼마나 노답이면 외가에서도 안밀어줬을까 싶다 진짜.
  • tory_9 2017.12.26 22:49
    진짜 대단하다!
  • tory_10 2017.12.27 11:46
    전공인거야? 전공이라도 해도 정말 박식하다. 대단해, 정말....
  • tory_11 2017.12.27 21:02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2/07/03 00:43:06)
  • tory_12 2023.10.14 13:44
    구룡탈적
  • tory_13 2023.12.22 01:16
    너무 좋다
  • tory_14 2023.12.27 22:37

    고마워!

  • tory_15 2023.12.29 22:53
    너무재밌게읽었어
  • tory_16 2024.01.21 08:30
    뒤늦게 잘 보고 가 고마워!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조회
전체 【영화이벤트】 <링> 나카다 히데오 감독 작품 🎬 <금지된 장난> 구마 시사회 17 2024.05.21 1920
전체 【영화이벤트】 여성 공감 시사회 🎬 <다섯 번째 방> 시사회 9 2024.05.21 1891
전체 【영화이벤트】 이주승 X 구성환 찐친의 카자흐스탄 힐링 여행기! 🎬 <다우렌의 결혼> 무대인사 시사회 46 2024.05.17 5298
전체 디미토리 전체 이용규칙 2021.04.26 577960
모든 공지 확인하기()
14 중드 후궁견환전) 등장 인물들 처소 배치도 19 2018.04.28 3944
13 영드 빌어먹을세상따위) (스포O) 빌어먹을 세상 따위.gif 14 2018.04.04 5637
12 중드 사극) 후금~청나라 후궁 제도 변천사 + 측복진 18 2018.04.02 9651
11 중드 사극) 적복진, 대복진, 계복진, 측복진, 서복진 이런게 궁금해 16 2018.04.01 5309
10 미드 굿파이트) 미드 추천: 여주인공, 그리고 범죄수사추리스릴러 드라마 11 2018.03.26 6997
9 중드 후궁견환전) (역피셜) 옹정 후궁들의 가문 19 2018.03.21 9422
8 미드 아웃랜더) 아웃랜더 인터뷰, 유튜브 보면서 알아낸것들 (19금 포함) 24 2018.03.04 54203
7 미드 넷플릭스) 넷플릭스 베이직은 화질이 너무 안좋은데 나만그러니? 9 2018.02.28 14433
6 중드 후궁견환전) 궁녀들 사회생활 쩐다 46 2018.02.13 5377
5 미드 아메리칸호러스토리) 시즌별 미니 개인소감, 스포주의! (나톨은 로아노크가 제일 무섭다...) file 35 2018.02.07 5404
4 미드 아웃랜더) (스포)시즌1-3 논스톱으로 달린 후기 5 2018.02.03 5632
3 중드 [보보경심,후궁견환전] 잡다한 청나라 역사 배경 정보들 20 2017.12.26 9727
» 중드 [보보경심,후궁견환전] 구룡탈적+견환전 등장 황자들 외가 정리 (글이전+수정) 16 2017.12.25 7377
1 일드 도망치는건부끄럽지만도움이된다) 무료로 보는 법 (불법x) file 14 2017.11.28 9962
목록  BEST 인기글
Board Pagination 1 2 3 4 5 6
/ 6

Copyright ⓒ 2017 - dmitor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