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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24일 '안전한 일터! 안전한 사회!'를 요구하는 민주노총 결의대회에 참석한 정인용 본부장(경기지부 조합원, 가운데)
ⓒ 정인용

 
<일하다 아픈 여자들> 속 암 투병 중인 대한항공 승무원 유진씨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2년하고 4개월이 지났다. 12월의 차가운 바닷바람조차도 추운 줄 모르고, 흐르는 눈물이 계속 뜨겁기만 했다. 스물셋에 항공사 승무원이 된 사촌 언니를 참 부러워했더랬다.

"언니는 매일 매일 비행기 탈 수 있어서 좋겠다."

언니는 스물다섯 해를 하늘에서 지냈다. 마흔아홉, 한 줌 재로 바다에 흩뿌려지기 전까지. 언니는 스물여덟에 결혼하고 몇 해 동안 불임 치료를 받았지만, 소용없었다. 자기 몸을 탓했다. '내가 너무 약해서 그런가보다'며 몸에 좋다는 한약들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유방암에 걸렸을 때도, 암세포가 온몸에 퍼져서 배를 가른 채로 겨우겨우 숨을 쉬면서도, 언니는 그게 다 '제 탓'이라 말했다. 그렇게 팔순이 된 노모와 가족들을 남겨둔 채 언니는 먼저 세상을 떠났다. 언니가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회사에 산재 신청하자'고 몇 차례 권했지만, 언니는 "산재 신청 같은 거 하면 나 회사에서 잘려"라며 쉬쉬하며 조용히 치료받았다.

하늘은 지겹도록 봐와서 싫으니, 바다로 보내달라는 언니의 유지대로 부산 해운대 저 먼바다에 언니를 두고 왔다. 그 후에 팔순인 이모를 설득해, 산재 신청을 했다. 언니가 아팠던 것이 그래서 언니가 그렇게 죽은 것이 절대 언니 탓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2022년 6월 언니는 대한항공에서 우주방사선 피폭으로 산재 승인을 받은 다섯 번째 케이스가 되었다. 대한항공의 비행기가 50년 동안 하늘을 나는 동안 겨우 5명이었다. '자책 만드는 사회'가 맞다. 회사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안전을 터부시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생존권을 박탈하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옭아맨다. 그래서 결국 우리 노동자들은 다치거나 아프면, 혹은 죽어도 제 탓을 하기 마련이다.₁

 
 
나의 일터는 학교이다. 학교에서 일하는 교육공무직(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 중 수가 가장 많은 학교급식노동자들이 2021년에 처음 폐암 산재 판정을 받기 시작했다.

하루에 들고 나르는 식자재와 조리도구의 무게(80Kg)가 코끼리 한 마리 무게 만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근골격계질환은 으레 있는 질병이다. 방학이면 병원에 다니며 치료받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다. 몸뚱아리를 고쳐서 다시 일하고, 안 고쳐지면 퇴직했다. 아파서 쉴라치면,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업무가 고스란히 넘어가니,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그런데 급식실에서 숨만 쉬어도 죽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노동조합이 없었다면, 우린 이것이 산업재해라는 것도 몰랐을 터였다. 산재를 신청하고,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우리에게 돌아오는 말은 "집에서도 하는 밥 짓고, 청소하는데, 산재는 무슨."

도서관 사서로 20년, 내게 남은 것
 
▲  지난 4월 24일 '안전한 일터! 안전한 사회!'를 요구하는 민주노총 결의대회에 참석한 정인용 본부장(경기지부 조합원, 맨 왼쪽)
ⓒ 정인용

 
책에는 '일반적으로 여성의 산재율은 남성의 산재율보다 낮다'라고 나와 있다. 여성이 덜 위험하고, 덜 다쳐서 산재율이 낮은 걸까? "여성들이 전통적으로 어머니, 아내, 딸 역할로 가사 노동 대부분을 떠맡아왔고, 그렇게 전담해 온 가사노동의 연장선상에서 현대의 여성 노동 대부분이 형성됐다. 또 그렇게 '사회화된 가사 노동'은 저평가 되고 있다."₂ 이런 사회 인식 때문에 여성 노동자들이 업무상 재해 인정 판정을 받기 어렵다. 환기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데다, 제 시간에 배식하기 위해 분 단위로 다투며 뛰어다니느라 숨 한번 제대로 고를 시간도 없이 조리흄₃에 고스란히 노출돼왔다.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의 95% 이상이 여성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매년 해고와 재계약을 반복했다.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가 아픔을 호소하는 것은 '일자리를 잃는 것' 즉 '생존권'을 박탈당하는 일이기 때문에, 아프다고 말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폐암이 직업성 암으로 산재 판정을 받기까지 우리는 지난한 투쟁을 해야만 했다. "일하다 아프지 않게", 아니 "제발~, 일하다 죽지 않게" 해달라고 절절하게 외쳤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투쟁하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학교 급식실 한켠에서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동료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 무섭고 두렵다.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싸우는 노동조합도 아직 부족한 것들이 있다. 이전 사무실은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빌딩이라, 몸이 아프거나 불편하면 오르기 힘들었고 휠체어는 들어올 수 없었다. 다행히 지금 건물에는 엘리베이터와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있다. '모두를 위한'다는 것이 아주 기본적인 생리현상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배웠다.

"나의 아픔이 장애 때문인지, 일 때문인지 자신도 확신할 수 없다"는 출판 노동자 유선씨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와 닿았다. 장애 노동자들에게 아픈 몸에 대한 증명은 이중, 삼중의 고통이었을 것 같다. '일하는 장애 노동자'가 그나마 다행인 사회라는 게 씁쓸하다. 얼마 전에도 한 교육청에서 공무원 임용에 장애인을 차별하여 불합격 통보했고, 이에 장애인단체에서 소송을 제기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입직의 순간도 차별이 도사리고 있는데, 장애 여성 노동자가 '일하다가 다쳤다, 일하니 아프다'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었을까. 끊임없이 스스로 자문했을 유선씨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유선 씨의 아픔은 유선 씨 탓도 장애 탓도 아니에요."
 
▲  지난 4월 24일 '안전한 일터! 안전한 사회!'를 요구하는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교육공무직본부가 '모두가 안전한 학교'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 정인용

 
지금도 키보드를 치는 내내 손가락이 욱신거린다. 도서관 사서로 20년, 좋은 책들을 추천해 주고,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분류하고 정리하며 그렇게 내게 남겨진 것은 굽은 손가락이다. '엄마를 닮아서, 관절이 본래 약해서…'라고 이제 치부하지 않으련다.

20000권의 장서를 들고 나르고, 정리하며 비뚤어진 나의 손가락. 여성 노동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노동'이라는 선입견과 차별로 점철된 사회의 인식을 바꾸어 나가려면, 또 나의 일터에서 노동환경을 바꾸어 나가려면 이 굽어진 손가락은 이제 '산업재해'라고 말해야 한다. 저임금, 여성, 비정규직. 이 사회구조 속에서 이제 자책을 넘어서자. 비뚤어진 사회구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자! 그리고 이렇게 말해야 한다.
 

"내가 아픈 것은 내 탓이 아닙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433421

  • tory_1 2024.05.14 10:39
    나의 아픔이 장애 때문인지, 일 때문인지 자신도 확신할 수 없다...진짜 와닿는 말이다ㅜ
  • tory_2 2024.05.14 11:05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4/05/14 22:48:56)
  • tory_3 2024.05.14 11:24
    ㅇㅇ
  • tory_4 2024.05.14 12:42
    사서는 잘 모르겠는데 급식실 종사하시는 분들 처우는 개선되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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