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자님, 올해 마지막 레터를 보내드리는 김지혜 기자입니다. 나를 넘어 우리를 생각하는 기사에 관심이 많아요.
요즘 '민폐'라는 단어를 자주 듣고 말합니다. 버스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는 승객이나 길을 막고 드라마 촬영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 상영 중인 극장에서 벨 소리를 들을 때 저도 모르게 생각해요. '이거 민폐 아냐?'
제 자신을 향한 규율이 될 때도 있습니다. 카페에 너무 오래 앉아있는 것 같을 때, 식당에서 혼자 너무 넓은 자리를 차지한 것 같을 때, 아파트에서 저녁 늦게 청소기를 돌리고 싶을 때 생각하죠. '나 지금 민폐일까?'
어떤 행동을 두고 '민폐다vs.아니다' 다투는 갑론을박도 자주 목격합니다. 민폐는 이미 우리 사회의 중요한 '룰'이 된 것 같아요. 많은 경우 공동주택에 살고, 대중교통을 타고, 공공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한국인들에게 '민폐 끼치지 말자'는 늘 부대낄 수밖에 없는 타인과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암묵적인 규칙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 레터의 제목, 이미 보셨겠지만 조금 과격하지요? 제가 대세를 거슬러 '민폐를 끼치자'는 이상한 구호를 외치게 된 데에는 사실 이유가 있습니다.
함께 읽을 기사는, 고독사를 연구해 온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선임연구위원의 인터뷰인데요. 최민영 논설위원과 만난 그는 '폐 끼치기 싫다'는 태도가 사회적 고립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6분 분량의 기사를 읽고 더 대화해 봐요.
'나 혼자 산다'는 건 결코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세 집 중 하나는 1인 가구인걸요. 이성애 '정상가족'을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에서 '혼자 사는 삶'은 부당한 오해와 편견에 자주 시달려왔어요. 당연히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서만 잘 살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의존이 필요해요. 의존의 대상이 꼭 가족일 필요는 없지만요. 인간은 서로 조금씩 폐를 끼치고 또 조금씩 이해하면서, 각자의 결핍을 해소하는 상호지원의 공동체를 만들어 왔어요.
최민영 논설위원의 지적처럼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을 지나칠 정도로 미덕으로 여기는" 현대사회의 경향은 그런 의미에서 위험해 보입니다. 나는 누구에게도 폐 끼치지 않을 것이며, 그 누구도 나에게 폐를 끼쳐선 안 된다는 '민폐 제로'의 이상향은 결국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의존'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토양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본 적 있어요. 흔히 '민폐'라고 취급되는 노년층의 행동들 대다수는 그저 노화로 인한 신체능력 저하의 결과물이라고요. 예를 들어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대화하는 이유는 예전처럼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벨 소리를 듣고도 한참 전화를 받지 않는 건 휴대폰 화면에 뜬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아서라는 겁니다.
결국 우리는 누구나 '민폐'의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할 때 서로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너그러운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민폐를 끼치자'라는 말은 적극적으로 남에게 해를 끼치는 안하무인이 되자는 게 아니라, 이런 뜻이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민폐가 될 수도 있고, 도움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자주 생각하려 해요.
칼바람이 마음까지 헤집는 매서운 계절입니다. 독자님께서도 누군가에게 한껏 의존하는 따뜻한 시간을 잠깐이나마 보내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공지드린 대로, 뉴스레터 점선면은 약 한 달간의 재정비 후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지난 2월부터 열 달 넘게 점선면과 함께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부디 평화롭고 안전한 연말연시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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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 좋은기사다 올려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