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밤 12시 30분.

[으으 내일 해야겠다]

납땜을 하다가 멈췄다. 오늘 다 끝내기엔 무리겠다.
불을 끄고 공장문을 나섰다. 깜깜한 도로엔 차 하나 다니지 않는다.

[가로등이 이 시간엔 원래 다 꺼지나?]

여긴 거의 시골이라 버스가 이미 끊겼다. 나는 이 곳 핸드폰 부품 공장에서 일한지 얼마 안됐다.

[재수없게 이런 곳에 왔다니... 빨리 바짝 돈 벌어서 서울로 돌아가 취업하던가 해야지]

하릴 없이 인도로 걸어가는데 어둠속에서 희미한 불빛의 가게가 보였다.
주변의 공장단지와는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OO 레코드 샵」


저런곳이 있었나. 오래된 느낌의 작은 레코드샵이었다.
노란 불빛의 간판이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Every night at the Paradise Cafe
The world outside
May make its own madness
But here we hide
The world away
No headlines, no deadlines

낡은 스피커에선 정겨운 올드팝이 은은하게 흘러 나왔다.

[들어가볼까]

손잡이를 드르륵 열자 중년의 이국적인 외모의 여자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겼다.
키가 180cm는 돼 보일 정도로 무척 커 보였다. 화려한 무지개색 롱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가게 안은 어두운 조명에 마치 칵테일 바처럼 분위기 있었다.
쇳가루 풀풀날리는 공장에만 하루종일 있다가 감성적인 공간에 오니 숨통이 트이는 느낌에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느린 걸음으로 앨범들을 구경하다가 무언가를 보고 멈춰섰다.


[P의 신곡이 나왔네..!?]

평소에 좋아하던 가수의 새 앨범을 발견했다.
타지에서 일만하고 사느라 앨범이 나온지도 몰랐다. 인터넷이 안되니 알 턱이 없지.

"오늘 P의 앨범이 새로 나왔는데 들어보지 않겠어요?"

가게주인은 생글생글 웃으며 내게 이어폰을 건넸다.
무표정이었던 나는 반가운 표정으로 이어폰 방향으로 귀를 대었다.
부드러운 현악기의 생명이 샘솟는 듯한 아름다운 전주가 흘러나왔다.

[아아 너무 좋다...근데 여기서 다 들어버리기엔 아까워..]

나는 주인의 손을 조심스레 떼어내고 앨범 한장을 집어들어 계산대로 향했다.

[역시 엄청 좋네요. 여기 계산해 주세요.]

긴 원피스를 휘날리며 계산대로 걸어온 주인은 눈을 가늘게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 왜 다 듣지 않습니까?"

그녀는 푸른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그냥 집에가서 듣고 싶어서요]

"다 들으셨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참으로 아쉽습니다."

[예에…]

주인 여자의 눈빛이 뭔가 이상했다.

건성으로 인사하며 재빨리 그 곳을 나왔다. 뒤 돌아보니 그녀는 활짝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20분정도 걸어가 월셋방 집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너무 피곤해 씻지도 못하고 곯아떨어졌다.
다음날 공장일을 마치고 집에와 빨래를 널었다.
나는 자기 전에 P의 CD를 넣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침대에 털썩 누웠다.

[으으으 오늘도 하루가 끝났구나]

아까 맥주도 마셨겠다, P의 곡으로 힐링하며 잠들고 싶다. 기지개를 피며 눈을 감았다.

[???]

원래 이 곡이었나.

내가 기억하는 멜로디는 장조였는데 어두운 단조로 음악이 시작됐다.
마치 난수방송처럼 한음절 한음절 힘없이 내뱉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가사는 알 수 없는 생전 처음 듣는 나라의 언어였다.
뒤에 흐르는 반주는 마치 장송곡처럼 느릿하고 엄숙했다
흐르던 음악이 멈추더니 갑자기 무속인들의 굿소리가 들렸다. 인도어인지 아랍어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언어로 소리치며 울부짖고 다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이 자지러지며 우는 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황급히 일어나 정지버튼을 눌렀다.

[뭐야…시발 이거 잘못 산거 아냐?]

앨범자켓과 CD를 확인했지만 P의 앨범이 확실했다.
무서운 마음에 욕을 하며 재빨리 라디오 방송을 틀고 핸드폰을 열었다.

[어라 인터넷이 되네?]

이곳에 오고 처음으로 데이터가 잡혔다. 음원사이트에 가수 P를 검색했다. 
소갯말에 순간 나는 망치로 뒷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갑작스레 우리를 떠난 그리운 가수」


네이버에서 검색해보았다.
그의 프로필 생년월일 옆엔 한달 전 날짜로 사망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새로운 앨범 따위는 당연히 없었다.
손을 덜덜 떨며 레코드점에서 사온 CD를 들었다. 자세히 볼 용기가 없어 앞만보고 밖으로 뛰쳐 나가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날 밤 나는 악몽을 꿨다. 레코드샵의 주인 여자가 한손에 활활 타오르는 횃불을 든 채 입이 세로로 찢어지며 엄청난 속도로 뛰어오고 있었다.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꿈에서 깨어났다. 나는 주기도문을 미친듯이 외웠다.

그 이후로 나는 한 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몸도 아파져 공장일을 그만뒀고 결국 돈도 모으지 못한 채 다시 서울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매일매일 악몽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이삿 날 떠나기 전, 원인을 밝혀내고 싶은 견딜 수 없는 마음에 충동적으로 레코드 샵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 자리는 온데간데 없이 무성한 나무들과 공터만이 자리잡고 있었다.
주변 편의점으로 달려가 음료수 하나를 아무렇게나 집어들고 카운터에 주인 아저씨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여기 레코드샵이 하나 있지 않았냐고. 아저씨는 그게 언제적이냐며 웃으며 말씀하셨다.

"레코드샵은 옛날 78년도에 하나 있었는데 내가 고등학생 될 무렵인가 사라졌어"

더이상 묻지 않았다. 나는 살면서 최대한 그 동네에서 일했던 시기는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그 후로 난 다시는 P의 음악 또한 들을 수 없었다. 

  • tory_1 2018.07.19 14:46

    아 미친 너무 무서워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아 음악 튼거 너무 무서워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너무 무섭다고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으앙ㅜㅜㅜㅜㅜㅜㅜㅜ

  • tory_2 2018.07.19 15:31
    미스터리 같다 ㅎㅎㅎㅎ 재밌게 읽었어 톨아♡
  • tory_3 2018.07.19 16:08
    와 재밌어!!!딱 좋아하는 느낌의 괴담.
  • tory_4 2018.07.19 16:44

    오오ㅡ짧지만 강렬한 느낌이다. 잘 읽었어!

  • tory_5 2018.07.19 19:03

    오 다들었으면 무슨일이 생긴 거였을까................

  • tory_6 2018.07.19 22:37

    의외로 P가 사후세계에서 낸 앨범인거 아녔을까

  • tory_7 2018.07.20 00:21
    으어어어어어 그 여자랑 레코드 가게 대체 뭐하는 존재야아아아아
  • tory_8 2018.07.20 00:46
    헐 이미 죽었다니 ...그럼 장승곡을 듣고 흥얼흥얼 거렸던거네 다 들었으면 아마...그 여자는 저승사자 였나봐
  • tory_9 2018.07.20 01:35

    아... 집에 가면 못 들으니까 끝까지 듣고 가라는 소리였구나.

    잘 봤어 톨아!

  • tory_10 2018.07.20 09:43

    와씨 혼자 있는 방에서 밤에 CD 틀었는데 저런 노래가 나오면.. ㅠㅠㅠㅠ

  • tory_11 2018.07.20 10:05

    거기서만 들을 수 있는 P의 저승발 신곡이었던 거 같은데 너무 아쉽다 ㅠㅠ 

  • tory_12 2018.07.20 11:01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무셥다....윽..ㅠㅠㅠ

  • tory_13 2018.07.20 17:19

    그 자리에서 다 들었으면 어케 되는거야.............

  • tory_14 2018.07.20 18:35
    뭔가 이거 이토준지 그림체가 느껴진다 ㄷㄷ
  • tory_16 2018.07.25 14:54

    어 맞어 라..라...라.... 생각나네 ㅠㅠ

  • tory_15 2018.07.20 22:59

    잘썼다...무드좋다

  • tory_16 2018.07.25 14:54

    완전 몰입해서 봤어 무서워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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