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날이 흐리기도 하고, 아래 미아리고개 글이 있길래 그 동네 살다가 겪은 경험을 하나 풀러 왔어.
나톨은 기가 센 편이기도 하고 성격 자체가 무뎌서, 음산한 장소에 가도 쎄한 기분을 느낄지언정 귀신을 직접 본 적은 없어.
딱 한 번을 제외하고는.
n년 전에 우리 가족은 성신여대역에서 길음역으로 넘어가는 미아리고개의 주택단지에 살았어. 점집 많은 그 동네.
주인집이 친절해서 4년 정도 무탈하게 살다가 사정이 생겨 이사를 결정하고 날짜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어.
여름이라 날이 너무 더워서 방의 침대들을 내버려두고 부모님, 나, 여동생, 이렇게 네 명이 거실에 이불을 깔고 함께 자곤 했어.
높은 지대 주택의 꼭대기 층이어서 거실 한 면의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자면 시원했거든.
그렇게 며칠을 자다가 문득, 한밤중에 잠에서 깼어. 비몽사몽한 눈으로 시야에 들어오는 거실을 죽 둘러보는데,
다음날 아침, 아빠가 보이지 않았어. 공포방 토리라면 능히 예상했겠지만 아빠는 야근으로 귀가조차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만 들었고.
귀신을 본 게 생전 처음이었지만, 그리 무섭진 않았어. 그 남자는 무해한 느낌이 들었거든. 그래서 아빠라고 착각했던 거고.
집 안에 있었다는 게 조금 찜찜했지만, 곧 이사를 갈 집이었으니까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
괜히 집 안에서 이 얘기를 꺼내면 그 귀신이 듣기라도 할까봐 입을 닫고 있다가, 며칠 뒤 엄마랑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말을 꺼냈어.
엄마는 나톨보다도 기가 세고 귀신을 본 경험도 없다고 알고 있어서, 그저 내 이야기를 듣고 겁을 내실까 신기해 하실까 궁금했어.
그런데 반응이 둘 다 아니더라고.
“그럼 그게 진짜 귀신이었구나. 나도 본 거 같아.”
같은 날은 아니었지만, 다같이 거실에서 자던 어느 날 한밤중에, 문득 남자 팔이 옆으로 누워 자고 있던 엄마를 뒤에서 끌어안더래.
당연히 남편이겠거니, 하며 약간 몸을 뒤척이던 엄마는, 새삼스럽게 눈 앞에 남자의 등판이 보이는 걸 깨달았대.
아빠의 등이.
역시 잠에 취해 있었고, 딱히 위협적이거나 음산하거나 하는 특이사항이 없었기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다시 잠에 빠져들었던 엄마는 다음날이 되어서야 오싹했다고 하더라고.
둘다 명확히 본 건 아니지만, 덩치나 실루엣이나 이미지를 말하다보니 나와 엄마가 목격한 귀신은 같은 귀신인 거 같았어.
그래서 바로 귀신을 많이 보는 편인 동생에게 전화를 했어.
전봇대 그늘 아래 숨어 있는 몰골이 엉망인 귀신이라던가, 건너편 집 복도의 불이 인적도 없는데 자꾸 켜지는 이유라던가,
천장을 빠르게 네 발로 기어다니는 귀신이라던가, 공연장 무대 위 앙상블 틈에 숨어 있는 귀신이라던가…..
아무튼 이런저런 귀신을, 늘 보는 건 아니고 꽤 자주 보는 아이라서, 당연히 이 귀신을 알 것 같았어.
귀신이 있다는 걸 확인사살 당하고 싶지 않아서 동생보다 엄마에게 먼저 얘기를 했던 건데, 목격자가 둘이니 확인을 안 할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바로 전화를 해서 말했지. “나 집에서 귀신 봤다?”
딱 한 문장 말했는데,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이렇게 대꾸하더라.
“아, 그 아저씨 귀신?”
난 귀신이라고 밖에 안했는데. 무서워서 더 얘기를 못하고 끊고 나중에 집 밖에서 얘기를 꺼냈어.
귀신을 한 번도 못 본 언니의 눈에 보인다니 찝찝하다고 말하는 동생에게 이사 갈 거니 괜찮겠지, 하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하다가 말했어.
밤에 자고 있는데 문득 옆이 서늘해서 잠에서 깼는데, 그 새끼가 바로 옆에 누워서 소름끼치는 목소리로 집요하게 이 말을 계속 반복더라고.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이사 가는 곳까지 따라올까 조금 걱정했지만, 별다른 일 없이 잘 살았고, 요샌 다시 미아리고개 바로 옆 동네로 이사 와서 역시 잘 지내고 있어.
동생은 여전히 드문드문 귀신을 보지만 무사히 잘 지내고 있고.
몸을 너무나 기괴하게 움직여서 결코 사람일 수 없는 형상이었고, 기운이 너무 좋지 않아서 길을 잘못 들은 척 태연하게 자리를 벗어났대.
순간적으로 예전 저 집의 귀신이 다시 자기를 발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한동안 그쪽으론 안가겠다고 하더라고.
아빠는 본 적 없는데 엄마 끌어안았다는 얘길 나중에야 듣고 노발대발 하셨음ㅋㅋ
여하튼 미아리고개 그 동네는 지금도 자주 지나다니는데, 가로등이 많아져서 길 자체는 밝지만 문득 서늘할 때가 있어.
직접 귀신을 보지 못하는 나에겐 그저 서늘함 뿐이지만, 글쎄, 누군가에게는 무엇인가가 잘 보일지도 모르겠다. 내 동생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