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생
1983년 그룹 체커즈로 데뷔
1984년 브레이크 후 약 2년간 사회현상 수준의 인기를 누림
1992년 체커즈 해산 후 발매한 솔로곡이 200만장의 히트를 치면서 세기말까지 긴 전성기를 누린 보컬리스트
후지이 후미야(藤井フミヤ)
작은 체구(163cm)와 귀여운 외모 덕에 데뷔 이후 쭉 아이돌 취급을 받았지만 보다시피 의외로 데뷔 나이가 늦음 (21살).
체커즈는 멤버 전원이 후쿠오카 쿠루메시의 양키 출신들로, 이미 만들어져 활동중이었던 밴드가 발굴돼 데뷔하는 과정에서 소속사가 아이돌 노선을 잡은 것이기에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있는 편이었던거. (사실상 아이돌 노선의 주 이유는 후미야의 외모 때문이었음)
그래서 동시기 전성기를 누렸던 80년대 아이돌중에서도 나이로는 최고참인 편이고 다운타운의 2명도 후미야보다 연하라서 헤이헤이헤이 출연 당시 후미야에게 답지않게 깍듯하게 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음. (어느 정도냐면 1980~1982년에 데뷔해서 후미야보다 선배인 아이돌 대부분이 후미야보다 연하임)
참고로 후미야(체커즈)는 80년대 중반부터 톤네루즈와 자주 꽁트를 찍었고 사적으로도 사이가 굉장히 좋았기 때문에 방송가에서 톤네루즈파로 분류돼서 다운타운과의 출연은 음악방송인 헤이헤이헤이 말곤 거의 없었다고. 몇년전 다운타운 예능에 후미야가 출연했을 때 다운타운이 직접 그렇게 말하기도 함.
그것과 별개로 다운타운 하마다는 개인적으로 후미야를 동경해서 후미야가 자기들 방송에 출연하면 의식한다고 마츠모토가 놀린적도 있음ㅎ
체커즈 브레이크 당시 후미야의 저 한가닥만 길게 기른 앞머리와 옆머리를 반삭 수준으로 깎는 지금으로 치면 투블럭인 헤어스타일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이후 후미야는 약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또래 남자들이 동경하고 흉내내는 패션리더 자리를 지켜옴.
남성아이돌 하면 당시에도 쟈니즈가 꽉 잡고 있던 때였는데, 체커즈는 후미야의 가창력과 불량군단이라는 이미지덕인지 남성층 인기와 지지도 있는 게 쟈니즈와의 차별점으로 자주 거론되었음. 실제로 "체커즈에는 동정이 아무도 없다", "소년A로 신문에 실린적이 여러번 있다" 같은 발언을 체커즈 멤버들이 아무렇지 않게 하기도 했고... 이후 기무타쿠가 등장하기 전까지 남자들에게도 인기있는 남자아이돌 하면 후미야였음.
70년대때부터 이어져온 쟈니즈의 견고한 성벽을 깨뜨린 최초의 아이돌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실제로 체커즈 최전성기 85년도에 처음으로 쟈니즈가 브로마이드 판매량 1위자리를 빼앗김. (그리고 쟈니즈는 체커즈 이후로 타소속사 남성아이돌의 음방출연을 견제하게 된다..)
물론 여성인기도 엄청나게 많았음. 귀엽게 생겼는데 양키에 인싸 그리고 일단 노래를 존나 잘하니까 인기가 없었을리가... 키가 작은 것도 본인이 컴플렉스로 여기기보다는 셀링포인트로 써먹는 편이었음. 오히려 내 키가 작아서 체커즈가 성공한거 같다는 발언을 하기도 함.
후미야: 미키마우스 같은 놈이 촐랑거리니까 귀엽게 보이지 않았겠어요?
80년대 후미야의 다양한 스타일링들
(이건 결혼 발표 직후인 1990년인데 저 다이아몬드 피어스가 화제가 되었음)
매번 바뀌는 후미야의 헤어스타일이 컴백 때마다 주목을 받았고 목걸이, 반지, 피어스 같은 악세사리들도 화제의 대상이었음.
후미야가 당시를 회고하며 말하길, 뭘 해도 유행이 되니까 다음번엔 뭘 유행시키지? 같은 마음가짐으로 즐겼다고 함. 눈알모양 반지 같은 해괴한 장신구도 후미야가 하고 나오면 품절이 되고, 왼쪽 귀에만 하는 피어스도 유행했음. 실제로 후미야는 방송가에서도 세련된 이미지, 패션의 최첨단을 달리는 이미지로 통해서 패션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았음. (어느 방송에서는 후미야한테 그 헤어커트하는데 1억 정도 드나요? 라고 장난삼아 물어보기도...)
리젠트 헤어를 고수하던 수많은 불량소년들이 하루아침에 죄다 후미야를 따라해 헤어스타일이 격변했다고 그 시대 학창시절을 보냈던 연예인들이 입을 모아 말할 정도. 게닌 사마즈의 미무라 왈, '내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펼쳐보니 남자애들이 전부 체커즈 헤어였다'
참고로 80년대 남돌하면 체커즈, 히카루겐지가 대표적이다보니 일본지식인 같은 곳에서 히카루겐지의 센터였던 모로호시와 체커즈의 후미야 중 누가 더 인기 있었느냔 질문이 꾸준히 올라오는데 다들 그룹인기는 히카루겐지, 개인인기는 후미야였다고들 카더라... 사실 두 그룹은 전성기가 달라서 단순비교는 어려운편임. 체커즈의 전성기는 84~86년 히카루겐지 전성기는 87~89년. 멤버들 나이대도 거의 10살이 차이나다보니 라이벌보다는 선배와 후배 느낌이 강했음.
나이대도 전성기도 비스무리했던 소년대와는 한눈에 보기에도 신경전이 느껴질 정도였는데(세월이 흐르고 본인들이 직접 그때 사이 안좋았고 서로 견제했다고 얘기함) 히카루겐지는 나이차랑 경력차도 많이 나고 히카루겐지가 아이돌로 터졌을때 체커즈는 아이돌에서 밴드로 안정적으로 잘 자리잡았던 시기였어서 음악방송에서 같이 출연해도 서로 장난치고 하면서 사이좋게 지냈음.
소년대와 체커즈의 신경전에 관해 소년대 멤버 히가시야마가 몇년전 풀어준 썰 하나. 소년대는 지금까지도 쟈니즈의 특징으로 여겨지는 백턴 등 본격적이고 과격한 안무를 선보인 그룹이었는데, 소년대가 드물게 백턴이 없는 곡으로 리허설하는 걸 후미야가 보고는 '소년대 이번엔 백턴 안하네?' 하고 말을 걸었다고 함. 그 얘기 듣고 소년대 멤버들이 본무대에서는 백턴을 넣어 춤췄다고ㅋㅋ 지금은 친하대!
이쯤에서 체커즈 시절 활동곡중에 내가 좋아하는 노래(무대)들
1. ONE NIGHT GIGOLO (1988)
댓글 보면 일본인들이 슬리퍼 얘기를 많이 꺼내는데 이유는 이게 당시 "톤네루즈의 여러분덕분입니다" 라는 방송에서 "킬유" 라는 가사에 맞춰 톤네루즈 멤버 키나시 노리타케를 슬리퍼로 때리는 꽁트에 쓰인 곡이기 때문임.
10대도 아니고 반짝반짝 왕도아이돌 노선도 아니었던 체커즈가 약 2~3년의 핫했던 전성기를 등진 80년대 후반 빛을 보였던게 바로 예능에서의 활약이었음. 톤네루즈의 최전성기에 톤네루즈 예능에 거의 반고정으로 출연하면서 화제성을 이어감. 섹드립, 자학개그 등을 해도 망가지거나 지켜야할 이미지가 없는 체커즈여서 가능했던 일ㅋㅋ
이 노래가 꽁트에 처음 쓰이게 된 것도 키나시가 이 곡을 부르는 후미야를 밈화시킨게 계기였음. 이 꽁트가 워낙 히트쳐서 차트아웃한지 한참 지나고도 음악방송에서 꽁트 자료화면으로 소환되고 콘서트에서 팬들이 이 노래 전주만 나와도 웃게 됐다는 슬픈 사연이 존재함.
2. Gipsy Dance (1988)
정말 단순하게 이 무대의 후미야의 헤어, 의상이 내 취향이라서. 80년대에 크롭티 소화하는 26살 남자 어떤데... 개인적으로 88년 상반기 후미야가 섹시함으로는 최고라고 생각한다...
3. OH!! POPSTAR (1986)
본인들 작사작곡이 아닌 남이 만들어준 곡으로 활동했던 83~86년 시기중에 이 노래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냐고 물으면 그건 아닌데.. 활동당시 스타일링이 마음에 드는 무대가 많아서 이 노래를 뽑았음. 특히 썸네일의 위는 남학생용 가쿠란, 아래는 스케반 스커트를 입은 스타일링이 당시에도 파격적이라서 나오는 음방마다 위는 남학생 아래는 여학생이냐며 호들갑이었던...
저 스커트 의상때 기왕 치마 입는거 팬티도 벗어버리자 해서 노팬티로 무대 섰다고 함(....)
그리고 후미야는 아직 체커즈 시절이었던 1990년 6월, 27살의 나이에 고등학생 때부터 사귀었던 동창생과 결혼했음.
(1988년에 당시 여자친구였던 부인 마치코와 찍은 사진)
부인과는 동갑이고 고향도 같음. 사귄건 1980년 후미야가 고3이었을 때부터인데, 10년간 탈없이 쭉 사귄건 아니고 이런저런 고생길 끝에 이어졌다고. 첫번째 위기는 1981년 마치코가 도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였고(당시에는 후쿠오카현이랑 도쿄도 사이의 전화요금이 엄청나게 비싸서 전화도 제대로 못했다고 함) 두번째 위기는 1984년 후미야가 전국구 아이돌스타로 빵 뜨면서.
체커즈가 무명일땐 디즈니랜드 데이트도 하고 마치코가 체커즈 숙소에 오기도 하면서 왕래가 있었는데 체커즈 인기가 너무 많아지면서 제대로 만날수가 없게 됨. 몸이 멀어지면서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롱디시절 주고받았던 편지도 찢어버리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그 사이사이 후미야가 다른 여자연예인들이랑 스캔들도 나고 했는데 뭐 결국 마지막에 선택한건 마치코였다고 합니다...
마치코는 고향에서 팬클럽이 결성될만큼 예쁘기로 유명했고 집안도 나름 빵빵한 아가씨라 불량의 교과서 그 자체였던 밴드맨 후미야와의 교제를 엄청 반대받았음. 후미야가 마치코 부모님한테 허락 얻으려고 엄청나게 노력했는데 그중 하나가 국철(현 JR)에 취직한거였음. 체커즈 데뷔 전까지 국철에서 작업복입고 작업했던 남자임ㅋㅋ 안정적인 직장 다니는거 보여주려고... 하지만 일하면서도 아 이 열차 타고 가면 도쿄에 있는 마치코를 만날 수 있을텐데 같은 생각이 들고 뭐가 됐든 도쿄로만 갈 수 있으면 좋겠다 해서 체커즈 데뷔를 계기로 상경함.
80년대말 이런저런 스캔들 끝에 후미야는 마치코를 선택하고 동거를 시작, 그러고 얼마 안돼 이번에는 마치코와의 스캔들이 보도되면서 그걸 계기로 결혼에 골인했음. (그 시절에는 일반인 애인도 방송에 그냥 내보냈음..)
1991년 11월에는 현재 후지티비에서 아나운서로 활약중인 아들 후지이 코우키를 득남함. (딸도 있는데 딸은 일반인으로 사는듯)
(당시 득남 인터뷰 영상)
(체커즈 파이널 라이브의 후미야, 1992년)
1992년 12월 31일 홍백가합전을 마지막으로 체커즈가 해체한 이후 후미야는 1993년부터 본격적으로 솔로로 활동을 시작하는데, 이때 체커즈때도 못한 밀리언 싱글을 2개나 갖게 됨. (1장은 더블밀리언)
후미야 본인도 인정하는 인생 제2의 전성기로(제1전성기는 체커즈시절), 이미 결혼해서 애까지 딸린 유부남인데 여자들이 그래도 상관없다면서 들이대서 되게 곤란했던 시기라고도 함.
후미야는 체커즈시절에도 곡 대부분의 작사를 도맡아 했고, 솔로 데뷔하고는 작곡까지 했는데 그것도 대박나면서 고액세금납부자 탑10에 들기도 함.
93~97년 무렵의 후미야가 워낙 잘나갔던 나머지 당시 우타방에서 "후미야 대체 언제까지 인기있을 셈이냐?!" 라는 기획으로 방송을 만들기도 하고, 80년대때부터 체커즈와 라이벌이었던 그룹 안전지대의 보컬이 96년 후미야와 함께 출연한 엠스테에서 안전지대의 히트곡을 한소절 짧게 부르다 "그때 이 노래가 체커즈한테 밀려서 1위를 못 했다. 그리고 지금도 나와보니 후미야쨩이 차트에 또 있다!" 라고 장난식으로 한탄했음.
특히 80년대의 패션리더 자리를 90년대에도 이어갔는데, 80년대에는 버블시대다운 화려하고 파격적인 스타일을 선도했다면 90년대에는 '우라하라 스타일' 이라고 불리는 스트릿패션 계열 쪽에서 후미야가 꽤 유명했음.(우라하라 스타일의 선구자이자 스트릿패션의 하이엔드화로 유명한 '언더커버'의 디자이너 타카하시 준이 후미야의 스타일링을 담당)
80년대부터 포토그래퍼, 의류샵오너, 디자이너 등이 모여드는 클럽에 후미야도 단골이었던지라 그들과 친분이 있던 후미야도 영향을 받아 그래픽디자인을 시작하기도 하고, 언더커버 브랜드의 경우에는 후미야 솔로 데뷔 이후 거의 전담이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언더커버였던 경우도 있었음. 그밖에도 90년대에는 꼼데가르송, 스투시, 슈프림 등을 자주 입었음.
관련 인터뷰
Q: 대부분 죠니오(타카하시 준의 애칭)가 스타일링해줬군요
A: 자주 만나면서 친해지게 돼서, 체커즈가 해체하고 내가 솔로로 데뷔할 무렵에는 죠니오도 언더커버를 갓 시작했을 때니까 이리저리 타이밍이 맞아떨어져서. 그래서 당시에는 전신 언더커버로 나올 때가 많았네요. 아직 죠니오가 NIGO와 둘이서 조그만 가게(하라주쿠의 NOWHERE)를 했을 무렵이네요.
당시 친구들이었던 디자이너들한테 사들인 옷이 워낙 많아서 그냥 사복 그대로 방송에 나오거나 드라마에서도 사복을 입는 경우가 많았고 96년에 방영한 모 드라마에서는 본인 의상은 물론 같은 출연진이었던 토키오의 고쿠분의 의상까지 본인 사복으로 후미야가 직접 스타일링해줬다고함.
90년대 일본 패션계에서 핫했던 우라하라 스타일의 초창기의 대표아이콘이 후미야였고 우라하라 패션을 주도하는 디자이너 대부분과 80년대 클럽에서부터 알고지낸 친구사이였음.
90년대 30대 시절의 후미야
사람에 따라서는 체커즈 때의 화려하고 반짝반짝했던 버블리한 후미야보다 이 시기의 후미야를 더 선호하기도 함.
(마지막 사진은 2000년 킨키의 코이치와 드라마를 촬영했을 때의 사진. 참고로 둘 나이차이가 무려 17살...)
30대까지는 홍백에도 꾸준히 출연했고 드라마도 여러편 찍으면서 현역으로 활발히 활동했었는데, 40대에 접어들면서는 연기쪽 활동은 거의 안 하게 됐고 시대흐름에 따라 음반판매량도 줄면서 투어 위주로 소소하게 활동중.
큰 구설수도 없고 비주얼도 보컬실력도 나이에 비해 잘 유지중이라 아직도 부도칸 잘 채운다고 함.
작년에는 26년만에 홍백가합전에 출연해서 사회를 맡은 아리요시와 열창했는데 이건 아리요시가 20대 초반 활동했던 게닌콤비 사루간세키의 밀리언 히트곡 "흰구름처럼"이 후미야가 써준 곡이기 때문.
(1996년 사루간세키와 후미야)
안 그렇게 보여도 후미야는 아리요시와 띠동갑이고, 아리요시는 저때 후미야를 보고 "남들이 그 사람은(후미야) 뭔가 다르다, 오라가 있다 라면서 겁을 줬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귀여운 아저씨" 라고 했음ㅋㅋ
그밖에 연예인과의 인맥으로는 앞서 말한 톤네루즈 외에 아키나와도 사이가 좋기로 유명했음!
후미야는 데뷔 전부터 아키나의 열렬한 팬이었는데 마침 체커즈가 브레이크하고 아이돌적인 인기로 최전성기를 누린 84,85년이 아키나의 전성기와도 맞물려서 체커즈와 아키나는 방송에서 자주 엮였고 접점도 엄청 많았음.
후미야가 아키나를 너무 좋아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게 방송적으로도 재밌어서 일부러 더 자주 붙이기도 한듯ㅋㅋ (물론 아키나도 후미야도 모두 저때 따로 연인이 있었지만..)
84~85년의 풋풋한 그들
80년대 후반에는 후미야도 연예계 짬밥이 생기면서 저때처럼 어쩔줄 몰라하는 그림은 사라졌지만 대신 능글맞은 태도로 아키나를 대하는 모습이 늘어남ㅎ
실제로 친분도 생겨서 따로 식사나 술을 하기도 하고 체커즈 멤버들이 아키나를 히메(공주)라고 부르는등 당시 사이가 꽤 좋았다고 함. (모두 본인들 피셜)
(항간에 이 둘이 잘 되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이야기가 꾸준하게 나오고 있다고.........)
90년대에 재회한 30대의 후미야와 아키나
그럼 후미야가 60대에 출연한 nhk songs 짤로 긴글 마무리!
쓰고보니 아쉬운점이 생겨서 더 구구절절 내용 추가해서 수정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